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다섯 정부 중용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높다, 18억 문턱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윤석열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앞서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정부에서 모두 차관급 이상 고위직을 거친 데 이은 다섯번째 ‘중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역대 3번째로 진보·보수정권에서 모두 총리에 오른 인물이 된다. 그 비결은 40년간 쌓아온 입지전적인 관직 경력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1949년 6월18일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6남3녀 중 5남으로 태어났다. 김대중정부 출범 이전에는 서울 출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1990년대까지 만연했던 호남 차별 탓에 한때 본적을 숨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름받은 
백전노장

호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한 후보자는 서울 소재의 경기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후 1967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하면서 이른바 ‘KS 라인(경기고·서울대 경제학과)’에 합류했다.

한 후보자는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70년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첫 발령지는 관세청이었다.

1977년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79년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했다. 상공부로 근무하던 1982년 다시 유학길에 올라 1984년 같은 곳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취득 뒤에도 공직생활은 이어졌다. 상공부 중소기업국장, 산업정책국장, 전자정보국장 등을 역임했다.

1993년 3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하자 잠시 대통령비서실 산업담당비서관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1994년 상공부로 복귀해 기획관리실장에 이어 통상무역실장을 맡았다. 이때 한 후보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추진, 대일(對日) 무역 규제 해제 등의 굵직한 업무를 처리했다.

1996년 12월, 48세의 나이로 차관 승진에 성공한다. 1997년 3월까지 특허청장을 지낸 뒤 통상산업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임 중 IMF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이를 수습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김대중정부 들어서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했다. 이때 한미자유무역협정(이하 한미 FTA)을 최초로 추진했다. 역임 중 산업자원부 장관 하마평에 여러 차례 올랐지만, 실제 지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01년 주 OECD 대한민국 대표부 이사를 지내고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경제수석비서관으로 연이어 임명됐다. 하지만 임명 6달 만인 2002년 7월, 중국과의 ‘마늘 분쟁’ 관련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한 후보자는 30여년의 공직생활을 뒤로한 채 1년간 숨을 골랐다. 이 기간 국내 유명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고문으로 8개월가량 활동하기도 했다.

김영삼부터 이명박까지 연속 러브콜
확정되면 진보·보수 오간 3번째 총리


그는 노무현정부(이하 참여정부) 들어 공직사회에 복귀했다. 2003년 7월 산업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2004년 2월부터 2005년 3월까지 약 1년간 국무조정실장으로 일했다.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 이전 관련 업무를 지원하며 정무‧안보 경험을 쌓았다. 실장 재임 기간 중 노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기도 했다.

2005년 3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당시 “꽤 이례적인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재무관료들이 주로 배치되던 자리에 통상산업관료의 정도를 걸어온 한 후보자가 임명됐기 때문이다. 

한 후보자는 재임 당시 여러 경제정책들을 손봤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금산법(금융-산업자본 분리)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2006년 3월에는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절 골프 사건’으로 사퇴하면서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겸임했다. 다음 달인 4월 한명숙 국무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국정 공백을 최소화했다.

부총리 퇴임 직후인 같은 해 8월에는 한미FTA 체결의 ‘마무리 투수’로 나섰다.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협정 체결 전 막판 협상을 이끌었다.

참여정부 임기 말, 마지막 국무총리로 발탁됐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붕괴되면서 사실상 여소야대 형국이 펼쳐진 상황에서도 인사청문회를 무난하게 통과해 인준받았다.

총리 재임 기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경험했다. 당시 북한 내각 총리 김영일과 남북총리회담을 갖기도 했다. 한 후보자는 임기 말 총리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참여정부 초기 총리였던 고건 전 총리처럼 ‘행정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시 돌아온 보수정권에서도 ‘실무형 인사’라는 평가 속에 어김없이 중용됐다. 이명박정부는 한 후보자가 한미FTA 협상을 주도했던 이력을 높게 사면서 그를 주미대사로 임명했다.

그는 한미FTA 비준 과정에서 미국의 여러 지방정부와 의회를 돌며 이들을 설득했다. ‘한미FTA 전도사’라는 별명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40년 공직
실무형 인사

한 후보자는 2012년 2월 주미대사를 퇴임하면서 4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지었다. 그 뒤에는 한국무역협회 회장,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등을 거치며 공직 바깥에서 활동해왔다.

그랬던 그가 순식간에 국내 정치의 한복판으로 귀환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 후보자를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발표하면서다.


윤 당선인은 경제 및 대미 전문가, 국민 통합 등 여러 요소를 두루 고려해 한 전 총리를 지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정치신인인 윤 당선인에게 부족한 경륜과 국정운영 경험을 보완해줄 수 있다는 점 역시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부는 대내외적 엄중한 환경 속에서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기틀을 닦아야 하고, 경제와 안보가 하나가 된 ‘경제안보 시대’를 철저히 대비해 나가야 한다”며 “한 후보자는 민관을 아우르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각을 총괄하고 조정하면서 국정과제를 수행해나갈 적임자라고 생각한다”고 총리 지명 배경을 전했다.

한 후보자는 윤 당선인으로부터 후보자로 지명받은 직후 소감을 남겼다.

한 후보자는 “대한민국을 둘러싼 대내외적 경제와 지정학적 여건이 매우 엄중한 때에 국무총리로 지명되는 큰 짐을 지게 돼 영광스러우면서도 매우 무겁고 큰 책임을 느낀다”며 “새로이 지명되는 총리로서 윤 대통령을 모시고 행정부가 중심이 되는 정책을 꾸준히 만들고, 치열한 토론과 소통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정책들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 후보자는 “협치와 통합이 굉장히 중요한 정책의 요소가 될 것”이라며 “제 모든 노력을 기울여 윤 당선인과 행정부, 입법부, 국민과 협조하며 좋은 결과를 내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후보자는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 “경제와 안보가 하나로 뭉쳐서 굴러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세계화·개방·시장경제를 다소 변경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다”며 ‘국익외교와 국방 자강력’ ‘재정건전성’ ‘국제수지 흑자 유지’ ‘생산력 높은 국가 유지’ 등을 국가 중장기적 운영을 위한 4대 과제로 꼽았다.


경륜 충만
통합 인사

한편 정치권에서는 한 후보자에 대한 환영과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우선 한 후보자는 올해 73세로 비교적 고령이다. 2012년 주미대사로 일한 이후 10년 넘게 공직에 나서지 않은 점 역시 함께 지적됐다. 고령과 경력 단절이 업무 능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한 후보자는 “계속 공부해오는 스타일이라 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리라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며 “오래 했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과 위기대응 능력이 있을 수 있다는 측면이 있고, 건강도 지금 너무 좋다”고 답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저축은행 책임론·론스타 관여 의혹 등도 발목을 잡는다. 

몇몇 시민단체는 한 후보자가 저축은행 사태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재정경제부 장관이었던 시점에 기업 대출 한도를 무제한으로 풀어주도록 관련 법이 개정된 게 저축은행 부실화의 시발점이라는 것. 그리고 이것이 2011년 1조원이 넘는 피해를 가져온 ‘저축은행 사태’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한 후보자가 2002년경 8개월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재직한 이력도 논란이 됐다.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한 후보자가 김앤장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받은 보수가 론스타 외환은행 불법매각 은폐에 대한 대가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앞서 김앤장은 론스타의 국내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한 바 있다.

한 후보자는 지난 4일 “론스타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정부의 정책 집행자로서 관여한 부분은 있지만, 김앤장이라는 사적인 직장에서 관여한 바는 전혀 없다. 저는 그 일에 관여된 적이 없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반면 한 후보자는 국민 분열·여소야대라는 난국 속 험난한 검증 과정을 무난히 통과할 인사라는 기대 역시 받고 있다.

호남·참여정부 출신…여소야대 정국 해법? 
저축은행 책임·론스타 의혹 소명이 관건 

실제로 그는 공격받을 지점이 상대적으로 적다. 고위 공직자 후보들의 주요 낙마 사유로 꼽히는 군 문제, 자녀 문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한 후보자는 앞서 참여정부 부총리 청문회 때 육군 병장 만기전역으로 병역의 의무를 다한 사실이 알려졌다. 슬하에 자녀도 없다. 또한 출신에 따라 ‘통합인사’로 분류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장점으로 꼽힌다.

거대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도 호남 출신이자 참여정부 총리 출신인 한 후보자를 반대할만한 명분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한 후보자가 정치색이 옅은, 실무 중심의 관료 출신이라는 점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민주당이 이를 부정하며 검증의 ‘칼날’을 날카롭게 벼르는 탓에, 청문회 분위기는 아직 ‘안갯속’이다. 민주당은 각종 의혹들을 열거하며 송곳 검증을 예고하고 나섰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우리 정부 때도 뭘 했다, 호남이다 이걸 감안해서 한 것 같긴 하지만 염려되는 것은 있다”며 “국민 통합이 중요한데 호남 출신이기 때문에 국민 통합이(자연히) 될 것이라는 건 아주 1차원적인 접근”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이수진 원내대변인 역시 “총리직을 수행했던 15년 전과 달리 대한민국은 기후위기 극복과 탄소중립, 신냉전 국제질서, 고령화와 청년 불평등 문제 등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문제들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앞서 제기된 저축은행 사태 책임론, 론스타 관여 의혹에 이어 ‘김앤장 18억 고문료 의혹’을 짚고 나섰다. 지난 4일 SBS 보도에 따르면, 한 후보자는 2017년부터 4년4개월 동안 김앤장으로부터 18억원이 넘는 고문료를 받아왔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법률가가 아닌 고위 관료가 김앤장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국민이 궁금해한다”며 “(한 후보자가)김앤장으로부터 받은 월 3500만원이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 도덕과 양심의 기준에 맞는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와 관련해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현재 사퇴)은 “일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점도 저희가 인지했던 것 같다”면서도 “앞으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총리 후보자가 이 부분에 대해 국민들게 설명을 드릴 것으로 안다”는 해명을 내놨다.

한 후보자 역시 “최선을 다해 진정성 있게 청문회에 대응하겠다”며 “결과는 진정성 있게 최선의 노력을 한 결과로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각종 의혹
해명 어떻게?

한편 한 후보자가 이번에도 국무총리에 오를 경우, 이는 진보-보수정권을 아우르며 국무총리를 지낸 역대 3번째 사례가 된다. 한 후보자 이전에는 박정희정부와 김대중정부에서 국무총리직을 역임한 김종필 총재와 김영삼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 총리직을 수행한 고건 전 총리가 있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시장 개방론자’ 한덕수 뚝심 일화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대표적인 시장 개방론자로 알려졌다. 시장을 개방하고 다른 국가들과 경쟁해야만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경제관료로 일할 때는 목소리를 높인 때가 거의 없지만, 통상 분야에서는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해왔다.

1998년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장관급 관료 중 최초로 관용차를 수입차로 바꾼 일화는 유명하다. 수입차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시장 개방 노력을 알리겠다는 취지였다.

그는 수입자동차협회에 차종을 추천받아 스웨덴 사브 차량으로 관용차를 바꿨다.

스크린쿼터(정해진 기간 동안 한국 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하게 하는 제도) 폐지 주장도 눈길을 모았다. 그는 같은 해 7월 “영화업계 위기 극복을 위해 스크린쿼터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 투자협정 협상 때 미국 정부가 스크린쿼터제를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한 후보자는 국내 영화계의 거센 반발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부총리 시절인 2006년, 그는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줄이는 일에 앞장섰다.

아울러 부총리 때 쌀 시장 개방, 추곡수매제(정부가 농민들에게 일정한 가격으로 쌀을 사들이는 제도) 폐지 등을 추진하다가 ‘볍씨 세례’를 당하기도 했다.

2005년 10월 음성군의 한 농촌 마을을 방문했다가 해당 정책들을 반대하는 농민들이 한 후보자와의 대화를 요구하며 관용차에 볍씨를 뿌리고, 앞에 드러눕는 등 격하게 항의한 것이다.

하지만 한 후보자는 이 같은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정책들을 추진했고, 결국 추곡수매제는 2005년을 끝으로 폐지됐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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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