잔칫집 극장가 ‘웃픈’ 딜레마

갑자기 돌아온 봄날에 ‘흠칫’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유난히 길었던 영화관의 겨울. 무려 2년여 만에,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찾아왔다. 이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와 흥행 기대작 연속 개봉에 힘입어 실적 반등이 확실시된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때가 아니다. 확 불어난 인파로 직원들의 곡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구인난 속 인력 대거 확충’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떠안은 탓이다.

지난 2년간 이어졌던 사회적 거리두기는 영화업계의 불황으로 직결됐다. 시행 당시 업계는 시시각각 변하는 방역지침에 대응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웠었다. 정부 지침을 준수하면서도 살 길을 골몰해봤지만, 피해를 줄일 수는 있었을지언정 막을 수는 없었다.

겨울 지나고
봄이 왔건만…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널을 뛰는 방역지침 때문에 업계와 관객 모두가 힘들어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당시 방역 당국은 그 전달부터 시행됐던 ‘위드 코로나’ 여파로 강해진 확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방역 패스’ 도입을 선언했다.

위드 코로나 시행에 발맞춰 여러 빗장을 풀었던 업계로서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지난해 11월)에는 백신 접종자들을 대상으로 취식과 좌석 붙여앉기가 가능한 ‘백신 패스관’도 운영하고, 미접종자들도 별다른 제한 없이 입장할 수 있어 이전보다 많은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다”면서도 “하지만 방역 패스 도입 이후에는 백신 패스관도 없애고, 입장 요건도 까다로워지다 보니 회복세가 한풀 꺾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업시간이 제한될 때마다 타격이 너무 크다”며 “특히 오후 9시나 10시 제한 때는 저녁 황금 시간대 영화 상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 관객층인 학생·직장인을 모두 놓치게 되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CGV, 롯데시네마 등 주요 영화관들은 당시 관객 755만명을 동원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개봉에도 불구하고 실적 개선에 난항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구책으로 마련한 인원 감축·가격 인상 계획 등에 쏟아지는 비난도 감내해야 했다.

2년간의 부침은 지난달이 돼서야 끝났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면서다. 정부는 지난달 18일 마스크 착용을 제외한 대부분의 방역 조치를 종료했다.

거리두기 해제 소식이 알려진 직후, 영화관은 야구장·식당 등과 함께 대표적인 수혜자로 꼽혔다. 그동안 금지됐던 실내 취식이 가능해지면서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을 수 있게 됐다. 반가운 마음에 극장을 찾는 발길도 늘어났을뿐더러, 관객당 기대수익도 상당히 늘었다.

잔칫집 극장가 ‘웃픈’ 딜레마 
갑자기 돌아온 봄날에 ‘흠칫’

이번 달부터 성수기인 여름까지 흥행 기대작이 계속 늘어서 있다는 점 역시 호재다. 코로나 유행 이전에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인기작들의 속편이 개봉날짜를 속속 확정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일 개봉한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닥터 스트레인지>)는 일주일 만에 약 400만명을 동원하면서 코로나 유행 이후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이어 오는 18일에는 <범죄도시2>가 개봉한다. 전작인 <범죄도시>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687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범죄도시2>는 이보다 한 등급 낮은 15세 관람가로 더 큰 흥행을 노리고 나섰다.

다음 달에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마녀 Part2> <탑건: 매버릭>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고, 오는 7월에는 <토르: 러브 앤 썬더> <한산: 용의 출현> 등이 개봉 날짜를 조율하는 중이다. 

특시 <한산>은 2014년 개봉한 <명량>의 후속작이다. <명량>은 관객 1761만명을 동원하면서 개봉 8년 뒤인 지금까지도 역대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업계에서 <한산>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팝콘 푸느라
수명 갉았다”

CGV 관계자는 “우선 <닥터 스트레인지>가 첫 단추를 잘 꿰준 것으로 보고 있다. 덕분에 코로나 유행 때 영화관을 찾지 못했던 관객들이 다시 돌아오는 계기가 잘 마련된 것 같다”며 “다른 인기 후속작들과 한국 영화 기대작들이 줄 서 있는 만큼, 지금부터 여름시장까지 더 많은 관객이 영화관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 역시 “<닥터 스트레인지>가 시장에 좋은 신호를 준 것으로 본다”며 “그동안 너무 어려웠던 만큼, 좋은 상황을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달을 기점으로 실적 ‘턴어라운드(흑자 전환)’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큰 업체들은 이번 달을 기점으로 살아날 것으로 본다”며 “대표적으로 업계 1위인 CGV는 지난 27개월 동안 계속 적자에 허덕여왔는데, 이번 달에는 반등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환욱 IBK투자증권 연구원도 지난 3월 말 작성한 투자 보고서에서 CGV가 올해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연구원은 “코로나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콘텐츠가 연달아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티켓 가격 인상으로 큰 폭의 실적 개선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또 마진율이 높은 매점 매출 회복 및 비용 절감 정책으로 소폭의 흑자 전환도 가능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반등 조짐
흥행 기대작 줄줄이…장밋빛 전망

하지만 급격한 회복세에 따른 반작용도 상당하다. 최근 영화관 현장 근무자들은 갑자기 불어난 업무량 때문에 여러 고충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 유행 당시 불황으로 한껏 감축했던 인원이 다시 충원되기도 전에, 관객이 몰려든 여파다.

앞서 이번 달 초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과도한 업무로 너무 힘들다”며 토로하는 영화관 현장 직원들의 글이 수차례 올라왔다. CGV 직원으로 추정되는 A씨는 ‘지금 시키는 그 팝콘, 직원들 수명 갉아 내드린 겁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어려운 현장 상황을 전했다.


그는 “코로나 (유행)이전엔 영화관당 직원이 6~7명 있었고 아르바이트생도 20~50명씩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직원 3명이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면서 “휴무를 보장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화재·안전문제 등 그 어떤 사건사고가 터져도 해결하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지난달 25일부터 영화관 취식이 가능해졌고, 모두가 잘될 거라고 예상했던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했는데 본사는 옥수수, 기름, 팝콘 컵, 콜라 컵 등 기본 물품들을 보충하지 않는다”며 “발주를 안 한 게 아니라 3주 전부터 본사가 물량을 통제하고 지정된 수량만 넣어줬다”고 비판했다.

A씨는 “매점엔 대기 고객만 300명을 넘어가고 아르바이트생 2명이서 모든 주문을 다 해결하고 있다. 각종 대기줄을 쳐내느라 정직원도 12시간씩 밥은커녕 물도(못 마시고), 화장실도 못 가고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내가 간 지점은 팝콘이 잘 나와서 저희가 배부른 푸념하는 것 같나. 그거 팝콘 아니다”라며 “뒤에서 어떻게든 재고 요리조리 옮겨서 고생하는 영업팀 사람들과 12시간씩 배고픔 참고 클레임(항의) 참고, 참으며 일하는 현장 직원들·아르바이트생·미화 직원들 수명 갉아서 드린 것”이라고 호소했다.

알바 다 
뺐는데…

A씨 주장에 공감하는 롯데시네마·메가박스 직원들의 증언이 계속 이어지면서, 해당 게시판은 업계 성토의 장이 됐다.


회사 측은 “이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있다”며 사과하고 빠른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영화 예매율 추이를 보면서 지난달 중순부터 일찌감치 인력 확충에 나선 바 있다”면서도 “주요 채용 대상이 대학생들인데, 중간고사 기간이 겹치면서 필요한 만큼 채용이 되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말 등 관객이 많을 때는 본사에서도 현장 지원을 나가는 등 인원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CGV 관계자는 “<닥터 스트레인지> 개봉일이 4일이었고, 다음날 어린이날이 겹치면서 하루 관객 수가 총 130만명을 넘어섰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도 사실이지만 현장 직원들의 고충도 그만큼 컸던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코로나 유행 여파로 인원을 줄인 것은 맞지만 거리두기 해제 이후 인력 충원이 이루어졌다”면서 “예상보다 더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방문하면서 일시적인 혼란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는 18일 <범죄도시2>가 개봉하면 지난 5일만큼은 아니겠지만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대한 빨리 추가 채용을 실시해 운영상 어려움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여름 성수기 전까지 차질 없는 운영이 가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확 불어난 인파에 반쪽 인력 곡소리
인력 충원 시급한데…구인난 어쩌나 

하지만 이들이 필요한 만큼의 인력을 즉각 충원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대다수의 서비스업 업종이 구인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표적인 서비스업으로 꼽히는 외식업계는 아르바이트 구인난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구인이 한꺼번에 몰린데다 청년들의 시선이 고정적인 근무 방식에서 유동적이면서 단기적인 고수익 업종으로 쏠리고 있는 탓이다.

이로 인해 식당에서는 최저임금보다 20~30% 높게 책정한 시급을 내걸어도 마땅한 지원자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영화관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 역시 자영업자들과 인력 확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인력 보충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코로나 유행으로 노동 시장이 재편되면서 당분간 이 같은 구인난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주당 17시간 미만의 초단기 일자리 취업자 수는 231만9000명이다.

코로나 유행 이전인 2년 전에 비해 45%가량 급증한 수치다. 앞서 “당장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혔던 영화관 관계자들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구인난이라고는 하지만 경험적으로 봤을 때 이번 달 초가 지난달 말보다 지원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추가 채용 외에도 숙련도에 따른 보직 배치와 지속적인 교육 등으로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방안을 적극 강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뽑아도
너무 늦었다

인원 공백이 지속되면 고객 불만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간만에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을 붙잡지 못한다면, 이들의 ‘봄날’은 말 그대로 ‘일장춘몽’에 그칠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업계에서는 해결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긴 터널을 지나온 영화업계가 마지막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지, 그 행보에 눈길이 모이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블록버스터 맞설 국내 기대작 라인업

올해 흥행 기대작 중에는 ‘할리우드표’ 블록버스터가 다수 포진돼있다. 하지만 이에 충분히 대적할 만큼, 국내 영화 라인업도 쟁쟁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우선 <브로커>가 다음 달 8일 개봉을 확정지었다. 일본의 명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배우 송강호·강동원·배두나 등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만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렸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진출했다. 

뒤이어 <마녀 Part2. The Other One>이 다음 달 15일 개봉 예정이다. 전편의 독특한 설정과 배경을 기반으로 더욱 확장된 세계관과 강렬한 액션을 선보인다. 1408대1의 경쟁률을 뚫은 주연 배우 신시아를 비롯해 박은빈·서은수·진구·성유빈·조민수·이종석 등이 출연한다. 전편 주인공이었던 김다미도 특별 출연할 예정이다.

<외계+인>은 오는 7월 개봉한다. <전우치> <도둑들> <암살> 등을 잇달아 흥행시킨 최동훈 감독의 신작이다. 고려 말 소문 속의 신검을 차지하려는 도사들과 2022년 인간의 몸 안에 수감된 외계인 죄수를 쫓는 이들 사이에 시간의 문이 열리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류준열·김태리·소지섭·염정아·조우진 등이 출연한다. 

<한산>은 7월 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전편 <명량>보다 5년 앞인 1592년 7월의 한산해전을 그린다. <명량>에서 배우 최민식이 맡았던 이순신 장군 역할은 배우 박해일이 맡았다. 이외에도 안성기·변요한·손현주·김성규·김성균 등이 출연해 몰입감을 더한다.

<비상선언>도 올해 여름 안에 개봉할 예정이다.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재난 상황에 직면해 ‘무조건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를 두고 벌어지는 리얼리티 항공 재난 영화로, 이미 지난해 칸 월드프리미어에 초청받은 바 있다. 이병헌·송강호·전도연·김남길·임시완 등 국내 정상급 배우가 대거 출연해 기대를 모으는 중이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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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