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간석식구파 광주 습격사건 전말

“감히 우리 식구를 건드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광주의 조직폭력배에게 조직원이 폭행당하자 이를 보복하기 위해 광주에 집결한 수도권 조폭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광주 조직원을 볼모로 잡고 세력을 과시하던 이들의 복수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의 급습으로 좌절됐다. 이 복수극을 주도한 조직은 인천 최대 조직인 ‘간석식구파’로 밝혀졌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동료가 광주 폭력조직원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이유로 보복한 인천 폭력조직원 12명 중 11명이 구속됐다. 수도권 조직원들은 술자리서 광주 조직원들과 서로 주먹질을 한 뒤 앙갚음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광주서 뺨맞고
선후배 뭉쳤다

지난달 24일 낮 12시40분쯤 광주북부경찰서 강력반 등 형사과 소속 12개팀과 형사기동대, 광주경찰청 광역수사대와 특공대 등 경찰관 100여명에게 비상소집 명령이 떨어졌다. 수도권 조폭들이 광주 폭력조직 S파와 한판 겨루기 위해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는 첩보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인천 조폭들은 전날 밤 광주 상무지구의 한 포장마차서 전국의 조폭 조직원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가졌다. 비슷한 또래로 친목모임을 하던 광주의 한 조폭 가족이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술자리에는 전국의 20대 조폭 30여명이 참석했다.

술잔이 연거푸 돌아가자 불쾌해진 인천 조폭 노모(26)씨가 종업원에게 “불친절하다”며 행패를 부렸다. 동석한 광주 S파 1년 후배 김모(25)씨가 말리자 노씨는 언성을 더 높였다. 그는 “후배가 건방지다”며 김씨의 뺨을 때렸고 순식간에 술자리는 험악한 분위기로 돌변했다. 김씨와 S파 조직원들은 노씨를 데리고 나가 “남의 잔치에 와서 재 뿌리지 말라”고 했지만 노씨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S파 조직원들은 완력으로 노씨를 제압했다. 


노씨는 “광주 애들에게 된통 당했다. 복수해야 한다”고 인천 K파와 B파 조직원들에게 SOS를 쳤고 30여명이 집결했다. 결혼식장 인근인 광주 북구 각화동 한 모텔을 통째로 빌린 노씨 일행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모텔 건물 내외부의 CCTV 카메라를 모두 떼어내기도 했다. 

날이 샌 후 노씨 등은 중재에 나선 광주 S파 조직원 1명을 볼모로 잡고 2시간 동안 무릎을 꿇린 채 “김씨를 데려오지 않으면 땅에 묻어 죽여버리겠다”고 세력을 과시했지만 노씨가 꿈꾸던 복수는 좌절됐다.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결혼식 1시간 전 모텔을 급습해 조직원 12명을 검거한 것이다. 

경찰은 일부 조직원들이 급습 전 모텔을 빠져나갔고 모텔에 있던 일부 조폭들이 반항했지만 큰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노씨 등의 숙소서 야구방망이 등 다수의 폭력도구를 증거물로 압수했다.

2개 파 30명 집결… 상대 조직원 린치 
첩보 입수한 경찰 100명 중무장 출동

광주 북부경찰서는 같은 달 25일, 다른 조폭 조직원을 붙잡아 감금·폭행한 혐의(범죄 단체 조직·활동죄 등)로 노씨와 이모(23)씨 등 1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규현 광주경찰청장은 “조직폭력배 간 도심활극을 막기 위해 선제 검거작전을 펼쳤다”며 “조폭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발본색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복을 위해 수도권 일대 폭력조직원들을 집결시킨 인천 폭력조직원은 ‘간석식구파’ 소속으로 확인됐다. 2011년 인천 길병원 장례식장 앞 집단 난투극으로 유명세를 탄 인천의 폭력조직 ‘간석식구파’는 지난 1989년 결성됐다.

당시 인천 남동구 간석동 일대 유흥가를 활동 무대로 삼은 간석동파와 남구 주안동 일대를 주무른 금강산파가 통합해 만들어졌다. 


두목, 부두목을 두고 아래 조직원들은 나이 순대로 서열을 정했다. 서로를 ‘형님·동생’으로 부르며 ‘식구’처럼 대했다. 간석동 일대 유흥업소부터 장악했고 당시 이 지역에 들어선 호텔 2곳의 영업권도 이들이 관리했다. 2007년에는 서구 석남동 일대 유흥가서 활동하던 ‘석남파’ 조직원을 영입하며 세를 불렸다. 

타 조직과의 마찰이 있으면 비상연락망에 따라 위에서 밑으로 지시를 내리는 체계를 갖췄다. ‘또래 리더’가 또래 조직원들과 바로 아래 ‘또래 리더’에게 연락해 상황을 전파하는 식이었다. 

간석식구파 조직원들은 ‘선배를 보면 90도로 인사하고 지시에 복종한다’ ‘선배나 후배가 다른 조직원에게 무시당하면 반드시 복수한다’ ‘인천 외 지역으로 갈 때는 1년 위 선배들에게 보고한다’ ‘선배들의 전화는 무조건 받는다’ 등 자체 행동강령에 따라 죽고 살았다. 

금강산파 전신
행동강령 준수

2011년 10월21일. 간석식구파는 인천시 남동구 길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라이벌 조직인 ‘크라운파’와 크게 붙었다. 속칭 ‘전쟁’이었다. 간석식구파 조직원이 크라운파로 자리를 옮긴 조직원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힌 것이다.

부인상을 당한 조직원을 문상 왔던 크라운파 조직원 100여명은 ‘전쟁’이 시작됐다는 소식에 속속 장례식장 앞으로 집결했고 신간석파 조직원 30여명도 긴급 호출을 받고 현장으로 몰려들었다. 

‘경찰의 날’에 벌어졌던 이 난투극으로 간석식구파 조직원 11명이 징역 1∼13년을 선고받았고 조직은 와해되는 듯했다. 그러나 3년 뒤 행동대장 등 핵심 조직원들이 잇따라 석방되면서 다시 조직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2014년 8월에는 크라운파에서 활동하다가 조직 내부 문제로 이탈한 조직원 21명과 신포동식구파(일명 ‘꼴망파’) 소속 3명을 잇달아 영입했다. 신규 조직원이 늘자 일명 ‘줄빠따(기수별 폭행)’로 기강을 다잡았다.
 

기존 조직원과 크라운파에서 이적한 조직원 간에 갈등이 생겼고 A씨 등은 한 살 위인 선배의 지시에 따라 바로 아래 29∼30세 조직원들을 불러 야구방망이로 10차례씩 폭행했다. 

A씨는 2015년 후배 조직원이 서울의 한 폭력조직원과 통화하다가 말다툼 벌인 사실을 알고, 비상연락망을 취해 후배 10여명을 집합시킨 후 서울로 가 서울 폭력조직원들과 대치했다. 

2014년 9월에도 흉기를 들고 인천의 다른 폭력조직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비상대기’를 했다. 

허물어진 기반
SNS로 교류 중


경찰이 올해 3∼6월 100일 작전을 펼쳐 전국서 잡아들인 조폭만 1385명이었고 이 중 232명이 구속됐다.

행태만 바뀌었을 뿐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불법행위를 일삼는 조폭은 여전히 존재한다. 흔히 조폭이라고 하면 지역을 기반으로 조직 간 영역 다툼하고 자신을 깡패가 아닌 건달이라 칭하며 화려하지만 위험한 삶을 사는 영화 속 모습을 떠올리지만 요즘 조폭들은 먹고살기 바쁘다.

경찰의 전언에 따르면 과거의 모습과 달리 요즘은 돈을 좇아 이합집산하거나 철새처럼 여러 지역을 오가며 돈벌이를 찾는 것이 조폭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번 인천-광주 간 조폭 보복전 사건서도 이 같은 경향이 드러났다.

요즘 조폭들은 SNS를 통해 인맥을 넓히는가 하면 필요에 따라 지역 조직을 뛰어넘는 이합집산을 한다. 광주 조폭 한 명은 이번 사건 과정서 페이스북에 글을 게시해 가족의 결혼 사실을 널리 알렸다. 이 내용을 접한 인천 등 수도권 지역 조폭들은 광주로 직접 찾아와 광주 조폭과 얼굴을 텄다.

SNS를 통해 서로 경조사를 알리고 이것을 계기로 서로 만나며 조폭 간 인맥을 늘리는 것이다. 경조사에 조직원이 많이 모일수록 자신의 세를 과시하는 덤도 얻는다.

이 과정서 조폭들 간의 서열은 나이로 정해진다. 이번 사건서도 나이가 한 살 어린 광주 조폭이 술 취한 인천 조폭을 말렸다는 이유로 시비가 시작돼 폭행 사건으로까지 번졌다.


89년 결성… 장례식장 난투극으로 유명세
타 조직과 마찰 시 체계적 비상연락 가동

시대는 바뀌었지만 조직원이 당한 피해는 반드시 보복한다는 조폭의 행태는 여전했다. 인천 조폭은 자신이 폭행당하자 평소 친분이 있던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조폭들을 모조리 불러 모았다.

이들은 소속은 각자 달랐지만 평소 필요에 따라 함께 행동하기도 했기에 전화 한 통화에 상대 조직을 응징하기 위해 수도권서 광주까지 새벽같이 달려왔던 것이다.

다만 조폭들은 자신들의 신원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해 극도로 조심했다. 수도권 조폭들은 광주의 한 모텔에 집결하면서 신원이 드러날까 봐 모텔을 통째로 빌려 손님을 못 받게 했고 모텔 CCTV를 뜯어가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폭들의 지역 기반이 허물어지면서 타 조직 간 교류로 세를 불리려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사건도 경조사를 통해 교류하려던 조폭들 사이의 다툼이 보복전으로 번진 것 같다”고 말했다.

잇따라 적발
소탕해도 재건

인천경찰청은 2012년부터 최근까지 크라운파·간석식구파·부평식구파·꼴망파·주안식구파를 잇따라 적발했다. 올해 현재 인천경찰청의 관리 대상 폭력조직은 13개 파로 해당 조직원 수는 320여명이다. 인천경찰청 관계자는 “폭력조직을 소탕해도 구속한 핵심 조직원 외 불구속된 하부 조직원들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며 “지역 폭력조직원들을 지속해서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