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벤처계 신화' 김택진 NC소프트 대표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6.26 16: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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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NC소프트 내려놓은 까닭 "제2의 도약 준비?"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흔히 우리나라에서 부자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그런데 이 회장조차 부러워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NC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다. 이 회장은 한 사적인 모임에서 “삼성전자가 NC소프트와 같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설비투자와 많은 인력을 고용해야 하는데, NC는 고작 3000여명의 인원으로 특별한 설비나 원자재 투입도 없이 고수익을 낸다”며 부러워했다는 소문이다. 물론 사적인 모임에서의 발언이기 때문에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충분히 공감이 되는 대목이다. 맨손으로 시작해 1조원대 부자에 등극한 김택진 대표. 어느새 그는 우리 사회의 신화적 인물이 되어 있었다.

최근 김택진 NC소프트 대표가 갑작스런 지분 매각으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김 대표는 이번 지분 매각을 통해 8000억원이 넘는 여유자금을 손에 쥐게 되면서 모바일 사업으로 사업방향을 선회했다는 설, 부동산 사업을 시작한다는 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과의 인연으로 정계에 진출한다는 설, 야구단 운영에만 전념할 것이라는 설 등 각종 소문에 시달려야만 했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공부에만 몰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김택진 대표는 지난 11일 임직원들에게 보내는 메일을 통해 "지분을 매각하며 최대주주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글로벌 게임시장 공략을 위해 넥슨과 힘을 합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주가보다 낮은 매각 가격과 신작출시를 앞둔 이해할 수 없는 매각 시기, 최대주주에서 내려오면서까지 주식을 팔아야 했던 이유 등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진행된 게임사 간 M&A 중에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매각에 대해 증권가에서는 아직까지도 갖가지 설만 난무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세간에서는 벤처업계의 신화로 불리는 김택진이란 인물 자체에 대한 호기심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 

지금은 1조원대 부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김 대표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무척 가난했다. 1967년 서울 태생인 그는 아버지가 사업을 하던 중 부도를 내면서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빚쟁이들에게 얼마나 심하게 빚독촉을 당했던지 김 대표의 아버지는 한동안 가출까지 했었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의 아버지는 빚쟁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을 꼭 갚을 테니 그때까지 자신을 믿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 후 그의 아버지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악착같이 양말과 옷 등을 팔아 빚을 조금씩 갚아 나갈 수 있었다.
그러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김 대표는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더욱 공부에 몰두하며 부모님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수학과 과학을 유난히 좋아했던 김 대표는 중학교 시절에 이미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까지 마스터한 후 취미를 기계로 돌리게 됐다. 고등학생이 된 김 대표는 우연히 애플사에서 제작한 개인용 컴퓨터를 보게 된다. 컴퓨터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린 김 대표는 컴퓨터의 작동원리를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전자공학에 눈을 돌린다.

1985년 한국 최고의 명문대학교인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김 대표는 하루라도 빨리 컴퓨터라는 기계의 원리를 마스터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 컴퓨터의 메카였던 종로 세운상가를 찾았다. 그는 스무 살 때 그곳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컴퓨터에 관련된 소식과 외국서적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이미 학점을 위한 전공 공부보단 자신의 지적욕구를 풀어주는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김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렇게 컴퓨터를 공부하다보니 컴퓨터가 달라 보였다. 컴퓨터의 전원을 누르고 컴퓨터가 켜지는 과정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손가락으로 파워버튼을 누를 때 메모리에 데이터가 저장되고 CPU가 데이터를 처리해 그래픽카드로 보내고 이를 모니터 화면으로 표시하는 모든 부팅 과정이 그려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가난한 어린시절 이겨내고 맨손으로 1조원대 부자 등극
아래아한글 공동개발 등 천재적 행보…IT업계 판도 바꿔

김 대표는 대학 시절 '컴퓨터연구회'라는 컴퓨터연구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그들은 아마추어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통신 기반의 전자 게시판 버들골 BBS를 만들어 낼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김 대표가 동아리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첫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같은 학교 기계공학과에 다니던 이찬진이 워드프로세서 개발 참여를 제안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워드프로세서가 바로 '아래아한글'이다. 아래아한글은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효시로 불릴 만큼 사회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아래아한글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설립한 회사가 바로 '한글과컴퓨터'다. 이같은 업적을 바탕으로 당시 대부분의 컴퓨터연구회 동아리 회원들은 한글과컴퓨터사의 중역으로 스카우트 됐지만 김 대표는 이찬진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부했다. 당시 김 대표의 꿈은 공과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서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곧바로 박사과정으로 진학하려던 김 대표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현대전자 미국연구소에서의 스카우트 제의였다. 당시 김 대표는 병역이 미필인 상태였는데 현대전자가 제시한 혜택에는 병역특례가 있었다. 컴퓨터 산업의 메카인 미국에서 병역특례를 받으며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런 뛰어난 능력으로 그는 병역특례요원 신분임에도 매년 승진을 거듭해 팀장 자리까지 단기간에 오르게 된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김택진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젊은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그룹 내부에서 김택진이 개발한 아미넷을 두고 분열이 일어났다. 이러한 싸움에 염증을 느낀 김택진은 현대전자를 퇴사하고 1997년 3월 NC소프트를 창업하게 된다.

NC소프트 창업
찬사와 비판의 공존

NC소프트는 Next Company의 약자다. NC소프트는 창업 첫 해부터 자체개발한 컴퓨터 온라인게임 '리니지'로 소위 대박을 쳤다. 리니지는 출시되자마자 MMORPG(다중접속 온라인게임)시장을 선도했다. 현재까지 누적회원만 1000만 명에 달한다. 리니지의 성공은 곧 전국적인 인터넷 인프라 구축, PC방 보급의 확대, 정부의 IT 육성정책 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NC소프트 게임의 심각한 중독성 때문에 '게임폐인'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일부 유저들은 게임을 하느라 학교, 직장 등에 가지 않거나 심지어는 며칠동안 게임을 하다 과로사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게임 아이템의 현금거래로 인해 어린 학생들이 수백만원을 부모 몰래 결제하거나, 게임 내 사기 등으로 순식간에 전과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이러한 부작용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김 대표에 대해 '합법적인 마약상'이라는 비판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한 전문가는 "이미 수많은 온라인게임이 존재하는 시점에서 비단 게임폐인이라는 집단이 생겨난 것이 NC만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NC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사실이다. 또 NC는 게임중독의 문제점 등이 제기된 이후에도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보다는 수익창출에 더욱 매진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비판을 받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늘 이러한 비판에 시달려 왔기 때문인지 김 대표는 지난 2011년 프로야구 제9구단 NC다이노스의 창단을 신청하면서도 창단이유에 대해 "청소년들에게 빚을 갚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우리(NC소프트)가 젊은이들을 골방에 가둬놨다. 골방에 있던 젊은이들이 탁 트인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호연지기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그래서 프로야구단을 꼭 창단하고 싶다"고 밝혔다.

화려한 성공 이면엔 '합법적 마약상' 비판도
NC다이노스 창단 "청소년들에게 빚 갚겠다"

김 대표의 이러한 사죄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여전히 젊은이들을 골방에 가둬두고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NC의 위선일 뿐"이라며 폄하했다.

한편 김 대표의 야구사랑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져왔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일본 스포츠 만화 <거인의 별>을 보고 주인공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등하교를 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에는 전봇대에 폐타이어를 매달아놓고 방망이질을 해가며 야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롯데 자이언츠의 최동원 투수가 우상이었던 김 대표는 야구단을 통해 게임산업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가 NC다이노스에 쏟고 있는 애정은 각별하다. 전지훈련장을 직접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는가 하면 매스컴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부인 윤송이 박사와 함께 NC야구단의 연고지인 경남 창원에서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강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의 부인인 윤 박사는 무척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서울 과학고를 조기졸업(2년)하고 한국과기대(KAIST)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녀는 미국 MIT 미디어랩에서 3년6개월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 한다. 당시 만24세로 한국인 최연소 MIT박사 기록이었다. 미국컴퓨터공학협회(ACM)가 매년 전세계에서 단 한 명에게 주는 최우수학생 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28세의 나이로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의 최연소 상무로 진급하며 ‘천재소녀’로 불렸다. 김 대표와 윤 박사는 지난 2004년 3월 윤 박사가 NC소프트의 사외이사에 선임되면서부터 서로 인연을 맺게 돼 지난 2007년 결혼했다. 당시 김 대표는 재혼이었다.

유별난 야구사랑
속죄의 의미도?

최근 김 대표를 향한 세간의 관심은 부담스러울 정도다.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서 정계진출설까지 나돌았던 까닭이다. 그의 말대로 이번 지분매각이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단순한 포석인지 아니면 또다른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 그의 의중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창업자로서 지난 16년간 애지중지 키워온 NC소프트의 최대주주 자리까지 내려놓으면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그가 앞으로 또 어떠한 신화를 써내려갈지 기대된다.

 


<김택진 대표 프로필>

▲ 대일고등학교 졸
▲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
▲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 중퇴
▲ 1989 아래아한글 공동개발
▲ 1989 한메소프트 창립
▲ 1991 현대전자 보스턴 파견 근무
▲ 1995 현대전자 아미넷 개발 팀장
▲ 1997 NC소프트 창립
▲ 2011 NC다이노스 구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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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는 “2008년 에이프로스퀘어 프로젝트에 채무보증(1350억원)을 조건으로 시공사로 참여했다. 당시 부동산시장이 침체돼 2009년 9월 시행사 시선RDI는 분양에 실패했고, 2011년 1월 건물 준공 시점까지 우리는 320억원에 이르는 공사비를 지급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1년 5월30일 시선RDI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상환 불이행으로 기한이익을 상실했다. 결국 A사는 공사비도 받지 못한 상태서 시선RDI의 채무를 인수, 대위변제한 후 수탁사(한국자산신탁)에 공매처분을 요청했다. 하지만 공매가 여러 차례 유찰되면서 큰 손해를 봤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김대근 시선RDI 대표는 “A사는 시선RDI가 1200억원을 대출받은 다음 날 시행사도 모르게 채무를 갚았다. 그리고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채권을 바로 (A사 측에)넘겨버렸다. 우리는 그 내용을 뒤늦게 알았다. A사와 하나은행(당시 외환은행), 우리은행이 짜고 건물을 통째로 빼앗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1년 시선RDI가 제기한 민사소송을 시작으로 에이프로스퀘어를 둘러싼 소유권 분쟁은 10여년 넘게 이어졌다. 김 대표는 2014년 대법원이 원고(시선RDI) 패소로 확정판결을 내린 이후 재심에 재재심을 청구한 데 이어 헌법재판소까지 찾았다. 결과는 번번이 시선RDI 측의 완패였다. 흥미로운 대목은 소송이 진행되면서 소유권 이전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에이프로스퀘어의 소유주가 더케이(A사의 SPC)서 한국증권금융(엠플러스사모부동산투자신탁 제9호의 수탁자)으로, 또 하나은행(마스턴밸류애드전문투자형사모부동산투자신탁 제49호의 수탁자)으로, 우리은행(제이알일반사모부동산투자신탁 제32호의 수탁자)으로까지 바뀌는 과정서 체결된 부동산 매매계약서 등이 법원의 문서 제출 명령으로 공개됐다. 시선RDI는 2021년 A사·우리은행·하나은행·교보증권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월 ▲소유권보존등기 무효 ▲소유권 이전 등기 이행 등을 추가해 청구원인과 취지를 변경 신청했다. 소유권보존등기는 새로 지은 건물을 처음으로 공식 문서에 올리는 작업이다. 건물의 출생신고라고 보면 된다. 수천억 강남 빌딩 10년째 소송전 1680억→2040억→3080억 거래돼 시선RDI는 2011년 1월 에이프로스퀘어 완공 이후 한 달 뒤인 2월 A사가 진행한 소유권보존등기가 무효라는 입장이다. 또 소유권보존등기가 적법하게 처리되지 않았으니 그 이후 진행된 이전등기 또한 원인무효 등기라고 주장했다. 최초 소유권자이자 시행사인 시선RDI로 에이프로스퀘어의 소유권을 이전해 달라는 요청이다. 소유권보존등기 및 이전등기의 적법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에이프로스퀘어의 ‘진짜 주인’ 논란이 함께 불거졌다. 일반적으로 집합건물의 경우 수탁사가 ‘등기상 소유주’ 실제 매매대금을 조달하는 사모펀드가 ‘실소유주’가 된다. 김 대표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서 쟁점 중 일부가 된 부분은 펀드의 의사결정을 맡는 보통주를 누가 갖고 있는지였다. A사가 설립한 SPC 더케이는 2013년 12월, 1680억원을 받고 한국증권금융에 에이프로스퀘어를 매각했다. 이때 건물 매입을 위해 조성된 펀드가 엠플러스 9호다. 이 상황서 수탁사인 한국증권금융이 등기상 소유주, 엠플러스 9호가 실소유주가 된다. 이후 2019년 3월 하나은행을 수탁사로 하는 마스턴 49호가 2040억원에, 2022년 4월 우리은행을 수탁사로 하는 제이알 32호가 3080억원에 에이프로스퀘어를 샀다. 김 대표는 제이알 32호의 보통주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자금을 투입한 투자자이면서 의사 결정권도 가진 보통주의 주인을 확인할 수 있게 제이알 32호와 수탁사인 우리은행에 해당 내용이 담긴 문서 제출을 명령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법은 김 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여 제이알 32호를 만든 제이알투자운용과 우리은행에 ‘제이알일반사모부동산투자신탁 제32호 펀드의 보통주 보유자 및 그 명의 변경내역 및 보통주 주식보유량(수익증권의 좌수) 변경에 대한 내역 일체’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펀드의 ‘진짜 주인’을 찾아 달라는 김 대표의 요청에 법원이 응한 것이다. “보통주 공개하라” 우리은행은 “제이알 32호 투자자의 주식 보유내역과 펀드 운용사 및 업무집행조합원 내역 정보에 대한 문서를 소지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원고(시선RDI 측)가 신청한 문서는 개인 신용정보 주체인 제3자의 개인정보, 거래내용, 신용도, 신용거래능력 등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에 문서 제출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문서 제출 명령을 받은 제이알투자운용은 제이알 32호의 ‘수익자별 보유수량 안내 공문’을 특정 투자자로부터 교부받아 제출했다. 해당 문서에는 제이알 32호에 돈을 넣은 1종 투자자와 2종 투자자의 명단과 액수가 기재돼있다. 문서에 따르면 해당 투자자들은 총 1271억원을 투자했다. 투자자는 ▲삼성증권 ▲키움증권 ▲현대커머셜 ▲교보리얼코 ▲에스텍시스템 ▲제이알투자운용 등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결국 투자자 외 보통주 명단에 대해서는 문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우리은행과 제이알투자운용은 두 번에 걸친 법원의 명령에도 문서를 제출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문서를 내놨다. 결국 제이알 32호의 보통주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나는 오래전부터 A사가 어떤 식으로든 펀드의 보통주로 참여해 에이프로스퀘어 매매와 운영에 관여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그 근거로 ▲A사의 에이프로스퀘어 일부층 책임임차 ▲일부 삭제된 계약서에 명시된 특정업체와의 계약 ▲계약금 없이 진행된 에이프로스퀘어 매매 과정 등을 들었다. A사는 그동안 진행된 소송 결과 등을 근거로 김 대표가 주장하는 의혹을 일축해 왔다. 김 대표는 시선RDI 등의 부동산 진정명의 회복과 손해 입증을 위해 제이알 32호의 보통주 내역 등을 요청하면서 동시에 제이알투자운용과 우리은행에는 2022년 4월25일 하나은행(매도인)·마스턴투자운용(매도인 집합투자업자)과 우리은행(매수인)·제이알투자운용(매수인 집합투자업자) 간 이뤄진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제출하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계약금은 왜 없었나 또 해당 매매계약 과정서 우리은행(매수인)이 하나은행(매도인)으로부터 책임임차인과 임차인들 간의 전대차계약과 사용계약 등을 승계했는데 이 책임임차인이 A사인지 여부를 사실확인해 달라고도 요청했다. 이 과정을 통해 2022년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사이에 체결된 부동산 매매계약서, A사의 승계동의서 등이 공개됐다.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기간이다. A사가 제출한 승계동의서는 하나은행·마스턴투자운용·우리은행·제이알투자운용에 보낸 것이다. 기존 임대인과 매도인 집합투자업자 사이에 체결한 계약이 이후에도 같은 조건으로 승계된다는 점을 명시한 문서다. 승계동의서에 따르면 A사는 에이프로스퀘어 7개층에 대한 일종의 ‘책임임차’를 하고 있다. 책임임차는 준공 이후에도 시공사가 임차인 유치를 약속하는 계약을 뜻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매력적인 조건이다. A사는 그 기간을 2013년 12월24일부터 지난해 12월23일까지 10년으로 잡았다. 자료를 제출한 시기인 지난달 21일에는 이미 책임임차 기간이 만료된 상태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승계동의서에 ‘목적물(에이프로스퀘어)에 대한 부동산 매매계약에 따른 매매대금이 지급되고 소유권이전등기가 신청되면 그날(계약일)을 기준으로(중략) 동일한 내용으로 승계되고 그에 따라 본 계약은 매수인 및 매수인 집합투자업자와 임차인 사이에 계속 유효하게 존속함에 동의합니다’라는 문구를 들어 A사의 책임임차 기간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소한 제이알 32호의 만료일인 2027년까지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A사는 2023년 12월23일로 책임임차 기간이 끝났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10년간의 책임임차는 에이프로스퀘어 최초 매매계약 당사자인 한국증권금융(엠플러스 9호의 수탁자)의 매수 조건이었다고 덧붙였다. 거듭된 공매 유찰로 은행이자 부담이 커져가는 상황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A사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러면서 책임임차 기간 종료 이후 매수인이나 매도인 등과 추가로 맺은 계약은 없다고도 강조했다. 에이프로스퀘어와 관련한 A사의 ‘책임’은 이미 끝났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A사는 “당사는 에이프로스퀘어 빌딩의 소유권자나 투자자가 아니다. 또 제이알 32호의 투자자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일요시사>에 전해왔다. 눈에 띄는 부분은 또 있다. 2013년 더케이서 한국증권금융으로 소유권이 이전될 때 맺은 매매계약서를 보면 ‘계약금 168억원은 실납입액 없이 1순위 우선수익자의 채권과 선 상계(정산)하는 조건으로 계약금을 갈음함’이라는 문구가 있다. 당시 매매가는 1680억원이었고 1순위 우선수익자는 더케이였다. 실제 계약금 형식의 돈이 오간 적이 없는 것이다. 법원 문서 제출 명령으로 새 국면? 기판력 vs 새로운 증거 쟁점될 듯 2019년 한국증권금융서 하나은행으로 소유권이 넘어갈 때도 매매대금 2040억원에 대한 계약금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 2022년 하나은행서 우리은행으로 등기상 소유주가 바뀔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매매대금은 3080억원이었다. 통상 부동산 매매계약을 진행할 때 매매대금의 10%를 계약금으로 선지급하는 관행서 벗어난 거래였던 것이다. 김 대표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동일한 건물을 3회 거래하는 과정서 계약금을 걸지 않았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에 대단한 신뢰가 있거나 진짜 주인은 따로 있고 명의만 움직인 경우다. 그게 아니고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2022년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사이에 맺은 부동산 매매계약서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확인된다. 부동산 매매계약서 제7조(진술 및 보증) 3. 소송 및 분쟁 부분을 보면 ‘매도인 또는 매도인 집합투자업자를 상대로 하는 어떠한 분쟁, 소송, 행정절차, 중재 또는 강제집행, 보전처분 절차 등이 제기되거나 진행 중에 있지 않으며 매도인 및 매도인 집합투자업자가 아는 한 그런 분쟁, 소송, 행정절차, 중재 또는 강제집행 보전처분 절차 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는 문구가 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매매계약서에 들어갈 수 있는 문구로 보인다. 하지만 ‘단, 어떠한 경우에도 매매목적물의 개발, 신탁, 소유권 이전 등과 관련한 ‘(주)시선알디아이’와 여하한 자 사이의 민원, 청구, 소송 또는 분쟁(그와 유사하거나, 연관되거나, 그로부터 파생된 것을 포함함)은 본호의 진술 및 보증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일종의 단서 문구가 달렸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 등은 없지만 시선RDI와의 그것은 보증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매매계약 시기(2022년 4월25일)에는 이미 시선RDI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2021년)를 제기한 상태였다. 소송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지난해지만 소 제기 자체는 매매계약 1년 전에 진행됐다. 매도인은 해당 문제를 알고 팔았는지 매수인은 알고 샀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특히 에이프로스퀘어를 매입하는 과정서 투자금을 넣은 투자자에게 해당 정보가 사전에 고지됐는지 여부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김 대표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장물을 사고 팔았다”고 강도높게 지적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수탁자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당사는)제이알 제32호의 수탁사로, 수탁사는 운용사의 운용지시에 의한 재산의 취득 처분을 담당한다. 펀드 운용에 관한 어떠한 의사결정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매매계약과 소유권 이전 관련해 법무법인을 통해 검토되고 진행됐다. 운영사는 법률적인 검토를 완료해 매매계약을 완료했다고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수탁사는 자본시장법상 운용과 관련한 내용을 알 수 없다”면서 제이알 32호 펀드의 보통주 내역 등 관련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도 강조했다. 하나은행 역시 마스턴 49호의 수탁사일 뿐 운용 내용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제이알투자운용은 <일요시사>의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소유 분쟁 그 끝은? 시행사 대표와 시공사, 수탁사의 주장은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이전의 소송은 시공사와 수탁사의 완승으로 끝났다. 단 한 건의 소송서도 법원은 시행사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시공사와 수탁사는 이를 근거로 기판력을 주장하고 있다. 시행사 대표는 “이전에 단 한 번도 청구하지 않은 소송이고 이에 대해 변론종결일까지도 피고는 어떤 주장도 반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1심 선고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