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법정 최고형> ‘사형 구형’ 사건들 막전막후

사람 죽여도 죽이진 않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국은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이웃나라 일본이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102명에 달하는 사형을 집행한 것과 대조된다. 20년 넘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한국은 사실상 사형제도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사형을 구형하는 사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요시사>가 검찰이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한 사건을 들여다봤다.
 

▲ 어금니 아빠 이영학

대한민국은 형법 제41조에서 사형을 법정 최고형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19971230일 사형수 23명에 대한 형이 집행된 이후 현재까지 단 한 건의 사형도 집행되지 않았다. 국제 엠네스티는 한국을 10년 이상 기결수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국가, 즉 실질적 사형제도 폐지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집행 안 해도
구형은 나와

지난 8일, 검찰은 춘천 연인 살해사건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피고인 A씨는 상견례를 앞두고 연인을 목 졸라 살해한 후 흉기로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춘천지법 형사 2(박이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서 검찰은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법정 최고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무기징역 선고 시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피고인은 만 47세에 출소할 수도 있다”며 피고인의 반사회성, 폭력성, 집착성이 사회에 나가 재발했을 때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우려된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A씨에게는 30년간 위치추적 장치 부착과 5년간 보호관찰 명령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피해자의 유가족은 지난해 103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발 도와주세요. 너무나 사랑하는 23살 예쁜 딸이 잔인한 두 번의 살인행위로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청원을 올렸다.


청원에 따르면 피해자는 사건 당일 저녁 A씨를 만나러 춘천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 A씨는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한 후 식칼로 가슴과 목 부분을 여러 차례 깊숙이 찌르는 등 잔혹한 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은 이런 끔찍한 사건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가족들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발생되고 있다잔인하고 중대한 범죄에 대해 살인 피의자의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한다면 저같이 피눈물 흘리는 엄마가 나오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종로 고시원 화재 용의자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면서 이러한 살인마(A)는 이 사회와 영원히 격리될 수 있게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도록 국민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해당 청원에는 21만명이 넘는 국민이 동의를 표했다.

사형제도 존폐 논란은 한국 사회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사형제 폐지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사형제를 당장 혹은 향후에 폐지하는 데 동의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20.3%가 찬성 의견을 냈다. 반대는 79.7%에 달했다.

사형제 존폐 논란은 살인 등 강력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불거진다. 또 사형제를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은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그 수치가 높아진다.

하지만 세계적 흐름은 물론 한국 사회서도 사형제도는 역사의 뒤안길로 조금씩 물러나는 모양새다. 1996년과 2010,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가 합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결정은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형제도 폐지를 찬성하는 의견에 무게중심이 실렸다. 1996년에 72로 합헌 결정이 내려진 반면, 2010년에는 54로 위헌 의견이 늘어난 것.

1997년 이후 사형 집행 전무
실질적 사형제도 폐지국 분류


반면 검찰은 사형 구형에 있어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해 1월 살인범죄에 대한 구형량을 대폭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성폭행이나 미성년자 납치 등 강력범죄와 함께 살인죄를 저질렀을 경우 무기징역 구형을 기본으로, 최대 사형까지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초 살인범죄 사건처리기준 합리화 방안을 전국 검찰청서 시행한다고 밝혔다. 특히 아동이나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나 여성을 상대로 범죄가 이뤄질 경우 가중처벌 요소로 본다는 입장을 정했다.

검찰이 2018년 처음으로 사형을 구형한 피고인은 어금니 아빠로 불리는 이영학이다. 지난해 130일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 11(이성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서 검찰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강간 등 살인, 추행유인,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영학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영학은 2017930일 당시 14세였던 딸의 친구를 서울 중랑구 망우동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수면제를 먹여 재운 뒤 추행하고 다음날 낮 목졸라 살해했다.

거대 백악종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딸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여러 차례 방송에 나왔던 그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검찰은 “(이영학이) 여중생의 귀에 대고 속삭였을 목소리를 생각하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분노의 감정으로 처벌할 수 없지만, 더 큰 피해를 막고 우리 사회의 믿음과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사형을 구형한 이유를 밝혔다.
 

▲ 법정 의사봉

이후 이영학의 항소로 진행된 항소심서도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 측은 이영학이 극도로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고 시체를 유기했으며 사후 처리 방식 등을 보면 이영학이 주장하는 정신병의 근거는 없다고 일축했다.

또 개선의 여지도 없다면서 항소를 기각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그리고 지난해 1129일 대법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사형제 논란
뜨거운 감자

아내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한 뒤 약물을 주입해 숨지게 한 의사에게는 1심과 항소심서 모두 사형이 구형됐다. 2017920일 대전지법 서산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한경환)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서 검찰은 재혼한 아내의 도움으로 성형외과를 개업한 피고인이 아내 명의로 된 수억원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아내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시했다.

이어 자신의 처방으로 수면제를 사고 외국서 사형을 집행할 때 사용하는 독극물을 함께 구매하는 등 치밀하게 계획한 범죄라며피고인의 죄질이 아주 불량하고 살해의 동기와 조사 과정의 태도 등 유족에게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데 대해 법정 최고형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원심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고 검찰은 항소했다.


지난해 316일 열린 항소심서도 검찰은 피고인은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아내 살해를 시도하고 미수에 그치자 4개월 만에 아내를 결국 살해했다극악무도한 범행을 한 피고인을 영원히 우리 사회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 기관이 물증을 찾아내자 처벌을 덜 받으려 어쩔 수 없이 자백한 것이라며 의학지식을 악용해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 돈을 노린 계획적 범행이 명백하다고 엄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 역시 피고인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4월에는 성매매를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여관에 불을 질러 투숙객 7명을 숨지게 한 혐의(현주건조물방화치사)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성 유모씨가 사형을 구형받았다.

지난해 4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2(재판장 성창호 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서 욕정을 채우지 못한 피고인이 분풀이를 위해 치밀하게 방화 계획을 세우고 불특정 다수가 숙박하는 여관에 불을 질렀다며 구형 이유를 밝혔다.

이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생전에 느꼈을 공포와 고통, 가족들이 느낀 슬픔과 비통함을 고려한다면 죄책에 상응하는 선고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인간 존엄의 근간인 생명권을 침해한 점, 자기 책임을 줄이는 데 급급해 졸렬한 주장을 하며 반성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달라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1심 재판부가 유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자 항소, 항소심서도 사형을 구형했다. 항소심서 재판부는 유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잔혹한 범죄
유가족 슬픔

20171025일 오후 730분께 경기 양평군 윤모씨의 자택 주차장서 윤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지갑, 휴대전화, 승용차를 빼앗아 달아난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허씨에게도 사형이 구형됐다.

숨진 윤씨가 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의 부친이자 김택진 대표의 장인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었다. 허씨는 1심 결심공판서 금품과 차를 훔친 것은 인정하면서도 살인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424피고인의 옷과 벨트 등에서 피해자의 혈흔과 DNA가 검출됐다피고인이 범행 후 살인’ ‘살인 사건’ ‘사건 사고등을 집중적으로 검색한 정황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고인은 교화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람으로 우리 사회서 영원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을 헤아려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공소 사실을 토대로 허씨의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검찰의 사형 구형은 받아들이지 않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심서도 사형을 구형하면서 피고인이 죄를 뉘우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 본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허씨는 항소심 최후진술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와 수사과정 등을 문제 삼으면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를 주장한 허씨와 사형을 선고해달라는 검찰의 항소 모두를 기각하면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난해 430일에는 재가한 어머니의 일가족을 살해하고 계좌서 돈을 빼내 뉴질랜드로 달아났다가 붙잡힌 김성관씨가 사형을 구형받았다.

그는 20171021일 오후 모친과 이부동생을 용인의 집에서 찔러 살해하고 체크카드 등을 강탈한 데 이어 계부도 흉기와 둔기를 사용해 살해한 뒤 차량 트렁크에 사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았다. 김씨는 범행 이후 계좌서 돈을 빼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달아났다가 현지서 붙잡혀 한국으로 송환됐다.

피고인 극형 내려달라 요청해도
2017 년 이후 사형 확정선고 ‘0’

검찰은 1심서 피고인은 매우 잔혹한 방법으로 범행을 하고도 지금까지 괴로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고, 평소 자신에게 서운하게 했다는 등 피해자 탓만 하고 있다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범행을 했다는 것을 피고인이 알게 해야 한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검찰은 항소했지만, 결국 항소심서도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승강기를 타려고 기다리던 이웃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30대 남성 강씨와 가요주점 여성 동업자를 둔기로 때리고 성폭행한 뒤 잔혹하게 살해한 50대 남성도 각각 지난해 11월과 12월 사형을 구형받았다.

강씨는 지난해 5월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에 있는 다세대 주택 7층서 같은 층 주민 여성을 자신의 집으로 끌고 들어가 성폭행한 뒤 목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단지 같은 건물에 산다는 점 말고는 어떠한 관련도 없는 피해자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납치해 잔인하고 포악한 방법으로 살해했다이는 아주 중대한 범죄이며 소위 말하는 묻지마 살인”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1심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221일 청주지법 형사 11(소병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서 검찰은 가요주점 살인사건의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피해자가 실신한 상태서 불을 지르는 등 범행 수법이 매우 잔혹하다는 이유였다.
 

▲ 김성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피해자는 둔기로 맞아 실신한 상태서 방화에 의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조사 과정서 성폭행 사실도 추가로 제기됐다. 피고인에 대한 선고 공판은 오는 25일 열릴 예정이다.

지난해 검찰이 사형을 구형한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대부분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이 1심서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하면 재판부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 패턴을 보였다.

검찰은 법원의 판결에 불복, 항소심서도 사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사형이 확정 선고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영학만이 2015년부터 현재까지 1심서 사형 선고를 받은 유일한 피고인이다. 이영학 역시 항소심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1990년대 이후 법원 최종심서 단 한 건의 사형 선고도 나오지 않았던 해는 일곱 해로 1994, 2008, 2011, 2012, 2014, 2017, 2018년이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5월 이후에도 역시 사형 확정 선고는 나지 않았다.

재판부 고민
무기징역 많아

이 같은 사례로 볼 때 사형 선고에 대한 재판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종로여관 방화 사건서 검찰은 1·2심서 모두 사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문명사회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가 사형 선고를 내릴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대법원 판례를 봤을 때 사형에 처할 만한 사안에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되고 사형 선고를 내린다 해서 피해자나 유족에게 완전히 위로가 되는지 알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양평 살인사건의 경우에도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영원히 박탈하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며 이 사건이 누구라도 사형을 인정할 만한 특별하고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양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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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