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오른 통합당, 복지부동 노림수

역풍 불 때까지 기다린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여당의 ‘입법 독주’ 앞에서 미래통합당은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여당발 악재가 연이어 터지고 ‘윤희숙 신드롬’이 일어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역풍에 힘입어, 미래통합당이 전략을 바꿨다.
 

▲ 발언하는 윤희숙 미래통합당 경제혁신위원장 ⓒ고성준 기자

국회는 지난 4일 종합부동산세 강화를 골자로 하는 ‘부동산 3법’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주도로 처리됐다.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은 본회의에는 출석했지만 부동산법을 비롯한 정쟁법 표결에는 불참했다. 다만 통합당은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5분 연설에 나서면서 여당의 입법 밀어붙이기를 강하게 비판했다.

가만히
있어도…

통합당은 이전 본회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30일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및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거세게 항의하며 본회의장을 퇴장했다. 반면 지난 4일 본회의에선 5분 연설을 통해 논리적으로 민주당안의 문제점을 요목조목 꼬집었다. 지난달 본회의서 초선 윤희숙 의원의 연설이 큰 화제가 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합리적 보수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들이 제기되면서다.

윤 의원은 초선 의원의 데뷔 무대였던 본회의서 단숨에 스타 의원으로 발돋움했다. 윤 의원의 연설이 연일 뜨거운 이슈가 되면서 ‘윤희숙 신드롬’이 탄생한 것이다. 통합당은 이전과 달리 장내투쟁에만 집중하면서 논리적 토론만으로 민심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윤희숙 신드롬 이후 통합당은 논리와 진심을 담은 메시지 전달에 힘을 쓰고 있다.

지난 4일 본회의엔 9명이 토론자로 나섰다. ‘제2의 윤희숙’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속셈이었다. 본회의 퇴장 역시 없었다. 대신 본회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이견이 없는 법안에는 표결에 참여하는 등 공당다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76석을 가진 슈퍼 여당 앞에서 통합당은 속수무책이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본회의가 끝난 뒤 “힘으로 밀어붙이는 저들 앞에서 무력감과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통합당으로서는 슈퍼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뾰족한 묘수가 없다. 20대 국회서 당이 강행했던 장외투쟁, 삭발, 단식과 같은 강경 투쟁은 오히려 국민들의 비호감만 살 뿐이다. 시대착오적인 투쟁의 부작용은 21대 총선 결과를 통해 이미 입증됐다.

지난해 황교안 전 대표 시절, 통합당은 장외투쟁, 단식, 삭발식 등을 강행하면서 ‘일하지 않는 정당’이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이와 더불어 당과 극우단체들의 지속적 교류로 인해 중도층이 대거 이탈했고, 이는 총선 패배로 이어졌다.

뜻밖의 ‘윤희숙 호재’ 당 분위기 전환
의석수로 밀어붙이는 여…여론전이 답?

장외투쟁과 같은 강경 투쟁의 가시적 효과는 나쁘지 않다. ‘그림’이 될수록 언론이 집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선 결과가 증명하듯, 이는 구태정치일 뿐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금 세상이 과거와 다르다. 길에 나가 외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라고 장외투쟁론을 일축했다. 당내서도 국회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원내투쟁에 집중하자는 목소리가 더 힘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호영 원내대표 역시 장외투쟁 카드를 쉽게 꺼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 원내대표는 “일부 의원들 중 장외투쟁을 병행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다”며 일부 강성 의원들을 다독였다. 그럼에도 주 원내대표는 의회 민주주의 취지에 비춰 국회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원칙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 국회 본회의 통과하는 종합부동산세 개정 법률안 ⓒ고성준 기자

그는 “국민은 현명하고, 어떤 정책이 나라와 국민에 더 도움 되는지 잘 알고 계실 것이라 믿는다”며 “우리가 더 노력해서 실력을 갖추고 국민에게 간곡히 말씀드리면, 비록 숫자는 적더라도 국민의 힘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정책전으로 정면 돌파해 민심의 이반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19라는 국가 재난 상황서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수해까지 겹쳤다. 장외투쟁에 수반되는 비용도 적지 않다. 통합당이 장외투쟁을 선택할 경우 비난 여론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되는 배경이다. 장외투쟁 대신 통합당 의원들은 수해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방문해 복구 활동에 나선 상태다. 현장서 필요한 대책을 논의하며 민심을 얻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통합당으로서는 민주당의 독주를 알리는 여론전이 최선이다. 최근 통합당 정책위원회는 ‘인간의 오만이 만드는 오판’이라는 주제로 정책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종배 정책위의장은 세미나 당시 “확신에 찬 지도자,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만과 독선에 빠지기가 쉽다. 요즘 청와대와 민주당이 하는 구태가 바로 그 꼴”이라며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백보드 문구’ 역시 통합당이 여론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대 국회의 비례대표였던 김수민 홍보본부장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 후 회의실 배경을 장식하는 백보드 문구를 기획했다. 김 본부장은 ‘지금, 이 나라에 무슨 일이’ ‘이 나라, 믿을 수 없는 게 수돗물뿐일까’ 등 날카로운 메세지로 정부여당의 실정을 부각시켰다.

서울 지역
역전 성공

‘백보드 정치’는 파격적이고 신선했다. 특히 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 바탕의 ‘그렇게 해도 안 떨어져요, 집값’이라는 문구는 진성준 민주당 의원의 말을 차용했다는 점에서 큰 이슈가 됐다. 

김 본부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두고 “통합당은 이제 언더독(스포츠서 우승이나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이고 소수니까, 자꾸 시비를 걸어야 한다는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신다”고 말했다.

통합당의 ‘언더독 전략’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최근 정부여당의 부동산 정책 독주로 민심이 심상치 않다. 관련 법안들은 국회서 충분한 토론을 거치지 못한 채 빠르게 통과됐다. ‘협치’라는 국회의 운영 방식을 민주당이 정면으로 거스른 점에 대해 국민들의 반감이 적지 상황이다.

게다가 여당발 악재들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여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잇단 성추문,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수해 등으로 민심이 뒤숭숭한 상황이다.


이뿐 아니다. 민주당 의원들의 실언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일 민주당 박범계·윤준병 의원은 윤희숙 의원과 부동산정책을 비판하려다 구설에 휘말렸다. 박 의원은 “눈을 부라리지 않고 이상한 억양 없이 조리 있게 말하는 건 통합당서 귀한 사례”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상한 억양은 국민들로부터 ‘지역 비하 발언’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박 의원은 “특정지역 사투리를 빗댄 표현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 지난 5일,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충주 수해현장을 찾아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문병희 기자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지낸 윤 의원 역시 “국민 누구나 월세 사는 세상이 다가온다”며 “(월세의 전환은)나쁜 현상이 아니다”라고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찬성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전세를 선호하는 민심에 대한 윤 의원의 이해가 얼마나 부족한지가 그대로 드러냈다. 오히려 ‘월세 살이’ 국민들의 박탈감만 더 커졌다.

윤 의원은 현재 서울 마포구와 은평구에 각각 주택 1채씩을 소유한 2주택자로 알려졌다.

황운하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대전의 수해 소식이 뉴스 특보로 보도되는 화면 앞에서 웃고 있는 사진으로 논란이 됐다. 지역구인 대전서 호우 피해로 1명이 심정지 상태에 있다는 뉴스 화면이 나오는 도중에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공개됐다.

입법 강행
언더독 전략


논란이 일자 황 의원은 “의원 모임에 간 것이지 TV 뉴스를 보러 간 것이 아니다. 당시 TV에 물난리 뉴스가 나오는지도 몰랐다”며 “(지역구에)물난리가 난 상황에서는 모든 모임 활동을 중단하고 표정은 항상 울고 있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수해 피해자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몹시 죄송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지난 3일 발표된 정당지지도 조사에서는 서울지역서 2주 연속 통합당이 민주당을 근소하게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서울은 민주당의 대표적인 우세 지역이다. 또 지난 6일 발표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선 전국서 통합당이 민주당을 1% 이내의 근소한 차이로 추격했다.

이는 부동산 정책으로 인한 혼란이 영향을 미친 결과로 해석된다. 문재인정부는 최근 부동산 정책을 22차례나 발표하면서 마땅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연이어 터지는 여당발 악재들까지 더해져 통합당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의회가 국민의 뜻과 정반대되는 행태가 되면 자연적으로 외부에 반대 세력이 형성된다”며 “(민주당은)선출된 권력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전횡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민주당이 제기한 ‘행정수도 완성론’도 서울 민심 이반에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 7월 국회와 청와대, 정부 부처 모두 세종시로 이전을 추진하고자 하는 계획을 밝혔다. 서울·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다.

다만 아직까지는 주요 기업과 대학들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한 집값 잡기에는 한계가 따를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국민들도 이런 견해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리얼미터·YTN이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의 수도권의 집값 안정화 효과’에 대한 공감도를 조사한 결과,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4.5%에 달한 반면 ‘공감한다’는 응답은 40.6%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 거주자의 경우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69.3%에 달했다.

통합당은 수도권 과밀 해소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민주당이 행정수도 이전을 정부의 부동산대책 실패에 대한 국면전환용 카드로 꺼냈다고 주장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행정수도는 이미 헌재서 위헌 결정이 난 문제로 보고 있다. 다만 지역 발전을 위한 논의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행정수도 이전이 아닌 세종시 자체를 좀더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이라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정당 지지도 근소 차이로 추격
재보궐, 부동산이 향배 가른다

하지만 세종 행정수도 완성론도 불안한 상태다. 세종시는 아파트 값이 올해 들어 20% 이상 상승하는 등 부동산시장이 또다른 투기판으로 전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합당은 공수처 출범으로 인한 이견으로 민주당과 파열음을 낼 공산이 크다. 민주당은 8월 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범을 목표로 내걸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 5일 최고위원회의서 통합당에게 8월 국회 시작 때까지 공수처장 추천위원을 선임해 법적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현행법 개정을 강행할 것이라는 의사를 암시하기도 했다.

공수처 출범을 위해 공수처법을 개정해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는 총 7명으로 구성된다. 현행법상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섭단체 야당이 2명을 추천해야 한다. 결국 통합당이 반대하면 임명 자체가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 윤희숙 미래통합당 경제혁신위원장 ⓒ고성준 기자

통합당은 공수처장 추천위원 선정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은 지금까지 공수처를 ‘위헌’으로 보고 공수처 설치에 반대로 일관했다. 하지만 지난 4일 국회의장이 추천위원의 추천 기한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전략을 바꿨다. 이대로 논의 자체를 거부한다면, 또 다시 민주당이 원하는 방향대로 끌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합당으로서는 사실상 공수처 출범을 막을 별다른 방도가 없다. 절대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이 부동산법 입법과 마찬가지로 공수처법 및 관련 규칙을 개정해 단독 출범을 강행할 경우,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다만 통합당은 추천위원 선정을 서두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의 여론전은 오는 9월 시작 예정인 정기국회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정기국회서도 정책전과 같은 전략을 유지한다면 통합당에 대한 지지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100일간의 국정감사 기간 동안 대여 전선의 폭이 넓어져 통합당으로서는 민심을 얻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합리적 보수
대안이 관건

다만 통합당이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내년 재보궐 선거는 부동산 민심을 잡아야 이길 수 있다.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규제 완화와 공급 확대’와 같은 원론적인 이야기만 반복한다면 찰나의 호재에 그칠 수 있다. 통합당으로서는 전문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정당으로의 변화된 모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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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