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들도 보는‘ 지라시의 세계

죽었다·불륜·사귄다…사람 잡는 ‘받은 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유명 PD와 여배우의 불륜설이 담긴 지라시가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유포됐다. 순식간에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온라인 커뮤니티, SNS가 해당 내용으로 도배됐다. 진위 여부 확인보다 확산 속도가 훨씬 빨랐다. 4개월 뒤 문제의 지라시를 만든 사람들이 붙잡혔다. 지라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 요즘 초등학생들도 본다는 지라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카카오톡 등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받은 글이 돌기 시작했다. 나영석 CJ ENM PD와 배우 정유미씨의 불륜설이 담긴 지라시였다. 지라시에는 “#PD 티비엔(tvN)이랑 재계약 못 하고 퇴출당하는 분위기. 이유는 정유미와 불륜. 홍상수급으로 방송계서 버려지는 분위기라는 내용이 담겼다.

여기에 “<디스패치>도 알고 있는데 씨제이(CJ)가 돈 주고 막았음등 추가 내용이 붙은 지라시가 메신저는 물론 온라인 커뮤니티, SNS를 통해 마구잡이로 확산됐다. 지라시가 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두 사람의 이름이 올라왔다. ‘나영석’ ‘정유미’ ‘나영석 정유미’ ‘나영석 정유미 불륜등 관련 단어가 검색어 순위를 점령했다.

진짜야?
가짜야?

나영석 PD와 정유미는 tvN 예능프로그램 <윤식당>의 연출자와 출연자로 관계를 맺었다. 두 사람의 불륜설이 급속도로 유포되자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 추측성 글이 쏟아졌다.

그러자 나영석 PD는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해당 내용은 모두 거짓이며 최초 유포자와 악플러 모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저 개인의 명예와 가정이 걸린 만큼 선처는 없을 것임을 명백히 밝힌다“(소속사인) CJ ENM 및 변호사와 이와 관련한 증거를 수집 중이며 고소장 제출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정유미의 소속사도 강하게 대응했다. 매니지먼트 숲은 사실무근인 내용을 무차별적으로 유포하고 사실인 양 확대 재생산해 배우의 명예를 실추하고 큰 상처를 준 행위에 대해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말도 안 되는 루머에 소속 배우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조차 매우 불쾌하다고 설명했다.

악성 루머의 최초 작성자와 유포자, 온라인 게시자, 악플러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 증거 자료 수집을 끝마쳤고, 오늘 법무법인을 통해 고소장을 접수할 예정이라며 속칭 지라시를 작성하고 게시·유포하는 모든 행위는 법적 처벌 대상이며 이번 일에 대해 어떠한 협의나 선처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나영석·정유미 불륜설 지라시를 최초로 만들고 퍼트린 사람들이 붙잡혔다. 지난 12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두 사람에 대한 지라시를 최초로 작성한 방송작가 A씨 등 3명과 이를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에 게시한 간호사 B씨 등 6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에 욕설 댓글을 단 C씨도 모욕 혐의로 입건됐다.

가짜뉴스에 온라인 들썩
4 개월 만에 작성자 잡아

출판사에 근무하던 프리랜서 작가 A씨는 지난해 1015일 방송작가들로부터 들은 소문을 지인들에게 전송했다. 이 내용은 몇 단계를 거쳐 IT업체 회사원 D씨에게 전해졌고, 그는 지라시 형태로 이를 재가공해 회사 동료들에게 보냈다.

또 다른 버전의 지라시를 작성한 사람도 있었다. E씨는 지난해 1014일 다른 방송작가로부터 들은 소문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작성해 동료 작가에게 전송했다. E씨가 만든 지라시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확산됐다.

경찰에 따르면 짜깁기 형태로 가공을 거듭한 지라시는 약 120단계를 거쳐 기자들이 모인 오픈 채팅방으로까지 전해졌고, 이후 일반인들에게로 급속히 퍼졌다. 지라시를 최초 생산한 방송작가 등은 소문을 지인에게 전했을 뿐 문제가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입건된 피의자 10명 가운데 중간 유포자 1명을 제외한 나머지 9명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는 방침이다.

나영석·정유미 불륜설이 담긴 지라시에 함께 거론된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도 지라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당시 양현석 대표는 지라시로 인해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제니와 염문설에 휩싸인 바 있다.
 

▲ 배우 정유미

지난 13YG는 허위사실 유포자와 악플러 고소 건에 대한 진행 상황을 언론에 밝혔다. YG아티스트의 근거 없는 악성 루머가 담긴 지라시 최초 유포자는 20대 초반의 여성으로, 해당 피의자는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고 전했다.

YG는 지난해부터 악의적이고 왜곡된 루머 양산에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팬들의 제보와 법무팀 별도 모니터링을 통해 악플러들을 상대로 대규모 고소·고발을 진행 중이다.

가공되고∼
확산되고∼

그러면서 이미 기소된 사건을 포함해 검찰에 송치됐거나 송치 예정인 사건은 현재 6이라며 올해도 근거 없는 루머에 대해 엄격한 대응 자세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지라시로 인해 피해자가 나타나고, 이들의 법적 조치로 최초 작성자와 유포자가 밝혀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라며 진위여부에 대한 파악 없이 확대·재생산했던 누리꾼에 대한 조사도 현재진행형이다. 문제는 그런 와중에도 또 다른 내용의 지라시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퍼진다는 점이다.

지라시는 뿌리다라는 뜻의 일본말 지라스서 유래한 말로, 통상적으로 '찌라시'라는 말로 많이 쓰인다. 보통 받은 글이라는 표현으로 시작되는 지라시는 작성과 유포를 통해 진실처럼 자리 잡는다. 대상이 되는 사람은 이름이 잘 알려져 있는 연예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극적인 문구와 인지도 높은 연예인의 조합은 폭발적인 파괴력을 갖는다.

이번 경우처럼 지라시에 언급된 인물이 법적 대응 등의 강경한 조치를 취해 작성자와 유포자가 밝혀지는 상황에 이르러도 이미 금 간 이미지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지라시로 유포된 내용은 연예인이 언론에 언급되는 과정서 끊임없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이미 그 상황서 진실과 거짓은 무의미해진다. 법적 조치는 말 그대로 지라시에 언급된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인 셈이다.

강경한 대응
상처만 남아


처음 지라시는 증권가 정보지서 시작됐다. 실제 증권시장서 업계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관계자들끼리 주고받던 정보글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격적으로 지라시가 등장한 시점은 1970년 말부터라고 전해진다. 그 당시에는 기업 정보원들이 동향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정치계와 연예계 등으로 영역이 빠르게 확장됐다.

과거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을 무렵에는 문서화된 지라시가 사람과 사람을 거쳐 퍼졌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무차별적인 확산이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문서화된 지라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치·사회·경제·문화·안보 등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지라시를 모아 만든 문서가 돈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정보의 질에 따라 구독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지라시의 영역은 끊임없이 확장됐다. 또 작성자의 범위가 증권가서 일반인으로까지 확산됐다. 재계 동향 등이 담겼던 내용도 이제는 헤아릴 수 없을 수준으로 다양해졌다. 심지어 정치권에선 정부가 정책 관련 발표를 하기도 전에 지라시 형태로 내용이 도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지라시는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거짓인 사례가 많다.
 

▲ 안개 낀 여의도 증권가

사실을 조금 언급한 후 거짓을 섞은 형태의 지라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과정서 슬쩍 언급된 사실을 두고 지라시를 믿을 만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룹 카라출신의 구하라는 최근 지라시의 희생양이 됐다. “구하라가 약을 먹고 극단적인 선택을 해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의 지라시가 빠른 속도로 유포됐다. 구하라 측에서 아무 대응을 하지 않자 소문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결국 구하라 측은 구하라가 지속적으로 수면장애와 소화불량을 겪어 병원서 약을 처방받고 있었다. 그날은 정밀검사와 치료를 위해 병원에 방문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병원에 간 것까지는 사실이지만 나머지는 거짓인 것.

증권가 정보지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일반인도 무차별 피해

연예인의 생사를 넘나드는 황당한 내용의 지라시도 여전하다. 문제는 이 같은 소식에 당사자는 물론 관계자들이 큰 충격을 받는다는 점이다. 멀쩡하게 살아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죽었다는 지라시가 인터넷 등을 통해 번지는 과정서 사실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배우 변정수의 경우 2003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지라시로 인해 사망설이 크게 번졌다. 당시 변정수는 거짓 소문이 멀쩡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배우 김아중은 최근 사망설에 휩싸였다. 배우 김혜정, 방송인 이의정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연예인들이 생사 관련 지라시에 희생됐다. 이의정은 한 방송에 출연해 여전히 사망설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이의정은 투병생활을 하던 중이라 사망설에 더 큰 상처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에는 일반인이 지라시에 언급되는 일도 잦아졌다. 그나마 법적대응이나 공개적으로 지라시에 대한 반박을 할 수 있는 연예인과 달리 일반인은 말 그대로 무차별적인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 이 과정서 ○○, ○○남 등 자극적인 표현은 물론 관계없는 영상이 교묘하게 관련 있는 것처럼 유포돼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기도 한다.

실제 한 대기업 직원 F씨는 다른 동료들과 잠자리를 가졌다는 지라시가 유포되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인사정보까지 함께 돌면서 사실로 믿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 과정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이후 지라시가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져도 이미 당사자는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 지 오래다.

사회 혼란↑
처벌 수위↑

지라시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자 이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이번 나영석·정유미 사례로 작성자가 불분명하고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지라시라도 마음만 먹으면 잡아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지라시의 유포 단계를 역으로 추적하면 중간 유포자, 악플러 등도 함께 그물망에 걸려든다.

지라시를 만들거나 유포하는 행위는 현행법상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에 해당할 수 있다. 이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다. 특히 카카오톡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허위사실 유포 처벌 범위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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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