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다섯 정부 중용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높다, 18억 문턱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윤석열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앞서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정부에서 모두 차관급 이상 고위직을 거친 데 이은 다섯번째 ‘중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역대 3번째로 진보·보수정권에서 모두 총리에 오른 인물이 된다. 그 비결은 40년간 쌓아온 입지전적인 관직 경력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1949년 6월18일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6남3녀 중 5남으로 태어났다. 김대중정부 출범 이전에는 서울 출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1990년대까지 만연했던 호남 차별 탓에 한때 본적을 숨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름받은 
백전노장

호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한 후보자는 서울 소재의 경기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후 1967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하면서 이른바 ‘KS 라인(경기고·서울대 경제학과)’에 합류했다.

한 후보자는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70년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첫 발령지는 관세청이었다.

1977년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79년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했다. 상공부로 근무하던 1982년 다시 유학길에 올라 1984년 같은 곳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취득 뒤에도 공직생활은 이어졌다. 상공부 중소기업국장, 산업정책국장, 전자정보국장 등을 역임했다.

1993년 3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하자 잠시 대통령비서실 산업담당비서관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1994년 상공부로 복귀해 기획관리실장에 이어 통상무역실장을 맡았다. 이때 한 후보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추진, 대일(對日) 무역 규제 해제 등의 굵직한 업무를 처리했다.

1996년 12월, 48세의 나이로 차관 승진에 성공한다. 1997년 3월까지 특허청장을 지낸 뒤 통상산업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임 중 IMF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이를 수습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김대중정부 들어서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했다. 이때 한미자유무역협정(이하 한미 FTA)을 최초로 추진했다. 역임 중 산업자원부 장관 하마평에 여러 차례 올랐지만, 실제 지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01년 주 OECD 대한민국 대표부 이사를 지내고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경제수석비서관으로 연이어 임명됐다. 하지만 임명 6달 만인 2002년 7월, 중국과의 ‘마늘 분쟁’ 관련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한 후보자는 30여년의 공직생활을 뒤로한 채 1년간 숨을 골랐다. 이 기간 국내 유명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고문으로 8개월가량 활동하기도 했다.

김영삼부터 이명박까지 연속 러브콜
확정되면 진보·보수 오간 3번째 총리


그는 노무현정부(이하 참여정부) 들어 공직사회에 복귀했다. 2003년 7월 산업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2004년 2월부터 2005년 3월까지 약 1년간 국무조정실장으로 일했다.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 이전 관련 업무를 지원하며 정무‧안보 경험을 쌓았다. 실장 재임 기간 중 노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기도 했다.

2005년 3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당시 “꽤 이례적인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재무관료들이 주로 배치되던 자리에 통상산업관료의 정도를 걸어온 한 후보자가 임명됐기 때문이다. 

한 후보자는 재임 당시 여러 경제정책들을 손봤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금산법(금융-산업자본 분리)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2006년 3월에는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절 골프 사건’으로 사퇴하면서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겸임했다. 다음 달인 4월 한명숙 국무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국정 공백을 최소화했다.

부총리 퇴임 직후인 같은 해 8월에는 한미FTA 체결의 ‘마무리 투수’로 나섰다.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협정 체결 전 막판 협상을 이끌었다.

참여정부 임기 말, 마지막 국무총리로 발탁됐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붕괴되면서 사실상 여소야대 형국이 펼쳐진 상황에서도 인사청문회를 무난하게 통과해 인준받았다.

총리 재임 기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경험했다. 당시 북한 내각 총리 김영일과 남북총리회담을 갖기도 했다. 한 후보자는 임기 말 총리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참여정부 초기 총리였던 고건 전 총리처럼 ‘행정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시 돌아온 보수정권에서도 ‘실무형 인사’라는 평가 속에 어김없이 중용됐다. 이명박정부는 한 후보자가 한미FTA 협상을 주도했던 이력을 높게 사면서 그를 주미대사로 임명했다.

그는 한미FTA 비준 과정에서 미국의 여러 지방정부와 의회를 돌며 이들을 설득했다. ‘한미FTA 전도사’라는 별명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40년 공직
실무형 인사

한 후보자는 2012년 2월 주미대사를 퇴임하면서 4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지었다. 그 뒤에는 한국무역협회 회장,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등을 거치며 공직 바깥에서 활동해왔다.

그랬던 그가 순식간에 국내 정치의 한복판으로 귀환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 후보자를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발표하면서다.


윤 당선인은 경제 및 대미 전문가, 국민 통합 등 여러 요소를 두루 고려해 한 전 총리를 지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정치신인인 윤 당선인에게 부족한 경륜과 국정운영 경험을 보완해줄 수 있다는 점 역시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부는 대내외적 엄중한 환경 속에서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기틀을 닦아야 하고, 경제와 안보가 하나가 된 ‘경제안보 시대’를 철저히 대비해 나가야 한다”며 “한 후보자는 민관을 아우르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각을 총괄하고 조정하면서 국정과제를 수행해나갈 적임자라고 생각한다”고 총리 지명 배경을 전했다.

한 후보자는 윤 당선인으로부터 후보자로 지명받은 직후 소감을 남겼다.

한 후보자는 “대한민국을 둘러싼 대내외적 경제와 지정학적 여건이 매우 엄중한 때에 국무총리로 지명되는 큰 짐을 지게 돼 영광스러우면서도 매우 무겁고 큰 책임을 느낀다”며 “새로이 지명되는 총리로서 윤 대통령을 모시고 행정부가 중심이 되는 정책을 꾸준히 만들고, 치열한 토론과 소통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정책들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 후보자는 “협치와 통합이 굉장히 중요한 정책의 요소가 될 것”이라며 “제 모든 노력을 기울여 윤 당선인과 행정부, 입법부, 국민과 협조하며 좋은 결과를 내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후보자는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 “경제와 안보가 하나로 뭉쳐서 굴러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세계화·개방·시장경제를 다소 변경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다”며 ‘국익외교와 국방 자강력’ ‘재정건전성’ ‘국제수지 흑자 유지’ ‘생산력 높은 국가 유지’ 등을 국가 중장기적 운영을 위한 4대 과제로 꼽았다.


경륜 충만
통합 인사

한편 정치권에서는 한 후보자에 대한 환영과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우선 한 후보자는 올해 73세로 비교적 고령이다. 2012년 주미대사로 일한 이후 10년 넘게 공직에 나서지 않은 점 역시 함께 지적됐다. 고령과 경력 단절이 업무 능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한 후보자는 “계속 공부해오는 스타일이라 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리라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며 “오래 했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과 위기대응 능력이 있을 수 있다는 측면이 있고, 건강도 지금 너무 좋다”고 답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저축은행 책임론·론스타 관여 의혹 등도 발목을 잡는다. 

몇몇 시민단체는 한 후보자가 저축은행 사태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재정경제부 장관이었던 시점에 기업 대출 한도를 무제한으로 풀어주도록 관련 법이 개정된 게 저축은행 부실화의 시발점이라는 것. 그리고 이것이 2011년 1조원이 넘는 피해를 가져온 ‘저축은행 사태’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한 후보자가 2002년경 8개월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재직한 이력도 논란이 됐다.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한 후보자가 김앤장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받은 보수가 론스타 외환은행 불법매각 은폐에 대한 대가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앞서 김앤장은 론스타의 국내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한 바 있다.

한 후보자는 지난 4일 “론스타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정부의 정책 집행자로서 관여한 부분은 있지만, 김앤장이라는 사적인 직장에서 관여한 바는 전혀 없다. 저는 그 일에 관여된 적이 없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반면 한 후보자는 국민 분열·여소야대라는 난국 속 험난한 검증 과정을 무난히 통과할 인사라는 기대 역시 받고 있다.

호남·참여정부 출신…여소야대 정국 해법? 
저축은행 책임·론스타 의혹 소명이 관건 

실제로 그는 공격받을 지점이 상대적으로 적다. 고위 공직자 후보들의 주요 낙마 사유로 꼽히는 군 문제, 자녀 문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한 후보자는 앞서 참여정부 부총리 청문회 때 육군 병장 만기전역으로 병역의 의무를 다한 사실이 알려졌다. 슬하에 자녀도 없다. 또한 출신에 따라 ‘통합인사’로 분류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장점으로 꼽힌다.

거대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도 호남 출신이자 참여정부 총리 출신인 한 후보자를 반대할만한 명분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한 후보자가 정치색이 옅은, 실무 중심의 관료 출신이라는 점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민주당이 이를 부정하며 검증의 ‘칼날’을 날카롭게 벼르는 탓에, 청문회 분위기는 아직 ‘안갯속’이다. 민주당은 각종 의혹들을 열거하며 송곳 검증을 예고하고 나섰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우리 정부 때도 뭘 했다, 호남이다 이걸 감안해서 한 것 같긴 하지만 염려되는 것은 있다”며 “국민 통합이 중요한데 호남 출신이기 때문에 국민 통합이(자연히) 될 것이라는 건 아주 1차원적인 접근”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이수진 원내대변인 역시 “총리직을 수행했던 15년 전과 달리 대한민국은 기후위기 극복과 탄소중립, 신냉전 국제질서, 고령화와 청년 불평등 문제 등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문제들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앞서 제기된 저축은행 사태 책임론, 론스타 관여 의혹에 이어 ‘김앤장 18억 고문료 의혹’을 짚고 나섰다. 지난 4일 SBS 보도에 따르면, 한 후보자는 2017년부터 4년4개월 동안 김앤장으로부터 18억원이 넘는 고문료를 받아왔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법률가가 아닌 고위 관료가 김앤장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국민이 궁금해한다”며 “(한 후보자가)김앤장으로부터 받은 월 3500만원이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 도덕과 양심의 기준에 맞는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와 관련해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현재 사퇴)은 “일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점도 저희가 인지했던 것 같다”면서도 “앞으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총리 후보자가 이 부분에 대해 국민들게 설명을 드릴 것으로 안다”는 해명을 내놨다.

한 후보자 역시 “최선을 다해 진정성 있게 청문회에 대응하겠다”며 “결과는 진정성 있게 최선의 노력을 한 결과로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각종 의혹
해명 어떻게?

한편 한 후보자가 이번에도 국무총리에 오를 경우, 이는 진보-보수정권을 아우르며 국무총리를 지낸 역대 3번째 사례가 된다. 한 후보자 이전에는 박정희정부와 김대중정부에서 국무총리직을 역임한 김종필 총재와 김영삼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 총리직을 수행한 고건 전 총리가 있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시장 개방론자’ 한덕수 뚝심 일화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대표적인 시장 개방론자로 알려졌다. 시장을 개방하고 다른 국가들과 경쟁해야만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경제관료로 일할 때는 목소리를 높인 때가 거의 없지만, 통상 분야에서는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해왔다.

1998년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장관급 관료 중 최초로 관용차를 수입차로 바꾼 일화는 유명하다. 수입차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시장 개방 노력을 알리겠다는 취지였다.

그는 수입자동차협회에 차종을 추천받아 스웨덴 사브 차량으로 관용차를 바꿨다.

스크린쿼터(정해진 기간 동안 한국 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하게 하는 제도) 폐지 주장도 눈길을 모았다. 그는 같은 해 7월 “영화업계 위기 극복을 위해 스크린쿼터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 투자협정 협상 때 미국 정부가 스크린쿼터제를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한 후보자는 국내 영화계의 거센 반발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부총리 시절인 2006년, 그는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줄이는 일에 앞장섰다.

아울러 부총리 때 쌀 시장 개방, 추곡수매제(정부가 농민들에게 일정한 가격으로 쌀을 사들이는 제도) 폐지 등을 추진하다가 ‘볍씨 세례’를 당하기도 했다.

2005년 10월 음성군의 한 농촌 마을을 방문했다가 해당 정책들을 반대하는 농민들이 한 후보자와의 대화를 요구하며 관용차에 볍씨를 뿌리고, 앞에 드러눕는 등 격하게 항의한 것이다.

하지만 한 후보자는 이 같은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정책들을 추진했고, 결국 추곡수매제는 2005년을 끝으로 폐지됐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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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