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대권도전 선언'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7.02 12: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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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패의 사나이' 대권경쟁에서도 기적 이뤄낼까?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정책위의장 2번, 원내대표 1번, 당 대표 3번' 남들은 한번 하기도 힘들다는 당직을 두루 거치며 일명 '당직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바 있는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지난 달 26일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정 고문은 대선출마선언문을 통해 "이명박 새누리당 정권 4년 반 만에 중산층과 서민의 삶이 완전히 무너졌다. 대다수 국민들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안감 속에서 아침을 시작하고, 고통과 무력감 속에서 하루를 마치고 있다"고 탄식했다. 출마선언문을 읽어 내려가는 정 고문의 목소리에선 팍팍하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서민에 대한 연민과 정권교체에 대한 비장한 각오가 느껴졌다.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지난 달 26일 자신의 지역구인 종로 광장시장에서 민주당 의원 40여 명과 지지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빚 없는 사회, 편안한 나라, 든든한 경제대통령"을 구호로 제18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 4.11 총선에서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 대결에서 친박계의 좌장격인 홍사덕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며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바 있다.

낮은 존재감
저평가 우량주?
 

서울 종로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는 불모지와 같은 곳이었기에 정 고문의 기쁨은 더욱 컸다. 정 고문 스스로도 "종로에서 국회의원이 돼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이번 승리를 통해 정 고문은 '무패의 사나이'라는 자신의 닉네임을 이어가게 됐다. 정 고문은 지금까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해본 적이 없는 무패의 사나이다. 그야말로 승승장구의 인생을 살아온 그다.

지난 1978년 쌍용그룹의 평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정 고문은 쌍용에서 상무이사의 자리까지 오르며 승승장구 했다. 지난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된 후엔 내리 5선을 했다. 민주당의 사지라고 불렸던 종로에서도 살아 돌아온 그다. 이 과정에서 정 고문은 정책위의장을 2번, 원내대표를 1번, 당대표를 3번 맡으며 '당직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무척 화려한 경력을 가진 정 고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낮은 존재감'이다. 

일각에선 관리형 정치인의 숙명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정 고문은 자신을 '저평가 우량주'라고 자평한다. 지금까지 정치를 하면서 많은 성과를 얻어냈는데도 전혀 부각이 안 됐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당대표를 3번이나 맡을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항변이었다.


당직 트리플크라운 달성했지만 낮은 존재감 '굴욕'
"든든한 경제대통령 될 것" 경제전문가 이미지 부각

정 고문은 대선출마선언을 통해 '경제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또 이 과정에서 '분수경제'라는 특이한 용어를 사용해 주목을 받았다. 정 고문은 "분수경제는 경제성장 동력을 서민과 중산층, 중소기업에서 찾겠다는 의미로 대기업의 수익이 사회로 돌아간다는 '낙수경제'에 대비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분수경제'는 정 고문이 직접 만들어 낸 개념으로 서민과 중산층, 중소기업 등 경제의 하층부에 실질적인 혜택을 줘 그 효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라 경제 전체로 퍼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 출신인 정 고문이 재벌개혁과 중소기업 강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겠냐는 비판도 있다. 이에 대해 정 고문은 "대기업을 제대로 알면 중소기업도 잘 아는 법이다. 2차방정식을 잘 풀면 1차방정식은 쉽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중심의 허리가 튼튼한 '항아리형' 산업구조로 바꿔 내수진작의 힘으로 투자와 생산이 강화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정 고문은 종로 광장시장을 대권선언 장소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4.11 총선에서 승리를 이룬 지역구로서 종로는 정치 1번지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고 '광장'이라는 이름은 소통과 민주주의를 나타내는 말이며, 시장이라는 장소는 분수경제의 서민경제를 대변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분수경제론 주장
서민 살리기 주력

한편 정세균 고문은 지난 1950년 전북 진안에서 4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가족으로는 배우자 최혜경씨와 1남 1녀가 있다. 가난한 가정환경과 오지의 환경에서 자란 그는 검정고시를 치르고서야 중학교 졸업 자격증을 얻을 수 있었다. 가정형편 때문에 전주공고에 입학했던 그는 대학진학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전주 신흥고로 전학하게 된다. 그는 신흥고에서 뛰어난 성적을 바탕으로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과 대학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대학 신문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졸업 후 <동아일보>에 입사지원 했지만 유신정권의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에 충격을 받고 1978년 쌍용그룹에 입사했다.


그는 쌍용그룹에서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쌍용그룹의 종합상사 주재원으로 일했다. 그런 가운데 뉴욕 주재원 시절 뉴욕대학교에서 행정학을 공부하고 LA주재원 시절엔 페퍼다인 대학교에서 MBA까지 취득하게 된다. 이후 그는 쌍용그룹에서 상무이사 자리에까지 오르며 1995년까지 수출입 업무를 맡았다. 미국에서 MBA를 마치고 오랫동안 기업인으로 활동한 경험은 유독 그가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다.

이렇듯 기업인으로도 승승장구의 행보를 가고 있던 정 고문은 지난 1995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제안을 받고 김대중 총재 특별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정고문은 정치 입문 후 불과 1년 만인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후 정 고문은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내리 다섯 번이나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특히 지난 19대 총선에서는 종로에서 홍사덕 의원을 꺾었다. 야당 의원이 종로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24년만의 일이었다.

미스터 스마일맨
허허실실 '외유내강'

그는 정치에 입문한 이후 기업에서의 경영 경험을 살려 지난 1998년 IMF 외환위기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 간사와 상무위원장직을 수행하며 현대자동차 노사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해내는 등 경제통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또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중앙선대위 국가비전 21위원회 본부장과 경제특보를 맡아 대선 승리에 일조하기도 했다. 이후 열린우리당에서는 정책위의장을 거쳐 2005년 당의장직에 올랐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등 여파로 분열된 당을 통합하는 데 기여했으며 2007년에는 열린우리당의 의장으로 선출돼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합당되기 전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의장이 됐다. 2006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장관을 역임하며 글로벌 경제 감각을 단련했고, 2008년에는 민주당 대표로 당선돼 세 번째로 당을 이끌었다. 이후 2010년에도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으나 손학규 상임고문에게 밀려 최고위원에 머물렀다.

정 고문은 당내에서 '미스터 스마일맨'으로 통한다. 항상 웃는 얼굴로 빈틈이 많아 보이지만 실상은 '허허실실' 웃으면서도 성과를 내고 실적을 착실히 쌓는 '외유내강'형 인물이라는 뜻이다. 정 고문을 지지하는 세력은 강기정, 문희상, 원혜영, 유인태, 이미경, 전병헌, 최재성 의원 등 현역의원만 45명이나 된다.

정 고문의 씽크탱크 격인 '국민시대'에는 장하진 전 여성부장관과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가 공동대표로 포진하고 있고 김근식(경남대), 박찬표(목포대) 교수 등 260여 명의 정책위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후원회장은 <은교>로 유명한 소설가 박범신씨가 맡고 있다.

'야당필패' 종로서 24년만의 승리 일궈낸 저력
민주 대권, 다자구도 형성…대권경쟁 '흥미진진'

정 고문의 가장 큰 장점은 특별한 도덕적 결함이나 약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 고문에 대해 "대통령을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실제로 현재 당내 대권주자들 간의 순위경쟁에서는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등 ‘빅3’에 밀려있다. 그들과 비교해서 소위 '꿀릴 것'이 없는 경력과 능력을 자랑하지만 막상 지지율에선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 고문은 이에 대해 "지금 당장은 지지도가 낮지만 저의 진정성과 경험, 전문성을 알리고 후보들을 검증하는 프로세스가 진행된다면 국민들에게 신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정 고문의 이번 대권도전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 정치 전문가는 "이제는 정치적으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정 고문이기 때문에 대권은 그가 언젠가 한 번은 도전해봐야 할 숙명적인 목표였다. 하지만 박근혜와 안철수, 문재인 등의 3강 체제가 이미 고착화되어 있는 이번 대선에서 과연 정 고문이 얼마만큼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종로구에서의 값진 승리를 바탕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정 고문의 정치적 행보에 찬물만 끼얹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정 고문은 경제 전문가라는 강점을 살려 당내 경쟁자들과 최대한 차별화를 시도하겠다는 계획이다.

경제전문가 부각
경쟁자와 차별화

정 고문은 "현재 우리나라는 내수기반이 무너지고 일자리와 수출도 줄고, 금융위기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으로 특히 농어업은 이미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며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가계부채 해결 및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대를 통한 빚 없는 사회, 남녀와 세대, 지역, 학력의 구분 없이 국민이 편안한 사회, IT융합산업과 의료·바이오산업, 신재생 에너지사업 등 첨단, 선도산업의 육성을 통해 제2의 IT신화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제18대 대선이 불과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무려 17년간의 정치생활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없다는 주위의 평가에 굴욕을 당해왔던 그가 이번 대권도전으로 확실히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을지, 다가오는 대선은 그의 도전으로 점점 더 흥미로워 지고 있다.

 

<정세균 고문 프로필>

▲ 1969년 전주 신흥고 졸업
▲ 1973년 고려대학교 총학생 회장
▲ 1974년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 1978년 쌍용그룹 입사
▲ 1995년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 전북도지부 회장
▲ 제15~19대 국회의원
▲ 산업자원부 장관
▲ 열린우리당 당의장
▲ 민주당 대표
▲ 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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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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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