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후퇴' 몸 사리는 검찰 플랜B

면죄부 주고 본게임 나중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대선판의 중심에 서는 듯했던 검찰이 슬그머니 뒤로 빠지고 있다. 거대 양당의 유력 대선후보를 손바닥에 놓고 주무르나 했더니 오히려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가는 모양새다. 최근 검찰 행보를 두고 과거 17대 대선을 연상케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부터 대선후보에 대한 검찰 고발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다 보니 검찰은 역대 대선에서 늘 주역을 맡았다. 검찰이 국내 정치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시기도 대선 때다. 검찰의 사건 수사 속도, 방향은 대선 기간 내내 초미의 관심사다. 검찰의 ‘보이지 않는 손’은 어떤 후보에겐 면죄부로, 어떤 후보에겐 치명타로 작용했다. 

대선 때마다
검찰의 시간?

대선 때마다 존재감을 드러냈던 검찰은 17대 대선에서 특히 크게 부각됐다. 17대 대선은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경선이 본게임이라고 할 정도로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 튀기는 혈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두 후보를 둘러싼 의혹이 쏟아졌고 검찰 고발로까지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건이 이 전 대통령의 BBK 주가 조작 의혹이다. 1999년 설립된 투자자문회사 BBK가 옵셔널벤처스의 주가를 조작한 사건으로, 이 전 대통령이 개입돼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그해 대선판을 뒤흔들었다. BBK에 거액을 투자한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실소유주 논란이 불거진 것.

이와 함께 서울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도 함께 떠올랐다. 


결론적으로 이 전 대통령은 역대 최다 표차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누르고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BBK 주가 조작 의혹 사건으로 처벌을 받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대선 과정 중 검찰이 이 전 대통령에게 준 ‘면죄부’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의 흠으로 여겨졌던 ‘사법 리스크’를 제거해 준 셈이다.

당시 검찰은 두 차례에 걸쳐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7년 8월13일 한나라당 대선 경선을 일주일 앞두고 검찰은 “이상은(이 전 대통령의 큰형)씨 명의의 도곡동 땅은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전 대통령 측으로선 불의의 한 방을 맞은 셈.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이후 대선 경선에서 박 전 대통령에 근소한 승리를 거뒀다.  

그로부터 4개월 뒤 검찰 수사 결과가 180도 달라졌다. 2007년 12월5일 대선을 2주 앞두고 검찰은 다스를 이 전 대통령의 것이라고 볼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수사팀은 중간 수사 결과 때나 최종 때나 변동이 없었지만 결론은 정반대였던 것.

대선 직전 BBK 사건 무혐의 
13년 만에 실체 드러나 처벌

다스 실소유주 의혹에서 벗어난 이 전 대통령은 무난하게 청와대에 입성했다. 


대선을 이틀 앞두고 통과된 ‘이명박 특검법’에 따라 임명된 정호영 전 특검의 결론도 다르지 않았다. 고법원장 출신 변호사인 정호영 전 특검은 당시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취임 직전 특검팀은 도곡동 땅이 이 전 대통령의 큰형 이상은씨의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주라고 판단했다. 검찰과 특검의 무혐의 처분 이후 무려 13년 만이다. 대법원 2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의 상고심에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8000여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다스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라는 점에서는 1심부터 이견이 없었다.  

정호영 전 특검은 한 시민단체로부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특수직무유기, 일반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고발당했지만 2018년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은 돌고 돌아 법의 단죄를 받았지만 13년 전 그를 수사했던 검찰, 특검팀은 끝내 면죄부를 받은 셈이 됐다. 

최근 검찰의 행보를 두고 17대 대선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력 대선후보를 향한 검찰의 칼끝이 처음에는 날카롭나 싶더니 선거가 가까워 올수록 무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대선의 특징 중 하나는 거대 양당의 후보가 모두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두 후보가 모두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있는 초유의 사태다. 

책임 안 진
그때 그 사람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아내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코바나컨텐츠 대기업 협찬 의혹’ 등의 논란에 휩싸여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사건에서 ‘윗선’으로 의심받는 중이다.

두 후보와 윤 후보의 아내 김씨에 대한 검찰 조사가 이뤄질 것인지 여부는 이번 대선의 관전 포인트다. 

최근 검찰이 두 후보의 사법 리스크를 덜어주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검찰은 지난 6일 김씨가 고발된 코바나컨텐츠 협찬 의혹 사건 중 공소시효가 임박한 전시회 부분을 무혐의 처분했다. 윤 전 총장도 함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16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한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전’이다. 당시 도이치모터스 등 23개 기업이 협찬했다. 검찰은 김씨를 서면으로 조사한 뒤, 코바나컨텐츠 직원, 협찬 기업 관계자 등을 전방위로 조사했지만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사항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운영하는 코바나컨텐츠는 윤 후보가 2019년 검찰총장으로 지명될 무렵 주관한 전시에 협찬금 후원사가 늘어나는 등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남은 다른 전시 협찬 부분은 계속 수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코바나컨텐츠는 2018년 ‘알베르토 자코메티전’과 2019년 ‘야수파 걸작전’을 주관했으며 대기업 10곳과 17곳이 각각 협찬했다. 

김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사건에도 연루돼있다. 그는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주가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전주’ 역할을 담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2013년 도이치모터스의 자회사인 도이치파이낸셜이 설립될 당시 약 2억원의 주식을 액면가에 매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공수처만
안간힘 중

검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권 회장과 이미 처분된 인물들을 포함, 총 5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은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 등이 지난해 4월 김씨를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관련 인물들의 신병이 확보되면서 김씨의 소환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다.

검찰은 김씨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일각에서는 불기소로 가닥을 잡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 상태다.

코바나컨텐츠 대기업 협찬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이 마무리되는 수순을 밟으면서 검찰이 윤 후보와 그 주변을 겨냥한 수사는 일단락되는 형국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수사 중인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판사 사찰 문건 의혹 등만 남은 것이다. 


그나마 고발 사주 의혹은 공수처에서 핵심 피의자로 지목한 손준성 검사(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하면서 표류 상태에 빠졌다. 공수처는 체포영장, 구속영장 2회 등 총 3차례에 걸쳐 손 검사의 신병 확보에 나섰지만 연달아 기각돼 망신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아마추어’라고 표현하는 등 수사력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공수처는 판사 사찰 문건 의혹으로 활로를 찾으려는 모양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판사 사찰 문건 의혹은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해 2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등 주요 사건 재판부의 판결 내용, 세평 등을 수집해 취합한 뒤 문건을 작성해 반부패강력부 등에 전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검사가 담당 재판부에 대한 분석 없이 공판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직무유기라는 의견이 나온다. 사건 담당 판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부분에 있어서 범죄 혐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 수사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또 다른 윤 후보 관련 사건으로 전환해 무리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두 유력후보 사법리스크
윤, 먼저 아내 의혹 벗어

민주당 이 후보가 연루돼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 사건도 첩첩산중이다.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 등 4명이 기소된 상태다. 

하지만 ‘윗선’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특히 검찰에서 윗선 수사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던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이 지난 10일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유 전 본부장은 2014년 8월 김만배씨 등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한 민간업자들로부터 한강유역환경청 로비 명목으로 2억원의 뒷돈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50억 클럽’에 대한 수사는 더 진척이 더디다. 화천대유 측에 도움을 주는 대가로 거액을 받았거나 받기로 약속했다는 이른바 50억 클럽은 그 멤버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박영수 전 특검, 권순일 전 대법관,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이들을 연달아 소환조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부분도 곽 전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곽 전 의원은 2015년 1~3월경 김만배씨의 청탁을 받고 하나금융지주 측에 영향력을 행사에 하나은행이 화천대유 컨소시엄에 그대로 남도록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곽 전 의원은 의혹을 전면 부인한 바 있다.

서보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1일 곽 전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구속 사유, 필요성, 상당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게 기각 사유다. 곽 전 의원에 대한 수사가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던 와중에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서 다른 50억 클럽 멤버에 대한 수사도 차질을 빚게 됐다. 

끝내 안 닿는
윗선 수사?

이 후보를 비롯한 민주당에서는 대장동 사건과 이 후보 간의 연관성을 줄곧 부인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라디오에 출연,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해 “그것은 잘한 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편 민주당은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9일 대규모 개발사업 추진 과정에서 민간업체가 과도한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장동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윤석열 또 다른 측근 리스크?

지난 8일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이 구속됐다.

윤 전 서장은 2017년~2018년 불법 브로커 활동을 하며 세무 당국에 청탁 명목으로 부동산 개발업자로부터 1억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윤 전 서장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측근인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의 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후보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던 시절 윤 전 서장 사건을 무마했다는 의혹이 있다면서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윤 후보가 윤 전 서장 사건에 어떠한 관여도 한 사실이 없다고 맞섰다.

일각에서는 윤 전 서장의 구속으로 윤 후보의 사법 리스크가 재점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선>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