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파전’ 정의당 새 대표 판도

‘어대심?’ 진짜 당심은?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내년 총선서 당의 운명을 가를 당 대표 자리를 두고 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양경규 전 노동정치연대 대표가 맞붙게 됐다. 당내 핵심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6대 4로 심 후보의 승리를 점쳤지만, 당내 주력 활동가들의 마음은 양 후보에게 쏠려 있다는 입장이다. 일각서 나오는 주장처럼 ‘어대심’(어차피 대표는 심상정)일지, 노동계의 주역인 양 전 대표가 새 바람을 일으킬지 국민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 정의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심상정 전 대표와 양경규 전 노동정치연대 대표가 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중진 의원이자 스타 정치인인 심 후보와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이자 잔뼈 굵은 노동운동가인 양 후보를 두고 당원들은 갈림길에 섰다. 심 후보는 당의 확장을, 양 후보는 진보정당으로서의 차별화된 정책을 노선으로 정했다. 두 후보 모두 내년 총선의 중요성을 인정했지만, 총선 전략에서는 선명한 차이를 보였다.

“당 확장”

1988년 민중당은 노동운동에 주력하며 진보정당으로서 싹을 텄다. 이후 민주 노총을 둘러싼 논쟁, NL계와 PD계의 논쟁, 통합진보당의 분열 등 굴곡진 역사 속에서 현재는 5만명의 당원을 거느린 어엇한 기성 야당이다.

지난 20대 총선을 앞둔 2015년 정의당과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진보결집 더하기는 진보정치권 4자 통합을 추진해 정의당을 창건했다. 당시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당해년까지 두 자릿수 지지율을 확보해 20대 총선서 반드시 교섭단체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지만, 그의 포부는 모두 이뤄지지 못했다.

2019년 정의당은 6~7% 안팎의 지지율과 6명 이내의 의원이 청년·노동자·여성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5년에 정의당 대표를 지냈던 심 의원은 진보 진영의 세대 교체론을 내세우며 2017년 당 대표 선거엔 불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번 출마 선언에서는 “내년 총선은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의 부활이냐, 정의당의 약진이냐로 판가름 나는 선거”라며 당 대표가 되어 한국당을 잡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현실정치냐 진보원칙이냐
관건은 ‘양’의 득표율

심 후보는 당 대표 선거 출마 선언서 ‘심상정과 함께 정의당 국민 앞으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소를 ‘북핵·불평등·생태위기’로 꼽았다.

그는 불평등 해소를 정의당의 제1의 과제로 삼고, 불평등의 근본 뿌리인 세습자본주의를 개혁해 경제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포부도 함께 밝혔다. 심 후보는 이날 집권을 열망하는 ‘크고 강한 당’으로 나아가자며 당의 확장에 대한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이었던 양 후보는 당 대표 출마 선언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당의 비전으로 내세웠다. 불평등과 사회주의의 독재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구조인 사회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복지와 연대의 이념을 제대로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로 해석된다.
 

▲ ▲악수 나누는 심상정 전 대표와 양경규 전 노동정치연대 대표 ⓒ국회사진취재단

양 후보는 “야만의 자본주의에 강력히 저항하고,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무지개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며 진보 정당으로서 정치적 좌표와 이념적 좌표를 확실하게 했다.

심 후보는 양 후보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과거의 것’이라며 정의당의 노선을 ‘변화 가능한 현실을 추구하는 꿈꾸는 현실주의자 정당’으로 정했다. 이에 양 후보는 “계속해서 실현 가능성에만 집착하면 정체성을 잃을 것”이라며 팽팽히 맞섰다.


두 후보는 민주적 사회주의 정책을 두고도 공방을 벌였다. 심 후보는 지난 1일, SBS 당 대표 후보 토론회서 “토지혁명과 소득격차의 과감한 해소를 하자는 민주적 사회주의가 양적 차이는 있지만, 그동안 정의당이 주장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며 “분단과 냉전으로 이념에 대해 민감한 나라에서 굳이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얘기로 오해와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며 양 후보를 비판했다.

양 후보는 “단순한 양적 차이에 불과하다고 하면 세상에 구별되는 정당은 없다”며 진보 정당으로서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이어 “높은 목표 잡으면 로드맵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작은 목표를 가지고 적당히 개혁하는 모습이 차별화를 방해하는 결정적 장애물”이라 꼬집었다.

‘심’ 6대 4로 승리?
전략은 선명한 차이

현실 정치를 강조하는 심 후보와 진보 원칙주의를 내세운 양 후보의 팽팽한 기싸움은 내년 총선 전략을 두고도 이어졌다. 심 후보는 “내년 총선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놓고 치르는 수구 정치세력 대 진보 정치세력의 한판 대결”이라며 더 강한 정의당으로 거듭나 한국당을 꺾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심 후보의 ‘한국당 부활 저지’라는 총선 전략을 두고 양 후보는 “한국당 부활 저지라는 심 후보의 프레임은 ‘정의당이 아닌 민주당이 구사해야 할 전략’으로 바꿔야 한다”며 선명한 대립각을 보였다. 그러면서 양 후보는 거대 양당과 구별되는 제3세력으로서의 비전과 가치, 전략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두 후보의 치열한 접전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대표는 심상정’이라는 의견이 당내 우세한 상황이다. 국민의 높은 인지도와 ‘실력 있는 정치인’이라는 심 후보의 평판 때문이다. 정의당 당원으로 활동하는 A씨는 “심 후보가 똑부러지고 올곧은 느낌이 강해서 총선을 이끌기엔 적격”이라며 “고이지 않고 계속 변화를 이끌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당 일각에선 심 후보가 현실론에 기대어 안전한 정책을 시도하는 진보 정당으로 이끌까 걱정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양 후보 역시 당 대표 후보토론서 “심 후보를 중심으로 당이 움직이는 과정서 당의 민주주의와 소통이 훼손되고 있다는 많은 당원들의 요구가 있다”며 “국민들이 보기에 심 후보 외에 정의당이 안 보인다면 이것도 불행한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의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의 색깔이 정확하지 않은 상태라면 국민들은 정의당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며 심 후보의 노선에 회의감을 표했다.

“차별화”

이 관계자는 “당내 활동가들은 양 후보에게 이미 마음이 쏠려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번 선거서 양 후보의 득표율이 많이 나온다면, 심 후보의 정치적 행보가 자칫 당의 ‘색’을 잃게 할 수도 있다는 당원의 우려를 방증하는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번 당 대표 선거는 7일까지 전국 순회 유세를 진행하고 오는 13일까지 온라인투표와 현장투표, ARS 모바일 투표로 진행될 예정이다. 선거 결과는 투표 마감일인 오는 13일 토요일에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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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