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제약사가 술을 판다? 그것도 간장약 '우루사'로 유명한 대웅제약에서?' 다소 황당한 얘기 같지만 사실이다. 대웅제약이 자회사를 통해 카페를 운영하면서 각종 주류를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술 주고 약 주는' 셈이다. 어처구니없고 아이러니한 상황이라 소비자로선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대웅제약은 2009년 국순당과 간장약-술 공동마케팅을 추진한 적이 있다. 두 회사는 양사가 비용을 분담해 '우루사'와 '백세주' 광고가 들어간 업소용 물통 4만개를 제작, 전국 3100여 개 주점에 배포할 계획이었다. 두 회사는 "이종업종 간 윈윈 전략"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우루사 팔면서…
그러나 이도 잠시. 곧바로 도덕·윤리성 논란에 휩싸였다. 국민건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제약사가 술 팔기에 혈안인 주류업체와 손잡고 음주를 직간접적으로 조장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소비자들은 "저급한 상술"이라며 "제약사가 음주를 조장하는 판촉물에 의약품 광고를 싣는 것은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술 주고 약 주는' 이상한 이벤트에 나섰다가 여론과 언론의 뭇매를 맞았던 대웅제약. 대웅제약이 이번엔 직접 술을 팔고 있어 또 다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대웅제약은 자회사인 알피코프를 통해 'Win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8월 오픈한 이 카페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서울 강남구 삼성동 대웅제약 별관 1층 로비. 총 82석에 프라이빗 룸 2실(1실 6석)까지 갖춘 카페는 화사하고 고급스런 인테리어로 대웅제약 직원들은 물론 외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메뉴는 커피·녹차·주스 등 음료와 파스타·피자·샌드위치·스테이크 등 일반 커피전문점 또는 레스토랑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 카페에선 술도 판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운영하는데 점심시간 이후 각종 주류를 팔고 있다. 카스·하이트·코로나·하이네켄·밀러·아사히 등 맥주를 비롯해 발렌타인·조니워커·글랜피딕·맥캘란 등 위스키와 데낄라, 보드카, 와인도 판매한다.
자회사 알피코프 통해 강남 고급카페 운영
주로 대웅제약 임원들이 퇴근 후 술 한 잔 하러 들른다는 게 카페 직원의 귀띔. '대웅 황태자' 윤재승 대웅제약 부회장(윤영환 회장 3남)도 자주 찾는다고 한다. 실제 이 카페엔 윤 부회장이 자신의 이름으로 '키핑'해 놓은 양주도 있다.
Win카페는 알피코프 외식사업부에서 운영하고 있다. 연질캡슐 등 의약품 제조·판매업체인 알피코프가 외식업까지 손댄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알피코프는 2007년 음식점업과 주류판매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했다. 외식사업부는 당초 대웅상사에 있다가 지난 2월 대웅상사를 흡수합병한 알피코프로 이관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알피코프(구 알앤피코리아)는 대웅제약의 지주회사인 ㈜대웅이 지분 80%(22만9590주)를 소유하고 있다. 나머지 20%(5만7410주)는 윤재훈 대웅제약 부회장(윤 회장 차남)이 갖고 있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알피코프 대표이사를 역임했던 윤 부회장은 현재 사내이사직만 유지하고 있다.
알피코프 대표이사는 김지형 ㈜대웅 부사장이다. Win카페 사업주 명의도 김 부사장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1979년 대웅제약에 입사해 신제품 개발·의약품 라이선싱·국제협력 등을 담당하다 2003년 개발 상무로 퇴임한 그는 현대약품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2009년 개발본부 부사장으로 재영입 됐다.
대웅제약 측은 '복지용 카페'라고 강조했다. 회사 관계자는 "사옥에 있는 카페를 단순히 주류를 판다고 해서 술집으로 보면 안 된다"며 "직원들의 복지 차원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스키·데낄라·보드카 등 각종 주류 판매
'대웅 황태자' 윤재훈 부회장도 지분 소유
대웅제약의 말대로라면 직원 또는 방문객들이 쉴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휴식 공간인 셈이다. 실제 요즘 잘 팔리는 아이스아메리카노의 경우 한 잔에 1700원 밖에 하지 않는다. 커피에 샌드위치까지 먹어야 3500원. 커피 한 잔이 보통 3000∼4000원인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와 비교하면 '착한 가격'이다.
그렇다면 알피코프 카페가 이곳뿐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알피코프는 대웅제약 사옥뿐만 아니라 강남구 대치동에 다른 카페도 운영 중이다. 상호는 '카페M'. 이 카페 역시 알피코프 외식사업부에서 관장하고 있다. 사업주도 김 부사장 명의로 등록돼 있다.
이 카페는 공연과 카페가 결합한 공간으로 지하에 전문 공연장도 마련돼 있다. 오디오 시설이 최고급 수준이라 음악 마니아 사이에 입소문이 나는 등 강남 일대 클래식 메카로 떠오른 지 오래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예약이 필수라는 게 카페 직원의 전언. 이 직원은 "인테리어와 음식 퀄리티가 모두 최고급"이라고 자부했다.
카페M도 각종 음료와 파스타·리조또·스테이크 등을 판매하는 여느 레스토랑과 메뉴가 비슷하다. 이와 함께 다양한 종류의 술도 메뉴에 올라 있다. 맥주는 기본, 위스키도 마실 수 있다. 특히 국가별, 품종별로 약 300가지의 와인이 구비돼 있다. 가격대는 6만원부터 30만원대까지다. 리스트에 없는 와인도 사전에 예약하면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
윤재승 키핑 술도
대웅제약 측은 '술 주고 약 준다'는 얘기에 다소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회사 관계자는 카페 운영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다. 노코멘트 하겠다"며 "기사를 쓰려면 맘대로 하라. 만약 잘못 나가면 법대로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대웅제약 하면 단연 '우루사'다. 대웅제약의 지난해 매출은 7100억원. 이중 우루사 비중이 9%(650억원)나 됐다. 지금의 대웅제약을 있게 한 일등공신 우루사는 간 기능을 도와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간장약이다. 그런 우루사를 만드는 대웅제약에서 술도 팔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