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직격 인터뷰> ‘국민 엔돌핀’ 탁재훈의 예능론

놀림 당한 사람도 웃는 ‘선 타는 개그’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국내 예능계에 소위 ‘선비 정신’을 강요하는 시청자가 늘어나면서, 다소 가학적이고 강렬한 유머가 사라졌다. 윤리적인 면이 강화되는 대신 재미를 잃었다. 이른바 ‘착한 예능’이 대세로 자리매김한 현 방송가는 유튜브에 먹거리를 뺏기는 현실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서 홀로 빛나는 유머로 방송가를 휘젓는 이가 있으니, 바로 탁재훈이다. SBS <미운 우리 새끼>서의 활약상은 과거의 영광에 못지않다. <일요시사>는 탁재훈을 직접 만나 그가 가진 유머의 철학을 들어봤다. 
 

▲ 방송인 탁재훈 ⓒ고성준 기자

1975년 영국의 한스 코스터리츠 박사는 마약인 모르핀의 200배 성능을 가진 체내 모르핀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두고 ‘엔돌핀’이라 명명했다.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닌,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 웃음이 나올 때만 나오는 엔돌핀은 스트레스에 가장 좋은 치료제라 해서 천연 진통제라고도 한다. 

‘예능의 신’
유머 철학은?

가수이자 예능인 탁재훈은 방송에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을 웃긴다. 시청자들은 물론 같이 방송하는 사람들에게마저 폭발적인 웃음을 선사한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천연진통제를 제공한 인물이지 않을까. 

국내 굴지의 의사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근심을 덜어주고, 통증을 막아준 탁재훈을 최근 경기도 일산의 한 커피숍서 만났다. MBN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이하 <우다사>) 촬영 전 만난 그는 여유가 몸에 베 있었다.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한편, 빈틈이 보일 때마다 유머를 던졌다. 

탁재훈의 인생은 롤러코스터나 다름없다. 30세 넘어서까지 이름 한 번 알리지 못한 무명가수 배성우에서, 그룹 ‘컨츄리꼬꼬’로 전향했으나 무려 8개월 동안 아무런 활동 없이 보내다 뒤늦게 유명세를 얻었다. 서른 넘어 인기를 얻은 이후 음악과 예능, 연기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트리플 엔터테이너’의 창시자로 꼽혔다. 


그러다 스포츠 토토로 인해 수많은 개그맨들이 활동을 중단할 때 같이 쓸려 나갔고, 그 과정서 이혼도 경험했다. 복귀 후 적지 않은 방송에 나왔지만, KBS2 <상상플러스>, MBC <뜨거운 형제> 시절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하는 폼이었다. 그러다 최근 3년 전부터 이상민과 함께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우새>)의 ‘탁궁 조합’으로 조금씩 얼굴을 알리더니, 전체 예능 시청률 부동의 1위의 주역이 됐다. 

그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레전드로 회자 될 만큼 퍼포먼스가 독보적이다. 온라인서든 오프라인서든 그의 입담이 이야깃거리가 된다. <미우새>와 <우다사>에 고정으로 출연 중이며 MBC <트로트의 민족>에 출연을 앞두고 있다. 그를 향한 대중의 사랑이 높아지자 방송가는 물론 광고계서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 

“얼마 전에 막걸리 광고 하나 찍었어요. 요즘 사실 반응을 조금 실감하고 있어요. 이상해요. 코로나19 때문에 드라마든 예능이든 줄어드는 추세인데, 저는 일을 하잖아요. 다른 사람들 일할 때 저는 놀았고, 다른 사람들 일 안 할 때 저는 일하게 되더라고요. 요즘 많이 힘드신 것 같아요. 그런 중에 저 때문에 많이 웃었다던가 갈증이 확 풀렸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그런 말을 들으면 살아있다는 존재감도 느끼고, 그 자체만으로 기뻐요.”

“착한예능 재미없어…갈증 내가 해소”
‘악마의 재능’서 ‘천사의 재능’으로

그가 남들을 웃겨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배성우서 탁재훈으로 이름을 바꾸고, 컨츄리꼬꼬로 혜성같이 등장한 이후 그는 언제나 많은 사람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러던 그도 한때는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게스트를 소홀히 대한다고 해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적도 있었다. 

“저는 늘 똑같았거든요. 예전에는 이렇게 반응이 있지는 않았어요. 때로는 게스트 얘기를 안 들어준다고 해서 욕을 먹기도 했었어요. 게스트가 목적이 있어서 프로그램에 나왔을 텐데 그러면 놀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서 자기 얘기 안 들어준다고 뭐라 하기도 했었어요. 저는 ‘그러면 너는 나오지 마’라는 식이었죠. 그런 세월도 있었고, 한때 ‘내가 너무 독한건가?’라는 고민도 생겨 머뭇거렸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러다 <미우새>를 시작했고, 저는 하던 방식으로 투덜대고 했는데, 이제야 재밌다고 하네요. 사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이전까지 그에 대한 대중의 편견도 적지 않았다. 특히 성실 면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남들을 잘 놀리는 유머 스타일도 매력적이지만, 일부에겐 불편함을 줄 만한 요소였다. 쉼 없이 투덜대지만, 여전히 강렬한 웃음을 가진 그에게 방송계는 ‘악마의 재능’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는 탁재훈 ⓒ고성준 기자

<미우새> 이후로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고 있는 모양새다. 짜증스러운 모습은 더 많이 나오지만, 그 모든 것이 일종의 액션으로만 보인다. 이상민이 무언가를 제안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도울 뿐 아니라, 김종국과 김희철의 짓궂은 놀림에도 언제나 유연하게 받아친다. 나이와 무관하게 누구나 평등하게 대하는 태도가 <미우새>를 통해 전달된다. 웃기는 것뿐 아니라 탁재훈이라는 인간 자체가 가진 매력이 전달된다. 

이 정도면 악마의 재능이 아닌 ‘천사의 재능’이 요즘 그에게 더 어울리는 수식어이지 않을까. 날고 기는 예능인들이 그 앞에서는 웃기 바쁘다. JTBC <아는 형님>서 날아다니는 김희철도 탁재훈 앞에서는 웃는 리액션을 할 뿐이다.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 감각의 유머를 구사하는 그다. 

“우리 모두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는 않잖아요. 저는 나이를 기준에 두고 만나지 않아요. 요즘도 뮤지나 유세윤 같이 어린 친구들이랑 놀아요. 걔네도 정말 재밌잖아요. 같이 깔깔대고 그러죠. 그런 생활패턴 덕분인 것 같아요. 여전히 저를 재밌게 봐주시는 건.”

아울러 요즘 방송계에는 힐링이 이어지고 있다. 요리와 여행, 부부, 집방 등 관찰예능을 중심으로 장르가 다변화되면서, 웃음보다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재미를 찾기는 어려워졌다. 

더 강하게
더 독하게

“방송을 쉬는 동안에 제가 느낀 건, 예능이 너무 재미없다는 거였어요. 시청자 관점서 예능이 너무 착해졌어요. 재미를 빼고, 무언가에 헌신하는 느낌이에요. 예능은 어차피 예능이잖아요. 사람들에게 메시지나 교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웃겨야 예능이 의미가 생기는 건데, 정말 웃기는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았어요. 요즘 예능을 아이 아니면 아이돌이에요. 사람들이 진짜 웃음에 목말라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갈증을 제가 해소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제 개그가 잠깐이나마 속을 뻥 뚫어줬다는 말씀들을 해주세요. 저는 그저 기쁘죠.”

그의 개그는 스펙트럼이 넓다. 과거의 이야기를 흡입력 있게 풀어내는 재주는 물론, 순간적인 재치를 발휘하는 드립, 선을 완벽히 지키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상대를 놀리는 개그, 약간의 연기를 곁들인 능청, 예상을 뒤엎는 아이디어까지, 다양하다. 가끔은 슬랩스틱 개그도 한다.

어떤 방식이든 폭발력이 있다. 웃기는 방면에서 무기가 차고 넘친다. 

“요즘 선 넘는 개그가 일종의 유행인데, 저는 선을 탄다고 생각해요. 선을 타는 것은 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재밌는 거예요. 놀림을 받는 사람도 웃게 되는 거죠. 공감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차이인데, 선을 넘는 개그는 ‘나도 아는 얘기를 뭐 이렇게까지 하냐’라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선을 타는 개그는 웃게 되는 거고요.”
 

▲ ⓒ고성준 기자

선을 타는 개그의 예는 대략 이렇다. 엠넷 <음악의 신2>서 비서로 나온 김가은의 패션이 다소 독특했다. 속옷을 밖으로 꺼내 입은 느낌이었다. 이를 캐치한 탁재훈은 한참 뜸을 들이더니 “이런 말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너 속옷을 밖으로 꺼내 입은 것 같은데. 너 왜 이렇게 정신이 없어 화장실 가서 갈아입고 와”라고 했다.

김가은은 물론 옆에 있던 윤채경과 이수민, 김소희도 덩달아 터졌다. 

“만약 거기서 제가 가은이를 빤히 보고 그런 말을 했다면, 지적질이나 성추행처럼 보였을 수도 있어요. 근데 안 보는 척 부끄러운 척하면서 말을 해요. 말과 리액션이 상황을 묘하게 만든 거죠. 그 인위적인 모습이 개그를 풍성하게 만든다고 봐요. ‘파바바박’ 치는 게 아니라 호흡이 있으면서. 사실 제 개그에 그런 액션이 다 녹아있어요.”


또 다른 역량은 짠 개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준비된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다. 동물적으로 순간을 포착하는 짐승의 면모만 보인다. 

“그 순간을 놓치면 웃기는 타이밍을 놓치는 거잖아요. 언제나 상황에 집중해요. 경청하면서, 상대를 늘 관찰하고 주시해요. 평소에도 특이한 캐릭터가 보이면 괜히 더 말 붙이고, 그걸 체화하기도 하죠. 집중하는 덕분에 특정한 순간을 잘 잡아내는 것 같아요.”

동물적 감각 
천부적 재능

매번 이렇게 웃길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는 스스로 건강한 멘탈이라고 답했다. 건강한 멘탈의 비결은 ‘안 되면 말고’ 정신이다. 늘 최선은 다하되, 결과에 얽매이지 않는 것. 결과가 좋지 않더라고 훌훌 털어버리는 게 그의 건강한 멘탈의 비결이라고. 

“사람이 열심히 해도 결과가 안 좋을 수 있잖아요. ‘안 되면 말고’라고 말하는 사람도 속상할테 지만, 그걸 빨리 잊어야지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거예요. 안 됐다고 죽을 거예요? 아니잖아요. 멘탈 잡고 다시 열심히 해서 극복해야죠.”

그 ‘안 되면 말고’의 정신이 컨츄리꼬꼬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신정환과의 결합 자체가 못 미더웠던 그가 미루고 미루다 결성한 컨츄리꼬꼬는 무려 8개월 동안 아무런 스케줄을 잡지 못했다. 그룹도 결성하고 노래도 나왔는데,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겨우 하나 잡힌 곳이 SBS <좋은 친구들>이었다. 


“그때 컨츄리꼬꼬를 접기로 하고 나간 거였어요. 기분이 어떻겠어요. 정환이한테 ‘마지막 스케줄인데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하고 나갔어요. 녹화 켜지자마자 정말 막 했죠. ‘뭐 저런 XX들이 다 있어?’라고 하는 느낌이었어요. 방청객도 빵빵 터지고요. 그렇게 마무리하고 가는데 한 번 더 출연해달라는 전화가 왔어요. 또 가서 또 터뜨렸죠. 방송 나가고부터 다른 프로그램 섭외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사실 그때 결과에 얽매여 있었다면, 거기서 그렇게 웃기지 못했을 거예요.”

어쩌면 잃어버릴 수 있었던 레전드는 그렇게 우연한 곳에서 탄생했다. 오랜 파트너였던 신정환과 그야말로 최고의 전성기를 이룬다. 음악과 예능, 영화 등 등장하는 곳마다 관심을 끌었다. 그러던 중 동료 신정환이 도박한 후 거짓말을 한 것이 도마 위에 오른다. 탁재훈과 함께 예능 전성시대를 이끈 신정환은 현재 방송에 얼굴을 못 비치고 있다. 
 

“한 달 전에도 만났어요. 여전히 웃기고 있어요. 정환이랑 저랑 개그의 결이 가장 비슷한 거 같아요. 걔는 아직 시동이 더 필요해요. 엠넷 <악마의 재능>은 너무 다급하게 복귀하려다, 전반적으로 부족했고, <아는형님> 때는 정환이가 너무 위축된 상태로 나가서… 좀 시동도 걸리고 예열이 되면, 예전처럼 웃길 거 같아요.”

그러면서 신정환에게 전한 복귀 시나리오를 전했다. 

“사실 걔가 죄를 짓는 과정서 웃음 포인트가 너무 많았어요. 뎅기열 사진에 누워있는 모습도 그렇고, 공항서 입은 패딩도 웃기잖아요. 뭐 그런 걸 입어서. 정환이한테 말했어요. 공항 장면을 그대로 만들라고요. 기자들도 세팅해서 플래시 터트리고, 그때처럼 포토라인서 인사를 하라고요. 인사를 90도로 하면 모자가 내려오는데 거기서 칩이 후드득 쏟아지는 거예요. 그럼 정환이는 그 칩을 주섬주섬 줍는 거예요. 그거 한 방이면 끝난다고 했어요. 아마 그 짤은 영원할 거예요.”

그러면서 조심스레 신정환의 복귀에 대한 진심을 전했다. 

그가 전한 신정환 복귀 시나리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싶고 싶다”

“팔이 안으로 굽는 얘기이긴 할 텐데, 정환이가 잘한 건 아니지만 누구 등쳐먹으려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잘못한 게 있고, 그게 알려지는 게 두려운 상황서 한 거짓말이잖아요. 잘한 건 아니지만, 이해되는 부분도 조금은 있잖아요. 이런 상황이 더 오래가지 않았으면 하는 게 형으로서 바람이에요.”

이른바 ‘돌아온 싱글’의 대표주자인 그에게 방송가는 연인을 붙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MBN <최고의 한 방>서도 소개팅을 주선했고, 본격 연애 방송인 <우다사>의 터줏대감인 그다. 시즌3부터는 오현경과 돌싱편 ‘우리 결혼했어요’를 찍고 있다. 

“사실 연애는 잘 모르겠어요. 신경 잘 안 쓰는 편이에요. 연애라는 게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잖아요. 시간도 그렇고 저는 나이도 있으니까 돈도 좀 써야죠. 사실 저는 혼자 있는 거에 익숙한 편이에요. 지금은 생각이 많지 않지만, 누군가와 스파크 튀기면 잘 될 수도 있겠죠. 아직 적극적으로 꽂히려고 하지 않아요. 정신이 너무 멀쩡해요. <우다사>서 오현경씨와는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매력적이고요. 아직 촬영 초기고, 카메라가 있어서 진짜로 뭐가 튀긴 건 아니지만, 현경씨가 좋은 사람인 건 분명해요.”

웃기는 것 뿐 아니라 노래에도 소질이 있는 그는 새로운 음반을 준비 중이다. 썩히기엔 너무 아까운 재능이라는 게 그의 속내다. <미우새>서 이상민에게 프로듀싱을 부탁하는 장면도 나왔다. 
 

“현재 준비중이기는 한데, 구체적으로 나온 건 없어요. 이 나이에 댄스를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발라드나 느린 템포가 될 것 같기는 한데, 트로트가 워낙 강세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이상민이 직접 프로듀싱은 안 해요. 그건 설정이에요.”

아직도 재능이 넘치는 그이지만 최근 들어 갱년기에 대해 고민이 있다고 털어놨다.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도 그렇고, 가끔 울적함에 빠지기도 한다고. 

“텐션이 예전처럼 높지 않아요. 저의 삶의 루틴을 바꿔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계속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싶은데, 기운도 점점 떨어지고 그래요. 남들한테 티를 내지는 않지만, 분명 힘든 점이 있거든요. 이걸 잘 관리하고 극복하고 싶어요.”

무려 20년 동안 국내 예능계의 정점에 있는 그다. 지금도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고 있는 그의 삶의 철학은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살기’다. 

건강한 멘탈 
안 되면 말고∼

“독하고 나쁜 애들이 잘사는 게 세상이더라고요. 정말 착한 애들은 사고가 나거나 일찍 죽어요. 진짜 그렇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나쁜 인간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남한테 피해 주면서까지 뭘 차지하고 싶지 않아요. 결국 그렇게 욕심부려봤자, 다 똑같더라고요. 그런 믿음을 갖고 살아요요. 나쁘게 살면 벌 받는다는 것. 저는 정말 착하게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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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