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TBH글로벌이 위기에 직면했다. 뒷걸음질 속도를 늦춰야 하건만, 손대는 족족 결과물이 신통치 않다. 반전은커녕 현상 유지조차 버거운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2000년 출범한 TBH글로벌(옛 더베이직하우스)은 ▲베이직하우스 ▲마인드브릿지 ▲쥬시쥬디 ▲미카이브 등의 브랜드를 전개하는 중견 패션기업이다. 이 회사의 초창기 발걸음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최단기간 매출 1000억 돌파’ ‘최단기간 150개 매장 확보’ ‘중국시장 진출 후 최단기간 내 최대 매장 확보’ 등 각종 신기록들을 쏟아냈다.
창대한 시작
지나간 영광
2015년에는 당당히 상장 심사를 통과했다. 업력 5년에 불과한 신생기업이 상장사에 이름을 올린 건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법인명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의 TBH글로벌은 ‘베이직하우스’의 성공에 기인한 바가 크다. 2000년 론칭한 베이직하우스는 캐주얼 의류 시장에 빠른 속도로 연착륙했다. 전개 5년 차에 단일 브랜드 매출 12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사상 최대치인 1342억원을 찍었다.
이 무렵 회사 총매출 가운데 9할이 베이직하우스에서 파생됐다.
하지만 숨가빴던 베이직하우스의 행보는 2009년부터 뚜렷하게 둔화됐다. 패션업종을 관통하는 침체 국면을 피하기 힘들었던 탓이다. 1000억원을 넘겼던 직전년도 매출은 1년 새 8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고, 그 결과 베이직하우스는 2010년대 중반 관련업종의 변방으로 밀려나버렸다.
현재 TBH글로벌은 베이직하우스 적자 매장을 폐점하는 방향으로 수익성 개선에 나선 상태다.
베이직하우스의 위상 하락은 TBH글로벌의 국내 사업에 심각한 악재로 작용했다. TBH글로벌은 2008년 이후 개별기준 2000억원대 매출 달성에 번번이 실패했다. 2018년 2000억원대 매출을 회복했지만, 이마저도 반짝 효과에 머물렀다.
승승장구하더니…어느새 나락
처참한 수익성…반복되는 적자
최근 분위기는 한층 더 나빠졌다. TBH글로벌은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의복 소비가 줄어든 영향으로, 지난해 173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잠정 공시한 상태다. 이는 전년(2108억원) 대비 17.9% 감소한 수치다.
수익성도 악화되는 추세다. 2019년 44억원이던 TBH글로벌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69억원으로 적자전환이 이뤄졌다. 4분기에 거둔 14억원의 이익으로는 3분기까지 누적된 83억원의 적자를 메꾸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일제히 하항곡선을 그린 주요 실적지표의 영향으로, TBH글로벌의 재정건전성에는 일정 부분 흠집이 생겼다. 심지어 재정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질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잠정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TBH글로벌의 총자산은 전년(1755억원) 대비 20.5% 감소한 1396억원으로 집계됐다. 총자본의 감소가 총자산의 변동폭을 키운 것으로 분석됐다. 2019년 1077억원이던 TBH글로벌의 총자본은 1년 사이 784억원 수준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같은 기간 총부채(2019년 679억원→2020년 612억원)의 변동폭을 한참 초과한다.
총자본의 감소는 온전히 결손금의 여파였다. 2018년 재무제표에 965억원으로 기재됐던 이익잉여금은 이듬해 188억원으로 급감한 데 이어, 지난해 3분기 기준 결손금 100억원으로 탈바꿈했다. 지난해 4분기에도 30억원대 결손금이 추가 누적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락세 거듭
누적된 적자
최근 2년 사이 연이어 목격된 결손금으로의 전환과 결손금의 확대는 천문학적인 순손실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TBH글로벌은 2018년 중단영업손실(432억원), 2019년 공동기업손실(973억원)이 재무제표에 반영되면서 각각 576억원, 77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그나마 지난해에는 공동기업 투자 손실 감소의 영향으로 순손실 규모가 전년 대비 절반 이상 줄어든 305억원에 머물렀다는 게 위안거리다.
순손실에서 파생된 총자본의 감소는 궁극적으로 부채비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45.1%, 63.0%를 나타냈던 TBH글로벌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80%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500억원대 안팎을 형성하는 총차입금은 TBH글로벌의 재정건전성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또 다른 단초다. 2018년 590억원에 달했던 TBH글로벌의 총차입금은 이듬해 451억원 수준으로 줄었지만, 최근 다시 늘어난 상태였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총차입금이 480억원이고, 연말기준 총차입금 규모는 450~500억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3분기 차입금 항목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1년 내 상환을 필요로 하는 단기성 차입금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장기차입금(21억원), 비유동성리스부채(103억원)를 제외한 356억원이 1년 내 상환을 필요로 하는 차입금으로 분류된다. ▲단기차입금 306억원 ▲유동성장기차입금 6억7000만원 ▲유동성리스부채 44억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말라버린 곳간
위험 신호
차입금 규모가 커지면서 30% 이하를 적정 수준으로 인식하는 차입금의존도는 2019년 25.7%에서 지난해 3분기에 31.7%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단기차입금의존도 역시 17.9%에 23.6%로 상승했다.
수백억대 차입금은 이자비용을 발생시키고, 이는 순손실 확대에 소폭이나마 영향을 주게 된다. TBH글로벌은 2019년 25억원을 이자비용으로 회계 처리했고, 지난해 역시 비슷한 규모의 이자비용이 발생했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처럼 국내 사업에서의 실적 부진 및 재정건전성 악화가 두드러지지만, 이를 타개할만한 대책을 찾기란 생각 만큼 쉽지 않다. 통상 국내 사업이 삐걱거릴 경우 해외 사업에서의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마련이지만, TBH글로벌은 이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다. 일찌감치 공들인 해외 사업은 골칫덩이로 전락한지 오래다.
TBH글로벌은 2004년 7월 중국사업법인(백가호상해시장유한공사)을 설립하고, 해외시장 개척을 타진했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사업 기반 조성에 힘을 쏟은 결과, 2016년 말 기준 1840개의 매장을 운영할 만큼 중국 법인의 외형 성장이 두드러졌다. 이 무렵 중국에서 거둔 매출은 5000억원을 웃돌았다.
하지만 야심차게 시도한 중국 법인 상장 계획이 사실상 무산되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급반전됐다. TBH글로벌의 해외 법인인 TBH홍콩은 2010년대 초부터 홍콩 증시 상장을 준비해왔다. 이 회사는 중국 내 사업회사인 백가호상해시장유한공사를 실질 지배하고 있다.
재정 위험수위…빚 의존 심화
구멍 막느라 급급한 중국사업
2015년 골드만삭스와 어퍼니티는 TBH홍콩이 2018년 4월 이내에 기업공개(IPO)하는 조건으로 FI로 참여했다. 골드만삭스와 어퍼니티는 각각 TBH홍콩 지분 14.05%, 14.29%를 보유하면서 상장에 실패할 경우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런 가운데 TBH홍콩이 지난해 3월 IPO에 실패하자 투자자들은 석 달 후 풋옵션 행사를 통지했다. 이는 TBH홍콩이 투자자들의 주식 28.33%를 약 1600억원에 매수해야 함을 의미했다.
TBH글로벌은 다른 투자자를 모색했으나 신규 투자 유치에 실패했고, 2017년 12월 연이율 20%에 9000만달러(1000억원)대 CB 발행에 합의하기에 이른다. 중국법인이 보유한 현금으로 나머지 600억원을 갚았고, 이듬해 3월에는 본사 사옥을 매각해 일부를 상환하는 등 빚을 갚느라 동분서주했다.
이후 순차적으로 상환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갚아야 할 돈은 남아 있다. 지난달 4일 기준 TBH글로벌이 상환해야 하는 전환채권의 원금은 659만달러다.
TBH홍콩 상장 무산은 TBH글로벌의 해외법인에 대한 지배력마저 위협하고 있다. TBH글로벌은 TBH홍콩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음에도 의결권 행사가 제한된 상태다. 홍콩법인 상장을 염두해 두고 투자를 진행한 골드만삭스로 인해 홍콩법인의 지배력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탓이다.
이 여파로 TBH글로벌은 2019년 2분기부터 TBH홍콩을 공동법인으로 분류하고 개별 실적만 공시하고 있다.
고장난
해외사업
연결실적을 공시하지 못할 뿐, TBH홍콩의 처참한 성적표는 TBH글로벌의 개별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된 상태다. TBH글로벌의 2018년과 2019년 개별 재무제표에 기재된 중단영업손실(432억원), 공동기업손실(973억원)은 TBH홍콩의 순손실이 반영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