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는 지금…’ 질리는 로맨스물의 한계

“너무 많이 봐서 다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한때 한국 드라마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랑이었다. 어떤 직업이든, 어떤 갈등이 일어나든, 심지어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도 국내 드라마에는 사랑이 있었다. 억지스러운 멜로 라인에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국내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연애를 즐겼다. 하지만 장르물이 인기가 많아지고, 연애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사회적 풍토가 생겨나면서 로맨스 드라마도 덩달아 힘을 잃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핵심 키워드가 범죄로 넘어온 지는 꽤 됐다. 김은희 작가의 tvN <시그널>과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비롯해 최근 흥행한 작품 대다수가 장르물이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갈등,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과 복수로 이어지는 플롯에 멜로가 낄 자리는 없었다.

사라지고

지난해 나오는 작품마다 인기를 끈 SBS 드라마에서도 멜로 라인이 메인이었던 작품은 단 하나도 없다. <낭만닥터 김사부> <스토브리그> <하이에나> <아무도 모른다> <펜트하우스> 등 대부분 작품이 각 직업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그 사이에서 소용돌이치는 인물의 감정에 렌즈를 댔다. 주연배우들에게 조차도 멜로 라인은 뒤로 밀렸다. 

이외에도 인기를 끈 tvN <철인왕후> <방법> <빈센조> <마인> <악마판사>, KBS2 <경찰수업>, SBS <모범택시> <라켓소년단>, JTBC <로스쿨> <이태원 클라쓰> 등도 멜로 라인은 빈약하다. 대부분 국내 사회의 단면을 짚어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을 대립시켜 다투는 작품이다. 

최근 인기를 얻은 작품은 KBS2 <동백꽃 필 무렵>, tvN <사랑의 불시착> <청춘기록> <싸이코지만 괜찮아>, JTBC <부부의 세계>,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정도다.


<동백꽃 필 무렵>은 멜로에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색을 입혔고, <부부의 세계>는 순수 멜로라고 보기 어려운 치정극에 가깝다. 약 3년 동안 멜로 장르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은 작품은 <사랑의 불시착> <싸이코지만 괜찮아>뿐이다.

로맨스 장르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올해도 수많은 로맨스 드라마가 방영됐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낸 작품은 없다. 방송사는 물론 OTT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반적으로 로맨스 드라마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JTBC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이하 <선배 립스틱>), tvN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이하 <멸망>, KBS2 <안녕? 나야!>, JTBC <월간 집> <알고있지만,>, tvN <간 떨어지는 동거> <너는 나의 봄>이 올해 나온 멜로 드라마다. 

배우 원진아, 박보영, 서현진, 최강희, 혜리, 정소민 등 로맨스 장르에서 능력을 발휘해온 배우들이 다수 출연했지만, 이름값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다. 대부분 작품이 시청률 1~2%(닐슨코리아 기준)를 전전했다. <안녕? 나야!>가 시청률 4%, <간 떨어지는 동거>가 3.98%로 이 중에서 그나마 나은 결과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로맨스 드라마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너무 오랜 시간 주요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돼,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줄만한 소재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로맨스 드라마를 섭렵한 시청자들의 예측을 뛰어넘을 정도의 이야기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시청자들에게 모든 패턴이 읽히고 있다는 것.

5% 넘긴 멜로 드라마가 없다
배우들도 기피…악순환 반복

새로움을 추구하는 시청자들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멜로 장르는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미 너무 많은 작품이 나온 터라 기존의 형태대로 이야기가 진행되면 금방 지루해진다”며 “<월간 집> <선배 립스틱>이 보편적인 형태의 멜로 드라마인데, 이런 경우 기댓값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로맨스에 스릴러나 미스터리, 섹시 로맨스, 힐링 등 새로운 장르를 덧입히는 현상이 나온다. 멜로를 중심으로 드라마 후반부 스릴러를 가미한 <동백꽃 필 무렵>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멜로에 새로운 장르를 첨가하는 방식이 유행을 타고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장르를 혼용하는 만큼 완성도를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관측이다. 두 가지 장르를 색감을 적절하게 배합할 뿐 아니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청춘 멜로에 섹슈얼한 이미지를 덧입힌 <알고있지만,> 멜로에 스릴러 장르를 강화한 <너는 나의 봄> 등이 두 장르를 적절히 배합하려다 실패한 드라마의 예다. 두 작품 모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놓인 셈이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도 있다. 장르물이 인기를 끄는 만큼 대다수 배우가 장르물 출연을 더 선호하고 있다는 것.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콘텐츠 탓에 배우 기근 현상에 놓인 가운데, 배우들 사이에서 로맨스 장르가 아닌 다른 작품을 선호하는 현상도 생겼다. 

한 연예 관계자는 “여배우는 로맨스물도 괜찮지만, 남배우는 장르물이 더 인기를 얻기 좋은 게 사실”이라며 “로맨스 작품이 아무래도 흥행하기 어렵다 보니 장르물을 더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로맨스 장르물의 침체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결과적으로 새롭고 재밌는 이야기가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밀려나고

정덕현 평론가는 “이 현상은 국내 드라마 시장의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며 “결국 작가들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좋은 이야기를 내놓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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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가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월 초 후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는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