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연대보증 덫’에 걸린 중소기업 미스터리

갑자기 날아온 12억 청구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남의 보증을 서면 고생하지만 보증을 꺼리면 안전하다’는 말이 있다. ‘지혜의 왕’으로 알려진 솔로몬이 상당수 직접 쓰거나 편집한 잠언에 나오는 구절이다. 기원전에도 보증에 대한 경고가 있었던 셈이다. 특히 연대보증은 ‘가정 파탄의 지름길’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위험수위가 높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대보증은 개인이나 기업이 금융기관서 돈을 빌릴 때 원래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 대신 갚을 제3자를 미리 정해놓는 제도다. 채무자가 약속된 대출 만기일에 빚을 갚지 않거나 혹은 갚지 못하면 그 순간부터 연대보증인은 원래 채무자와 동일한 지급의무를 갖게 된다. 채무자가 없어지면 빚은 고스란히 연대보증인의 몫이 되는 셈이다.

보증 섰다
패가망신

가족이나 지인의 보증을 서줬다가 빚을 떠안게 된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건은 심심찮게 일어난다. 지난 2017년 울산의 한 공장서 근무하던 청년이 투병하는 친구 가족을 위해 보증을 섰다가 수천만원의 빚을 이어받게 됐다. 청년은 어머니 치료비를 위해 은행서 대출을 받으려는 친구의 보증을 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친구 어머니는 끝내 사망했고 친구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6000만원의 빚은 온전히 청년의 몫이 됐다. 모아놓은 돈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일부 갚긴 했지만 남은 빚을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인터넷 사이트서 알게 된 20대 여성과 함께 세상을 등졌다.

정부는 연대보증 제도의 사회적 폐해를 우려, 제도를 폐지해 나가고 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장관은 지난해 5월 정부기관과 시중은행 등 민간 금융기관, 정책금융 유관기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금융지원위원회서 연대보증 폐지를 금융계 전체로 확산하기 위해 금융업계의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업력에 관계없이 정책금융기관의 신규 대출·보증에 대한 연대보증은 2018년 전면 폐지됐다. 중기부는 기본 대출·보증 입보를 단계적으로 없앴고, 기존 대출 보증의 연대보증은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박 장관이 민간금융서 연대보증 폐지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한 것.

연대보증 제도 폐지 움직임 많아
일부 공제조합 여전히 제도 고수

지난해 11일 기준으로 대부업체의 개인대출도 연대보증이 폐지됐다. 201810월 금융위원회는 신규 취급하는 개인과 개인사업자 대출 계약에 원칙적으로 연대보증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20183월말 기준으로 자산 500억원 이상 대형 대부업체 69개사의 연대보증 대출 잔액은 8313억원, 119000건에 이르렀다.

산업 분야별 공제조합도 연대보증 제도를 없애는 추세다. 공제조합은 동일 직업 또는 동일 직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조합원으로 가입, 상부상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공제조합은 조합원들이 낸 조합비를 적립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사용해 곤란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정부는 그간 조합의 연대보증 제도가 불합리하다고 계속 지적해왔다. 주요 조합들은 정부의 지적에 공감, 최근 몇 년 새 연대보증 제도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분위기다.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은 2016년 개인 연대보증 제도를 폐지했고, 전문건설공제조합은 2017년 연대보증인 면제 대상을 확대했다.
 

▲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지난해 7월에는 소프트웨어공제조합(이하 SW공제조합)이 연대보증 제도를 20년 만에 폐지했다. SW공제조합은 사업에 수반되는 입찰, 계약, 하자보수, 선급금 등 보증이 필요한 경우 보증서를 발급했다. SW공제조합으로부터 보증서를 받기 위해서는 법인등기부등본, 법인인감증명서 외에 연대보증인의 개인인감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그러나 사회적 흐름과 반대로 일부 공제조합에는 여전히 연대보증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실제 몇몇 중소기업들은 연대보증의 덫에 걸려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9월 정보통신공제조합(이하 통신공제조합)에 소속된 통신업체 A·B·C사 등 세 회사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했다.


“돈 갚아”
청천벽력

A건설이 ‘S사의 계약 및 선금반환채무 불이행을 이유로 계약보증금과 선급금 지급 보증금을 통신공제조합에 청구해온 것이다. 당시 S사와 A·B·C사 등 세 업체는 연대보증을 맺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통신공제조합은 A건설이 청구한 보증금을 지급할 예정이고, 이후 A·B·C사에 구상권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이다.

통신공제조합에 소속된 개인사업자는 특정 기간에 한 번씩 보증약정을 갱신한다. 보증약정을 갱신하지 않으면 통신공제조합으로부터 보증서를 발급 받을 수 없다. 이때 연대보증인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통신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통신공제조합 조합원들은 공사를 따기 위해 서로 연대보증을 맺는다.

실제 A사와 S사도 10여년에 걸친 연대보증 관계였다. 서로 연대보증을 맺는 일이 통신업계에선 워낙 흔한 일이었고, A사 관계자에 따르면 사업을 하는 동안 단 한 번의 사고(연대보증 문제)도 없었다. 그래서 보증약정 갱신 시에만 한 번씩 상기할 뿐 연대보증 관계를 맺은 것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지낸다고 했다.

그러던 중 대형사고가 터졌다. S사는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2년여에 걸쳐 A건설과 6건의 통신공사 계약을 진행했다. A·B·C사 등 세 업체는 선급금 보증과 소사원시 복선전철 민간투자시설사업 제3공구 통신공사 소사원시 복선전철 민간투자시설사업 제4공구 통신공사 소사원시 복선전철 석수골 정거장 통신공사 등 총 7건을 나눠 선급금·공사보증을 선 상태였다.

계약금액은 약 113억원, 보증금액은 선급금 7억원을 포함해 약 183000만원이었다.

문제는 S사가 20171127~29일 A건설에 공사포기 각서를 제출했다는 점이다. 당시 S사는 당사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더 이상 공사를 수행할 수 없다잔여공사 일체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A건설에 전했다. A건설은 같은 달 30S사가 계약의무이행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판단, 하도급 계약서와 특수조건 등의 조항을 들어 계약을 해지했다.

상황 끝나고
2년 지나서…

A건설과 S사가 맺은 계약의 특수조건 7(계약해제·해지)에 따르면 갑의 책임 있는 사유로 인해 공사의 정지기간이 전체 공사 기간의 50/100이상인 경우 갑이 지급키로 한 지급재료의 공급이 지연돼 공사 진행이 불가능한 경우 을이 정당한 이유 없이 특수조건 5(계약이행보증금의 납부)를 위반한 경우 을이 노무비·자재비·중기비·식대 등을 2회 이상 체불한 경우 계약을 전부 또는 일부 해지할 수 있다.

이때 일반조건(하도급계약서) 25조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있다.

A건설은 이 조항들을 근거로 S사에 보증서를 발급한 통신공제조합에 지난해 7월 보증금을 청구했다. 통신공제조합에 따르면 A건설이 청구한 보증금액은 약 12억원이다. 보증건수에 따라 12억원의 보증금은 A·B·C사 등 세 업체서 약 6억원, 4억원, 1억원씩 각각 떠안게 됐다.
 

▲ 정보통신공제조합

일부 업체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B사 관계자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갑자기 돈을 갚으라는 문서가 날아왔다“(지난해) 9월 전까지는 S사나 A건설의 사정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항변했다. 이어 통신공제조합도 업체 측에 자초지종을 말해주지 않았다통신공제조합도 A건설이 보증금을 청구한 시점(지난해 7)에야 안 것 같다고 주장했다.

통신공제조합서 발급하는 보증서 계약·차액·손해배상 보증약관에 따르면 보증채권자는 보증사고가 발생한 경우 이를 지체 없이 조합에 알리도록 돼있다. A건설이 S사와 계약을 해지했을 때 통신공제조합에 이를 알렸어야 한다는 뜻이다. 업체 관계자들은 통신공제조합으로부터도 S사의 사정을 미리 전달 받은 게 없다는 입장이다.

공사포기는 2017년 했는데…
상황 전달은 2019년 9월에야

B사 관계자는 만약 S사가 공사를 포기하는 시점에 사정을 알았다면 공사보증을 선 업체들이 잔여공사를 마감하는 등의 대안을 강구했을 것이라며 “S사가 공사를 포기하고, 잔여공사까지 다 끝난 시점에야 보증금을 청구하면 연대보증 업체들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은 A건설서 통신공제조합에 청구한 보증금 액수가 과하다고 주장했다. B사 관계자에 따르면 A건설은 S사와 맺은 계약의 특수조건 8(위약금)를 근거로 약 12억원의 보증금을 통신공제조합에 청구했다.

8조는 갑과 을은 각각의 귀책사유로 일반조건 제25조 제1항 및 특수조건 제7조 제1항에 의거 계약이 해제·해지된 경우 상대방에게 계약금액의 10%를 위약금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문제를 제기한 업체 관계자들은 “A건설은 기성금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계약금 전체에 대한 보증금을 청구했다“S사는 공사를 어느 정도 진행하고 포기 각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A건설이 갑의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 계약을 맺었다는 것.

이들은 배상청구가 진행되더라도 기성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성금은 건설과정서 공사 중간에 공사가 이뤄진 만큼 계산해주는 돈을 말한다. 그러면서 “201711월말 경 S사가 A건설에 공사포기 각서를 낸 시점의 기성율은 74.3%”라며 “107억원의 계약금 중 80억원이 이미 기성금의 형태로 S사에 지불됐다고 주장했다.

사정 얘기해도
“법대로 하라”

통신공제조합은 A건설이 청구한 보증금을 이미 지급한 상태다. 연대보증 업체들은 통신공제조합이 제기한 구상권 청구에 따라 5(60개월)에 걸쳐 돈을 갚아야 한다. 이들은 돈을 아예 갚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기성금 등을 고려해 금액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통신공제조합에 얘기했고, A건설에도 찾아가 사정을 해봤지만 법대로 하라는 말만 돌아왔다고 토로했다통신공제조합 측은 “A건설이 청구한 보증금을 지급했다면서도 연대보증 업체 관련 얘기는 할 말이 없다고 전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A건설 측 입장 들어보니…

-에스엔아이가 공사를 포기한 시점은 201711월 말이고, A건설이 정보통신공제조합을 상대로 보증금을 청구한 것은 20197월로 약 18개월의 시차가 나는데.

관련법(건설산업기본법 제674)에 따라 보증기간 만료일로부터 2년 이내 보증금을 청구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A건설이 정보통신공제조합에 청구한 보증금의 액수는 약 12억원인데, 이 금액이 산출된 근거는 무엇인가? 에스엔아이가 공사를 포기하는 시점에 지급된 기성금이 전체 공사금액의 70%가 넘는다는 주장이 있다. 공사의 남은 부분에 대해 보증금을 청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인데...

관련법(건설산업기본법 342 1)에 따라 하도급계약시 계약금액의 10% 해당하는 금액을 보증하는 계약이행보증서를 징구했다. 에스엔아이의 귀책(공사포기)에 따라 하도급계약을 해지했으며, 계약불이행으로 인해 보증사고가 발생해 내부절차에 따라 보증금을 청구했다.

정보통신공제조합에서는 보증약관에 명시된 주계약 또는 관련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보증금을 지급한 사항이다.

-A건설과 에스엔아이가 맺은 건설공사 하도급계약서이외에 특수조건이라고 또 다른 조항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하도급 계약서는 공식문서로 볼 수 있는 표식이 군데군데 있는 데 반해 특수조건은 그와 스타일이 다른 것으로 보이는데.

특수조건은 하도급계약서에 따라 특약으로 정한 사항으로 하도급계약서에 포함된 문서다.

-에스엔아이가 공사포기 각서를 제출한 이후, 잔여공사를 어떻게 진행됐는지

에스엔아이의 자금사정 악화 등으로 공사 수행이 불가해 공사포기 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에스엔아이의 공사 포기 이후 내부절차에 따라 현장별로 직영 또는 다른 협력회사를 선정해 공사를 진행했다.

-정보통신공제조합에 에스엔아이의 공사포기 내용이 전달됐는지

보증금 청구 시 정보통신공제조합에 공사포기각서 사본을 제출했다.

 

<기사 속 기사> S사는 지금

A건설과 6건의 통신공사 계약을 맺었던 S사는 공사포기 각서를 제출한 이후 소식을 알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S사 사장 정모씨 역시 개인 연대보증을 선 상태다.

일반적으로 공사를 진행할 때 사업자의 대표가 개인 연대보증을 선다.

연대보증 업체들은 S사 관계자를 백방으로 찾고 있는 상황이다.

S사의 대표 정씨는 20122013년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을 지낸 정창영씨의 동생이다.

정창영씨는 2016년부터 모 통신업체 대표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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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곳에 떨어진 ‘이혜훈 폭탄’

엉뚱한 곳에 떨어진 ‘이혜훈 폭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정부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에 지명된 이혜훈 후보자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뻥뻥 터지고 있다. 지명 직후 국민의힘을 두 쪽으로 가르더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까지 혼란에 빠트렸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청와대의 고심이 깊다. 인사청문회까지 몇 개의 고비가 남았을까? 지난달 28일 이재명 대통령이 이혜훈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내정했다고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이 전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미래통합당에서 내리 3선을 지낸 중진 보수 정치인이다. 오랜 기간 보수에 몸담은 인사를 초대 경제 부처 수장으로 지명한 만큼 ‘경제·민생 통합’이란 이재명정부의 기조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속전속결 손절 치기 이날 이 수석은 이같이 밝히며 “이 후보자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KDI 연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정책과 실무에 능통하다”고 밝혔다. 이어 “경제민주화 철학에 기반해 최저임금법, 이자제한법 개정안 등을 대표 발의하고 불공정 거래의 근절과 민생 활성화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며 “곧 출범하는 기획예산처가 국가 중장기 전략을 세심하게 수립하도록 해 미래 성장 동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국민의힘은 휴일임에도 즉각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자당 소속인 이 후보자를 제명 조치했다. 국민의힘은 보도자료를 내고 “오늘 오후 (서면)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해 당헌·당규에 따라 이혜훈 전 의원에 대한 제명과 당직자로서 행한 모든 당무 행위 일체를 취소하는 안건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전 의원은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이재명정부의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함으로써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을 앞두고 국민과 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 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국무위원 내정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선출직 공직자 평가를 실시하는 등 당무 행위를 병행함으로써 당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당무 운영을 고의적으로 방해했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국무위원직을 정치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이재명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을 강력히 규탄하며, 대국민 사과와 함께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앞에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이 유독 거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이 후보자가 자당 출신인 점은 물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윤 어게인’과 결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는 등 강성 행보를 보였다. 배신자 VS 외연 확장 보수 가르더니… 자진 사퇴 VS 일단 중립 진보도 두 쪽 후보자 지명 이틀 만에 국민의힘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기회주의자’의 이탈을 막아야 한다며 ‘이혜훈 배신자 프레임’을 띄우는 한편, 지금이야말로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고 외연 확장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며 분열하는 양상을 띤 것이다.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이 후보자에 대해 “당의 지원을 받는 일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단물을 빼먹은 분”이라며 “그런데 이렇게 이정부의 앞잡이가 되어서 기획예산처 장관이라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자신의 영혼을 팔고, 자리를 구걸하고 있다. 그것을 탕평이라고 볼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글삭튀 이혜훈, 소신도 없이 이재명에게 러브레터를?’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보수 전사인 척하더니 자리를 넙죽 받았다. 이혜훈은 이재명의 기본소득, 보편 복지, 수요 억제 부동산 정책을 가장 세게 까왔다”고 말했다. 이는 내정 직후 이 후보자가 입장문을 통해 “경제와 민생 문제 해결은 본래 정파나 이념을 떠나 누구든지 협력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저의 오랜 소신”이라는 대목을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범보수인 개혁신당은 이 후보자의 ‘배신자론’이 과하다며 오히려 보수 때리기에 나섰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이 전 의원은 20년간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결국 강을 건넜다. 우리는 그 의미를 직시해야 한다”며 “거국 내각은 보통 정권 말기의 레임덕 국면에서 등장하는 유화책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정권 초기부터 이런 파격적인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감의 발로”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은 이 전 의원을 배신자로 몰아세울 때가 아니라, 보수 진영이 국민께 매력적인 비전과 담론을 제시하여 희망을 드려야 할 때”라며 “누군가 등을 돌렸다면, 왜 떠났는지 그 이유를 살펴야지 떠난 사람을 저주해서 무엇을 얻겠나?”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보수 담론이 저급해진 원인은 상대를 감옥에 보내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검찰주의적 사고방식에 있다”며 “정책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니, 결국 상대를 감옥으로 보내는 데만 몰두했고,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자 이제 남은 것은 저주뿐”이라고 날을 세웠다. 파도 파도 끝이 없네 여러 의미로 ‘파격 인사’인 만큼 이 후보자의 지명을 놓고 무수한 뒷말이 나왔다. 한 여권 관계자는 “세간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 후보자는 ‘경제 총알받이’ ‘국민의힘 분열’ 등 청와대가 전략적으로 지명했다는 설이 있었다”며 “겨우 그런 걸 위해 이재명 대통령이 이런 리스크를 떠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후보자라는 시한폭탄이 여당 쪽으로 넘어왔다는 점이다. 강선우·김병기 의원의 ‘보좌관 갑질 논란’으로 사나운 민심의 파도를 건너던 도중 이 후보자를 둘러싼 ‘초대형’ 갑질 의혹이 터지면서 전직 관계자들의 폭로전이 시작됐다. 2017년 당시 바른정당 의원이던 이 후보자가 자신의 이름이 언급된 언론 기사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턴 직원에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등 질책하는 내용의 통화 녹취가 공개됐다. 이후 이 후보자가 보좌직원에게 자신에 대한 비판 댓글을 지우게 하거나 직접 반박 댓글을 달게 하고, 상호 감시를 지시하거나 구의원들에게 집회에서 삭발을 강요했다는 등의 증언이 잇달아 나왔다. 하루 간격으로 ‘비행기 좌석 업그레이드’ ‘수박 배달’ 등 자잘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결국 이 후보자의 갑질 논란은 어느 새 고발전이 됐다. 지난 2일 국민의힘 소속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이 후보자를 협박·직권남용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면서 “권력 우위에 있는 국회의원이 약자인 인턴 직원에게 모욕적 언사를 반복하고, 공적 직무와 무관한 개인 주거 공간의 프린터 수리를 지시했다면 이는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이자 직권 남용”이라며 “이 대통령은 즉시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8일에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추가 고발장을 제출했다. 땅 투기 의혹도 제기됐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후보자의 배우자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공식 개항 전인 2000년 1월 초 인천 중구 중산동의 잡종지 약 200평(6612㎡)을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후 이 후보자의 과거에 제출한 재산 신고 내역에 따르면 이 땅은 2006년 한국토지공사와 인천도시개발공사에 39억2100만원에 수용됐다. 6년 사이 약 세 배의 시세 차익을 번 것이다. 그래도 품어야 주 의원은 “서울 사는 이혜훈 부부가 인천 잡종지 2000평을 매입할 이유가 없다”며 김씨가 땅 투기를 통해 재산을 취득했다고 주장했다. 여야의 날 선 공방이 이어지는 사이 이 후보자의 청문회 날짜가 오는 19일로 확정됐다. 국민의힘은 19~20일 이틀간 청문회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여야 간사 간의 조율 끝에 충분한 질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이같이 정해졌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우선 청문회를 통해 이 후보자의 입장을 청취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 후보자는 제명까지 당하면서 이정부와 함께하길 택했다. 지금 자진 사퇴하면 정치 인생은 끝”이라며 “만일 지명 철회를 하더라도 청문회를 통해 입장을 밝힐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 생명 다 걸고 온 사람한테 해명할 시간도 주지 않고 쫓아내는 건 정부 입장에서도 (모양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자 역시 정면돌파를 택했다.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취재진들과 만나 “청문회에서 다 소상히 설명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했던 민주당인 만큼 이 후보자에 대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후보자 지명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이 42%로, 긍정 평가보다 높게 나타나면서 당에서도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모양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5~7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이날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지명한 것에 대해 ‘잘못한 결정’이라는 부정적 평가는 42%로 집계됐다. ‘잘한 결정’이라는 긍정적 평가는 35%, 모름·무응답은 23%로 드러났다. 해당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응답률은 18.2%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결국 민주당 내에서도 자진 사퇴 목소리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민주당 장철민 의원은 이 후보자에 대해 “도저히 방어할 수 없다”며 자진 사퇴를 공개적으로 권했다. 이 지명 부정 평가 42% 그래도 버티는 이유 뭐? 장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우리가 여당이기 때문에 소명 기회를 부여하고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방어도 해 줘야 하지만 지금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특히 “조승래 사무총장이 ‘언급 자제령’을 내렸다. 이 후보자가 위태롭고 고립돼있다는 걸 정말로 증명하는 말 같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는 것도 적절치 않으니 본인이 결단을 하는 게 맞다”며 “이미 만신창이지만 청문회를 버텨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검증을 통해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부 인사는) 불완전한 상태로 국민께 추천을 드리는 단계가 있고, (지금은) 그런 보도가 되면 언론이 검증을 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고 나서 청문회 과정에서 국민과 함께 제도적으로 그것들을 바탕으로 다시 최종 점검하는 것이 검증 절차”라며 “국민과 함께 검증하는 청문회 과정까지는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청문회를 통한 검증 이후 최종 판단 기준은 ‘국민의 눈높이’라며 “적어도 국민적 정서에 맞는가가 굉장히 중요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대표는 “제가 이 후보자라면 잘못한 말·행동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철저히 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고, 기획예산처 장관으로서 갖출 비전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맞추겠다고 어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문회 통과 전망에 대해서는 “청문회 당일 지켜봐야 한다. (이렇게) 어필하면 청문회를 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이 대통령 결정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가) 다 마음에 들어할 수는 없지만, 대통령 결정이 잘 된 결정이 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후보자 입장에서는 (국민의힘이) 즉각 제명하고 비난하다 보니 국민의힘 쪽으로는 갈 수도 없다. 이쪽(민주당)에서 더 잘해야 한다. 파이팅하시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거센 비판 속에서도 청와대가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것이란 기류도 읽힌다. 믿는 구석 통할까?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발 갑질 논란에도 의원들이 끝까지 버틴 이유는 폭언·갑질 등으로 형사 처벌을 받은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며 “의원직 사퇴까지 이어지지 않는 이상 버티고 보는 것이다. 강 전 의원은 ‘1억 자금’ 논란이 불거지면서 탈당했지만 이 후보자의 경우 법적으로 걸릴 게 없다고 자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도덕성 차원에서는 큰 타격을 입겠지만 끝에 가서는 결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라며 “안 그래도 민감한 소재인 갑질 의혹과 맞물리면서 논란이 곱절이 됐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왼쪽으로 넘어온 이혜훈 누구? 이혜훈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은 1964년생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레스터대 경제학과 교수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거치는 등 경제 분야서 활동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후보자로 서울 서초 갑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으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와 정보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으로도 활약했다. 지난해 22대 총선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서울 중구·성동구을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후보자에게 패배해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지난해 7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는 김문수 전 대선후보자의 국민의힘 당 대표 추대를 촉구하는 209인의 전직 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