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일 오후 3시, 주말의 끝자락이자 다음 일주일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일요일 오후 3시를 대하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작가 빈우혁에게는 그 시간이 어떤 의미였을까. 빈우혁의 개인전이 서울에 상륙했다.
챕터투(CHAPTERⅡ)는 국내외 미술가들과 기획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공간이다. 학과과정을 마치고 사회로 나아가려는 젊은 미술가들에게 예술활동의 제2장을 마련해준다는 의도가 담긴 공간이기도 하다.
1년의 성과
챕터투가 작가 빈우혁의 개인전 ‘일요일 오후 세시 3pm on Sunday’를 준비했다. 연남동의 전시공간서 열리는 빈우혁의 이번 전시는 그가 지난 1년 동안 머물던 챕터투 레지던시서의 성과를 선보이는 자리다.
빈우혁은 서울과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과 색채 감각을 구축했다. 전시 제목인 일요일 오후 세시는 주제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빈우혁이 수시로 거닐던 베를린 근교 숲의 정경이 내포한 내밀한 느낌에 대한 시간적 표상이다.
갤러리 한가득 숲의 정경이 펼쳐져 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만번의 풍화와 침식 작용을 거쳐 서서히 조성된 오래된 숲의 중심부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호숫가 혹은 늪지대의 풍경이다.
자연은 항상 그럴 듯한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머물고 뇌리에 각인돼있다. 풍경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작가의 상상서 비롯된 산물인지에 대해서는 알 방법이 없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한 ‘낯선 친숙함’을 표현한 듯하다.
비판·풍자·논쟁 없이
그리는 행위에만 집중
어디엔가는 존재할 듯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 수면 위에 펼쳐진 주변 숲의 어른거림, 부유하는 수련과 흩뿌려진 나뭇잎들은 시시각각 변한다. 빈우혁이 실제 이 풍경을 봤다 해도 그 또한 다시 그런 정경을 마주칠 기회는 거의 없을 듯하다.
일요일 오후 3시, 주말이 저녁으로 접어드는 시간대이자 서서히 숲에 새로운 방문객들이 잦아드는 시간이다. 태양은 최고점을 지나 서쪽으로 기울고 숲의 그림자는 점차 크게 눕는다. 잔바람이 수면을 일렁이게 하고 주변 나무를 스친다.
나뭇잎을 거쳐 녹색으로 발하는 햇빛은 그림자와 함께 수면에 다채로움으로 빛난다. 오래전 인상파 화가들이 감탄해 마지않았을 그 순간 빈우혁은 큰 평화와 삶의 오묘함을 느꼈다. 그 순간은 그에게 순수화가가 지향해야 하는 이상향이 됐다.
빈우혁은 풍경을 화폭에 담을 때 그 이면에 어떤 비판이나 의미도 담지 않는다. 서사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작품에는 오롯이 풍경만이 남는다. 비판이나 풍자, 불필요한 논쟁, 철학적 차용을 자제하고 그리는 대상과 행위 자체에 주목한다.
순수추상의 대작인 ‘Abyssus’는 숲의 정경에 대한 탐구서 빈우혁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알려주는 작품이다. 형태적으로 익숙한 이미지가 배제된 거대한 화면은 인접한 구상 작품을 통해서만 그 출처를 알 수 있다.
짙은 녹색과 검은색이 지배하는 캔버스. 작품은 반복되는 붓질이 만들어낸 희미한 캔버스 흰 바탕의 노출에만 의지하면서도 화면 전체에 오묘한 빛을 흩뿌린다. 수면의 작은 한 부분, 자연의 기본 요소가 응당 품고 있는 추상성에 대한 세밀한 탐구가 거대하고 심오하게 다가온다.
빈우혁은 지난해 김희정 문화 칼럼니스트와의 인터뷰서 “현실 비판적 요소나 사회적인 문제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부조리를 개선하고 바꾸고자 하는 열망의 기본이기는 해도, 어느 순간 드러내려 애쓰는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느낀 현실을 100% 알 수 있는 사람들도 없을 뿐더러 설령 그림서 묻어난다고 해도 원하는 변화는 쉽게 오지 않는다”며 “어느 순간 내가 사는 이 사회에 대해 포기하게 되는 부분이 생겼고, 어떤 면에서는 내가 느끼는 괴로움을 물리적으로 소거해나가는 그 자체가 더 중요했다”고 밝혔다.
그래도 현실
김희정 칼럼니스트는 “빈우혁은 현실을 부정하면서도 현실을 살아간다”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우리도 빈우혁의 그림을 보면서 우리만의 이상적인 현실은 어떤 모습일지 한 번쯤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jsjang@ilyosisa.co.kr>
[빈우혁은?]
▲학력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 졸업(2013)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사 졸업(2010)
▲개인전
‘공기그림자: Luftzeichner’ 경기도미술관 프로젝트 갤러리(2018)
‘LIVE-WALL-REVERY: 외롭고 오래된 공상’ 두드림 미술관(2017)
‘Luftwald: 루프트발트’ 갤러리 바톤(2017)
‘Omnibus: 옴니버스’ ArtCenter BukGu(2016)
‘WURDENTRAGER: 균형조정자’ 스페이스 오뉴월(2016) 외 다수
▲수상
경기문화재단 북부문화사업단 문화예술지원사업(2017)
경기도미술관-경기창작센터 퀀텀점프 작가 선정(2017)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 시각예술분야 선정(2017)
한국은행 신진작가(2016)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 시각예술분야 선정(2016)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