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입취재>여기자 직접 결혼정보업체 '무료상담' 받아보니…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8.03 11: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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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만원으로 100억 인생역전 가능”…혹시 로또?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내 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주변에 넘치는 건 남자고 여자인데 실제로 내 인연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감질나게 찾아오는 연애는 갈증만 남기고, 후에 더 좋은 인연이 찾아올 것 같아 결혼결심은 망설여진다. 넘치고 넘쳐도 성에 안차고 또 그만큼 신중해야 하는 결혼. 이 때문인지 나에게 꼭 맞는 배우자를 찾아준다는 결혼정보회사들이 장안에 성업 중이다. 그러나 항간에 떠도는 설과 소문 때문인지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한다. ‘돈’을 주고 나에게 맞는 배우자를 고르는 시대. 결혼정보업체의 배우자감 매칭시스템을 취재기자임을 숨기고 직접 들어봤다.

강남의 유명 결혼정보업체를 찾은 김모(28ㆍ여)씨로부터 무료상담을 받은 후 강압적인 등록 강요를 받았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김씨는 “결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찾아 갔지만 당일 가입을 망설이자 조폭 같은 여성이 다가와 ‘평생 이렇게 살거냐’는 식의 자존심 짓밟는 발언을 해 속이 상했다”고 털어놨다.

나이에 따라
‘배우자’ 취사선택

실제 결혼정보업체에서 저마다 실시하고 있는 무료상담 과정에서 등록 강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배우자감을 나누고 또 비용은 얼마정도일까.

지난 16일과 17일, 기자는 27세의 중소기업 홍보팀 여직원을 가장해 강남 유명 결혼정보업체 두 곳을 찾았다.


먼저 찾은 곳은 유명 연예인이 대표로 있는 B업체. 고급스러운 실내 인테리어로 꾸며놓은 본사에 들어서자 안내데스크에 있던 여직원이 상담실로 안내한다. 이어 상담 매니저가 들어오고 고객정보 작성이 이뤄졌다.

고객정보카드는 커플매칭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고객정보를 알아야 원하는 배우자감이 업체에 있는지 파악이 가능하며 자신과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한 사람과의 만남이 이루어 질 수 있다.

총 3페이지로 이루어진 정보카드에는 나이ㆍ학력ㆍ직장ㆍ연봉ㆍ키ㆍ혈액형ㆍ종교ㆍ최근 연애경험 등 자신의 정보는 물론 부모의 직장 및 학력ㆍ형제관계ㆍ학력ㆍ자산(전문직 남성을 만났을 경우 지원해줄 수 있는 수준) 등도 기입하도록 돼있다. 기본적인 정보 확인이 끝난 후 본격적인 상담이 이뤄진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돈 많은 남자 만나라!
남 ‘능력ㆍ집안’, 여 ‘나이ㆍ외모’에 따라 등급 매겨

상담팀장은 “다이아몬드 같은 나이에 잘 왔다”며 “26~28세면 내가 남자를 선택할 수 있다. 29세가 되면 데드라인으로 반은 선택할 수 있고 반은 받을 수도 있고, 30세가 넘으면 남자한테 선택을 받아질 확률이 더 높다. 33세가 넘으면 선택권이 거의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나이’는 여성을 판가름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됐다. 상담팀장은 “요즘 여자들은 나이가 경쟁력”이라며 “능력 있는 남자들은 한 살이라도 어린 여자를 선택하는 게 불변의 진리”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상담팀장은 ‘여자가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야 하는 이유를 늘어놨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말처럼 여자는 남자로 인해 생고생하면서 밑으로 내려갈 수도 있고, 내가 이 정도까지 레벨(학력ㆍ자기관리 등)을 올려놨는데 더 괜찮은 남자를 만나서 보너스로 사모님 소리를 들어가면서 살 수도 있다는 것.


상담팀장은 “2년 전에 결혼한 회원은 전문대밖에 안 나온 여자였지만 모 병원을 두 개나 개업한 남자와 살고 있다”고 예를 들며 “여자는 서울대를 나왔다고 해도 ‘남자’로 인해 묻힐 수 있고 남자가 어떤 직업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제일중요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능력 없는 남자
‘접근금지’

다음으론 원하는 배우자감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배우자의 직업ㆍ연봉ㆍ학력ㆍ키는 물론 나이차이ㆍ외모ㆍ스타일ㆍ체형ㆍ성향ㆍ종교ㆍ흡연과 음주 여부ㆍ차량 및 집 소유 유무ㆍ부모님 자산 등까지 앞서 한 자기정보 카드보다 더 상세했다.

상담팀장은 “남성들은 직업과 경제력이 가장 중요한 가입조건이다”며 “여성들은 무직이나 프리랜서도 등록이 가능하지만 남성들은 프리랜서ㆍ영업직ㆍ여자를 상대하는 직업은 가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해당업체에서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재직증명서 및 등기부등본, 혼인관계 여부 확인, 졸업증명서, 사실임을 증빙하는 서약서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과 이상형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서비스 종류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업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서비스 종류는 크게 3가지. 만날 수 있는 회원 기준과 횟수에 따라 일반 165(부가세 10%포함)~275만원ㆍ노블레스 385~495만원ㆍ성혼 660만원으로 나뉜다.

이중 노블레스는 일반직 여성들이 가장 많이 가입하는 상품으로 등록 시 노블레스 파티 참석이 가능하고 피부과 지정 에스테틱 관리 3회를 받을 수 있으며, 치과에서 구강검진ㆍ스케일링ㆍ미백을 받아볼 수 있다.

조건 까다로울수록
높아지는 가입비

385만원짜리는 연간 7회 만남 주선으로 대기업, 공기업, 항공 관계자, 교사, 대학강사, 공무원, 방송 관계자, 연구원, 세무사 등을 만날 수 있고 495만원짜리는 연 14회 만남 주선에 의사, 한의사, 변호사, 회계사, 외무고시ㆍ행정고시 합격자, 대학교수, CEO, 연예인, 애널리스트 등을 만날 수 있다. 기간은 1년이지만 교제를 한 뒤 헤어질 경우 그만큼의 기간연장은 가능하다.

두 번째로 찾은 K결혼정보업체에도 ‘노블레스 프로그램’이 있다. 전문직 종사자, 사회 엘리트계층과의 만남을 원하는 고객을 위한 ‘루비’ 프로그램, 배우자의 기품과 집안은 물론 최고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갖춘 VIP회원과의 만남을 원하는 고객을 위한 ‘에메랄드’ 프로그램, 기간제한 없이 성혼 시까지 만남을 원하거나 상류층ㆍ전문직 종사자와의 성혼을 원하는 ‘다이아몬드’ 프로그램이 있다.

가격은 B업체와 비슷했다. 전문직을 제외하고 일반직 중 가정환경 좋은 사람과 만날 경우 253만원, 전문직과 일반직(가정환경 포함)을 모두 만날 경우 396만원, 전문직과 가정환경을 겸비한 사람만 만날 경우 660만원이다.

상위층을 위한 VVIP 성혼 프로그램도 있다. 3년 동안 만남 횟수 제한은 없으며 가격은 1100만원이다.

K업체는 가입 방법과 절차, 본인 데이타 설문조항, 프로그램 및 가격 등은 B업체와 대동소이했지만 ‘가격 선정’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K업체의 경우 본인 프로필과 원하는 배우자 조건에 따라 가격이 저렴해 질 수도 있고 반대로 비싸질 수도 있다는 것.


K업체 커플매니저는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며 “남자의 경우 30대 중후반에 경제적 능력도 갖추고 있으면서 원하는 배우자감으로 비슷한 나이대를 본다고 하면 가입비가 저렴해지고, 4살 이상 어린 여성을 만나겠다고 하면 더 비싸진다. 가능성 있는 부분을 보고 진행하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제보와 달리 두 업체모두 프로그램 소개가 끝난 후 당일 등록을 강요하진 않았다. 다만 결혼정보업체 등록이 미래 배우자를 만나는 데 있어서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에 대한 강조는 공통적이었다. 

가입분류ㆍ프로그램에 따라 100만원~1000만원대
사람 등급별로 상품화…"위화감 조성한다” 지적도

K업체 커플매니저는 “시대가 바뀌었다. 능력 있는 남자들은 자신이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여성의 집안이나 능력보다는 외모를 많이 본다”며 “이런 흐름에 여성은 욕심 부릴 수 있다. 본인의 가치가 괜찮을 때 높이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면 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어 “진행이 된다면 논현동에 빌딩 가지고 있는 사람, 집안 경제력이 뛰어난 사람, 서울 수도권에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과 바로 만남이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B업체 상담 매니저 역시 “결혼은 꼭 해야 하고 빨리 할수록 좋고, 욕심 부리면 한도 끝도 없다. 마음은 있는데 가만히 앉아서 인연이 오겠지 기다리면 알아서 걸어오지 않는다”며 “특별한 인연을 만나는 데 투자하기 싫다면 평범한 사람,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어 “400만원 투자로 연봉 7000만원~1억원의 남자를 만나 100억원의 가치를 올릴 수 있다. 혼수해갈 때 냉장고ㆍ세탁기 하나 안 해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은행에 넣지 말고 적금 든다고 생각해라. 투자의 200% 가치는 분명 볼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최근에는 대학생 및 사회 초년생들도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할 만큼 결혼과 만남에 대한 인식과 추세가 변하고 있다. 각계ㆍ각층의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실질적인 만남서비스를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 결혼정보업체가 담당해야 할 몫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혼맥’으로써의 
역할 더 중요

그러나 여전히 일부에서는 결혼을 등급별로 상품화해 위화감을 조성하고, 결혼이 마치 ‘로또’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런 때야 말로 고객이 원하는 배우자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매니저의 노력과 역량이 더욱 시급하다. 외모와 나이ㆍ능력에 따라 나뉘는 등급이 아닌 사람과 사람을 서로 이어주는 혼맥으로써의 역할이 더욱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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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