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나다>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제작자 정우성의 낭만

“‘도전을 응원한다’ 말이 마음에 남네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 정우성은 낭만주의자로 통한다. 누군가는 쉽게 하지 못할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막대한 투자를 하거나, 기부하거나 굳이 시간을 내어 봉사활동을 한다. 잃을 것이 많은 그지만, 정치적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미담이 많다. 인간적이고 배려심이 많다고 한다. 섬세하게 스태프 한 명 한 명을 챙기기로 유명하다. 미담만큼 직업도 많다. 배우가 직업이지만, 영화 제작자로도 연출가로도 꿈을 꾼다. 이번에는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제작자로 나섰다. 한국에서 시도된 적 없는 SF 판타지 장르다. 낭만을 앞세운 도전자로 나선다. 

정우성은 <나를 잊지 말아요>를 통해 배우가 아닌 제작자로 처음 나섰다. 당시 그는 “제작자로 이끈 건 무엇이냐”는 질문에 “철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기보다는 인간적인 온정에 이끌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제작자로 나섰다는 걸 철이 없다고 표현한 셈이다. 

주인공 W
로망이었다

<나를 잊지 말아요>의 이윤정 감독은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의 스크립터였다. <놈놈놈>에서 인연을 맺은 이 감독은 <나를 잊지 말아요>의 시나리오를 정우성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나를 잊지 말아요>뿐 아니라 이 감독의 모든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W’였다. 정우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게 로망이기 때문이었다. 이후 <나를 잊지 말아요>는 단편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감독은 단편을 보완해 장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정우성을 만나 자문했다.

이 감독을 만난 정우성은 그에게 “단편영화 시나리오는 왜 안 보여줬어?”라고 물어봤다. 이 감독은 “어떻게 보여줘요?”라고 반문했다. 정우성은 당연히 단편영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대본을 보여주는 것이 결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당시 정우성은 그 주저함이 싫었다고 한다. “로망은 꿈이라는 건데, 왜 시도조차 못 했을까요. 그 고정관념이 싫었다”고 했다.

정우성은 단편영화의 시나리오를 보완할 게 아니라 새로운 장편 시나리오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감독은 그렇게 새 시나리오를 썼다. 정우성은 그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다. 직접 배우로 나서기로 했다. 그리고 직접 좋은 제작자를 알선하려 했으나,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때는 2015년, 영화계에서 멜로는 죽은 장르였다. 아무리 정우성이라도 수익을 보장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 감독은 당시만 해도 연출력이 입증되지 않은 신인 감독이었다. 시나리오 수정 요구가 심했다. 정우성은 일부 제작사의 요구가 이 시나리오의 미덕을 해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작자로 나섰다. 철이 없었기 때문에 멋있는 선택을 할 수 있었고, 철이 없었기 때문에 도전도 할 수 있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정우성의 낭만’이라고 했다.

<나를 잊지 말아요> 이어 두 번째 제작 작품
“처음 철이 없었고, 이번엔 너무 어려웠어요”

비록 영화는 <내부자들>과 <히말라야>의 맹공으로 인해 42만의 관객수를 동원하는 데 그친다. 약 10억원의 손해가 있었지만, 한국 영화계에 의미 있는 도전으로 기억된다. 

정우성은 다시 한 번 꿈을 꿨다. 우연히 본 단편영화 <고요의 바다>를 보고 제작자로 나서야겠다는 마음이 꿈틀댔다. 물의 보급량이 권력을 입증하는 디스토피아가 <고요의 바다>의 배경이다. 물이 넉넉하냐 그렇지 않으냐가 계급의 척도다.


무례한 사람은 “물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겠어요?”라고 질문한다. 요즘으로 치면 “월급이 넉넉하겠어요?”를 대신하는 말이다.

그런 시기 물을 구하기 위해 달에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5년 전 달에 있는 물을 발견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발해기지라는 곳에서 연구했다. 아쉽게도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5년 만에 재시도되는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다.

“인류가 물이 없어서 달로 간다는 설정에 매료됐어요. 지구를 떠난 우주선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생기는 긴장감을 구현해내면 충분히 재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첫 번째 제작은 관계에서 출발했고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오히려 몰랐으니까. 두 번째 제작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제작자로서 제삼자적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려고 했어요.”

한국에서 시도된 적 없는 SF 장르다. 엄청난 세트 비용과 막대한 CG 비용이 든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장르라고도 볼 수 없다. <나를 잊지 말아요>가 그랬던 것처럼, <고요의 바다>도 비슷한 장벽에 부딪혔다. 선뜻 영화에 투자하겠다는 배급사가 나오지 않았다.

SF 스릴러
높은 장벽

<고요의 바다>가 가진 고유성, 반짝반짝한 설정은 차치하고 상업적인 코드를 집어넣으려는 의견이 많았다. 한참 때를 기다리다 넷플릭스를 만났다. 

“SF 스릴러 미스터리가 국내에서는 첫 시도예요. 이 영화에 도전하고 싶은 움직임은 보였는데,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는 동반되지 않았었던 것 같아요. 상업적으로 안전한 코드를 집어넣으려고 했어요. 이 작품이 가진 무모한 도전이 생명이고 개성이거든요. 이를 훼손하려고 했었어요. <고요의 바다>만의 세계관이 잘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죠. 해외 배급사는 좀 더 이해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던 차에 넷플릭스와 함께하게 됐어요. 그리고 에피소드를 8개로 늘렸습니다.”

<고요의 바다>가 가진 가장 독특한 설정은 월수다. 달에서 나온 물인데, 이 물은 증식을 한다는 것. 인간의 체내에 흡수되면 그 안에서 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결국, 물의 증식을 막지 못하는 인간은 몸에 있는 모든 물을 쏟아내고 죽음을 맞이한다.

좀비 바이러스가 번지면서 숙주를 죽이는 좀비 영화의 설정이 물에서 발생하는 셈이다.

“월수는 이 작품이 가진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에요. 원석을 가공해가는 작업을 촘촘히 했죠. 단편은 메시지가 강하다면, 장편은 비주얼이 필요하죠. 이 독특한 설정의 매력이 극대화되는 것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요즘에는 ‘절대적으로 반짝해야 할 이게 반짝했나’라는 우려가 있긴 해요.”

정우성의 직업은 배우다.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도 배우로서 나오되 제작자를 겸했다. <고요의 바다>는 철저하게 제작자로서만 역할을 맡았다. 주위에서 카메오 출연에 대한 의견을 냈지만 “말도 꺼내지 마라”면서 출연 자체를 거부했다. 후반부 목소리로만 등장했다.

정우성으로선 특별하게 새 옷만 입은 셈이다. 정우성은 <고요의 바다>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제작자를 하면서 많이 돌아본 것 같아요. 젊은 시절에 배우로서 정우성이 추구해야 하는 세계관은 무엇인지, 작품을 고를 때 세상에 추구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고민을 했어요. 이번에도 이 영화를 내놓는 것은 무엇을 위함인지에 고민도 많았고요. 이러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다른 걸 추구하는 건 위선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이 들었죠. 앞으로도 연출과 제작을 꿈꾸고 있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무슨 고민을 해야 할지도 되물어요.”

프로 의식
스타의 왕관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영상에서 <고요의 바다> 출연진은 “현장에 마트가 있었다”고 기뻐했다. 빵과 과자, 음료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다는 것이다. 배우나 스태프 모두 쉬는 시간에 해당 다과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제작자의 세심한 배려였다. 

“저한테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로 생각했어요. 촬영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작은 배려예요. 식료품을 놓는 건데요. 그것만으로 스태프들이 좋아하고 즐기게 된다면, 어찌 보면 감사한 일이죠. 이러한 작업이 우리가 각자 프로로서 할 일을 하고 헤어지는 건데, 어찌 됐든 함께하는 거잖아요.”

“<고요의 바다>의 세계관을 온전히 세상에 내놓기 위해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내는 과정이잖아요. 그러려면 결속력이 중요해요. 그런 결속력을 위한 작은 행위인데, 배우진이 마트라고 표현해줘서 감사해요. 촬영 현장은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즐거운데, 누군가는 즐겁지 않으면 제가 좋지 않더라고요. 누구든 즐거웠으면 했어요.”

대부분 배우는 프로의식을 갖고 일한다. 특히 이름값이 널리 알려진 스타일수록 그렇다. 자신의 잘못은 물론이고, 주위 스태프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 책임까지 짊어지는 게 스타의 몫이다. 20대 초반부터 스타라는 왕관을 쓴 정우성의 프로의식은 그 누구보다 뛰어나고 세밀할 가능성이 크다.


제작자 정우성도 마찬가지였다. 정우성은 <고요의 바다> 촬영 현장을 매일 같이 출근했다. 제작자가 매일 출근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세트 촬영이라서 상주했어요. 달에서 뛰는 신을 찍는데, 발자국이 찍혔어요. 그곳에는 수없이 많은 스태프가 있었어요. 작업 순서를 명확히 정해주지 않으면 한 신 찍는데도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어요. 동선도 세심하게 잡고, 다른 길목에서 스태프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어요. 현장에서 즉각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상황이 많았어요. 제가 경험이 많은 편이라 현장에서 많은 걸 결정했죠.”

새로운 장르와 새로운 이야기, 독특한 설정 등 <고요의 바다>는 콘텐츠로서 도전의 성격이 강하다. 우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묵직하게 그려낸다. K-콘텐츠의 클리셰라 할만한 유머와 신파는 거세했다. 작품의 속도감도 더딘 편이다. 빠르게 상황이 흘러가기보다는 인물의 감정에 집중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세계관에 완전히 매료됐죠”
“<오징어 게임>이 흥행의 기준? 너무 가혹해”

대중성 측면에서 아쉽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런 중에도 전 세계 3위라는 호성적을 거뒀다. 

“재밌게 봤다는 말이 제일 좋았어요. 재밌게 봤다는 말이 사실 추상적이긴 해요. ‘뭐가 재밌다는 거지?’라는 질문까지는 안 하고 싶더라고요. 어떤 한 사람의 상상 안에서 각자 새롭게 구현해내는 게 더 좋더라고요. 또 하나 좋았던 건 ‘도전을 응원한다’는 문구였어요. 제작자로서 작품이 재미있고 없음을 떠나 의미를 알아주시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제게 큰 도전이었어요. 시청자들에게 의미를 강요할 수 없는데, 이름 모를 시청자분께서 그 도전의 가치를 이해해주셨을 때 기쁨을 느꼈습니다.”

영화 <비트>로 시대를 풍미한 스타로 떠오른 후 벌써 25년째를 맞이한다. 영화를 촬영할 때 사용하는 카메라는 필름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넘어왔다. 대형 극장의 입김 아래 이뤄졌던 극장 시스템은 멀티플렉스라는 형태가 됐다. 대기업의 대규모 자본이 투입됐고, 영화 산업의 부피는 상상할 수 없이 커졌다.

영화계는 또 다른 혁신 과정을 거치고 있다. OTT 플랫폼이다. 집에서도 전 세계의 작품을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OTT 플랫폼의 혁신적인 성장에 한국의 창작자들이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세계적인 대규모 자본과 한국 창작계는 아름다운 공생을 이어가는 중이다. 영화계의 변화를 온몸으로 거친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까.

“코로나19가 OTT 플랫폼이 시청자의 피부로 흡수되는 데까지 시간을 앞당긴 것 맞는 것 같아요. 코로나19가 없었어도 플랫폼의 다각화는 있었을 것 같아요. 다른 나라의 작품을 쉽게 볼 수 있는 플랫폼은 있었을 것 같아요. 시간만 앞당겨졌을 뿐 갑작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또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이 도래했네요. 코로나19를 우리는 극복할 거예요. 그리고 극장 문화를 다시 즐길 거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어요. 그리고 OTT 플랫폼과 극장은 양립할 거라고 봐요. 스트리밍 서비스로 전 세계 영화팬들이 한국 작품을 본다는 건 벅찬 일이에요. 그에 따르는 큰 책임이 동반되는 것 같아요. 의식이 많이 되네요.”

<오징어 게임> 신드롬 이후 국내외에서 K-콘텐츠의 흥행 기준이 <오징어 게임>에 맞춰준 느낌도 있다. 기본적으로 세계 1위를 찍어야 하며, 대다수 해외 팬들이 K-콘텐츠를 보고 느끼고 환호하는 장면이 담긴 2차 콘텐츠도 무수히 쏟아져야 한다.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이 당연한 기준이 되고 있다. 

OTT·극장
양립 가능

“가혹한 일입니다. 저희는 그 기준을 빨리 떼야 해요. <오징어 게임>은 사회적 현상이고 돌풍이에요. 그런 현상을 겪은 할리우드 작품이 몇 개나 있나요. 다른 나라에서도 몇 작품 없어요. 아무도 가질 수 없는 우연적인 현상을 얻은 것이고요. 제작자나 감독이나 배우가 닿겠다고 노력해서 닿을 수도 없는 거예요. 그런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작품 고유의 재미나 메시지를 놓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이제는 떼야 합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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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