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특별대담> “DJ였더라면…” ‘대북정책 논하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9.28 09:34:38
  • 호수 12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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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였다면 달랐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민족 대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그간의 안부를 묻는 뜻깊은 시간이다. 그러나 북녘에 고향을 둔 이산가족과 실향민들에게 추석은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크게 느끼는 날이다. 
 

▲ 일요시사와 특별대담 갖는 정동영 전 대표

올해는 9·19평양공동선언 2주년, 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이 되는 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과,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과 악수를 나누며 평화를 약속했다. 평화의 시대는 그렇게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내 합의 내용을 무색케 하는 도발로 한반도 긴장상태를 고조시키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 측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피격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한반도 종전선언을 외쳤던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일요시사>는 지난 22일 참여정부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 북한의 진의와 문재인정부의 문제점에 대해 진단했다.

다음은 정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2020년은 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입니다.

▲2019년에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만큼 무서운 바이러스가 1945년부터 한반도에 존재해왔습니다. 바로 분단 바이러스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난 75년 동안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6·15선언은 이러한 분단 바이러스를 뚫고 지난 2000년에 처음으로 남북이 공식적으로 손을 잡은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6·15선언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분단의 역사는 6·15선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6·15선언 이전의 남북관계는 증오입니다. 피를 나눈 형제인데, 서로 죽고 죽였던 근친 증오입니다. 반면 6·15선언 이후는 화해와 협력입니다. 시대의 구분점이라는 측면서 6·15선언은 역사적으로 아주 의미가 큽니다.

-6·15선언 이후 9·19평양공동선언도 있었지만, 현재 남북관계는 여전히 긴장상태입니다.

▲여러 요소가 있지만, 핵심은 정치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리더십이겠죠. 독일은 1970년에 6·15선언처럼 동서독 정상이 손을 잡고, 20년 만에 통일을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6·15선언에 머물러 있습니다. 대결과 적대를 끝내고 화해와 협력으로 가자는 메시지는 독일과 우리나라 모두 같습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이후 4명의 지도자가 나왔지만, 아직도 제자리입니다. 정치와 리더십의 결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고성준 기자

-북한은 6·15선언 20주년 다음날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습니다. 소식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북한이 절박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쳐다봐라, 그런 뜻 아니겠습니까. 다분히 시위성입니다.

-무엇에 대한 시위라고 생각하십니까.

▲폭파 이전에 9·19선언이 있었습니다.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문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백두산에 올라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손도 잡았습니다. 감동적인 이벤트였습니다. 합의도 훌륭했습니다. 상응하는 조치가 이루어지면, 연변 핵단지를 폐기하겠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 올렸던 동창리도 폐기하겠다, 군사합의를 통해 비무장지대(DMZ)의 감시초소(GP)도 철수하고, 유해 발굴도 하고, 또 공동경비구역(JSA)을 비무장화하겠다, 얼마나 훌륭한 합의입니까.

그러나 합의서만 있습니다. 일부 진전은 있지만, 획기적인 합의 내용에 비해 미미합니다. 연락사무소 폭파는 여기에 대한 항변이라고 이해합니다. 북한이 ‘내가 판을 깰 수도 있어’라고 외치는 메시지입니다.

6·15 20주년, 여전히 답보
‘한국판 3통’ 실천이 답이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진 일이 남북관계를 어렵게 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물론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에게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와 김정은 탓만 하면 우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구경꾼이 아닙니다. 한반도는 우리의 땅입니다. 북미와 남북은 한반도 평화의 두 축입니다만, 한반도 내에서는 북미 당사자성보다 남북 당사자성이 더욱 크지 않겠습니까. 어디가 더 중심이냐, 주축은 남북입니다.

-탈북자 시민단체가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분별없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적대와 증오의 시기에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6·15선언을 통해 일단 손을 잡았지 않습니까. 대북전단 살포는 1990년 남북기본합의서에도 역행합니다. 심지어 남북기본합의서는 노태우정부, 즉 보수정부 때 일입니다.

그때 남북이 합의한 사항이 무엇입니까.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이 첫 번째 조항입니다. 그런데 탈북자들이 전단지에 뭐라고 썼습니까. 갖은 욕설로 ‘북한을 파괴하자’고 썼습니다. 이는 남북합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용입니다.

-대북전단 살포는 북한 붕괴론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북한 붕괴론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각광받았는데, 기본적으로 탈북자들과 생각의 궤가 같습니다. 북한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입니다. 붕괴론이 나온 지 수십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북한은 살아있는 체제입니다. 대북전단 살포는 강하게 막아야 합니다. 남북교류협력법에도 위반됩니다. 법적 근거가 있는데 왜 이렇게 미온적으로 대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정원은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이 권한 일부를 이양 받아 사실상 2인자로 위임통치에 나섰다고 밝혔습니다. 남북 대화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이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김일성에서 김정일, 김정은으로 체제가 이어지며 계속 변해왔다고 봐야겠죠. 놀라운 점은 동유럽 사회주의가 모두 해체된 상황에서 북한만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민족이 지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는 긍정적인 측면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맨손으로 일궈내지 않았습니까. 북한은 아직도 공산당 1당 독재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지독한 체제입니다.
 

-우리 정부가 어떻게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1990년 기본합의서, 6·15선언, 9·19선언으로 이미 방법은 다 나왔습니다. 실천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정부는 돌파력·실천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창의적으로 돌파하라, 그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남북관계에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진단하십니까. 

▲한국판 3통(통상·통행·통신)의 실천입니다. 자유롭게 장사하고, 왕래하며, 전화도 주고받자는 겁니다. 3통은 대만이 중국을 상대로 먼저 했습니다. 마카오를 경유하는 소3통을 하다가 직접 중국과 교류하는 대3통으로 전환해 성공을 거뒀습니다. 우리도 북한과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한국판 3통을 먼저 실현하면, 통일은 그 뒤에 따라옵니다. ‘지금 당장 어떤 식으로 통일할까’는 공허한 논쟁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유왕래의 시기를 앞당기는 일입니다. 

-통일부 장관(2004∼2005년)이던 시절 방북의 길을 크게 열어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독일은 통일을 위해 ‘작은 발걸음’ 정책을 내걸었습니다. 이는 접촉을 통한 변화입니다. 만나면 변화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통일부 장관이던 시절 한국판 작은 발걸음 정책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북으로 가는 문턱을 없애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허가를 받지 않고 북한에 갔다 오면 국가보안법 위반입니다. 문익환 목사가 대표적입니다. 이것부터 뚫어야 한다, 그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 못 만나는데 어떻게 통일을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2~3주씩 걸리게 되는 금강산 관광객 신원조회를 없앴습니다.

-당시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방북 승인 건으로 국회서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한총련이 북한에 갔다 오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이전에 대법원은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판결했습니다. 실정법을 위반한 단체이지만, 보내줬습니다. 남북교류협력법을 보면, 인적·물적 왕래에 대한 승인 권한은 통일부 장관에게 있습니다. 정부조직법 상 방북 승인 권한은 법무부·국정원이 아니라 통일부 장관에게 있습니다. 책임은 내가 지겠다, 그래서 보냈습니다.

다만, 북한에 가서 복잡한 일이 생기면 남북관계에 악영향은 물론, 우리나라 내부서 논란이 생길 수 있으니, 돌출 행동은 하지 말고 조용히 갔다 오라고 당부했습니다. 나야 장관을 그만두면 끝이지만,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한총련은 잘 갔다 왔습니다. 또 이적단체로 판결난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도 찾아와서 방북을 승인해줬습니다.
 

-방북했을 때 북한 체제에 동조하는 식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자신감을 가져도 됩니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북한에게 넘어가 거기에 눌러 살 사람은 없습니다. 한총련과 범민련의 방북을 승인한 이유는 우리나라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감을 갖고 접촉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합니다.

▲세상은 이미 법보다 훨씬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의 기준으로 보면, DJ-김정일 정상회담은 DJ가 적의 수괴와 회합하고, 합의한 것 아닙니까? 물론 국가보안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아직 우리나라에 많이 있습니다만,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현상 유지가 아니라 현상을 열어가는 자세입니다. 내가 자부심을 갖는 부분은 통일부 장관을 했던 1년 동안 분단 이후에 최다 인원이 북한을 방문했다는 점입니다.

한총련 방북 일화 공개
통일교육? 조희연 만나

6·25전쟁이 끝나고 2000년까지 50년 동안 2500명이 북한을 방문했는데, 2005년도에 10만명이 됐습니다. 금강산 관광객 200만명을 뺀 수치입니다. 양이 질을 변화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75년 동안 북남동서 중 북쪽으로만 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열어줘야 합니다. 사실상의 통일을 앞당기자, 자유왕래가 통일이다, 법률적·제도적·정치적 통일은 그 뒤에 오면 된다고 말씀드립니다.

-세대가 지나면서 통일을 염원하는 목소리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습니다. 통일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요한 지적을 하셨습니다. 민주정부임에도 통일교육이 없습니다. 어른들도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데, 학생들은 어떻겠습니까? 말 그대로 백지 상태입니다. 통일교육 부재 상태서 미디어를 통해 북한을 보는데, 뭘 보겠습니까? 미사일 발사, 핵실험과 같이 부정적인 것들 투성입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 주민들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교재가 필요한데, 사실 어제(지난 21일) 일이 있어 서울에 갔다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만났습니다. 만나서 저와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둘이서 책임감수를 해 만든 책을 보여주며 서울시교육감 인정을 해달라고 요청했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미 대선이 6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미 대선에서 트럼프와 바이든 중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확고한 실천 의지입니다. 절대 트럼프나 바이든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트럼프를 따라가지 않았습니까. 남북관계가 트럼프를 끌고 갔어야 하는데, 그 점이 안타깝습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한반도 운전자론’입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2018년 6월에 싱가폴서 ‘새로운 북미관계수립’을 약속했습니다. 이를 위해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고, 북한은 한반도를 비핵화하겠다는 좋은 합의를 했습니다. 바로 실천에 들어갔어야죠. 우리 대통령이 미국에게 북한을 견인해 비핵화로 이끌 테니 도와 달라,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도록 앞장섰어야 합니다. DJ였다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뒤에 한미워킹그룹이 탄생해 시간을 끌면서 합의가 빛을 바랬습니다. 기다리라는 ‘속도조절론’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생각일 뿐입니다.

-두 후보를 비교한다면?

▲트럼프는 국회 본회의장에 연설 왔을 때 봤고, 바이든은 상원외교위원장이던 시절 다보스 포럼에서 만나 두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습니다. 바이든은 한반도 상황에 대해 비교적 많이 알고 있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동북아 전략이나 한반도에 대해 잘 모릅니다. 다만, 바이든이 최근 기자회견서 오바마를 계승하겠다고 말했는데, 굉장히 위험하단 생각입니다.

오바마의 대한반도 정책은 ‘전략적 인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결국 무시와 방치였습니다. 우리 입장에선 최악의 정책입니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원했기 때문입니다. 바이든은 오바마가 아닌 클린턴의 인게이지먼트 폴리시(포용정책, engagement policy)를 계승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추석을 맞은 <일요시사> 독자들에게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성경의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코로나도 끝이 있을 겁니다. 캄캄한 터널 속에 있지만, 터널이 끝나는 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힘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코로나로 잃은 것이 크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과 지혜도 쌓였다고 봅니다. ‘희망을 버리지 말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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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 장지선 기자 =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가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업계에서는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내부는 엉망진창이라는 풍문이 돌고 있다. 레이블 간의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번졌고 주력 IP는 과거와 비교해 힘을 못 쓰는 모양새다. 연예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하려는 걸까? 2024년 5월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열사 자산 총액과 자본 총액을 더한 자산이 5조원을 넘긴 곳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2024년 3월 공개한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하이브 자산 총계는 5조원을 넘었다. 당시 기준으로 재계 순위 85위에 올랐다. 빛 좋은 개살구?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기업의 의무가 늘어난다. 엄격한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상징성도 얻는다. 실제 하이브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최초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국가 차원에서 하이브가 ‘업계 1위’로 인정받은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K팝의 세계화로 앨범, 공연, 콘텐츠 등이 주요 수익원인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급격히 성장한 것이 반영됐다”고 지정 배경을 밝혔다. 하이브의 대기업집단 지정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의 갈등이 한창 불거질 무렵에 이뤄졌다. 앞서 2024년 4월 하이브는 그룹 뉴진스 등이 소속된 레이블 어도어를 이끌고 있던 민 전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를 진행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 이른바 ‘민-하 대전’의 시작이었다. 이후 뉴진스, 다른 레이블까지 싸움에 뛰어들었다. 뉴진스는 자신들의 프로듀서는 민 전 대표라고 주장하면서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다른 레이블은 민 전 대표가 제기한 표절 의혹 등에 반발해 소를 제기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계약 문제도 송사로 번졌다. 그 사이 뉴진스는 쪼개졌고 멤버 1명은 계약 해지 후 피소됐다. 내부 문제 외에도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카카오와의 갈등도 현재 진행형이다. 카카오와 하이브는 ‘아이돌 명가’로 불리는 SM을 인수하기 위해 엄청난 출혈 경쟁을 벌였다. 인수전이 과열되면서 카카오가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범수 의장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가 보석 석방되기도 했다. 1900억원대 부당이득 혐의 경찰 영장 청구, 검찰 반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두문불출 상태였다. 미국에 머물다가 인터넷 방송 BJ ‘과즙세연(본명 인세연)’과 거리를 걷는 사진이 찍혀 입길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행보를 알기 어려웠다. 방 의장이 프로듀싱을 도맡아 온 방탄소년단(BTS)도 ‘군백기(군대+공백기)’ 상태였다. 하지만 BTS의 광화문 공연 이후 방 의장에 대한 언급이 늘었다. BTS는 멤버 전원이 군대에 다녀온 뒤 ‘완전체’ 첫 행보로 광화문 공연을 선택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하이브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성사된 공연은 각종 논란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하이브에 특혜를 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 시점도 이때다. 지난달 21일 광화문 일대는 경찰 등에서 동원된 경비 인원으로 삼엄했다. 광화문 인근을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문이 이뤄졌고 그 수위는 살벌했다. 공연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도 검문 대상으로 지목됐고 결혼식 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도 어김없었다. 정부와 전폭적인 지원에도 BTS 공연을 위해 광화문에 모인 인파는 예상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앞서 26만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공연 직후 경찰은 4만명으로 추산했고 하이브는 10만여명으로 발표했다. 어떤 기준을 갖다 대도 예상치보다 적은 인원이 모이면서 공연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모두의 광장인 광화문을 사기업이 특정 시간대에 독점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회사 뒤에 숨어 있나 실제 BTS의 광화문 공연은 ‘관급 행사’를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 전 국무총리가 하이브를 방문했고 서울시는 공연 당일 경비를 위한 회의를 여러 번 진행했다. 물 샐 틈 하나 없는 경비 체제를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안전 관리에만 경찰 6700여명 등 모두 1만5000명에 이르는 인력이 동원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가세했다. 이 대통령은 공연 전에는 안전 관리를 당부하는 목소리를 냈고 공연 이후에도 호평을 남겼다. 이 대통령은 공연 이후인 지난달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번 공연은 광화문 홍보를 넘어 대한민국 홍보에 결정적이었다”며 “기획을 잘 해서 잘 진행했다”고 평했다. 대통령까지 언급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공교롭게도 방 의장에 대한 비판으로 튀었다. 방의장이 현재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점, 그 내용이 주식과 관련된 것이라 정부 정책에 반한다는 점 등이 화두가 됐다. 이 대통령은 ‘주가조작은 패가망신’이라면서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방 의장은 하이브 IPO(기업 공개) 이전인 2019년 기존 투자자들에게 상장 계획이 지연될 것처럼 설명하는 등 기망행위를 통해 주식을 매수하고 이후 자신과 관련된 사모펀드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에 지분을 넘기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이 추산한 부당이득 액수는 19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7월 이 대통령의 ‘주가조작은 패가망신’ 경고 이후 주식시장을 교란한 혐의를 받는 인사들에 대한 금융 당국의 제재가 강해졌다. 당시 지목당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방 의장이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7월16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금지 위반 혐의로 방 의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경찰도 같은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미국 압박 경찰 발끈? 검․경의 중복 수사 우려까지 불거졌던 사안은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 2024년 말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방 의장을 처음 소환한 이후 같은 해 11월까지 총 5차례 조사했다. 이후 5개월간 추가 소환이나 신병 확보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늑장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2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구속영장 청구 하루 전인 지난 20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방 의장 수사는 거의 마무리됐다”며 “법리를 검토 중이고 머지않은 시간 내에 종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고 다음 날 방 의장에 대한 신병 확보에 나선 것이다. 방 의장 측은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그의 변호인단은 “장기간 성실히 수사에 협조했음에도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은 유감”이라며 “향후 법적 절차에도 충실히 임해 최선을 다해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국대사관의 압박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최근 방 의장의 미국 방문과 관련해 출국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경찰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한에는 오는 7월4일 예정된 미국 독립기념일 250주년 행사 참석과 BTS의 월드투어 지원 필요성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방 의장은 출국금지 상태다. BTS 광화문 공연부터 특혜 의혹 솔솔 나와 주한미국대사관의 행보에 경찰 내부는 격앙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BTS 콘서트나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 등을 고리로 미국 측을 움직여 수사 편의를 우회 압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지난해 미국으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는 상황이라 방 의장이 입을 맞추거나 도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경찰의 신병 확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이브는 국민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주한미국대사관의 서한 발송이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하이브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행사 참석을 요청받은 적도 없고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구속 갈림길에 서 있던 방 의장은 검찰의 구속영장 반려로 한숨 돌리게 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 24일 방 의장에게 신청된 구속영장을 돌려보냈다. 검찰은 “현 단계에서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 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단 구속 위기는 피했지만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하이브의 최대 변수가 되는 모양새다. 하이브는 핵심 IP인 BTS 컴백으로 최대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상황에서 광화문 공연이 한 차례 논란이 된 데 이어 오너 리스크까지 덮쳤다. 무엇보다 방 의장이 하이브에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만큼 향후 상황에 따라 발생할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너 리스크 K-팝도 영향 연예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하이브를 넘어 K-팝 업계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우리나라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K-팝의 이미지가 업계 1위 수장의 오너 리스크로 얼룩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방 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