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윤석열정부의 초대 내각 구성이 완료됐지만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들린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안철수 위원장이 잡았던 손을 놓기 일보 직전 상황까지 이어졌다. 두 인물 간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탓이다.
지난달 3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새벽 회동 후 이른 아침 전격 단일화를 선언했다. 두 사람은 단일화 과정에서 신뢰할만한 담보, 공동정부 구성 등을 논의한 바 있다. 조건 없는 약속으로 반드시 성공한 정부를 만들자며 손을 잡았다.
종이쪼가리
당시 윤 당선인은 “종이쪼가리 같은 것은 필요없다. 나를 믿어 달라”고 안 위원장을 설득시켰다. 대선 결과 두 인물은 짜릿한 승리를 거머쥐었고, 빠른 속도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까지 끝마쳤다.
인수위원회 구성 역시 안 위원장이 지휘봉을 잡으며 약속이 지켜지는 듯 보였다. 인수위원들 역시 안철수계 인물들이 다수 합류했다. 그러나 최근 윤 당선인이 내민 내각 인선 명단을 보면 후보 단일화 약속은 종이쪼가리보다 못한 신세가 됐다.
발단은 인수위가 지난 14일 차기 정부 1기 내각 구성을 완료하면서부터다. 현 조직 구성과 같은 19명을 후보자로 지명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장관 후보자에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 ▲국방부장관에 이종섭 전 합동참모본부 차장 ▲법무부 장관에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통일부 장관에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 ▲행정안전부 장관에 이상민 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원장 ▲보건복지부 장관에 경북대병원 정호영 전 원장 등이다.
3차 발표까지 나온 내각 인사들의 평균 나이는 60세에 육박한다. 출신 지역별로 영남과 충청 출신이 주를 이룬다. 또 과거 이명박정부 인사, 윤 당선인의 40년 지기, 서울대 출신 등으로 채웠다.
2차 내각 인선에서도 없는 안철수계
약속 없었나? “전문성 인정된 발탁”
발표가 이어질 때마다 윤 당선인의 색깔은 더욱 짙어져만 갔다. 일각에선 민감한 현안을 다뤄야 하는 부처인 기재부, 국토교통부, 여가부 후보자로 정치인 출신을 임명해 한쪽으로 기울어진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법무부 장관 등은 측근으로 분류된 인사를 배치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공동정부를 꾸리기로 한 내각 인선에서 안철수계 인사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초 안철수계 인사가 반영되지 않아 그가 재차 이용만 당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흘러나왔다.
이런 탓에 당초의 공동정부 약속까지 위기를 맞은 듯한 분위기다. 윤 당선인은 내각을 거듭 발표할 때마다 전문성과 능력에 의한 인선임을 강조해왔다.
1차 발표 직후 안 위원장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윤 당선인에게 전문성과 능력에 대한 조언을 하려 했으나 그런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인사 결정은 오롯이 윤 당선인의 몫이라며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다.
직접적인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대표적인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이 입각에 뜻이 없다며 인수위 활동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다. 이 의원은 안철수계 인물 중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만큼 입각이 가장 유력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의원이 윤 당선인의 내각 인선에 불만을 갖고 ‘반발성 사퇴’를 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는 윤 당선인과 안 위원장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공을 세웠다고 인정받은 인물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의원의 사퇴로 인해 2차 인선에서는 안 위원장의 의중이 반영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사퇴한 이 의원의 자리는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꿰찼다. 빠른 수혈을 통해 안 위원장의 인수위 지분도 자연스레 줄었다.
이 의원의 인수위 사퇴 논란으로 인해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에 파열음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당시 양당의 합당은 마무리 단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동정부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모양새가 되자 국민의당 당직자들도 합당 전 명예퇴직을 하겠다며 국민의힘에 강한 반발심을 표출하기도 했다.
할 수 있는 건 침묵
공동정부 차질 우려
공동정부 실현 불가 문제는 결국 2차 발표 직후 안 위원장의 공식일정 취소로 사실상 직접 불만을 드러내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안 위원장은 내각 구성에 앞서 윤 당선인에게 인사를 추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 등 안 위원장이 전문성을 가진 분야 인사를 추천해 윤 당선인이 임명할 것이라는 추측이 다수 나왔었다.
그러나 국무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 19명 가운데 안 위원장 측 인사가 전면 배제되면서 공동정부에 균열이 생겼다. 윤 당선인이 강조해왔던 전문성보다는 당선인과의 인연이 후보자 임명 기준이었다는 게 안 위원장 측이 의심하는 대목이다.
이런 탓에 두 인물이 공언했던 공동정부가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 위원장은 결국 3차 발표에 앞서 당일 예정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침묵 시위를 이어갔다.
윤 당선인을 두둔했던 안 위원장이 윤 당선인과의 저녁 만찬 약속을 돌연 취소했고 지난 14일에는 서울소방본부 현장 방문 등 모든 일정에 참석하지 않았다. 내각 인사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안 위원장이 돌연 일정을 취소한 것에 대해 윤 당선인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윤 당선인은 “충분한 설명을 했다. 공동정부를 꾸리는 것은 적임자를 함께 찾아나서는 것”이라며 “누구 사람이라는 게 따로 없다”고 특정 인사 배제설에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본인(안 위원장)은 불쾌함을 표시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윤 당선인의 해당 발언은 정치권 안팎에서 안철수계 인사가 배제돼 공동정부 실현이 어렵다는 지적에 정면으로 반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루 만에 ‘안 위원장의 파업’은 종료됐지만 문제가 재차 불거진다면 두 인물의 공동정부 실현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대로 철수?
내각 논란에 대해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 위원장 측 인사가 한 명도 없다.(안 위원장의)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까지 믿어온 게 인수위 구성 몫이었을 텐데, 완전히 팽당한 모습이다. 몇 자리 주겠지만 성에 차지 않을 텐데 딱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