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그룹 위기의 두 가족 경영 내막

‘동업 신화’ 70년 동거 끝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한 지붕 두 가족’ 영풍그룹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70년 동안 이어져온 영풍의 두 가족 경영 체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 이와 관련해 계열분리설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다. 지배력은 장씨 일가가 월등히 높지만 현금창출 능력은 최씨 일가가 경영을 맡고 있는 계열사들이 우월하다. 무작정 둘로 나누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영풍 본사 ⓒ카카오맵

영풍그룹은 국내 재벌가에서 유일하게 ‘한 지붕 두 가족’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해방 직후인 1949년 고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으로 설립한 영풍기업사가 그룹의 모태다. 이후 두 집안은 70여년간 번갈아 그룹 회장을 맡으며 잡음 없이 성장을 이끌어왔다. 

재벌가 유일
파열 징후 포착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영풍그룹의 자산은 12조4450억원, 매출은 9조3800억원으로 재계 서열 28위를 기록했다. 장씨 가문은 대표회사인 ㈜영풍과 전자 계열사인 영풍전자, 인터플렉스, 코리아서키트 등을 이끌고 있다. 최씨 가문은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 중심의 비철금속 사업을 맡고 있다. 

하지만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두 그룹의 파열 징후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심지어 계열분리설까지 나도는 상황이다.

영풍그룹은 현재까지 지주사 업무와 전자부품, 비철금속 제련 사업은 장씨 일가에서 맡고, 고려아연 등 계열사는 최씨 일가에서 각각 분담해 경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대로 계열분리 작업을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룹 내에서 고려아연을 제외하고는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하는 계열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현금창출 능력은 최씨 일가가 경영을 맡고 있는 계열사가 압도적으로 앞선다. 지난해 9월까지 고려아연이 창출한 영업이익은 5789억원이다. 고려아연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연평균 7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만들어왔다.

반면 다른 계열사들이 거둔 영업이익은 2020년 9월 누적 기준 ㈜영풍과 영풍전자가 각각 336억원, 439억원, 코리아써키트와 서린상사가 274억원, 124억원에 불과하다. 심지어 같은 기간 인터플렉스와 시그네틱스는 각각 237억원, 158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3세 체제 들어서며 잡음…깨진 황금 지분율
최씨일가 입지 축소…분쟁 발생 여부 관심

반면 지분율은 장씨 일가가 장악하고 있다. 2019년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이 서린상사가 보유하고 있던 ㈜영풍 지분 10.46%를 전부 인수했다. 장씨·최씨 일가가 공동 지배하던 지분이 장 고문 개인에게 넘어가면서 최씨 일가의 지분율 10%에 대한 간접 지배력이 사라졌다.

서린상사는 장씨 일가가 18.3%, 최씨 일가가 12%를 보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지분은 고려아연(50%), 영풍문화재단(5%)이 각각 나눠 갖고 있다.

장 고문은 지난해 6월과 9월 보유하고 있는 ㈜영풍 지분 11.5% 중 9.18%를 씨케이에 넘겼다. 씨케이는 장 고문 아들 장세준 대표, 장세환 서린상사 대표와 딸 장혜선씨, 부인 김혜경씨가 지분 100%를 나눠 보유하고 있는 장씨 집안 회사다. 최씨 일가와 나눠 보유하고 있던 10%에 가까운 지분은 장 고문을 거쳐 장씨 일가 3세들에게 넘어간 셈이다.
 

▲ (사진 왼쪽부터)장형진 고문, 장세준 대표, 최창걸 명예회장, 최윤범 사장

최씨 일가의 직접 지배력은 13.3%로 변하지 않은 반면, 장씨 일가의 ㈜영풍에 대한 직접 지배력은 31%에서 40%로 증가했다. 공동소유 법인을 통한 간접 지배력은 기존 서린상사 10.4%, 영풍개발 14.66%, 영풍정밀 4.39% 등으로 총 30.9%에서 영풍개발 15.5%, 영풍정밀 4.39% 등 총 20.7%로 감소했다.

공동소유 법인인 영풍개발에서 최씨 일가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영풍개발은 ㈜영풍 지분 15.5%를 보유하고 있다. 영풍개발의 주주구성은 장씨 일가가 33%, 최씨 일가가 19.8%, 나머지 지분 중 34%는 영풍문고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영풍문고홀딩스의 주주구성 변화에서 발견됐다. 기존에는 장씨 일가가 14.5%, 최씨 일가가 6.6%를 각각 보유하는 등 두 집안이 나눠서 영풍문고홀딩스 지분을 소유해왔다. 나머지 지분 중 33%는 ㈜영풍이 보유하고 있었다. 

치고나간 장씨
힘빠지는 최씨

하지만 2018년, 이를 전부 씨케이에 넘기면서, 비교적 중립적이었던 33% 의결권이 장씨 일가 3세 법인 소유로 넘어갔다. 결국 영풍문고홀딩스→영풍개발→㈜영풍으로 이어지는 최씨 일가의 지배력 역시 상대적으로 약해지게 됐다.

고려아연 역시 장씨 일가 중심의 지배력 확대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최씨 일가는 가족을 총동원해 고려아연 지분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최창걸 명예회장의 아내인 유중근 전 대학적십자사 총재를 비롯한 최씨 일가는 장내 매수 방식으로 지난해  9월까지 총 고려아연 지분 0.06%를 추가로 확보했다. 

다만 이 같은 노력이 최씨 일가가 장씨쪽 지분율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단일주주로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영풍이 장씨 일가 중심으로 재편된 탓이다.

지난해 9월말 기준 고려아연의 특수 관계인 포함 최대주주 지분율은 48.4%다. 세부적으로는 ㈜영풍이 26.9%, 장 고문(4.4%)을 비롯한 장씨 일가가 5.96%, 공동 회사인 영풍정밀이 1.56%씩을 갖고 있다. 나머지 10%대 지분은 최 명예회장을 비롯한 최씨 일가 2~4세 수십명이 나눠 보유하고 있다.

두 가문은 최근 3세 체제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2016년 장 고문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영풍은 현재 전문경영인 대행 체제로 운영 중이다. 하지만 장세준 코리아서키트 사장이 최근 전자 계열사의 실적 개선을 이끌면서 외연을 넓히고 있다. 장 사장은 장 고문의 장남으로 장씨 가문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다. 

2009년 시그네틱스 전무로 그룹 경영에 합류한 장 사장은 2013년 영풍전자 대표를 거쳐 올해 초부터 코리아서키트를 이끌고 있다. 

3세 체제
누가 잘하나?

주목되는 사실은 전자 계열사 실적이 장 사장 취임 이후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쇄회로기판(PCB)을 생산하는 코리아서키트의 경우 내년 매출이 사상 최대인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주가 역시 코로나 사태 초기인 지난 3월 이래 3배 가까이 상승했다. 계열사인 인터플렉스의 영업이익이 2018년 적자로 전환한 후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옥에 티’로 지적되고 있다.

최씨 일가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6년 2세 경영인 최 명예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고려아연은 그동안 동생인 최창근 회장 체제로 운영돼왔다. 최근 3세 대표주자인 최윤범 고려아연 사장이 1년6개월 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 ⓒ영풍

전통적으로 최씨 가문이 65세 이전에 회장직을 넘기는 점을 감안할 때 3세 경영 체제로의 전환 역시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최 부회장은 2007년 고려아연 입사 후 페루 광산과 호주 아연제련소 등을 두루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최근에는 신사업 개발을 이끌면서 최씨 가문의 후계자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고려아연은 최근 코로나19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안전자산으로 평가되는 금이나 은값이 상승하면서 매출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 매출은 사상 처음으로 7조원대를 돌파할 것으로 증권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최씨 가문 입장에서도 계열분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금은 최, 지분은 장…복잡한 셈법
“계열분리 논하기엔 시기가 이르다”


재계의 시선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업계 한 관계자는 “2세인 장형진 전 회장이 과거 그룹 승계 과정에서 영풍문고 지분을 매각할 때도 최씨 일가는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가풍이 3세 경영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영풍그룹 역시 언론을 통해 “계열분리를 논하기에는 시기가 이르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각의 시각은 다르다.
 

▲ ⓒ고려아연주식회사

한 재계 관계자는 “두 가문의 분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재계에서 회자돼왔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룹을 쪼개느냐는 수순만 남았다”면서 “그동안 발목을 잡고 있던 순환출자구조 또한 지난해 해소된 만큼 계열분리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두 가문이 계열분리를 할 경우 관건은 크게 두 가지다. 최근 영풍 계열 전자회사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공정위 발표 기준으로 ㈜영풍과 고려아연 계열의 매출 격차는 여전하다. 무엇보다 고려아연의 최대주주가 26.91%의 지분을 보유한 ㈜영풍이다.

그동안 두 가문이 경영해 온 것처럼 영풍과 고려아연을 나누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LG-GS 
사례 답습?

재계 안팎에선 “과거 LG와 GS 가문의 계열분리 모델이 모범답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GS그룹은 정유와 건설, 홈쇼핑 등 당장 현금성이 높은 계열사를 가져가고, LG그룹은 장기간 투자가 필요한 전자와 화학, 2차전지 사업 등을 맡았다”면서 “재계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경영분리 모델로, 영풍그룹이 답습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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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