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수록 가관인 ‘조희팔 객사’ 수수께끼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6.26 14:5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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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왕 조희팔, 시퍼렇게 살아 있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사기행각을 벌인 ‘사기왕’ 조희팔. 그가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경찰이 지난달 공식 발표했다. 경찰은 조희팔의 사망 확인증과 화장증서, 그리고 장례식 영상을 근거로 그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게 확실시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조희팔의 사망을 믿는 이는 별로 없다. 심지어 그를 봤다는 사람까지 나오고 있다. 마치 캐면 캘수록 고구만 줄기처럼 따라 올라오는 ‘조희팔 사망’ 관련 의혹들. 과연 조희팔은 살았을까 죽었을까? 새롭게 떠오르는 관련 미스터리를 <일요시사>가 종합해봤다.

지난해 12월18일. 50대 남자는 중국의 한 호텔 샤브샤브 식당에서 내연녀와 식사를 한 뒤 노래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평소 노래 부르기를 즐겼다던 남자는 가수 나훈아의 ‘홍시’를 부르다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함께 있던 내연녀가 한국식으로 손을 따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남자는 극심한 복부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새롭게 밝혀지는
의혹들

내연녀는 황급히 중국 구급전화인 120에 도움을 요청해 밤 11시 15분께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남자의 동공은 풀리고 맥박은 이미 정지된 상태였다. 의사는 다음날 0시 15분께 남자에게 사망선고를 내렸다.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

피해자 3만여명, 피해금액만 4조원대에 이르는 대형 피라미드 사기사건의 주범 조희팔(55). 2008년 12월 중국으로 밀항한 뒤 53세 조선족 조영복으로 살아온 그의 최후는 이렇게 쓸쓸한 객사였다.


객관적으로 보면 조희팔이 살아있다고 보기 어렵다. 응급진료기록도 있고, 사망 확인증도 있는 데다가 화장장의 확인과 그의 시신이 안치되었던 장례식장도 있다. 거기에다 장례장면을 촬영한 동영상까지 있다.

그러나 조희팔의 죽음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아 있어, 사건 피해자들은 ‘위장 사망’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의문의 열쇠는 DNA 감식을 통해 본인이 맞는지 최종 확인을 거치면 쉽게 열리지만, 조희팔은 중국에서 한줌의 재가 됐다. 화장을 한 유골은 유전자가 변형돼 본인 확인이 불가능하다.

중국에서 대규모 문서위조단 적발…위장 의혹 커져
2010년 보험금 노린 실종위장 사건과 수법 똑같아

수상한 건 경찰의 사망 발표 직후 쏟아져 나온 의혹뿐만이 아니다. 조희팔 측근들은 “조희팔이 살아있다”는 증언을 쏟아내고 있고, 피해자 단체는 “올해 들어서도 조희팔의 목격담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 <경향신문>의 18일자 보도를 통해 조희팔이 400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났고, 각계 전문가들이 위장사망 의혹을 조목조목 따지고 나서면서 진위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경찰이 조희팔의 가족으로부터 조희팔의 것이라고 추정되는 뼛조각을 입수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DNA 분석을 의뢰했으나 화장 과정에서 감식에 필요한 DNA와 RNA가 파괴돼 진위여부를 가리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에 따라 조희팔의 사망과 관련된 새로운 미스터리는 한층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먼저 조희팔이 왜 다른 곳이 아닌 중국에서 사망소식을 알려왔을까 하는 점이다. 중국은 ‘출생에서 사망확인까지’ 뭐든 위조가 가능한 곳이다.


돈만 주면 원하는 문서를 쉽게 위조할 수 있어 가짜문서천국이라고도 불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중국에서 대규모 문서위조단이 적발됐다. 이 문서위조단은 출생신고서와 대학졸업증명서, 결혼 및 이혼, 사망증명서, 화장확인증까지 의뢰인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문서를 위조해 제공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일 <중국신문망> 보도에 따르면 광둥성 후이저우시 공안국은 최근 문서위조범 일당 48명을 검거하고 가짜도장 7천380개와 1만여건의 위조문서를 압수했다.

<중국신문망>에 따르면 이들은 심지어 군대와 정부기관, 파출소 등 공공기관의 관인까지 위조했으며 주택 및 토지 등기부등본과 사업자등록증을 포함해 각종 자격증까지도 가짜를 만들어 팔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왜 하필
중국에서 죽었나

특히 일부는 범죄 후 도피 목적으로 마치 사망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사용돼온 것으로 전해져 조희팔의 사망조작 의혹을 더욱 짙게 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보험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비슷한 사례도 있다. 가족과 짜고 중국에서 현지 사망한 것처럼 꾸민 뒤 수억원의 보험금을 타낸 박모(49)씨가 6년 만에 살아 돌아온 것이다.

조사 결과 박씨는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중국 현지의 브로커에게 1200만원을 주고 자작극을 꾸몄다. 사망증명서를 비롯해 구급차 안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구조대 기록과 사망 뒤 화장했다는 화장증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박씨 가족은 5억 원이 넘는 보험금을 타낼 수 있었다. 병원 이송 중 구급차 안에서 사망한 것부터 사망 후 화장증까지 ‘조희팔의 사망’과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어 의구심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중국 여행 중 뺑소니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며 사망보험금을 타내려던 자매가 덜미를 잡히는 일도 있었다. 이들은 중국 공안 명의 ‘도로교통사고인정서’와 중국 의사명의 ‘거주민사망의학증명서’ 등을 위조해 사망보험금 20억원을 청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들은 사실상 조희팔의 죽음을 증명하는 서류들이 중국 내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위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800만원이면
신분세탁 가능

또 중국은 호구부(주민등록부)가 전산화되어 있지 않아 공안이나 관리인 등을 매수하는 것도 쉽다. 돈이나 뇌물만 주면 성명이나 생년월일을 변경하거나 신분증위조 브로커를 통해 손쉽게 신분세탁을 하고 살아갈 수 있다.


실제 조희팔 역시 2008년 중국으로 밀항한 후 신분을 세탁해 53세 조선족 ‘조영복’으로 행세하며 살아왔다. 중국에서 신분을 세탁해 부정 발급받은 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2월에는 살인 혐의로 구속 수감 중 국외로 추방된 조선족 여성 박모(36)씨가 브로커에게 800만원을 주고 조선족 거민증(주민등록증)을 위조해 취업비자를 부정 발급받아 국내에 들어왔다 적발되기도 했다. 박씨는 2002년에도 알선 브로커에게 1천만원을 주고 관광비자로 입국했었다.

지난 5월에는 국내·외 신분관리제도의 허점을 악용, 신분세탁을 해온 외국인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됐다. 인천지검 외사부와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올해 초 실시한 신분세탁 출입국사범 집중단속에 입건된 출입국사범 가운데는 살인죄로 국외 추방된 뒤 신분을 세탁해 재입국한 자도 있었고, 심지어 입국 후 한국인으로 허위 출생신고를 하는 방식으로 이중 신분 생활을 유지해 온 중국인도 있었다.

신분세탁 뒤 한국에 돌아와 제2의 인생 살 가능성
죽어야 화려하게 사는 남자…아직도 피해자만 눈물

전문가들은 “허위 출생신고와 유전자 감정 등의 수법도 신분세탁에 광범위하게 이용됨에 따라 한국 역시 신분취득제도의 미비점을 노출하고 있다”며 “만일 조희팔이 살아있다면 중국에서 신분을 세탁한 뒤 다시 한국에 돌아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조희팔과 죽어있는 조희팔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우선 조희팔이 ‘사망자’로 처리됨과 동시에 그와 관련된 사건은 공소권이 없어진다.


현재 150건이 넘는 조희팔 사건의 민사소송도 피할 수 있다. 그렇게 자유로운 몸으로 4조원대에 이르는 돈과 함께 초호화 생활이 가능해진다. 사기에 대한 죗값을 치르지 않고도 대대손손 먹고 놀아도 남을 돈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그가 죽어야만 가능한 스토리다.

한편 4년이란 시간이 흘러가면서 조희팔에게 사기를 당한 수많은 피해자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많은 피해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 저기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법조 브로커들의 속임수에 넘어가 제2, 제3의 피해만 속출하고 있다.

살아있는 조희팔
죽어있는 조희팔

사기 피해자들만 전문적으로 노리는 브로커와 변호사들이 사실상 실익 없는 소송을 부추겨 거액을 날리고 자포자기 상태인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는 것이다.

누구의 배만 불려주고 있는 것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 회복을 바라는 피해자들의 낙담은 커져만 가고, 그들을 노리는 자들의 부당이득만 올려주고 있는 현실이 어쩐지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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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