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진실 드러날까…특별법 통과 후폭풍

73년 동안 묻혀 있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숨죽이고 있던 73년이었다. 한을 풀지 못하고 죽은 사람도 헤아릴 수 없었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여순사건 희생자들에게 한줄기 빛이 드리웠다. 여순사건 특별법이 통과된 것. 진상규명과 피해 회복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

여수‧순천사건(이하 여순사건)은 현대사의 비극으로 불린다. 1948년 10월19일 전남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 2000여명이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에 반대하면서 촉발됐다. 하루 만에 순천까지 장악한 군인들은 구례·곡성·남원, 벌교·보성·화순, 광양·하동 방면으로 진격했다. 

현대사 비극

이승만정부는 반군토벌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진압에 나섰다. 진압군은 여수와 순천 등 군인들이 진격했던 대부분 지역을 탈환한 뒤 이적행위자를 색출하고 보복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맞아죽거나 총살당했다. 

당시 희생자 수는 1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순사건이 일어난 다음해인 1949년 전라남도에서 총 3차례에 걸쳐 피해 조사를 진행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마지막 조사 시점인 1949년 10월25일 기준으로 1만1131명이 사망했다.  

여순사건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된 제주 4·3사건은 지난 2000년 특별법이 제정됐고, 2014년부터는 국가추념일로 지정돼 국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여순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 회복 움직임은 더디기만 했다.


그 사이 피해자와 희생자 유족은 이념의 덫에 걸려 숨죽인 채 살아야만 했다.  

16대 국회부터 20대까지
법안은 발의됐지만 무산

여순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 회복을 위한 움직임은 1998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국민의정부 출범 뒤 민간연구기관 여수지역사회연구소가 중심이 됐다. 하지만 16대 국회부터 20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1년 4월, 2011년 1월, 2013년 2월 발의된 특별법은 상임위원회 선에서 막혔고,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여순사건 관련 5개 법안은 회기 종료로 폐기됐다. 

순천 지역 희생자 유족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과거사위)가 2005~2010년 여순사건 관련 신청을 받아 처리한 사건 결과를 토대로 포고령 위반과 내란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 재심을 청구했다. 2019년 3월 대법원은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고, 올해 6월 재판부는 희생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달 24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는 여순사건 당시 순천역 철도원으로 근무했던 김영기씨와 대전형무소에서 숨진 농민 김운경씨 등 민간인 희생자 9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무고하게 희생됐다. 

재판부는 “맥아더 장군이 선포한 포고령 2호는 현재 폐지된 상태인 데다 적용 범위가 포괄적이어서 죄형 법정주의에 의해 위헌 법령”이라며 “내란 부분도 군경이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고 영장 없이 구금해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가 반공 정책을 실시하면서 공정한 재판 없이 군사재판에 넘겨 사법부를 비롯해 국가가 불법적인 재판을 자행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이번 선고가 무죄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 명예회복과 실질적인 피해 구제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0월19일에는 순직 경찰 유족이 추념식에 참석했다. 사건 발발 72년 만에 처음으로 민·관·군·경 유가족 모두가 참석한 희생자 합동 추념식이 열렸다. 전남도의회는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안’을 통과시켜 자치단체 차원의 진상규명 활동 근거를 마련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달 29일 여순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해당 내용을 담은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여순사건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특별법은 국무총리 소속으로 ‘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를 전남지사 소속으로 ‘실무위원회’를 각각 설치하도록 했다. 해당 위원회는 최초 구성 후 2년간 진상규명 조사권, 조사 대상자 및 참고인에 대한 진술서 제출 요구권과 출석 요구권을 갖는다.

3회 이상 출석 요구에 불응하는 중요 참고인에 대해선 동행명령장 발부도 가능하다. 국가가 희생자에게 의료‧생활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는 규정도 담겼다. 

전남 동부권 주철현, 김회재, 소병철, 김회재, 서동용, 김승남 등의 의원들이 주축이 돼 특별법 단일안을 제시했고 지난해 7월2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국회의원 152명이 공동으로 법안을 발의했다. 

이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돼 지난 4월22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어 지난달 16일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를 넘고 25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거쳐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희생자 유가족 고령 많아
발 빠른 후속 조치 필요

민주당 소병철 의원은 “대한민국은 오늘을 이념과 대립을 넘어 상생과 화합으로 나아가게 된 또 하나의 역사적인 날로 기억할 것”이라며 “앞으로 유가족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여순사건의 아픔이 치유되는 마지막까지 변함없이 저의 신명을 다 바치겠다”고 말했다.

제주 4·3사건 관련 단체들도 잇따라 환영 입장을 밝혔다. 제주 4·3희생자유족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여순사건은 특히 발단이 제주 4·3과 긴밀한 관련이 있기에 동병상련의 마음이 있다”며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헌신한 각계각층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특히 험난한 투쟁의 길을 걸어온 여순사건 유족회 분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진상규명과 희생자 피해 회복을 위한 첫 발은 뗐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이 구만리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지 73년이 흘러 대부분의 희생자 유가족들이 고령이 됐기 때문에 발 빠른 후속조치가 필요한 실정이다. 

여수·순천 등 지자체 역시 후속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유족회와 단체들도 더 많은 시간이 지체되지 않도록 빠른 조사와 지원 결정 등을 요구했다. 여수시는 특별법에 근거한 유가족들의 실질적 생계비 지원과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대국민 사과 등 유가족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부와 적극 협의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시간이 없다

여수의 한 시민은 “여순사건 특별법이 이제라도 제정돼서 다행이다. 1만명이 넘는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민간인 집단학살 등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하다. 73년 동안 묻혀 있던 진실들을 하나씩 찾아야 할 때”라고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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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