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트’ 합의금 장사 주의보

뭣 모르고 썼다가 낭패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폰트 저작권 기획 분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누구나 쉽게 사용하는 컴퓨터나 휴대전화 속 폰트들. 어디서 어떻게 받았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무관심으로 인해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폰트 제작사에서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폰트 이용자에게 경고장을 보내는 사례가 급증했다. 고소를 빌미로 협박해 합의금을 요구하는 회사들도 생겨나고 있어 이용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 윤태호미생체 폰트

한 중소기업의 대표 A씨는 얼마 전 한 통의 우편물을 받았다. 우편물은 B디자인 회사가 보낸 것으로 A씨가 운영하는 업체가 자사가 만든 글자체(폰트)를 무단 사용했다는 내용이었다. B사는 합의금으로 300만원을 요구했고 A씨가 확인해보니 회사에서 홍보 동영상을 제작할 때 사용했던 자막이 A사가 만든 서체와 모양이 같았다. 이후 B사의 법률사무소 명의로 “민사는 물론 형사 대응까지 하겠다”는 말을 듣게 됐다. 

내용증명 발송

한 전문가는 “A씨는 법률사무소의 요구에 응할 필요가 없다”며 “판례상 폰트 자체는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창작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글자의 모양을 고안하는 과정서 일부 창작성이 포함될 수 있지만, 별도로 감상할 정도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례가 있다.

저작권법의 적용을 받는 것은 ‘폰트 프로그램’이다. 불법 복제한 폰트를 다운받는 등 이를 무단으로 이용할 경우 저작권법 침해에 해당된다. 만일 파일 자체를 무단으로 사용해 문제가 됐다면 그 파일을 직접 다룬 게 누군지를 따져봐야 한다. 중소기업의 경우 홈페이지 제작이나 동영상은 외부에 제작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는 폰트 파일을 직접 다운받아 사용한 콘텐츠 제작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법원 판례가 있는데도 소송까지 이어가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소송을 진행하기보다 합의금을 받아내는 게 목표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폰트 사용자를 찾고 동일한 내용의 우편물을 보낸다. 


실제 폰트 파일을 무단 사용해도 저작료를 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작권법을 위반하지 않았는데도 ‘법적 대응’이라는 말에 겁을 먹고 필요 이상의 합의금을 주는 사례가 있다.  

비영리단체들을 상대로 폰트 사용에 관한 내용증명이 발송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단체들이 받은 내용증명은 대체로 비슷한 형태다. 유료 폰트를 사용해 제작한 이미지나 PDF 파일 등에 대해 폰트 프로그램의 출처를 소명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저작권을 침해했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저작권법 제136조 제1항)’는 벌칙 조항을 명시하며 고액의 폰트 패키지 구매를 유도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내용증명이 무차별적으로 발송된다는 것. 서울시의 한 단체도 홈페이지에 다른 기관이 제작한 PDF 파일의 링크를 공유했다가 내용증명을 받았다. 단체 관계자는 “다른 기관이 만든 콘텐츠의 링크를 게시했을 뿐인데 내용증명을 받아 황당했다”고 말했다. 

무단 사용 경고 ‘마른하늘 날벼락’
법인 끼고 본격적 대응에 나서

또 다른 단체는 지난 3년 동안 폰트 관련 내용증명을 4번이나 받았다. 담당자는 “한글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제공되는 기본 번들 폰트는 다른 프로그램서도 인식되는데, 이를 사용해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며 “당시 ‘업체가 약관에 관련 규정을 제대로 공고하지 않았다’고 항의해 사건을 무마했는데 이후에도 매번 다른 건으로 연락이 왔다”며 답답해했다. 

중소기업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비영리단체서도 인턴이나 자원봉사자가 카드뉴스나 포스터 등을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누가 불법 폰트 프로그램을 내려받았는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한 변호사는 “제3자가 내려받았다면 단체의 직접적 책임은 없지만 단체 직원이 이용했을 경우엔 저작권 침해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폰트 업체가 폰트 파일을 ‘개인 또는 비영리 목적에 한해 무상 이용할 수 있다’고 명시해 배포한 경우도 분쟁거리가 될 수 있다. 단체 입장에선 이를 ‘비영리단체는 이용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이용약관을 보면 비영리단체의 폰트 이용을 영리적인 행위로 규정한 업체들이 많다. 

수년간 폰트 저작권 침해 사례에 대해 공익소송을 지원해온 한 변호사는 “비영리 목적으로 무상 이용할 수 있다는 조건이 달린 폰트를 사용했을 경우 비영리단체에는 저작권법 침해 소지가 없다고 봐도 된다”며 “서울시 산하의 한 기관이 행사를 홍보하는 포스터에 비영리 무상 이용 조건의 폰트를 사용했는데 수사기관이 이를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업체들의 수법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단체 컴퓨터에 있는 폰트들을 조사해 워드프로세서나 윈도우의 폰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삭제하는 게 가장 좋다”며 “예쁜 폰트가 필요하다면 공공에 기부된 폰트를 사용하거나 이용 조건이 명확히 확인된 폰트를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폰트 저작권 침해와 관련된 경고장 사례가 늘다 보니 이용자 측에서도 공동 대응에 나섰다. 피해자 5000여명은 인터넷 커뮤니티(카페)를 결성해 문화체육관광부, 대한변호사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피해 사례와 입장을 홍보하고 있다. 

커뮤니티에 가입한 한 피해자는 “피해자가 무죄판결을 원해 잘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합의금을 유도하는 것 같다”며 “특정 법무법인서 계속 연락이 오고 합의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밝혔다.

협박죄 성립?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내용증명을 받으면 간단한 법률상담을 통해 실제 저작권법 위반 소지가 문제될 수 있는지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한 변호사는 “저작권법 위반을 언급하면서 소프트웨어를 강매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데, 이런 경우는 오히려 디자인업체 쪽의 공정거래법 위반이나 협박죄 여부가 문제될 소지가 있다”며 “섣불리 돈을 보내거나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사용한 폰트는 하나인데 ‘폰트 100개 패키지를 사면 고소하지 않겠다’는 업체, 고소를 취하하겠다며 100만원 이상의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하는 업체들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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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