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국민 변강쇠’ 조지환, 다시 배우를 꿈꾸다

“하룻밤 4번 오르가즘…나는 강하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예능인 조혜련의 동생으로 잘 알려진 배우 조지환과 그의 아내 박혜민이 “잠자리 도중 네 번 느꼈다”고 밝혔을 때 채널A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 부부> 고정 패널 홍진경이 입이 딱 벌어졌다. “저 부부 정말 대박이다”고 생각한 건 비단 홍진경만은 아닐 것. 부부만이 아는 속 얘기를 모두 토해낸 두 커플을 향한 관심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단숨에 ‘국민 변강쇠’로 떠오른 배우 조지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금도 창피하고 부끄럽다”는 그의 인생은, 육체적 대화를 나눌 때처럼 진폭이 컸다. 
 

▲ 배우 조지환 ⓒ고성준 기자

인터뷰를 장소는 서울 상암동 한 커피숍, 오후 2시였다. 사진 촬영을 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메이크업이나 의상을 준비하지 않고 땀에 젖은 채 나타났다. 배우로 알려진 조지환은 배달 대행 이사이기도 하다. 점심 피크가 지나고 잠시 비어있는 시간에 안양서 달려왔던 것이다. 

하루 메시지
500통 셀럽

“기록에 남는 것인데, 이렇게 사진을 찍어도 괜찮냐”는 물음에 조지환은 쿨하게 “괜찮다”고 했다. 눈에 띄는 건 오른팔을 휘감은 깁스였다. 채널A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이하 <애로부부>) 촬영 전인 5월 말경, 배달 업무를 하다 큰 사고를 겪으며 팔이 부러졌었다. 현재 회복 중이라는 그는 개의치 않은 듯 웃어보였다.

조지환과 그의 아내 박혜민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32시간마다 잠자리를 요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조지환의 어머니가 있는 상황서도 잠자리를 가질 뿐 아니라, 관계 도중 괴성을 질러 경비실서 호출이 있었던 사연, <소녀경>과 <카마수트라> <킨제이보고서> 등을 독파했다는 조지환의 학구열과 그로 인해 관계 중 네 번의 오르가즘을 느꼈다는 것 등을 털어놓은 두 부부는 국내서 가장 흥미로운 셀럽으로 떠올랐다. 

이른바 ‘멀티 오르가즘’을 느낀다는 박혜민은 대다수 여자의 시기심을 불러일으켰고, 40대임에도 자는 시간 포함 ‘32시간 쿨타임’을 가진 조지환은 남자들의 존경심을 샀다.


“안 그래도 어제 아는 형님이랑 술 한잔했는데, 욕하더라고요. 너가 그래 버리면 나는 뭐가 되냐고요. 하하.”

지난달 31일 방송 후 며칠동안 화제였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서 <애로 부부>와 조지환, 조지환 아내, 박혜민 등이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됐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32시간마다 요구하는 남자’ ‘네 번 느끼게 하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두 부부의 캡처 이미지가 퍼졌다. 

“아직도 부끄러워요. 뭐 그렇게까지 얘기를 하게 됐나 싶기도 하고요. 근데 뭐 부부끼리 그러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사랑하는 사이인데. 전 개인적으로 진짜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서로 얘기도 많이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도 털어놓고요.”

시작은 조지환의 엔터 업계에 종사하는 매형으로부터 시작됐다. SBS <기적의 오디션>서 연을 맺은 <애로부부> 김진 PD가 갑자기 조지환이 생각이 났고, 그의 번호를 수소문하던 중 조혜련의 남편과 연락이 닿았다. 대화를 나누던 중 조지환의 아내에게 스트레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32시간마다 잠자리” 아내 인터뷰 화제
소녀경·카마수트라·킨제이보고서 독파

“매형이 PD님께 말을 한 거예요. 지환이 와이프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요. 그래서 직접 혜민이를 설득했어요. 혜민이도 고민하다 용기를 낸 거고요. 혜민이가 ‘ 점점 말라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사전 인터뷰 때부터 빵빵 터졌었어요. 근데 방송 때는 사전 인터뷰서 하지 않았던 말도 해서 진짜 깜짝 놀랐어요.”

방송 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조지환을 알아보는 사람도 늘어났고, 박혜민은 수술 후에 나오면 카카오톡 메시지가 무려 5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난 가운데, 두 부부는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고. 


“제가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방송할 때 와이프가 그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어요. 저는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됐어요. 거실서 자면서 생각을 했어요. ‘내가 왜 저렇게 괴롭혔지?’라고요. 스스로 ‘너무 짐승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아성찰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어요. 벌써 일주일 넘게 안 했을 거예요.”

부부간의 대화는 더 많아졌고, 서로 신뢰도 높아졌다. 다만 가족들과는 좀 멀어진 느낌이라고 한다. 아무도 이 부분에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가족 단톡방이 있어요. 원래 대화가 많은 가족인데, 아무도 이 방송에 대해 언급을 안 해요. 혜련이 누나하고만 통화했죠. 누나는 제가 창피하대요. 뭐하러 자기 집에서 한 것까지 말하냐고. 하하. 엄마도 그렇고 아무도 말을 안해요.”

평소 잠자리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그는 아내와의 잠자리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고민한다. 서로 잘 느끼기 위해 타협을 보기도 하고, 도구를 사용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것이 삶의 질을 풍성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부부간에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더욱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다. 또 본인보다 아내가 느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는 조지환 ⓒ고성준 기자

“친구 중에도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대요. 남편과의 관계가 악수하는 기분이래요. 괜히 제가 슬프더라고요. 그게 뭐예요. 사실 아내도 관계를 좋아해요.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요. 시작하면 서로 즐겨요. 시작하는 게 두려워서 그렇지. 저도 저만 하고 끝내는 타입은 아니어서 최선을 다해요. 근데 아내도 오르가즘에 도달하려면 집중을 해야 하잖아요. 그것도 컨디션이 좋아야 해요. 피곤해 죽겠으면 그렇게 네 번씩 못 느껴요. 이게 <소녀경>에 나오는 이야긴데, 결국 혈액에 관한 내용이에요. 남자도 피가 몰리면 커지듯이, 여자도 마찬가지예요. 클리토리스 쪽으로 혈액이 많이 모이면, 나중에는 건드리기만 해도 오르가즘이 와요.”

괴성 질러 
경비실 호출

가히 ‘국민 변강쇠’다웠다. 엄청난 학식이 짧은 발언으로부터 고스란히 전달됐다. 자신의 발언에 확신이 있었다. 쉽게 넘볼 수 없는 권위자의 풍모가 느껴졌다. 그가 이 영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중고등학교 때부터였다. 위로 누나만 일곱 명, 막내 아들로 태어난 그다.

귀한 아들인 그는 어머니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공부를 곧잘 하던 중학교 당시, 어머니 일을 돕다 우연히 어머니의 속사정을 듣게 된다. “나 한 번도 느낀적이 없다”는 발언이었다. 이제 겨우 10대 중반의 어린 아들에게 50대의 어머니가 전하기엔 너무 강한 내용이었다.

“엄마도 사실 본인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랐던 거죠. 선을 세게 넘은 거죠. 하하. 당시에는 그 얘기가 사실 저한테 큰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인가 <소녀경>이랑 <카마수트라> <킨제이보고서>를 독파해요. 여자친구도 없었고, 섹스할 수 없고 그래서 <카마수트라>는 일찍 집어던지고, <킨제이보고서>랑 <소녀경>을 많이 읽었어요.”

국어와 영어, 수학 대신 어른들의 은밀한 이야기를 먼저 접한 데에는 아버지와의 불화가 작용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는 일이 있었고, 그 이후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27세까지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어린 조지환에게 아버지는 상처와 트라우마로 남았다. 대인기피증도 있었고, 우울증 증세도 있었다. 

“그전에는 안 그랬는데, 아버지와 불화 이후로 내성적이고 대인기피증도 생겼고, 공부도 포기해요. 그리고 그런 책들만 읽은 거예요. 그때 혜련이 누나가 완전히 스타가 돼요. 심리적으로 안 좋았는데 연극영화과를 가겠다고 해요. 혜련이 누나를 업고 방송을 할까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동아방송대학을 갔어요. 근데 적응을 못 했어요. 사람들이랑 어울리지도 못했고요. 바로 입대했다가, 제대하고 복학해서 영화 <실미도>를 찍게 돼요.”

강우석 감독의 유일한 천만 영화인 <실미도>는 한국 영화의 바람을 일으킨 작품이다. 배우 설경구와 안성기, 정재영 등이 출연했으며, 여전히 회자되는 명작이다. 


“하루는 제 타이트 컷을 찍는다고 하더라고요. 임원희 배우가 묶여있고, 한 대씩 맞는 장면이었어요. 맞고 참아야 하는데,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데굴데굴 굴러요. 촬영장 분위기가 싸해지는 거예요. 강우석 감독님이 ‘임마, 684 부대원이 이거 맞고 구르면 되겠냐’고 했고, 전 많이 혼났죠. 다행히 다시 찍었어요. 10개월을 촬영했는데 7초 나오더라고요. 엄마는 콜라 마시다가 제가 나오는 장면을 못 봤대요.”

이후 조지환은 깊은 상심에 빠졌다. 자신의 연기력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한 것. 그리고 극단을 선택한다. 배우 오달수가 소속했던 극단으로도 잘 알려진 ‘신기루 만화경’이다. 하지만 그곳서도 조지환의 우울증이 발목을 잡는다. 

어른들의 
은밀한 이야기

“삐에로 알바를 하고, 집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극단 생활을 해요. 사실 조혜련이 동생이다 보니 사람들이 저에 대해 그려놓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재밌고, 활기찬 그런 느낌이요. 저도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했는데, 심리적인 문제가 극복되지 않아서, 진짜 즐거운 모습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2년 동안 음향‧조명 스태프만 해요. 누구나 하는 시간이기도 한데, 저는 작은 역할도 못 받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연극 <달토끼가 말했어>서 큰 역할을 맡아요. 실직자였는데,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이야기였고, 그 작품은 꽤 잘했어요. 열정적으로 했어요. 그 작품은 문제가 없었는데, 그래도 두려움은 계속 있었어요. 연기에 대한 깊이도 없는 것 같았고, 재미도 없고, 노는 방법도 몰랐죠.”

33세까지 6년 넘게 극단 생활을 한 그는 발전이 없는 자신의 모습에 한계를 느낀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SBS <기적의 오디션> 포스터를 발견한다. 힘겹게 간 오디션장, 이미 부서져 버린 멘탈을 부여잡으면서 자신의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지원자가 왔는지, 3시간이 지나도 줄이 안 줄더라고요. 몇 번을 집에 가려다 포기하고 했어요. 그렇게 기다리다 오디션을 봤는데, 발연기를 했죠. 조혜련도 팔면서, 붙어보겠다고. 절박했지만, 실력은 전혀 없었어요. 다행히도 곽경택 감독님이 선택해 주셔서 최종 30명까지는 갔어요. 그리고 영화 <미운 오리 새끼> 주조연도 맡았고, 영화 <친구2>도 했죠. 그러니까 드라마도 들어오더라고요.”
 

▲ ▲배우 조지환 ⓒ고성준 기자

연기만 할 때면 언제나 두려움이 찾아왔다. 어릴 적 트라우마로 생긴 상처가 조금도 아물지 않았다. 그토록 원하던 배우의 기회를 얻었는데, 현장서 그는 늘 위축돼있었다. 

“스태프들이 쫙 있는데, 누군가 날 싫어하는 느낌이 있으면, 연기가 안 됐어요. 혼자 신경쓰이는 거예요. 그 사람이 저를 안 싫어했는지도 몰라요. 혼자 자격지심이 있었고, 불안장애도 있었어요. 즐겁지 않게 연기를 하니까 티가 났겠죠. 드라마도 결국 깡패만 하게 됐고, 결국 0으로 수렴하더라고요. 소속사서도 정리를 당했어요. 소속사도 할 만큼 했는데, 제가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었겠죠.”

아버지와 불화, 평생 두려움에 떨다
죽음 앞서 얻은 깨달음, 다시 배우로

배우로서 선택받지 못할 때 현재의 아내 박혜민과 결혼을 한 상태였다. 뭐라도 먹고 살아야했기에 지인과 떡볶이 집도 차렸다. 그것마저 실패했다. 조지환의 불안함은 날로 커졌고, 우울증도 심하게 찾아왔다. 감당을 못할 정도였다는 게 그의 말이다. 불안함이 극도로 커지자, 조혜련은 조지환에게 ‘예수 전도단’을 추천한다. 약 8개월가량 하와이 등 외국에서 선교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이다. 기독교 신자인 아내와 딸도 동행했다. 

“가긴 갔는데 가서 엄청나게 싸웠어요. 전 준비가 안 됐었거든요. 술 담배를 하지 말래요. 전 아직 각오가 안 됐는데. 몰래 17세 애를 꾀어서 담배 피우고 왔다가 걸리기도 하고 그랬죠. 하하. 그렇게 아내와 싸우다가, 담배를 들고 산에 올라가요. ‘내가 한국서 인생은 실패했지만 저 산은 올라간다’면서요. 7시간을 가도 정상이 안 보이는 거예요. 거기서 우연히 교회 같은 집을 발견하고 물을 한 잔 얻어먹어요. 그때 깨달음을 느껴요. 결국 신앙이라는 게 이렇게 남을 도와주면서 사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내려와서 화해했어요. 이후에도 많이 싸우고 했지만. 거기서 사람들 다 함께 자는 곳인데, 몰래 입 막고 하기도 했어요. 하하.”

그의 남다른 정욕은 신도 억제하지는 못한 듯했다. 하지만 약 8개월의 선교 여행 이후로 조지환은 두려움을 떨쳐낸다. 그리고 배달 대행을 시작했고, 얼마 뒤 이사로 승진한다. 영업을 시작하고 능력을 꽤 입증한 덕분이다. 성격도 밝아지고, 안정감을 찾는다. 
“혜민이도 걱정했대요. 제가 주눅 들어 할까 봐. 근데 제가 두려움도 없고 얘기를 잘하니까, 본인이 완전히 기분이 좋아진 거예요. 그러니까 안 해도 될 이야기까지 한 거죠.”

정신이 건강해지는 사이 육체가 고통을 받는다. 그 사이에 무려 네 번의 교통사고를 당한 것. 그가 보여준 사고 당시 엑스레이 사진은 끔찍했다. 뼈가 완전히 떨어져 있었다. 

“다시 배우로
 돌아갈 것”

“제가 네 번 죽을 뻔했는데, 이번 사고가 제일 컸어요. 팔이 부러졌어요. 병원서 부러진 걸 맞춰야 한다고, 뼈가 으스러진 걸 힘으로 맞추더라고요. 그렇게 아프다 보니까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결국, 죽음이라는 게 가장 큰 두려움인데, 연기할 때 나는 왜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 했을까라는 질문이 들더라고요.” 다시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연기에 대한 갈증이 커지고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다시 기회를 잡는다면 혼신의 힘을 다해 인물에 빠져보겠다는 열의가 생겼다고. 

“매형 회사에 들어가기로 했고, 배우의 꿈도 꾸기 시작했어요. 다시 배우가 되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다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이제는 깊이 있는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장서 즐기고 놀면서요. 다음에는 연기자 조지환으로 뵙고 싶습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