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특별대담> ‘안개 정국 키맨’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야권 뭘 고민하나? 이대론 무조건 진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몸값’이 더욱더 오르는 분위기다. 그는 여권을 향한 합리적인 쓴소리로 남다른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특집으로 지난 21일 국민의당 당사서 그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여러 현안을 짚고, 정치인 안철수의 과거와 미래를 들어봤다.
 

▲ 일요시사와 대담 갖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문재인정부에 ‘낙제점’을 줬다. 그는 화합과 통합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부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조국 사태’에 이어,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논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 특혜 의혹 등으로 2030세대의 갈등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 또 여권발 악재가 터질 때마다 양 극단의 목소리가 과잉 대변되면서 한국은 두 갈래로 나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음은 안 대표와의 일문일답.

-문재인정부가 강조했던 ‘공정’과 ‘정의’의 가치에 위배되는 여권발 악재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문정부는 위선적이다. 도덕적인 규범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우리 사회의 근본을 흔드는 일들을 반복하고 있다. 상식을 가진 국민들이라면 그걸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이 정부가 행동을 교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용 지식인, 어용 언론, 강한 팬덤이 정부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민심을 못 읽는 정부는 교만해지고 부끄러운 줄 모르는데, 이는 우리나라 전체의 불행이다.

-양 극단으로 갈라지는 경향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치는 화합과 통합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잘못을 비판하는 소수를 ‘악마화’ 해서 다수의 국민과 싸우게 만든다. 정부를 향한 비난의 방향을 돌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택자와 무주택자,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심지어 의료인과 비의료인이 싸우고 있다.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 이간질시키는 정치는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권력으로 탈영을 무마한 것이다. 일반 군인들은 조금만 늦게 귀대하더라도 영창을 간다. 누구한테는 엄격하게 적용되는 법이 권력자의 자녀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오히려 ‘이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나오는 태도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과 규율을 흔들고 있다.

“위선적인 정부 낙제점”
“갈등 조장에 분열까지”

‘조국 사태’를 한창 겪을 때 조국 전 장관을 옹호하던 사람들은 “대리시험이 뭐가 문제냐”고 했다.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가 있나. 우리 사회가 추락하고 있다. 기본이 안 지켜지는 사회의 슬픈 단면들이다.

-집권 4년차인 문정부에 주고 싶은 점수는.

▲낙제점이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굉장히 어려웠던 경제는 바닥 수준이다. 부동산 정책, 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 근무제 등이 대표적인 실패 정책이다. 좋은 뜻에서 세운 정책이겠지만, 아마추어적으로 접근했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일본과의 관계는 최악이며, 중국으로부터는 푸대접을 받고 있다.


대북관계 역시 문정부 출범 전과 거의 차이가 없다. 사회적으로도 국민은 분열되고 공정이라는 가치가 바닥에 떨어졌다. 대학 입시, 군 문제 등 정부여당 관계자들에게 특혜가 주어지고 있다. 합격점을 줄 수가 없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고성준 기자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많은 전문가들이 내년 말에 코로나19가 진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코로나 종식까지 긴 터널이 있다고 하면 고작 3분의 1을 지나온 셈이다. 우리가 지나온 기간의 두 배를 더 지나야 하는데, 대통령이 직접 코로나19 종식을 이야기했다. 국가 지도자로서 무책임한 발언이다. 또 정부는 소비 쿠폰을 발행하고 임시공휴일을 만들면서 또다시 코로나19 2차 확산 문턱에 갔다.

코로나19 내년 말 종식 예상
“언택트로 전 세계가 재편될 것”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대규모 2차 확산을 막아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이 굉장히 고통받고 있고, 경기 침체로 중소기업이 타격을 많이 받고 있다. 이들을 살리는 건 정부서 해야 할 일이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전개된다. ‘언택트’라는 키워드로 전 세계가 재편될 것이다. 코로나가 종식 된 후 국민이 바로 적응할 수 있도록 지금 준비해야 한다. 정부가 어느 것도 뚜렷하게 잘하고 있지 않아 걱정이다.

-의사 출신이다. 최근 의사 파업 사태를 어떻게 봤는가.

▲정부가 왜 하필 지금 이러한 정책을 내놨는지 의문이다. 공공의대 도입 정책의 성공 여부는 10년 후에야 평가 가능하다. 코로나19가 종식된 내년 말 이후에 꺼낼 순 없었나. 일선서 코로나19와 열심히 싸우고 있는 의료진에게 돌을 던진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정책을 두고 이해관계자들과 일체 소통도 안 했다.

2016년 ‘녹색돌풍’을 일으킨 안 대표의 정치는 늘 외로웠다. 그는 양당제가 공고한 정치권서 기존 정당의 틀과 관성을 깨는 중도정치의 길을 걷겠다고 했다. 첫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국민의당은 20대 총선서 진영논리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고, 신생정당이 원내 38석을 얻는 기염을 토했다. ‘삼김시대’ 이후로 교섭단체(20석)를 충족하는 유일한 3당이였다.

하지만 국민의당의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6년 국민의당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으로 안 대표가 물러난 이후 당내 극심한 내홍이 계속됐다. 안 대표는 이를 두고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가장 악독한 정당 탄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17 대선과 2018 서울시장 선거서 낙선한 후 해외 유학길에 올랐다. 그로부터 2년 뒤, 안 대표는 21대 총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양 진영의 극단적 대립이 이어졌고, 중도 세력이 설 곳은 없었다. 국민의당은 정당 득표율 6.8%를 기록하면서, 원내 비례대표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2016년 국민의당은 여야를 견제할 수 있는 제3당으로 자리 잡았지만, 결국 당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3당으로 출범해 많은 국민들이 기대를 가졌다. 이 세력이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청와대가 우리 당 의원들이 선거서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의혹을 씌워 10여명을 기소했고, 3년 뒤 대법원서 전원이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라는 판결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가장 악독한 정당 탄압이었다.

그런 사태가 생길 때는 한 번 피를 봐야 진정이 되기 때문에 스스로 대표직을 사퇴했다.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이 당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라 판단했다. 이후 당은 3당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됐다.
 

-우리나라 정치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첫째는 부정부패 정치다.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가 아니라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두 번째는 패거리 정치다. 좀 더 신랄하게 표현하면 ‘조폭 정치’다. 조폭 패거리의 판단 기준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 편이냐, 아니냐다. 우리 편이면 아무리 잘못해도 감싸 안는다. 지금 정부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세 번째는 ‘자뻑’ 정치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왕 같은 정치, 국민을 하인 취급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의 폐해다.

-이를 답습하지 않는 ‘새정치’를 하겠다고 했는데.

▲상식적인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우리 편이라도 잘못했으면 잘못한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벌을 받고 다시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공익을 위해 봉사하고, 상식에 기반해 판단하는 정치다. 국민 아래서 국민을 섬기고자 한다. 이는 8년 전 정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변함이 없다.


-일각에선 정치 노선이 애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호하다는 비판이 많아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모호하다는 평가가 나아지질 않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기득권 정치 세력의 공격 수법이었다. 그들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날 공격하는 것이다. 내가 설명하는 목소리는 작고, 기득권 정치 세력의 목소리가 훨씬 크기 때문에 국민들에게는 모호하다는 이미지가 박힐 수밖에 없다. 낡은 정치의 이미지 조작 수법에 국민 분들이 많이 속으셨다.

8년 전 같은 실용정치 고수
“야권, 혁신경쟁 필요”

-중도실용정치를 어필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치 노선에 대한 왜곡이 많았다고 하지만 이는 변명이 될 수 없다. 농부가 밭을 탓하면 되겠나.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유튜브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 진중권 교수와 세 편 정도 대담을 냈는데 총 조회 수가 200만을 넘겼다.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는 조회 수가 10만~20만에 육박한다. 다른 당은 고작 2000뷰에 불과하다. 본질을 고민하고 정확한 사실을 전하려는 노력을 알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 3월 대구 의료 봉사활동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당 지지율이 올랐다.

▲아내를 의료 봉사활동 현장서 만났다. 대구에 의사가 부족하다고 해서 둘이 같이 대구로 내려갔는데 경황이 없어서 사진이 찍힌 줄도 몰랐다. 진심이 전달돼서 다행이다. 무엇보다 국민 분들에게 의료진들이 얼마나 힘든 환경서 일하고 있는지를 알려드려 보람 있었다.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표심과 직결되는 정치인의 ‘퍼포먼스’가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아쉬움도 나온다.

▲난 이미지보다는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국회의원 시절 나름대로 많은 일들을 했고 보람을 느꼈다. 2016년 김영란법 논의가 멈췄을 때, 여야 원내대표들을 만나 설득하고 논의해 본회의에 올렸다. 국회의원으로서 소신을 지키는 의정활동을 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그런 노력은 결국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실 거라 믿고 있다. 그게 올바르게 정치가 발전하는 방향이라 생각한다.

내년 재보궐 선거를 앞둔 현재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는 국민의당과 국민의힘의 합당 여부다. 국민의힘은 그를 향한 러브콜을 꾸준히 보내고 있다. 국민의당이 가지고 있는 색과 상징성이 정치권서 적지 않을 뿐더러, 국민의힘이 가장 필요로 하는 중도 지지층을 당이 섭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에선 여권에 대항하기 위해 양당이 합당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하지만 안 대표는 야권의 정치 상황에 대해 “지금 이 상태라면 정권 교체는 물론, 내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승리도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야권의 혁신경쟁을 강조했다. 선거를 위한 연대보다는 야권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데 전념하겠다는 뜻이다.

-3석에 불과한 국민의당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의석이 많다고 해도 민심을 얻지 못하면 힘이 없다. 아무리 의석이 적어도 국민들의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한다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3석에 불과한 당이지만, 던지는 담론의 크기는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국민 분들이 정부여당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대안까지 제시하는 일들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해 주신다.

-국민의힘과의 연대설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야권은 이 상태로 연대를 하든, 하지 않든 내년 서울시장 선거와 대선서 이길 확률이 굉장히 낮다. 지금까지 야당은 4연패를 했다. 극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이기기가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면접원이 직접하는 여론조사 방식서 민심이 더 정확히 반영된다. 이런 방식서 여당 지지율은 40%, 제1야당은 20%를 기록했다.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가 난다. 낙관할 어떤 근거도 없는 것이다. 국민의힘과 합당한다 해도 (여당 지지율에)훨씬 못 미치니 힘든 상황인 걸 객관적으로 알아야 한다.

-여러 언론을 통해 합당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의견이 바뀔 수도 있나.

▲지금까지 이야기한 건 바뀌지 않을 거다. 지금은 연대에 대해 고민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각자가 힘을 길러야 한다. 미래 담론을 향한 혁신경쟁이 필요하다. 국민 분들은 한 당에서 계속 같은 얘기를 하면 쳐다보지 않는다. 하지만 두 당이 경쟁하면 쳐다보는 분들이 생긴다. 국민들의 관심을 얻으면서 비호감을 없애는 것이 지지층을 넓히는 시작이다. 지금은 선거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훨씬 더 혁신하는 모습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지지자들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

-정치인 안철수는 역사에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

▲묵묵히 실용정치의 길을 걸으면서, 나름대로 큰 변화들을 만들어냈다. 양쪽으로 나뉜 패거리 정치와는 다른 길을 가다 보니 굉장히 힘들었다. 양쪽에 속해 있었으면 편하게 정치를 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국가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관심사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해결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초심을 잃지 않은 채 이 길을 걸어왔다는 것 자체가 보람된 시도였다.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 옳은 길, 최선의 길을 걷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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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