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없는’ 사학비리 백태

곪을 대로 곪은 대학에 메스 댈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립대학 비리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익제보자들은 학교 비리를 고발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있다. 문제를 알고 있지만 해결은 요원하다. 공익제보자들은 사립대학을 감시해야 하는 주무부처, 교육부를 향해서도 질타의 목소리를 보냈다.
 

▲ 사학비리정책토론회 ⓒJTBC

지난 18일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서 사립대학 비리 해결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주최 아래 열린 토론회는 공익제보자들의 성토장으로 변했다. 이들은 학교의 비리를 언론 앞에서 낱낱이 고발했다사립대학은 고등교육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이하 대교연)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 대학의 85.8%가 사립대학이다. 국공립대학은 전체 대학의 14.3%에 불과할 정도로 사립대학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사립대학
80% 넘어

대교연은 우리나라처럼 사립대학의 비중이 절대적인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2018년 교육통계로 봐도 국내 430개 대학 중 372개가 사립대학으로, 전체 대학의 86.5%를 차지한다.

박 의원은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한 축을 담당해온 사립대학은 언론보도나 교육부와 감사원 감사, 수사기관 수사 등을 통해 대학재단이나 설립자, 이사장, 대학총장, 교원 등의 각종 회계부정, 입시·채용비리 등이 심심치 않게 적발돼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렇게 계속해서 발생하는 사립대학의 비리는 교육계서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 중 하나라며 그럼에도 사립대학 비리는 일부 대학의 비위나 개인의 일탈로 치부돼왔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 많은 전국의 사립대학 중 단 한 번도 교육부 감사를 받지 않은 곳이 절반이 넘는다. 또 감사를 받았다고 해도 부실·봐주기 감사에 대한 의혹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립대학의 비리를 넘어서 교육부에 대한 신뢰도도 사실상 바닥을 치고 있는 셈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공익제보자들은 발언 도중 교육부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박 의원은 토론회에 앞서 현장서 공익제보자들의 공개 제보를 받는 시간을 가졌다. 현장에 나와 있는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 관계자에게 직접 제보하는 방식을 통해 공익제보자들이 부패방지법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도록 했다.

박용진 의원 사학혁신법 토론회
공익제보자들 학교·교육부 비판

건국대, 경성대, 배화여대, 부산대, 강원관광대, 상명대, 목원대, 국민대, 한국외대 등의 비리를 고발하기 위해 나선 공익제보자들은 그동안 교육부서 제대로 된 감사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부 공익제보자들 사이에서는 교육부를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박 의원이 공개한 역대 사학비리 실태는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박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사학비리 현황자료에 따르면, 전체 293개 대학(4년제 167, 전문대 126)서 교육부 감사,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적발된 재단횡령, 회계부정 등 사학비리 건수는 1367, 비위 금액은 26244280만원에 달했다.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사립대 1개 대학당 4.7, 91492만원의 비위가 적발된 것이다. 권익위 발표보다 4배 이상 높은 액수다.

올해 1월 권익위는 교비횡령, 채용·학사비리 등 각종 부패행위에도 대학의 자율통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 대학의 재정·회계 부정 등 방지 방안을 마련해 교육부, 한국사학진흥재단,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권익위에 따르면 20171월부터 20187월까지 교육부가 감사를 진행해 결과가 공개된 30개 대학의 위반건수는 350건이며, 위반액은 수의계약 체결, 분리발주 위반 등을 제외하면 646억원 수준이다. 문제는 박 의원이 발표한 실태는 사립대학들이 자진해서 낸 자료를 취합한 결과를 토대로 나온 것이어서 제대로 조사를 하게 되면 비위 금액은 2624억원을 크게 웃돌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고려대, 연세대 등 일부 사립대는 최근 교육부 감사를 통해 비위 사실이 적발됐지만 비위건수와 금액을 ‘0’으로 제출했다. 감사원 감사를 통해 수익용 임대보증금 임의사용이 적발돼 393억원을 보전 조치하라고 요구받은 건국대의 경우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는 해당 없음으로 표기했다.

등록금·세금
유치원보다↑

박 의원은 향후 일부 대학이 제출한 자료가 허위로 밝혀지면 교육부를 통한 행정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교육부 역시 각 대학에 자료제출 공문을 보낼 때 자료제출에 불응하거나 허위 자료를 제출하는 경우 학교 또는 이사장에게 행정조치 등이 이뤄질 수 있다고 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이날 토론회서 사립대학 비리 문제는 사립유치원 사태와 비교해 확대 복사판이라고 말했다. 사립유치원과 사립대학의 비리 행태가 비슷하다고 지적하면서 비위 금액의 차이가 수백억, 수천억원으로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또 사립대학들이 회계부정을 저지른 돈은 대부분 학생들의 등록금과 국비지원서 나왔다고도 강조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번에 자료를 제출한 293개 대학 중 4년제 대학 167개 대학의 2018 회계연도 전체 예산은 187105억원이다. 이 중 99354억원은 등록금이다. 대학 예산의 절반 이상(51.3%)이 학생과 학부모의 주머니서 나왔다. 15.2%28572억원은 국비지원금이었다. 다시 말해 대학 1년 예산의 70%에 달하는 돈이 국민이 낸 교육비거나 세금이다.

전문대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126개 대학 2017 회계연도 전체 예산 43943억원 중에서 등록금은 54.9%(24157억원), 국비지원은 23.3%(1237억원)으로, 등록금과 세금 비중이 전체 예산의 78.2%를 차지했다.

공익제보자들은 등록금과 세금이 총장·이사장 등 일부 학교 관계자들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친인척 채용 및 인사비리, 총장·이사장 일가의 갑질, 학교 예산 남용, 심지어 지역 건설사와의 유착 의혹 등의 문제를 꺼내들었다. 이들은 교육부의 감사와 수사기관의 수사를 통한 학교 정상화, 관계자 처벌을 요구했다.

A예술대학교와 학교법인은 수익용 기본재산 횡령 법인자금 투자 등 부당 직원 채용 및 인건비 집행 부당 복리후생비 등의 사적 사용 등 41건을 지적받았다. 특히 전형절차나 업무능력에 대한 검증 없이 이사장의 자녀를 채용하고, 출근이나 업무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5900만원의 급여를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교육부는
뭐했나?

또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해 총 90회에 걸쳐 골프장 비용 2059만원을 결제하거나 48회에 걸쳐 미용실서 314만원을 사용한 사실도 적발됐다. 교직원 3명이 총 183회에 걸쳐 유흥주점 등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B전문대학과 학교법인은 수익용 기본재산 취득 부당 채권 임의 면제 건물 임대 관리 부당 등 총 14건을 지적받았다. B전문대 전 이사장은 학교에 수익용 건물을 증여했는데, 퇴임한 뒤 전 이사장의 가족이 건물에 무상으로 거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차인이 계속 임대료를 내지 않는데도 별다른 조처는 취해지지 않았고, 미수 임대료가 9억원을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 교육부

C대학교는 20132014년 총장 소송 관련으로 추정되는 김앤장 자문비용 47960만원을 교비회계서 집행했다. 자문계약서나 자문결과서 등 지출에 대한 구체적인 증빙자료는 남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D대학교는 2014년 투자가능등급(A-)에 미달하는 BBB0 등급의 한진해운 76-1채권을 장학기금으로 30억원 매입하는 등 채권 투자가능등급에 미달하는 채권 총 4, 135억원어치를 샀다. 이로 인해 2017년 조사 당시 78억원의 손해를 본 상태였다.

학교 법인카드로 유흥주점, 단란주점서 1168만원을 사용한 E대학교, 교직원이 총 5회에 걸쳐 자녀를 기부자의 동의 없이 장학금 지급 대상자로 임의 지정해 700만원을 부당 수령한 F가톨릭대학교 등 비리 유형은 다양했고 그 규모도 상당했다.

박 의원은 사립대학서 일어나고 있는 비리를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구조적·제도적으로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8일 토론회는 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사학비리 해결을 위한 사립학교법 일부 개정 법률안, 일명 사학혁신법을 논의하는 자리기도 했다.

회계부정 등 비리 백화점 수준
한 번도 감사 안 받은 대학 있어

앞서 17일 박 의원이 발의한 사학혁신법은 사립학교 재단법인의 임원 요건을 강화하고 이사회 회의록 작성 및 공개 강화, 회계부정 시 처벌 강화 등에 초점을 맞췄다. 현행법은 학교법인 이사의 4분의 1만 개방이사추천위원회가 추천한 사람으로 선임하면 되지만, 개정안에서는 그 비율을 절반 이상으로 늘렸다. 또 학교법인 이사장(설립자)8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배우자 등 친족은 개방이사로 선임할 수 없도록 했다.


앞으로는 회계부정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도 강화된다. 현행법상으로는 사립학교 비위 행위를 제대로 적발하지 못해 교육부나 감사원의 행정 처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개정안에는 회계부정이 적발될 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처벌조항을 못 박았다.

또 이사회 회의록 작성과 공개도 강화했다. 기존 법에도 이사회 회의록을 작성하도록 돼있지만 기록이 어려운 사정이 있으면 안건별 심의의결 결과만 적을 수 있는 면피조항이 있었다. 개정안에서는 이 조항이 삭제되고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의사록에 발언한 임원과 직원의 이름을 포함하도록 했다.
 

박 의원은 사학혁신법에 대해 사실상 유치원3법의 사립대학 버전이라고 보시면 된다사립대에 지원되는 국가재정이 사립유치원보다 많다. 국민들도 상당히 많은 돈을 사립대학 운영을 위한 교육비로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사립대학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면서 경영 비리의 온상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과 공익제보자들의 사립대학 비리 고발에 교육부가 칼을 빼들었다. 지난 19일 교육부는 2021년까지 3년간 대형 사립대학에 대한 종합감사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종합감사는 법인 이사회 운영이나 재산 운용·관리, 대학의 입시·학사·교직원 인사·예산 및 회계 등 운영 전반을 감시한다. 그 범위와 강도가 높기 때문에 종합감사 대상이 된 대학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서울 주요대학
종합감사 할까

교육부는 매년 3개교를 대상으로 진행하던 종합감사를 5개교로 늘린다는 방침도 밝혔다. 종합감사 대상도 총 정원 4000명 이상의 대학 중 무작위 추첨 원칙에서 총 정원 6000명 이상의 대학 전체로 확대키로 했다특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종합감사를 받지 않은 사립대학이 대상이다. 권익위에 따르면 1979년 이후 교육부 종합감사를 받지 않은 사립대는 113개교에 달한다. 최근 교육부 회계감사서 비리 사례가 적발된 고려대를 비롯해 연세대, 이화여대, 한양대 등 서울 주요 사립대들이 감사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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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마지막 관문 ‘헌법 제84조’ 대해부

이재명 마지막 관문 ‘헌법 제84조’ 대해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앞길에 주황불과 녹색불이 번갈아 들어서고 있다. 2심서 무죄를 받은 공직선거법 판결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면서 여전히 사법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형국이다. 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남은 재판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정치권은 ‘대통령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를 나노 단위로 뜯어 살피고 있다. 지난 1일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되면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당선돼도 찝찝하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2021년 20대 대선후보이던 당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모른다”는 발언과 국정감사에서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과정에 “국토교통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말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이 같은 발언은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구체적으로 1심 재판부는 이 후보의 “김 전 처장과 골프 친 사진은 조작됐다”는 발언을 유죄로 봤지만 2심 재판부는 “김 전 처장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취지고, 아무리 확장 해석해도 같이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해석할 여지는 없다”며 1심을 뒤엎었다. 백현동 발언에 대해서도 “의견 표명에 해당하기 때문에 허위 사실 공표로 해석할 수 없어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무죄 판결이 난 바로 다음 날 검찰은 곧바로 상고했다. 항소심이 끝난 지 하루 만에 상고장을 접수한 만큼 대법원 판단을 빠르게 받아보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대법원서 다루는 상고심은 항소심 재판에 대한 불복 신청을 토대로 하는 만큼 사실관계를 판단하지 않는 법률심이다. 판결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신속하게 원칙에 따라 재판을 해서 정의가 바로잡히기를 기대한다”며 내심 유죄를 희망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대법원서 판결이 뒤집혀야 한다고 보느냐’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항소심 법원의 논리를 잘 이해할 수 없다. 대법원서 바로잡혀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1심과 2심의 판단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대법원서 결정을 내려줘야 법적인 논란이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 된 밥에 또…파기환송 ‘주황불’ “노골적 대선 개입” 대법원장 탄핵? 반면 민주당 사법정의실현 및 검찰독재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내고 “윤석열의 즉시항고를 포기한 검찰은 이 대표에 대한 상고도 포기하길 바란다”며 맞불을 놨다. 민주당의 바람과 달리 대법원은 법리 해석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해 무죄였던 2심 판결을 깼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는 “‘골프 발언’과 ‘백현동 관련 발언’은 공직선거법 250조 제1항에 따른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며 “2심 판단에는 공직선거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전합 선고에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 11명 등 총 12명이 참여했다. 대법원은 이 후보의 “사진이 조작됐다”는 취지의 발언은 허위 사실 공표가 맞다고 판단했다. 백현동 용도변경과 관련해서도 “국토부가 성남시에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피고인이 허위 발언을 했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이번 선고는 대법관 10명 다수 의견으로 유죄 취지 파기환송이 결정됐고 2명이 반대 의견을 냈다. 반대 의견을 낸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골프 발언은 6~7년 전에 있었던 기억을 주제로 한 발언에 불과하고, 백현동 관련 발언은 국토부의 의무 조항을 지적한 부분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닥쳐온 위기에 민주당은 “노골적인 대선 개입”이라며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하겠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통상 파기환송심은 상고심 판결에 기속되는 만큼 불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의 탄핵에 속도를 냈지만 이 후보는 “당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며 다소 거리를 뒀다. 문제는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에 관한 해석은 밝히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소추’의 정의를 놓고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까지 해석이 갈린 것이다. 어떻게 읽어도…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소추는 ‘형사 사건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는 일’로 정의할 수 있다. 소추의 범위가 ‘검찰의 공소 제기’만을 의미하는지, ‘진행 중인 재판’까지 포함하는지가 최대 관건이다. 현직 대통령을 내란, 또는 외환죄가 아니면 새로 기소할 수 없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내·외환죄가 아닌 죄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던 중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자로 풀어서 본다면 소는 기소, 추는 좇다, 즉 소추는 ‘공소와 공소 유지’를 뜻해 재판을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게 첫 번째 해석이다. 기소가 중단될 수는 있지만 진행 중인 재판까지 중단시킬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된다면 이 후보는 대통령선거에 당선되더라도 재임 중 5개 사건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현재 이 후보는 ▲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선거법 위반·위증교사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 하나라도 유죄가 확정된다면 대통령직서 물러나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반면 소추가 기소까지만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된다면 이 후보의 모든 재판은 당선 즉시 중단된다. 이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해석으로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검사의 수사와 소추권을 다룬 ‘검수완박’ 권한쟁의심판 사건의 각하 결정에 대한 반대 의견이 다시 주목된다. 당시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헌법재판관은 “형사상 소추는 심판 기관과 분리된 소추권자가 유죄 판결 및 적정한 처벌을 구하는 활동으로 소추 기능은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의 결정 및 공개된 법정서 피고인의 상대방 당사자로서 수행하는 변론 및 입증 활동, 이에 관한 법원의 재판에 대한 불복 등을 포함한다”고 밝힌 것이다. 만일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재판 진행 여부는 이 후보의 재판을 맡은 각각의 재판부의 몫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법원이 헌법 제84조와 관련해 개별 재판부에 재판을 어떻게 운영하라고 지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각 재판관이 알아서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구조상으로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법률심으로 만약에 그런 쟁점을 다루게 된다면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본다면 고등법원과 지방법원 등 재판부가 헌법 제84조를 해석해야 하지만 최종 결론은 대법원의 몫이 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권한쟁의심판까지 이뤄진다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까지 다방면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헌재가 대통령과 법원 사이서 어떤 해석을 내리는지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한차례 끓어 올랐던 헌법 제84조 논란은 이 후보의 최종심 날짜가 연기되면서 일단락하는 분위기다. 지난 7일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가 오는 15일 예정됐던 첫 공판을 대선 이후인 다음 달 18일로 연기한 것이다. 재판부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함”이라며 재판 기일을 대통령선거일 이후로 변경했다. 이로써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는 사실상 해소됐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마찬가지로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 사건 등의 공판기일도 다음 달인 24일로 변경되면서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민주당의 날선 반응도 다소 누그러졌다. 상고심 일정이 연기되면서 한숨 돌리나 싶더니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서 대통령 당선 시 진행 중인 형사 재판을 정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삼권분립이 붕괴된 좋지 않은 선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불소추특권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확실히 못을 박는 분위기다. 이 후보의 파기환송이 결정된 다음 날인 지난 2일 법사위원장인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자신의 SNS에 “국민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대법원의 비이성적 폭거를 막겠다. 헌법 제84조 정신에 맞게 곧 법 개정안(재판중지)을 법사위서 통과시키겠다”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예고대로 지난 7일 민주당은 형사소송법 제306조에 ‘피고인이 대통령선거에 당선되면 당선된 날부터 임기 종료 시까지 공판 절차를 정지한다’는 내용 신설을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원회서 단독 처리했다. 대통령이 재판을? ‘소추’ 범위 물음표 최종심 연기됐지만…개정안 밀어 붙인다 민주당은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헌정 수행 기능 보장을 위한 불소추특권을 규정하고 있으나, 현행 법령 체계에서는 기소 후 재판이 계속되는 경우 이를 중단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재판 계속은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형사·사법기관이 대통령을 대상으로 재판을 계속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법안 상정 당시부터 반발하며 퇴장했다. 권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서 “이런 무도한 집단이 깡패집단이지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며 “차라리 ‘이재명 유죄 금지법’을 제정하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왜 애꿎은 허위 사실 공표죄만 개정하느냐. 이참에 위증교사죄도 폐지하라. 대장동·백현동 관련 죄도 폐지해서 이 후보를 무죄로 만들라”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법무부는 “대통령 취임 전에 범한 범죄는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무관함에도 재판을 정지하는 것은 공직 자격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률 규정을 무력화하고 자격이 없는 피고인에게 부당하게 그 임기를 보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로써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고 헌법 수호 의무를 지는 대통령의 지위와도 배치되는 측면이 있어 국민 신뢰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신인도 및 국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한동훈 전 대표 역시 “이 후보의 재판 날짜를 잡으면 권력을 총동원해서 팔을 비틀고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가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되지 않을 것 같으니 재판을 못하도록 법을 위헌적으로 뜯어고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유죄 판결을 한 대법원장이 보복 특검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눈앞에 와 있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헌법 제84조에 대해 “만사 때가 되면 그때 가서 판단하면 된다. 법과 상식, 국민적 합리성을 가지고 상식대로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어차피 부질없다 헌법 제84조와 소추의 정의를 놓고 저마다 해석에 나섰지만 이 후보의 최종심 날짜가 대선 이후로 연기되면서 의미 없는 논쟁이 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강신업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소추에 대한 정의는)대법원이 결정하면 그만인데, 만약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권한쟁의심판을 할 것이고 해당 문제는 헌재로 가게 된다”며 “(대통령이 된 이 대표가)두 명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 헌재를 장악하는 수순이다. 결국 헌재는 대통령 편을 들 테니 사실상 그때 가서 헌법 제84조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그래도 달리는 이재명 대권 열차 대선 기간 동안은 사법 리스크 부담을 지우게 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본격적으로 민생·경제에 집중할 전망이다. 우선 이 후보는 지난 8일 경제5단체장을 만나 경제위기 극복에 방점을 찍었다. 이날 이 후보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등 각 단체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내수 침체, 민생 경제 등을 논의했다.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12일부터는 ‘빛의 혁명’의 상징인 서울 광화문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선거 유세에 나선다. 한편 이 후보와 별개로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거취를 압박하는 등 사법부를 겨냥한 전방위 공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