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화상채팅의 덫 ‘몸캠피싱’ 실체추적

  • 김설아 sasa1986@ilyosisa.co.kr
  • 등록 2012.08.24 11: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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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화상채팅…흥분해 바지 벗었다가 ‘헉’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속칭 ‘몸캠피싱’으로 온라인이 떠들썩하다. ‘몸캠’은 알몸으로 하는 화상채팅을 일컫는 말. 최근에는 이 몸캠을 악용해 남성에게 음란행위를 요구한 뒤 동영상을 저장해 돈을 요구하는 신종 공갈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새로운 보이스피싱 방식으로 진화한 몸캠피싱 사기. 남자들의 성적 욕망을 낚는 그 실체를 추적해봤다. 

대학생 A씨는 어느 날 연락이 뜸한 친구들과 안부를 주고받기 위해 인터넷 메신저에 접속했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낯선 남성과 여성이 A씨에게 친구 신청을 해왔다. 이 여성은 “평범한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랜덤으로 친구를 추가했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A씨에게 접근했다. 마침 외로웠던 A씨는 이 여성과 하루정도 친근하게 대화를 나눴다.

다음 날까지 대화가 이어지자 여성은 “A씨의 얼굴이 보고 싶다”며 화상채팅을 제안했고, A씨는 여성의 제안을 수락했다. PC에 달린 화상카메라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채팅을 나누다 여성은 “몸캠을 해보고 싶다”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낯선 여성과 채팅
잘못했다간

A씨는 “채팅 사기에 대해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긴 하지만 손은 어느덧 화상카메라를 내리고 몸을 비추고 있었다”라며 “금전적인 이야기가 오고가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여성이 외로워서 이러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고, 외모도 예쁜 여성이 먼저 제안한 몸캠은 호기심과 성적욕망을 자극하기 충분했다”고 털어놨다. 

둘은 서로의 몸을 보면서 성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결국 호기심에 시작한 화상채팅은 각자 옷을 벗는 수위까지 갔다. 이 여성은 자신의 옷을 벗으며 “내가 먼저 벗을 테니까 너도 벗어봐”라며 A씨를 유혹했다. 여성이 옷을 벗는 순서에 따라 하나둘씩 벗다보니 A씨는 어느새 나체상태가 됐다. 급기야 이 여성은 야한 행동을 보여 달라고 졸랐고 A씨는 음란한 행위까지 여성에게 보여줬다.  

그러나 이 모든 장면은 A씨도 모르는 사이 여성의 PC에서 녹화되고 있었다. A씨가 이것이 ‘사기’임을 깨닫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초반에 이 여성과 같이 친구 등록을 했던 낯선 남성의 협박이 이어졌다. A씨의 알몸 장면을 녹화했다며 돈을 요구한 것이다.


이 남성은 A씨에게 메일을 보내 “싸이월드, 메일, 네이트온 아이디 등을 모두 알고 있고, 다 캡처했으니 이것을 공개하겠다”며 300만원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한 사이트의 주소를 문자로 보내왔다. 해당 사이트에 접속하자 A씨의 알몸사진 캡처장면과 가족사진, 그리고 신상과 관련된 고향, 집주소, 전화번호, 메신저 친구목록 이름과 전화번호가 쭉 나열돼 있었다.
A씨는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경찰에 갔는데 손쓸 방법이 없다고 했다”며 “하루가 지나자 협박이 더욱 거세졌고, 가족들에게 전화가 오는 등 심각해지더라. 주변사람들에게 무시해달라고 부탁한 뒤 메신저, 싸이월드 등을 모두 해지했는데도 신경이 쓰여서 일상생활이 힘들다”고 털어놨다.


미모의 여성 “알몸채팅하자” 접근해 음란행위 유도

동영상 저장 후 협박…“인터넷 유포하겠다” 돈 뜯어

이런 사례는 의외로 많다. 경찰에 따르면 보이스피싱의 방식이 나날이 진화하면서 화상채팅을 통한 몸캠피싱 피해사례가 빈번히 접수되고 있다. A씨와 비슷한 수법으로 협박을 당하다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이르는 돈을 뜯긴 것은 물론, 지난달에는 한 남자대학생이 협박을 받고도 돈을 주지 않겠다고 버티다 자신의 미니홈피에 동영상이 올려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몸캠피싱 수법은 젊은 여성이 불특정 남성에게 메신저 채팅으로 말을 걸어 “화상채팅을 하면서 서로 몸캠을 하자”고 제안한다. 남성이 이에 응하면 음란행위를 하도록 유도한 뒤 이를 녹화하고, 녹화영상을 빌미로 돋을 뜯어내는 방식이다. 

경찰은 이같은 몸캠피싱 사기가 중국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부 피해자의 PC를 통해 파악한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를 추적해 보니 소재지가 중국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중국에 근거를 둔 일당이 중국동포나 탈북여성을 고용, 채팅으로 남성을 유인케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지난 4월 이 같은 수법으로 남성 수십명한테서 돈을 뜯어낸 중국동포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자매, 모자, 친구관계인 이들은 중국에서 고용한 K(31?여)씨를 인터넷 VPN(가상 IP생성 프로그램)을 통해 모 사이트 화상채팅에 접속, 나체쇼와 낯 뜨거운 성행위를 유도한 장면을 녹화한 후 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 현금을 입금 받아 내는 등 1인당 50만~100만원씩 모두 45명에게 2400만원을 챙긴 혐의다. 이들은 또 입금사실을 확인한 뒤 약속한 동영상 파일을 삭제하는 대신 추가로 돈을 더 요구하기도 했다.

“알몸 보여줘”
찍었으니 돈 내놔!


이들의 범행은 한국에서 취업비자로 일하면서 입금된 돈을 인출해 중국에 있는 아들에게 보냈다가 해당 계좌를 추적한 경찰에 덜미를 붙잡혔다.

일선 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최근에 메신저피싱 사기가 과거와 다르게 특정인을 대상으로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며 “그 방법도 단순히 돈을 빌려달라는 과거의 방법과 다르게 상대방의 약점 등을 이용한 협박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런 범죄의 경우 IP주소가 중국 등 외국일 확률이 높고, 메신저 아이디를 추적해 봐도 대부분 해킹된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어 범인을 검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이후에도 유사 피해를 봤다며 경찰 상담을 요청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고 꼬집었다.

돈 뜯기고
신고도 못하고

피해자들이 자신이 저질렀던 몸캠 행위가 떳떳지 못하다고 여겨 정식으로 고소장을 제출하거나 조사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경우 언제, 어떤 식으로 피해가 발생했는지 알 수 없어 경찰이 범인을 추적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과거에 몸캠피싱 사기를 당했다는 한 남성은 “너무 억울해서 항의라도 했다간 ‘가족이나 직장에 알리겠다’는 협박에 시달리게 된다. 물론 정식으로 대응할 수도 있겠지만 부적절한 행동이 외부로 알려지면 사회적 위신이 깎이는 데다 떳떳하지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망신을 각오하지 않는 한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피해자 역시 “사기인걸 알고 제2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 신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가도 혹시 나한테는 어떤 처벌이 있는 건지, 그냥 내가 바보였다고 잊어버려야 하는 건지 갈등의 기로에 선다”며 “결국 똥 밟았다는 셈 치고 돈 보내준 뒤 조용히 끝내는 게 나를 위해서 더 낫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한 경찰 관계자는 “수십만원을 털린 한 남성이 전화상담만 받고 직접 조사를 받지는 않더라”며 “남자형사가 조사할 테니 오라고 해도 안 왔다”고 전했다.

서울시내 또 다른 경찰서 관계자는 “상대방과 합의를 했다면 채팅에서 음란행위를 하는 것만으로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다만 인터넷상의 이런 행위가 범죄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질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돈 안 주고 버티다 자신의 미니홈피에 동영상 올려 지기도
중국 근거지 조직적 범행…일탈 꿈꾸는 당신의 지갑 노린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왜 채팅창 속 몸캠녀에게 잘 넘어가는 것일까.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정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뭐에 홀린 것 같다”고 말한다. 몸캠녀에 걸리는 이유 중 하나가 일당들은 자연스런 분위기를 만들고, 경계심을 늦추는 나름대로 완벽한 상황을 조성하기 때문인 것은 맞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몸캠녀에게 걸려드는 큰 요인은 피해자 스스로 원인 인자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한다. 성욕과 억압에서 벗어나고픈 욕망, 호기심 등이다.

평범하고 순진한 남성이라도 누구나 이성에 대한 환상이 있고 이런 유혹이 왔을 경우 정상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기 힘들어진다. 여성보다 성욕이 강해 범죄에 쉽게 속는 남자들이 어떤 관점에서는 ‘약자’로 간주되는 이유이다.

전문가들은 “남성은 자신의 성적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상대의 유혹을 자신의 매력에 반해서 그러는 것으로 착각한다. 특히 낯설고 예쁜 여성과의 채팅은 남성의 강한 본능을 자극해 이성을 마비시키고 쉽게 ‘이브의 유혹’에 넘어가게 한다”고 지적했다.


왜 몸캠녀의
유혹에 걸려들까?

남자들의 성적 욕망을 낚는 채팅사기는 과거부터 사회문제화 되어 왔다. 비교적 간단한 수법이지만 여전히 당하는 남성들이 많다. 이 경우 스스로 타깃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낯선 여성이 채팅으로 접근하면 아예 응하지 않고, 솔깃한 제안을 하더라도 ‘의심’부터 하고보는 것이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

오늘도 교묘하게 진화한 보이스피싱의 몸캠녀들은 은밀한 일탈을 꿈꾸는 남성들을 향해 유혹의 날갯짓을 하며, 인터넷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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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