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개 드는 문정부 겨냥 사건 현주소

‘뭉개고 질질’ 아직은 살아있는 권력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재인정부가 임기 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차기 대선이 다가옴에 따라 청와대 권세에 눌려 있던 사건이 조금씩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이 대립할 당시 한참 시끄러웠다가 소리 소문 없이 가라앉은 사건을 <일요시사>가 다시 조명해봤다.

문재인정부는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모인 촛불시민의 지지로 탄생했다. 검찰은 그 연장선상에서 적폐청산의 칼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검찰은 개혁의 대상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검찰개혁’을 강조했다. 공격과 방어라는 정반대 상황에 놓인 검찰은 문정부 들어 ‘역대급’ 관심을 받았다.

적폐 청산
검찰개혁

문정부 첫 검찰총장인 문무일 전 총장은 2년 임기를 다 채웠다. 1988년 2년 임기제 도입 이후 무사히 퇴임한 8번째 검찰총장이 됐다. 문 전 총장 시기의 검찰은 정부와 크게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과 관련해 반대 의견이 나오긴 했지만 통상적인 수준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검찰총장에 취임한 이후부터 상황이 확 달라졌다. 정확히는 윤 후보가 취임 이후 두 달여 만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 비리 의혹에 칼을 대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뉘어 ‘조국 수호’ ‘조국 반대’ 목소리가 강하게 맞부딪쳤다.

이와 동시에 문정부 관련 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검찰과 정부의 대립구도가 첨예해진 것도 이 무렵부터다. 조 전 장관의 후임으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정부 관련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이 줄줄이 자리를 옮겼다. ‘대학살’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당시 검찰 인사의 파장은 상당했다. 


공수처 이첩 사건 지지부진
기소 이후 한참만에야 재판

특히 윤 후보의 측근으로 분류됐던 검사들은 옷을 벗거나 한직으로 밀려나는 등 수모를 겪었다. 여기에 법무부가 검찰 제도를 손보면서 검찰총장은 고립돼갔다. 윤 후보와 추 전 장관의 대립은 ‘전쟁’으로 일컬어질 정도였다.

추 전 장관은 윤 후보를 상대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고,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시도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 연달아 일어난 것이다.

검찰 내부에도 묘한 기류가 흘렀다. 윤 후보의 측근이 밀려난 자리를 친정부 인사가 채우면서 검찰 안에서도 대립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대표적인 인사가 이성윤 서울고검장이다. 문 대통령과 경희대 동문인 이 고검장은 문정부에서만 검찰 요직 빅4(서울중앙지검장,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중 3자리를 차지할 만큼 승승장구했다.

고립무원 상태에 빠진 윤 후보는 직무정지-가처분 소송 승소 등의 과정을 거치고 결국 올해 3월 검찰총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후 지난달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단 한 번도 정치를 해본 적 없는 검사 출신의 정치 신인이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8개월. 

일각에서는 윤 후보가 정치 엘리트 코스를 초고속으로 밟을 수 있었던 원인으로 추 전 장관과 문정부 겨냥 사건 수사를 꼽는다. 추 전 장관과 대립구도를 형성하면서 인지도가 늘어났고, 더 나아가 문정부와 맞서는 구도로 비쳐지면서 지지세가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문정부와 관련된 사건에 칼을 댄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윗선 노린
검찰총장

총선을 앞두고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문정부 관련 사건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롯한 여권이 당시 총선에서 180석이라는 역대급 승리를 거두면서 문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잦아든 것도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와 여당의 기세에 눌렸다는 것.

대표적으로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수사 무마 의혹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 수사 의혹 등이 꼽힌다. 청와대 관계자가 연루돼있거나 친정부 검사가 얽혀 있는 등 문정부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사건이다. 

실제 지난 6월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관련 수사팀 검사가 대거 물갈이 됐다. 김 전 차관의 불법 출금 사건을 수사하던 이정섭 수원지검 형사3부장이 대구지검 형사2부장으로,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을 수사하던 변필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창원지검 인권보호관으로 이동했다. 

대전지검에서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평가 의혹 사건을 맡았던 이상현 형사5부장은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장으로 옮겼다. 당시 검찰 인사를 두고 문정부 겨냥 수사를 막기 위한 ‘방탄 인사’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에 연루된 이규원 검사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의 실무 기구인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근무하던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월까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을 재조사하며 사건의 핵심 인물인 윤중천씨를 6차례 면담한 뒤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검사가 작성한 보고서는 과거사위의 수사 권고에 토대가 됐다. 과거사위는 2013년 김 전 차관에 대한 경찰 수사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외압을 행사한 의혹이 있다고 판단했고,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 윤씨와 만나 골프나 식사를 함께했다는 정황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은 해당 보고서가 상당 부분 허위거나 왜곡·과장됐다고 의심했다. 청와대가 배후에서 정권 실세 연루 의혹이 있던 ‘버닝썬’ 사건을 덮으려는 목적으로 이 검사의 범행을 부추긴 게 아닌지도 들여다본다는 입장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이 검사와 수차례 연락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 사건은 지난 3월 공수처로 이첩된 이후 현재까지 마무리가 안 된 상황이다. 지난 5월과 6월 이 검사를 소환조사하고, 7월 이 전 비서관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한 이후 더 진전되지 않고 있다.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수사 무마 의혹 사건도 수원지검의 이 고검장 기소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이 고검장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재직하던 2019년 6월 김 전 차관의 불법 출금 사건 수사를 중단하도록 수원지검 안양지청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 역시 공수처가 들고 있다.  

엇박 나는
수사기관

공수처는 수사 무마 의혹보다 공소장 유출 의혹에 열을 올리고 있다. 수원지검 수사팀은 지난 5월12일 이 고검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이튿날 일부 언론에 공소장 내용 일부가 보도되면서 유출 의혹이 불거졌고, 대검 감찰부는 법무부 지시로 즉각 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이후 7개월 만에 대검 감찰부는 수원지검 수사팀에 연루 정황이 없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수원지검 수사팀 검사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대검 서버를 압수수색하는 등 반년 넘게 수사를 이어가던 공수처로선 난감한 입장에 처한 것. 두 건 모두 여권에 부담이 되는 수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 수사 의혹은 기소된 지 1년10개월 만에 재판이 시작됐다. 2014~2018년 울산시장을 지낸 김기현 전 울산시장(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은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송철호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울산경찰청은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두고 당시 김 원내대표의 비서실장이던 박모씨를 수사했다. 

검찰은 송병기 당시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해당 첩보를 작성해 청와대에 제보했고, 울산경찰청이 이에 따라 하명수사를 벌였다고 보고 있다. 또 김 원내대표의 주요 공약이던 ‘산재모병원’의 예비타당성 조사 탈락이 선거 한 달 전인 5월에 발표된 점, 송 시장이 문 대통령의 공약인 ‘혁신형 공공병원’을 들고 나온 점 등에 청와대의 입김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울산시장 선거는 부정선거의 종합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라며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한병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전 청와대 참모를 비롯해 여권 인사들을 기소했다. 

관련자 임기 다 끝날 듯
3개월 남은 대선 영향?


하지만 22개월 만인 지난 11월에야 첫 증인신문이 이뤄지는 등 재판이 늘어지면서 송 시장의 임기가 끝난 이후 1심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 원내대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정부패 의혹의 중심인 것처럼 보도되면서 제 평판이 극도로 나빠졌다”며 울산경찰청의 수사가 울산시장 낙선에 영향을 끼쳤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검찰은 월성 원전 경제성 관련 자료를 지우거나 삭제를 지시한 혐의로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 공무원 3명을 기소한 바 있다. 그 첫 재판이 지난 14일 열린 것.

3명의 공무원이 기소된 지 1년 만이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를 언급한 피의자의 진술이 공개됐다. 

대전지법 제11형사부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피의자 심문 조사 내용 등을 통해 월성 원전 조기폐쇄 및 즉시 가동중단과 관련해 산자부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될 수 있는 자료 삭제와 정리에 대한 지시가 있었고 실제 이행됐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의자 가운데 1명이 다른 사람과 SNS로 ‘청와대와 장관이 책임져야 할 일인데, 실무자들만 감사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으로 대화한 사실을 밝혔다. 또 검찰은 이들이 삭제한 자료를 모두 공용전자기록물로 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재판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부당개입 혐의를 받는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정재훈 한수원 사장 사건과도 연관돼 관심을 받고 있다. 앞서 검찰은 월성 원전 1호기의 조기폐쇄와 즉시 가동중단에 청와대와 정부가 개입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들을 기소했다. 

다음 정부로
넘어간 공?

대선은 불과 3개월 앞으로 다가왔고, 문 대통령의 임기는 5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일부 사건의 경우 기소가 이뤄지고 1년(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1년10개월(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 수사 의혹) 만에 재판이 시작된 만큼 문 대통령의 임기 내에 결론이 나오기는 요원해 보인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