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직격 인터뷰> ‘국민 엔돌핀’ 탁재훈의 예능론

놀림 당한 사람도 웃는 ‘선 타는 개그’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국내 예능계에 소위 ‘선비 정신’을 강요하는 시청자가 늘어나면서, 다소 가학적이고 강렬한 유머가 사라졌다. 윤리적인 면이 강화되는 대신 재미를 잃었다. 이른바 ‘착한 예능’이 대세로 자리매김한 현 방송가는 유튜브에 먹거리를 뺏기는 현실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서 홀로 빛나는 유머로 방송가를 휘젓는 이가 있으니, 바로 탁재훈이다. SBS <미운 우리 새끼>서의 활약상은 과거의 영광에 못지않다. <일요시사>는 탁재훈을 직접 만나 그가 가진 유머의 철학을 들어봤다. 
 

▲ 방송인 탁재훈 ⓒ고성준 기자

1975년 영국의 한스 코스터리츠 박사는 마약인 모르핀의 200배 성능을 가진 체내 모르핀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두고 ‘엔돌핀’이라 명명했다.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닌,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 웃음이 나올 때만 나오는 엔돌핀은 스트레스에 가장 좋은 치료제라 해서 천연 진통제라고도 한다. 

‘예능의 신’
유머 철학은?

가수이자 예능인 탁재훈은 방송에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을 웃긴다. 시청자들은 물론 같이 방송하는 사람들에게마저 폭발적인 웃음을 선사한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천연진통제를 제공한 인물이지 않을까. 

국내 굴지의 의사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근심을 덜어주고, 통증을 막아준 탁재훈을 최근 경기도 일산의 한 커피숍서 만났다. MBN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이하 <우다사>) 촬영 전 만난 그는 여유가 몸에 베 있었다.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한편, 빈틈이 보일 때마다 유머를 던졌다. 

탁재훈의 인생은 롤러코스터나 다름없다. 30세 넘어서까지 이름 한 번 알리지 못한 무명가수 배성우에서, 그룹 ‘컨츄리꼬꼬’로 전향했으나 무려 8개월 동안 아무런 활동 없이 보내다 뒤늦게 유명세를 얻었다. 서른 넘어 인기를 얻은 이후 음악과 예능, 연기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트리플 엔터테이너’의 창시자로 꼽혔다. 


그러다 스포츠 토토로 인해 수많은 개그맨들이 활동을 중단할 때 같이 쓸려 나갔고, 그 과정서 이혼도 경험했다. 복귀 후 적지 않은 방송에 나왔지만, KBS2 <상상플러스>, MBC <뜨거운 형제> 시절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하는 폼이었다. 그러다 최근 3년 전부터 이상민과 함께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우새>)의 ‘탁궁 조합’으로 조금씩 얼굴을 알리더니, 전체 예능 시청률 부동의 1위의 주역이 됐다. 

그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레전드로 회자 될 만큼 퍼포먼스가 독보적이다. 온라인서든 오프라인서든 그의 입담이 이야깃거리가 된다. <미우새>와 <우다사>에 고정으로 출연 중이며 MBC <트로트의 민족>에 출연을 앞두고 있다. 그를 향한 대중의 사랑이 높아지자 방송가는 물론 광고계서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 

“얼마 전에 막걸리 광고 하나 찍었어요. 요즘 사실 반응을 조금 실감하고 있어요. 이상해요. 코로나19 때문에 드라마든 예능이든 줄어드는 추세인데, 저는 일을 하잖아요. 다른 사람들 일할 때 저는 놀았고, 다른 사람들 일 안 할 때 저는 일하게 되더라고요. 요즘 많이 힘드신 것 같아요. 그런 중에 저 때문에 많이 웃었다던가 갈증이 확 풀렸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그런 말을 들으면 살아있다는 존재감도 느끼고, 그 자체만으로 기뻐요.”

“착한예능 재미없어…갈증 내가 해소”
‘악마의 재능’서 ‘천사의 재능’으로

그가 남들을 웃겨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배성우서 탁재훈으로 이름을 바꾸고, 컨츄리꼬꼬로 혜성같이 등장한 이후 그는 언제나 많은 사람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러던 그도 한때는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게스트를 소홀히 대한다고 해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적도 있었다. 

“저는 늘 똑같았거든요. 예전에는 이렇게 반응이 있지는 않았어요. 때로는 게스트 얘기를 안 들어준다고 해서 욕을 먹기도 했었어요. 게스트가 목적이 있어서 프로그램에 나왔을 텐데 그러면 놀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서 자기 얘기 안 들어준다고 뭐라 하기도 했었어요. 저는 ‘그러면 너는 나오지 마’라는 식이었죠. 그런 세월도 있었고, 한때 ‘내가 너무 독한건가?’라는 고민도 생겨 머뭇거렸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러다 <미우새>를 시작했고, 저는 하던 방식으로 투덜대고 했는데, 이제야 재밌다고 하네요. 사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이전까지 그에 대한 대중의 편견도 적지 않았다. 특히 성실 면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남들을 잘 놀리는 유머 스타일도 매력적이지만, 일부에겐 불편함을 줄 만한 요소였다. 쉼 없이 투덜대지만, 여전히 강렬한 웃음을 가진 그에게 방송계는 ‘악마의 재능’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는 탁재훈 ⓒ고성준 기자

<미우새> 이후로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고 있는 모양새다. 짜증스러운 모습은 더 많이 나오지만, 그 모든 것이 일종의 액션으로만 보인다. 이상민이 무언가를 제안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도울 뿐 아니라, 김종국과 김희철의 짓궂은 놀림에도 언제나 유연하게 받아친다. 나이와 무관하게 누구나 평등하게 대하는 태도가 <미우새>를 통해 전달된다. 웃기는 것뿐 아니라 탁재훈이라는 인간 자체가 가진 매력이 전달된다. 

이 정도면 악마의 재능이 아닌 ‘천사의 재능’이 요즘 그에게 더 어울리는 수식어이지 않을까. 날고 기는 예능인들이 그 앞에서는 웃기 바쁘다. JTBC <아는 형님>서 날아다니는 김희철도 탁재훈 앞에서는 웃는 리액션을 할 뿐이다.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 감각의 유머를 구사하는 그다. 

“우리 모두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는 않잖아요. 저는 나이를 기준에 두고 만나지 않아요. 요즘도 뮤지나 유세윤 같이 어린 친구들이랑 놀아요. 걔네도 정말 재밌잖아요. 같이 깔깔대고 그러죠. 그런 생활패턴 덕분인 것 같아요. 여전히 저를 재밌게 봐주시는 건.”

아울러 요즘 방송계에는 힐링이 이어지고 있다. 요리와 여행, 부부, 집방 등 관찰예능을 중심으로 장르가 다변화되면서, 웃음보다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재미를 찾기는 어려워졌다. 

더 강하게
더 독하게

“방송을 쉬는 동안에 제가 느낀 건, 예능이 너무 재미없다는 거였어요. 시청자 관점서 예능이 너무 착해졌어요. 재미를 빼고, 무언가에 헌신하는 느낌이에요. 예능은 어차피 예능이잖아요. 사람들에게 메시지나 교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웃겨야 예능이 의미가 생기는 건데, 정말 웃기는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았어요. 요즘 예능을 아이 아니면 아이돌이에요. 사람들이 진짜 웃음에 목말라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갈증을 제가 해소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제 개그가 잠깐이나마 속을 뻥 뚫어줬다는 말씀들을 해주세요. 저는 그저 기쁘죠.”

그의 개그는 스펙트럼이 넓다. 과거의 이야기를 흡입력 있게 풀어내는 재주는 물론, 순간적인 재치를 발휘하는 드립, 선을 완벽히 지키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상대를 놀리는 개그, 약간의 연기를 곁들인 능청, 예상을 뒤엎는 아이디어까지, 다양하다. 가끔은 슬랩스틱 개그도 한다.

어떤 방식이든 폭발력이 있다. 웃기는 방면에서 무기가 차고 넘친다. 

“요즘 선 넘는 개그가 일종의 유행인데, 저는 선을 탄다고 생각해요. 선을 타는 것은 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재밌는 거예요. 놀림을 받는 사람도 웃게 되는 거죠. 공감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차이인데, 선을 넘는 개그는 ‘나도 아는 얘기를 뭐 이렇게까지 하냐’라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선을 타는 개그는 웃게 되는 거고요.”
 

▲ ⓒ고성준 기자

선을 타는 개그의 예는 대략 이렇다. 엠넷 <음악의 신2>서 비서로 나온 김가은의 패션이 다소 독특했다. 속옷을 밖으로 꺼내 입은 느낌이었다. 이를 캐치한 탁재훈은 한참 뜸을 들이더니 “이런 말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너 속옷을 밖으로 꺼내 입은 것 같은데. 너 왜 이렇게 정신이 없어 화장실 가서 갈아입고 와”라고 했다.

김가은은 물론 옆에 있던 윤채경과 이수민, 김소희도 덩달아 터졌다. 

“만약 거기서 제가 가은이를 빤히 보고 그런 말을 했다면, 지적질이나 성추행처럼 보였을 수도 있어요. 근데 안 보는 척 부끄러운 척하면서 말을 해요. 말과 리액션이 상황을 묘하게 만든 거죠. 그 인위적인 모습이 개그를 풍성하게 만든다고 봐요. ‘파바바박’ 치는 게 아니라 호흡이 있으면서. 사실 제 개그에 그런 액션이 다 녹아있어요.”


또 다른 역량은 짠 개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준비된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다. 동물적으로 순간을 포착하는 짐승의 면모만 보인다. 

“그 순간을 놓치면 웃기는 타이밍을 놓치는 거잖아요. 언제나 상황에 집중해요. 경청하면서, 상대를 늘 관찰하고 주시해요. 평소에도 특이한 캐릭터가 보이면 괜히 더 말 붙이고, 그걸 체화하기도 하죠. 집중하는 덕분에 특정한 순간을 잘 잡아내는 것 같아요.”

동물적 감각 
천부적 재능

매번 이렇게 웃길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는 스스로 건강한 멘탈이라고 답했다. 건강한 멘탈의 비결은 ‘안 되면 말고’ 정신이다. 늘 최선은 다하되, 결과에 얽매이지 않는 것. 결과가 좋지 않더라고 훌훌 털어버리는 게 그의 건강한 멘탈의 비결이라고. 

“사람이 열심히 해도 결과가 안 좋을 수 있잖아요. ‘안 되면 말고’라고 말하는 사람도 속상할테 지만, 그걸 빨리 잊어야지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거예요. 안 됐다고 죽을 거예요? 아니잖아요. 멘탈 잡고 다시 열심히 해서 극복해야죠.”

그 ‘안 되면 말고’의 정신이 컨츄리꼬꼬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신정환과의 결합 자체가 못 미더웠던 그가 미루고 미루다 결성한 컨츄리꼬꼬는 무려 8개월 동안 아무런 스케줄을 잡지 못했다. 그룹도 결성하고 노래도 나왔는데,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겨우 하나 잡힌 곳이 SBS <좋은 친구들>이었다. 


“그때 컨츄리꼬꼬를 접기로 하고 나간 거였어요. 기분이 어떻겠어요. 정환이한테 ‘마지막 스케줄인데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하고 나갔어요. 녹화 켜지자마자 정말 막 했죠. ‘뭐 저런 XX들이 다 있어?’라고 하는 느낌이었어요. 방청객도 빵빵 터지고요. 그렇게 마무리하고 가는데 한 번 더 출연해달라는 전화가 왔어요. 또 가서 또 터뜨렸죠. 방송 나가고부터 다른 프로그램 섭외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사실 그때 결과에 얽매여 있었다면, 거기서 그렇게 웃기지 못했을 거예요.”

어쩌면 잃어버릴 수 있었던 레전드는 그렇게 우연한 곳에서 탄생했다. 오랜 파트너였던 신정환과 그야말로 최고의 전성기를 이룬다. 음악과 예능, 영화 등 등장하는 곳마다 관심을 끌었다. 그러던 중 동료 신정환이 도박한 후 거짓말을 한 것이 도마 위에 오른다. 탁재훈과 함께 예능 전성시대를 이끈 신정환은 현재 방송에 얼굴을 못 비치고 있다. 
 

“한 달 전에도 만났어요. 여전히 웃기고 있어요. 정환이랑 저랑 개그의 결이 가장 비슷한 거 같아요. 걔는 아직 시동이 더 필요해요. 엠넷 <악마의 재능>은 너무 다급하게 복귀하려다, 전반적으로 부족했고, <아는형님> 때는 정환이가 너무 위축된 상태로 나가서… 좀 시동도 걸리고 예열이 되면, 예전처럼 웃길 거 같아요.”

그러면서 신정환에게 전한 복귀 시나리오를 전했다. 

“사실 걔가 죄를 짓는 과정서 웃음 포인트가 너무 많았어요. 뎅기열 사진에 누워있는 모습도 그렇고, 공항서 입은 패딩도 웃기잖아요. 뭐 그런 걸 입어서. 정환이한테 말했어요. 공항 장면을 그대로 만들라고요. 기자들도 세팅해서 플래시 터트리고, 그때처럼 포토라인서 인사를 하라고요. 인사를 90도로 하면 모자가 내려오는데 거기서 칩이 후드득 쏟아지는 거예요. 그럼 정환이는 그 칩을 주섬주섬 줍는 거예요. 그거 한 방이면 끝난다고 했어요. 아마 그 짤은 영원할 거예요.”

그러면서 조심스레 신정환의 복귀에 대한 진심을 전했다. 

그가 전한 신정환 복귀 시나리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싶고 싶다”

“팔이 안으로 굽는 얘기이긴 할 텐데, 정환이가 잘한 건 아니지만 누구 등쳐먹으려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잘못한 게 있고, 그게 알려지는 게 두려운 상황서 한 거짓말이잖아요. 잘한 건 아니지만, 이해되는 부분도 조금은 있잖아요. 이런 상황이 더 오래가지 않았으면 하는 게 형으로서 바람이에요.”

이른바 ‘돌아온 싱글’의 대표주자인 그에게 방송가는 연인을 붙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MBN <최고의 한 방>서도 소개팅을 주선했고, 본격 연애 방송인 <우다사>의 터줏대감인 그다. 시즌3부터는 오현경과 돌싱편 ‘우리 결혼했어요’를 찍고 있다. 

“사실 연애는 잘 모르겠어요. 신경 잘 안 쓰는 편이에요. 연애라는 게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잖아요. 시간도 그렇고 저는 나이도 있으니까 돈도 좀 써야죠. 사실 저는 혼자 있는 거에 익숙한 편이에요. 지금은 생각이 많지 않지만, 누군가와 스파크 튀기면 잘 될 수도 있겠죠. 아직 적극적으로 꽂히려고 하지 않아요. 정신이 너무 멀쩡해요. <우다사>서 오현경씨와는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매력적이고요. 아직 촬영 초기고, 카메라가 있어서 진짜로 뭐가 튀긴 건 아니지만, 현경씨가 좋은 사람인 건 분명해요.”

웃기는 것 뿐 아니라 노래에도 소질이 있는 그는 새로운 음반을 준비 중이다. 썩히기엔 너무 아까운 재능이라는 게 그의 속내다. <미우새>서 이상민에게 프로듀싱을 부탁하는 장면도 나왔다. 
 

“현재 준비중이기는 한데, 구체적으로 나온 건 없어요. 이 나이에 댄스를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발라드나 느린 템포가 될 것 같기는 한데, 트로트가 워낙 강세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이상민이 직접 프로듀싱은 안 해요. 그건 설정이에요.”

아직도 재능이 넘치는 그이지만 최근 들어 갱년기에 대해 고민이 있다고 털어놨다.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도 그렇고, 가끔 울적함에 빠지기도 한다고. 

“텐션이 예전처럼 높지 않아요. 저의 삶의 루틴을 바꿔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계속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싶은데, 기운도 점점 떨어지고 그래요. 남들한테 티를 내지는 않지만, 분명 힘든 점이 있거든요. 이걸 잘 관리하고 극복하고 싶어요.”

무려 20년 동안 국내 예능계의 정점에 있는 그다. 지금도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고 있는 그의 삶의 철학은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살기’다. 

건강한 멘탈 
안 되면 말고∼

“독하고 나쁜 애들이 잘사는 게 세상이더라고요. 정말 착한 애들은 사고가 나거나 일찍 죽어요. 진짜 그렇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나쁜 인간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남한테 피해 주면서까지 뭘 차지하고 싶지 않아요. 결국 그렇게 욕심부려봤자, 다 똑같더라고요. 그런 믿음을 갖고 살아요요. 나쁘게 살면 벌 받는다는 것. 저는 정말 착하게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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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