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α’ 이춘재의 살인 지도

“내가 다 죽였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드디어 이춘재가 입을 열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미제사건의 실마리가 나오고 있다. ‘자신이 했다고 자백한 사건만 14건에 이른다. 우리나라 3대 미제사건으로 꼽혔던 화성연쇄살인사건 말고도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사건들이 떠오르는 중이다. <일요시사>가 이춘재의 살인 행적을 뒤쫓았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공개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몽타주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이형호 유괴사건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미제사건으로 꼽혔다. 지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 일대서 여성 10명이 살해됐다.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사건이지만 실마리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20064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는 듯했다.

화성 사건
33년 만에…

연극 <날 보러 와요>, 영화 <살인의 추억> 등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 등장했다.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는 수차례에 걸쳐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해 다뤘다.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식지 않았지만 19914310차 사건 이후 28년간 범인의 윤곽은 오로지 몽타주로만 남은 상태였다.

그러다 지난달 18일 이후로 상황이 급반전됐다. 이날 오후 언론보도를 통해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가 특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동안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쏟아져 나왔던 추측과 유력 용의자에 대한 궁금증이 게시판을 달궜다.

지난달 19일 반기수 경기남부지방경찰청 2부장은 브리핑을 통해 지난 715일 현장 증거 일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했다그 결과 현재까지 10건의 사건 중 3건의 현장 증거물서 검출된 DNA와 일치하는 대상자가 있다는 통보를 받고 수사 중에 있다고 발표했다.


경찰이 지난 8월 특정한 유력 용의자는 현재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인 56세 이춘재. 이춘재는 19941월 청주시 자택서 처제를 강간, 살해 후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검거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당시 그는 부산교도소서 20여년 넘게 1급 모범수였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범행을 부인하던 이춘재는 지난 1일부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춘재의 DNA5·7·9차 사건 증거물서 이미 검출된 데 이어 4차 사건 증거물서도 나온 것으로 확인되면서 상황은 급물살을 탔다. 이춘재는 기존 화성연쇄살인사건 9건 외에도 추가로 5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14건이다. 이뿐만 아니라 살인사건 외에도 성폭행과 성폭행 미수 범행을 30여건 저질렀다고 말했다.

당시 그가 자백한 모든 범행은 군대서 전역한 19861월부터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검거된 19941월까지 8년동안 벌어졌다. 범행 장소는 화성과 수원, 청주 등 3곳이다. 다만 이춘재가 털어놓은 모든 범행은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제사건 속속 수면 위로
“모두 내가 했다” 입 열어

묘한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모방범죄로 알려졌던 8차 사건을 이춘재가 자신이 했다고 주장하면서다. 8차 사건은 범인이 검거돼 처벌까지 전부 이뤄진 상태기 때문에 이춘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큰 파장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여중생이 피해자였던 8차 사건서 당시 경찰은 윤모씨를 검거했다.

윤씨는 재판 과정서 경찰의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무죄를 호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여년을 복역한 뒤 2009년 가석방으로 출소한 상태다.

DNA 검출로 과학수사의 쾌거라고 고무됐던 경찰의 사기가 순식간에 추락했다. 게다가 윤씨의 검거, 자백 등의 과정서 경찰이 고문을 행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지난 10일 이춘재가 8차 사건서 범인만 알 수 있는 유의미한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건 수사본부는 이춘재의 8차 사건 자백이 구체적인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자백 진술 안에 의미 있는 부분이 있다진짜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그런 진술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춘재가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정례 브리핑서 경찰은 화성연쇄살인사건 8차 사건을 포함해 이춘재가 총 14건의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화성연쇄살인사건 10건 모두와 추가로 자백한 4건 등이다.

경찰은 이춘재가 자백한 사건 14건에 대한 임의성, 신빙성이 높고 당시 현장 상황과 상당히 부합한다고 판단한다고 발표했다. 이중에는 30여년 전 9세 초등학생의 실종사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춘재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정식 입건한 상태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모두 끝나 이춘재에 대한 입건이 처벌로 이어질 수는 없지만 향후 신상을 공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모방범죄도
“내가 했다”

특정강력범죄의처벌에관한특례법에 따르면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 범죄사건이나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또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나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10= 시작은 1986년까지 33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5년동안 화성시 태안과 정남, 팔탄, 동탄 등 태안읍사무소 반경 34개 읍·면에서 1371세 여성 10명이 강간·살해됐다.

스타킹이나 양말 등 피해자의 옷가지를 이용해 교살하거나 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는 방식을 썼다. 버스정류장서 귀가하는 피해자 집 사이로 연결된 논밭이나 오솔길 등에 숨어 있다가 덮친 후 범행했다.

1차 사건은 1986915일에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서 일어났다. 피해자는 71세 이모씨. 딸의 집에서 자고 나와 집으로 돌아가다가 살해됐다. 919일 발견 당시 하의가 벗겨진 상태였으며 손으로 목이 졸려 사망했다.

25세 박모씨가 두 번째 피해자였다. 1차 사건 이후 한 달 뒤인 1020일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박씨는 맞선을 보고 집에 돌아가던 중 버스를 타러 가다 변을 당했다. 1차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손으로 목이 졸렸다. 발견 당시 나체 상태였다.

198612월에는 2건이 사흘 간격으로 일어났다. 귀가 중이던 주부 권모(24)씨가 집 앞에서 피살됐다. 발견 당시 스타킹으로 양손이 결박된 상태였다. 스타킹으로 목이 졸려 숨졌다. 같은 달 14일에는 맞선을 보고 집에 돌아가던 중인 이모(21)씨가 살해됐다. 두 손이 묶였고 교살됐다. 정남면 관항리 농수로서 발견됐다.

해를 넘겨 19871월 여고생 홍모양이 살해된 채 발견됐다. 역시 두 손을 결박했고 양말로 재갈을 물렸다.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서 발견됐다. 52일에는 태안읍 진안리 야산서 6차 사건이 일어났다. 29세 주부 박모씨가 남편을 마중 나갔다가 불귀의 객이 됐다. 시신 발견 당시 솔가지로 은닉된 상태였다.


5년간 10건
공포 도가니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서 54세 주부 안모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19889월 일어난 7차 사건이다. 버스서 내려 귀가하던 중 범인의 덫에 걸렸다. 발견 당시 안씨는 블라우스로 양손이 결박된 채였다.

논란의 8차 사건은 피해자의 집에서 일어났다. 1988916일 태안읍 진안리의 한 집에서 여중생 박모(13)양이 잠을 자다가 피살됐다. 현장에 남아있던 모발을 증거로 198972525세 윤씨가 범인으로 검거됐다. 이춘재가 이 사건을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기 전까지 모방범죄로 분류됐다.
 

▲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

9차 사건은 199011월에 일어났다. 태안읍 병점5리 야산서 김모(13)양이 스타킹으로 결박된 상태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피해자는 귀가 중이었다. 시신은 발견 당시 훼손된 상태였던 만큼 더 충격을 안겼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사건은 동탄면 반송리 야산서 일어났다. 69세의 피해자 권모씨는 버스서 내려 귀가 도중에 살해됐다. 발견 당시 하의가 벗겨진 상태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0차에 이르기까지 범행의 수법과 대담성이 점차 진화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수년간 범행을 했음에도 꼬리를 잡히지 않은 점이 강력범죄에 대한 이춘재의 심리적 저항을 낮추고 대담성을 키워준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그러다 남의 집에 들어가거나 친족인 처제를 살해하는 등 더욱더 과감한 수법을 벌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가 범행 4= 화성연쇄살인 외에 경찰이 밝힌 이춘재의 범행은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 청주 여고생 살인사건, 청주 주부 살인사건 등 4건이다. 미제로 남아있던 이 사건들은 전부 화성연쇄살인사건 기간 내 일어났다. 당시 포클레인 기사로 일했던 이춘재는 1991년 전후로 화성과 청주 공사 현장을 오가며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초등생 실종사건도 관여 의혹
공소시효 다 끝나 처벌 어려워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은 실종사건으로 시작됐다. 19871224일 여고생이 어머니와 다투고 외출했다가 10일 뒤인 198814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속옷으로 재갈이 물리고 손이 결박된 상태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서 드러난 이춘재의 범행 수법과 유사하다. 범인 특유의 범행 인증, 즉 시그니처라고 한다. 이 때문에 당시에도 화성연쇄살인사건과의 연관성이 제기된 바 있다.

9세 초등학생이 피해자인 사건에도 이춘재가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은 198977일 화성군 태안읍서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초등생 김모양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된 사건이다. 같은 해 12월 김양이 실종 당시 입고 나갔던 치마와 책가방이 화성군 태안읍 병점5리서 발견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 9차 사건 현장과 불과 30m 떨어진 지점으로 현재까지 시신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청주 여고생 살인사건은 1991127일 일어났다. 방적공장 직원이었던 17세 박모양이 청주시 복대동 택지조성 공사장 콘크리트관 속에서 발견됐다. 속옷으로 입이 틀어 막히고 양손이 뒤로 묶인 상태서 목 졸려 숨져 있었다. 역시 화성연쇄살인사건 피해자들과 비슷한 모습이다.

이춘재는 19913월 청주시 남주동서 발생한 주부 살인사건도 자신이 했다고 털어놓은 상태다. 29세의 피해자는 양손이 테이프에 묶여 있었고, 가슴이 흉기에 여러 차례 찔린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범인이 단독주택에 침입해 피해자의 손을 묶고 목을 졸라 숨지게 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 이춘재와 용의자 몽타주

경찰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비롯한 이춘재가 자백한 살인사건의 증거물에 대한 국과수의 DNA 분석과 과거 수사자료 등을 토대로 그의 혐의를 밝힌다는 방침이다. 특히 추가로 자백한 4건의 사건에 대해서는 기록이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라 지속적인 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춘재는 1994년 가출한 아내에 대한 증오심으로 처제를 잔혹하게 강간·살해한 혐의로 검거되기 전까지 범행을 저질렀다. 현재 14건의 살인사건, 30여건의 강간 및 강간미수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 상태다.

또 다른
미제사건도?

경찰은 이춘재가 자백한 40여건이 넘는 범행이 모두 성범죄와 연관된 만큼 범행 동기로 성도착증 가능성을 수사할 계획이라고 밝힌 상태다. 성도착증은 심리성적 장애의 하나로 성적 흥분을 경험하기 위해 이상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가학증, 피학증, 소아기호증 등 30가지 이상의 유형이 있다.

이수정 교수는 YTN과의 인터뷰서 이춘재의 성집착은 점진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여성이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성적 노리개, 성폭력 대상 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잔혹한 살인 등 반복적인 범행은 자신의 성도착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jsjaj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8차 사건 범인 재심 준비 '20년 억울한 옥살이?'

이춘재의 살인 행각과는 별개로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여년 동안 옥살이했던 윤씨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씨는 경찰의 고문과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돕기로

특히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1999)과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2000)의 재심을 맡아 무죄로 이끌었던 박준영 변호사가 윤씨의 재심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 변호사는 지난 15일, 경찰에 다시 수사기록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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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0년 묵은’ 서불대 교수 학위 논란

[단독] ‘10년 묵은’ 서불대 교수 학위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체 구성원이 200명도 안 되는 학교서 한 교수를 둘러싼 논쟁이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교수의 학사학위가 논란의 시발점이다. 임용 당시 서류에 기재한 내용을 두고 사실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고등교육법 제30조(대학원대학)에 따르면, 특정 분야의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대학원만 두는 대학, 이른바 대학원대학을 설립할 수 있다. 일반적인 종합대학과 달리 학사과정을 운영하지 않고 석·박사 과정만 두는 교육기관이다. 작은 학교 오랜 잡음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이하 서불대)도 그중 한 곳이다. 재단법인 불교안양원의 이사장인 덕해큰스님이 설립했다. 2002년 9월1일 개교한 서불대는 불교학과, 상담심리학과, 심신통합치유학과 등 3개 학과로 구성돼있으며 현재 석‧박사 학위과정 입학정원은 81명이다. 학교법인 보문학원서 운영을 총괄한다. 최근 서불대가 소속 교수의 학사학위 문제로 시끄러워졌다. 부교수인 정모씨의 학사학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두고 경찰 고발까지 진행되는 등 심각한 상황이 연출됐다. 문제는 정 교수의 학위 논란이 불거진 게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월 서불대 관계자는 정 교수를 고발했다. 고발장에는 정 교수가 지원 당시 제출한 서류에 학력 부분을 허위로 기재하고 임용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고발인은 “학사학위도 없는 교수가 석‧박사를 지도하는 엉터리 같은 상황이 우리 대학원서 자행되고 있다”며 “사실 여부를 정확히 가려 일벌백계해달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2005년 9월1일 서불대 전임강사로 신규 임용됐다. 2007년 9월1일 조교수로 승진, 2015년 3월1일 부교수가 된 이후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다. 쟁점이 된 부분은 정 교수가 2005년 7월 서불대 전임강사 임용 과정서 제출한 ‘신원진술서’와 ‘교수초빙 지원서’의 학력란이다. 정 교수는 학사 부분에 학교명 ‘Buddhist and Pali University’(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 학과명 ‘Buddhist Social Philosophy’, 전공 ‘Buddhist Social Philosophy’라고 기재했다. 수학 기간은 1992년 3월부터 1997년 2월로 1997년 1월1일에 문학학사학위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정 교수가 함께 제출한 ‘신원진술서’에 1994년 6월부터 1995년 12월까지 군대에 다녀왔다고 적은 부분이다.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서 공부한 기간과 군 복무 기간이 겹치는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정 교수는 1997년 1월에 스리랑카로 출국, 같은 해 3월에 입국했다. 2015년 첫 문제 제기 2021, 2022년, 올해도 기록의 모순점이 알려지면서 정 교수의 학사 학위를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결국 서불대 학위검증위원회는 2014년 1월부터 2015년 8월까지 정 교수의 학사학위를 검토했다. 그리고 정 교수의 학사학위에 하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정 교수는 당시 소명서에 학사과정을 적은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가 아닌 한국분교서 군 복무 기간에 진행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심지어 한국분교인 ‘한국불교대학’은 당시 교육부 미인가 대학이었다.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보문학원 이사회의 처분이다. 보문학원은 2015년 9월2일 개최한 이사회서 정 교수의 임용 과정 중 면접위원이었던 이모 교수와 김모 교수를 중징계 조치했다. 정 교수가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의 한국분교서 학사과정을 한 사실을 인지했지만 이를 이사회에 보고하지 않아 보문학원과 서불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퇴직 상태였기 때문에 ‘퇴직 불문’ 처리됐다. 근무 중 문제가 발생했지만 징계 절차 전에 퇴직해 문제 삼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서불대에는 기관경고 처분을 하면서도 정 교수에는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징계처분을 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정 교수의 학위 논란에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는 셈이다. 일단락되는 듯했던 학위 논란은 지난 2021년 재차 불거졌다. 이번에 문제된 부분은 성적증명서였다. 한국불교대학서 정 교수가 학부 과정을 진행했다는 시기와 인접한 때에 발부한 성적증명서와 그가 제출한 문서가 다르다는 새로운 의혹이 드러난 것이다. 실제 정 교수가 제출한 서류는 성적증명서가 아닌 졸업시험성적표로 확인됐다. 서불대는 ‘계약제 교수 업적평가 규정’에 따라 계약제로 임용된 교수의 계약기간을 1~3년으로 정하고 있다. 정년보장 교수(정교수) 승진 전까지 1~3년 단위로 재계약을 진행하는 것이다. 교원인사위원회가 영역별로 평가한 뒤 임용 혹은 면직을 제청하면 법인서 이를 승인하는 방식이다. 정 교수는 당시 일정 기간 단위로 계약을 새로 체결해야 하는 부교수 신분이었다. 6년 만에 바뀐 결론 서불대는 2021년 6월21일 열린 교원인사위원회서 정 교수의 부교수 임용 심의에 대해 논의했다. 그 결과 정 교수가 임용 서류에 학사학위 관련 허위 사실을 기재한 것이 면직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는 법률 자문 결과를 들어 면직을 제청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립학교법 제58조(면직의 사유)는 ▲인사기록에 있어 부정한 채점‧기재를 하거나 거짓 증명 또는 진술을 했을 때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임용됐을 때 등의 이유로 해당 교원의 임용권자는 그 교원을 면직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변호사는 정 교수가 교원으로 임용될 당시 제출한 지원서에 허위 사실을 기재한 것이 사실이라면 면직 사유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자문했다. 그러면서 교원인사위원회서 심의하고 교원징계위원회의 동의가 이뤄지면 정 교수를 면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서불대 교원인사위원회는 정 교수의 면직을 보문학원에 제청했다. 이후 보문학원은 서불대 교원징계위원회에 정 교수에 대한 면직 동의를 요구하는 문서를 제출했다. 보문학원이 기재한 징계 사유는 “(정 교수가) 임용 지원 당시 교원임용지원서에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 한국분교 한국불교대학’으로 표기했어야 하는 것을 당시 면접위원들과 논의해 ‘한국분교 한국불교대학’을 제외하고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만으로 표기했다”는 것이었다. 정 교수는 “2015년 학위검증위원회서 ‘문제 없음’, 이사회서 ‘불문 처리’됐다며 항변했지만 결국 면직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2015년과 2021년 두 차례 걸친 검증 과정서 서불대와 보문학원 이사회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서불대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2015년에 진행된 학위 검증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판단은 또 달랐다. 보복이냐 허위냐 정 교수는 면직된 이후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면직 처분 취소 청구’를 제기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정 교수의 면직 처분이 위법하다며 취소한다고 결정했다. 당시 정 교수는 ▲2014~2015년 학위 검증 ▲사학비리 신고에 대한 보복성 조치 ▲면직 사유 부존재 등의 주장을 내세웠다. 2021년 1월경 서불대 전 총장 황모씨 등 일부 인사의 입시 및 학위 수여 부정, 다국어교육원 운영과 관련한 횡령 혐의 등을 교육부에 감사 요청한 것을 두고 그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면직 처분을 진행했다는 설명이다. 또 학사학위를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서 받은 사실과 수학한 곳이 해당 학교의 한국분교라는 사실은 서로 다른 범주라고 강조했다. 공부한 곳을 지원서에 적지 않았다고 해서 학사학위를 받은 자체가 허위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2014~2015년에 이뤄진 학위 검증에 대해 언급했다. 서불대가 요청한 학부‧석사 성적, 재학증명서에 대해 스리랑카 국립 팔리불교대학교가 서류를 보낸 점, 당시 면접위원이었던 김모 교수의 확인서 등을 근거로 삼았다. 김 교수는 “학사 및 석사학위에 하자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진술했다. 또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학위검증위원회의 판단 자체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반면 문제를 제기한 쪽은 정 교수가 신규 임용 재계약 과정서 제출해야 할 서류를 내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서불대 규정에 따라 진행하는 재임용 과정서 정 교수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서불대 관계자는 “사립대학 교원의 임용권은 학교법인이나 학교의 장에게 있다는 교육부의 유권해석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서불대 교원의 신규 임용 후보자는 규정에 따라 14가지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대학 졸업증명서 및 성적증명서 ▲석·박사 학위증명서·성적증명서 및 학위기 사본 ▲경력증명서 등이다. 서불대 관계자는 “정 교수는 학사(대학)학위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200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학사 성적증명서를 누락했다”고 주장했다. 학내 결정, 외부 기관 뒤집혀 면직→복직, 재임용 1년→3년 2022년 또다시 학위검증위원회와 교원인사위원회가 잇따라 개최됐다. 정 교수를 포함한 교수 3명의 재임용을 논의하는 과정서 학위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반영됐다. 학위검증위원회는 정 교수의 학사학위에 대해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2015년 학위검증위원회가 잘못 심의한 부분과 2015년 이후 추가로 밝혀진 부분을 참고해 재검증한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서불대 교원인사위원회는 학위검증위원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 교수에 ‘재임용 불가’를 의결했다. 보문학원은 단서 조항을 달아 ‘조건부 1년 재임용’으로 결론내렸다. 하지만 정 교수가 법인의 결정에 반발해 국민권익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안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국민권익위원회가 1년 조건부 재임용 계약을 취소하고 3년 재임용 계약을 체결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정 교수는 서불대의 교직원 부당 채용 의혹 등을 신고한 뒤 재임용 계약기간 단축 등 불이익 조치를 받았다며 ‘신분보장등조치’를 신청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정 교수의 신고가 없었더라도 동일한 내용의 불이익 조치를 받았을 만한 정당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 교수가 2021년 2~3월에 신고한 교직원 채용 관련 문제에 대해 교육부가 징계 조치 등을 요구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보문학원은 정 교수와 3년 재임용 계약을 맺었다. 강의 배정, 논문지도 교수 위촉 등 국민권익위원회의 주문 사항도 처리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월에 이뤄진 경찰 고발사건 역시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해 불송치됐다. 경찰은 정 교수의 업무방해 혐의에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업무방해 혐의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서류 누락 진실은? 서불대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정 교수는 ‘교원의 자격’ ‘신규 임용자의 제출서류’ 등 학교 규정을 무시한 채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며 “학사학위와 관련한 서류를 내면 모든 게 마무리되는데 2005년 신규 임용 때부터 1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걸 못 내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학교나 법인 차원서 처리하지 못하는 게 답답하다”고 한탄했다. 정 교수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질의서를 보내고 통화를 시도했다. 정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학교법인 보문학원에도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