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오일머니 10조 쟁탈전

‘석유왕자’ 왔다 가니 재계가 들썩∼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압둘 아지드 알사우드 왕세자가 한국을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그리고 5대 기업 총수까지 모두 붙었다. ‘기회의 땅’ 사우디를 향한 세일즈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산이 깔렸다. 빈 살만 왕세자는 한국 기업에 10조원 규모의 파격적인 경제협력을 약속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압둘 아지드 알사우드 왕세자가 지난 26일,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해 파격적인 경제협력 보따리를 풀었다.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라고 불리는 빈 살만 왕세자의 공식 직함은 사우디 부총리 겸 국방부장관이다. 

이유 있는 
극진 예우

그는 왕위 계승 서열 1위로, 연로한 부친을 대신해 사실상 사우디를 지배하고 있는 인물이다. 소프트뱅크비전펀드를 통해 우버 등 세계적인 혁신 기업의 사실상 최대주주 지위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 첫 방한한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큰 관심이 쏠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을 가졌다. 양측은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분야서 지속적으로 협력할 것을 강조했다. 사우디는 사우디 최초의 상용원전 사업의 입찰에 한국이 계속 참여해온 것을 환영했다. 

또 양국의 경제 협력 수준 및 교역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상호 투자를 확대해나갈 수 있는 여지가 매우 크다는 데 주목하고, 호혜적 투자가 지속적으로 창출될 수 있도록 상호 투자 가능성을 적극 모색해나가기로 합의했다. 사우디가 진행 중인 네옴(NEOM) 프로젝트, 홍해 프로젝트, 키디야(Qiddiya) 엔터테인먼트 신도시 건설 등 대규모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사우디 비전 2030’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지지를 표명했다. 양측은 한-사우디 비전 2030 위원회를 통한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가 상호이익이 된다는 확신을 재확인했다. 

서울과 리야드에 비전 오피스(Vision Realization Office) 개설 등과 같은 노력을 통해 한-사우디 비전 2030 파트너십의 실현을 위한 협력을 가속화하기로 했다. 양국 협력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신산업 분야로 다변화하고 확대해나가는 것에도 합의했다. 

사우디 왕세자 방한…이례적인 환대 왜?
정부·기업 MOU 10건…미래차·수소 협력

또 양측은 친환경 자동차, ICT(정보통신기술), 5G(세대) 등 미래지향형 첨단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양국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해 함께 노력해나가기로 했다. 특히 사우디는 세계 시장 내 안정적인 원유 공급을 보장하고 대한민국의 원유 및 석유 제품 수요를 충족하며 공급 교란 상황으로 인한 부족분을 대체한다는 약속을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 내 투자, 특히 에너지·정유 및 석유화학 분야의 투자 추진에 대한 사우디 측 관심을 평가했다. 이러한 관심은 최근 사우디 아람코의 현대 오일뱅크 정유 공장 투자와 SABIC과 SK 간 석유화학 합작투자로 이어졌다. 

빈 살만 왕세자는 현대 중공업의 라스 알 카이르 지역 킹 살만 조선소 건설 참여 등 사우디 비전 2030 내 주요 프로젝트에 대한 한국 기업의 기여를 언급하며, 사우디 내 한국의 투자 건수 증가 및 관련 파트너십을 평가했다. 
 

▲ 문재인 대통령과 반 살만 사우디 왕세자

문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는 양측 간 합의 사항의 성공적인 이행을 위해 한-사우디 간 공동위원회, 한-사우디 비전 2030 위원회 등 기존 고위급 소통 채널을 더욱 발전시켜나가기로 했다. 특히 올해 신설된 차관급 국방협력 위원회를 통해 국방 분야 협력도 더욱 증진시키기로 합의했다. 


이날 양국 정부는 총 83억달러(약 9조6000억원) 규모 계약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국은 수소차와 연료전지는 물론 수소생산·저장·운송 등 전 주기에 걸친 수소경제를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친환경차, 수소에너지, 수소연료전지 등에서 중동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정부 간 MOU 외에도 양국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등 기업들도 계약과 MOU를 총 8건 체결하는 성과를 올렸다. 

10조 규모 계약
노리는 기업들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는 에쓰오일을 통해 2024년까지 6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5조원을 들여 이날 준공 기념식을 진행한 에쓰오일의 복합석유화학시설에 이은 대규모 추가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에쓰오일은 울산시 온산공장서 가까운 부지 약 40만㎡를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매입했다.

현대자동차는 아람코와 수소에너지 및 미래차 분야의 기술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사가 국내에 수소충전소를 건설하고 사우디 내 수소전기차 보급 확대에 나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아람코, 사우디 산업투자공사와 함께 사우디 내 선박엔진공장을 설립하는 합작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총 4억2000만달러를 투자해 킹살만 조선소에 엔진공장을 세우게 된다.

SK가스는 사우디 석유화학기업인 APC의 자회사인 AGIC와 사우디 주바일에 프로필렌 등의 공장을 건설하는 사업의 타당성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예상되는 합작투자 금액은 18억4000만달러다.

GS는 아람코와 석유 및 가스, 석유 화학 등 에너지사업뿐 아니라 건설, 무역 등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 
 

▲ (사진 왼쪽부터)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효성은 탄소섬유 공장 설립 검토를 위한 MOU를 체결했다. 효성과 아람코는 탄소섬유 생산 기술 개발과 적용에 협력해 향후 사우디아라비아나 국내 등에 탄소섬유 공장을 신·증설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그 외 효성이 개발한 첨단신소재 폴리케톤, PPDH 등의 화학분야와 ESS, 송·배전 그리드 등 전력분야서도 상호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재계 총수들도 접촉면을 넓히는 데 적극적이었다. 빈 살만 왕세자와 국내 5대 그룹 총수들은 지난 26일 밤 서울 한남동서 깜짝 회동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가 청와대 만찬을 가졌던 직후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총수 5명은 이날 오후 7시45분쯤 삼성의 영빈관 격인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 도착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대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었다. 대기업 총수들이 이곳에 한꺼번에 모인 건 9년 전인 2010년 7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9년 만에…
총수들 집결


빈 살만 왕세자가 승지원에 도착한 시간은 이날 오후 8시45분쯤. 왕세자가 도착하기 수십분 이전부터 검은색 정장을 입은 경호 인력과 경찰이 승지원 주변을 정리했다. 삼엄한 경비 속에서 사우디 왕실 소속 취재진 역시 승지원에 입장하지 못했다.  

사우디 왕세자와 5대 기업 오너는 승지원서 약 15분간 티타임을 가졌다. 앞서 청와대 오찬에선 짧은 대화밖에 나누지 못한 탓에 따로 마련된 자리라고 전해진다. 티타임이 끝나고 오후 9시20분을 전후해 정 수석부회장, 최 회장, 구 대표, 신 회장 등 4대 기업 총수의 의전 차량이 먼저 승지원 안으로 들어가 이들을 태우고 나왔다.
 

▲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들 오너 4명이 나간 뒤 승지원의 주인 격인 이재용 부회장과 빈 살만 왕세자, 둘이서만 단독 면담을 했다고 한다. 

빈 살만 왕세자와 이 부회장은 사우디가 현재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스마트 시티 사업인 ‘네옴(NEOM) 프로젝트’ 등을 놓고 약 10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스마트시티 및 경제자유구역을 골자로 한 네옴 프로젝트의 규모는 5000억달러(약 600조원)다.

재계 관계자는 “경호 문제도 있고 과거 승지원이 해외 귀빈들을 모시는 영빈관으로 사용됐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승지원서 대기업 총수들이 모인 건 2010년 7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만찬 이후 처음이다. 당시 사의를 표명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뒤를 이을 전경련 회장을 추대할 목적으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전경련 회장단을 승지원에 초청했다.


당시 만찬에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그로부터 9년 뒤 세대교체가 이뤄진 5대 기업 리더가 무함마드 왕세자와 만나기 위해 삼성 승지원에 모였고, 이 모임을 이재용 부회장이 주재한 성격이 짙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5대 그룹 총수 총출동…한밤 중 회동 내용은?
재산 1246조7375억…세계 1위보다 9배 많아

빈 살만 왕세자가 한국 기업과 손을 잡은 것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우선 1970년대 중동 건설 과정서 쌓은 한-사우디 관계를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 산업의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수소경제·ICT 분야 협력이 가시화됐다는 점도 중요하다. 양국은 원자력 기술·안전 분야서도 지속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재계에선 빈 살만 왕세자의 대규모 경제협력 약속이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를 기대한다. 영업이익 규모만 285조원(2018년 기준)인 ‘큰손’ 아람코의 직접투자뿐 아니라, 중동 등 신시장 개척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아람코와 협력하기로 한 대기업 관계자는 “미국의 이란 봉쇄로 사우디에 대한 원유 의존도가 높아졌고, 비전 2030을 통해 사우디가 국가적 투자계획을 내놓고 있어 다양한 사업이 가능한 기회”라고 말했다. 
 

한 무역학과 교수는 “중동 비즈니스엔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며 “사우디 안팎의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실질적 상호 이득을 끌어낼 수 있도록 지속해서 관리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빈 살만 왕세자의 방문과 함께 그의 재산 규모에 대해서도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국내서 이름을 알린 맨체스터 시티 FC의 구단주 ‘만수르’보다 35배 많은 재산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빈 살만 왕세자의 재산 규모는 8500억파운드, 한화로 1246조7375억원. 

2019년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억만장자 1위인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1310억달러보다 약 9배 가까이 많다. 

상상도 못할 재산
만수르보다 35배

그러나 빈 살만 왕세자의 재산은 사우디의 사생활 보호법으로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왕가의 재산과 분리하기 힘들어 억만장자 명단에는 오르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재산가이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을 쥐고 있는 그가 한국의 주요 기업체와 회동을 가지며 관심을 표한 이번 방한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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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