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승자' 김한길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6.18 10: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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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 놓쳤지만 당내 입지 탄탄 "지고도 이겼다"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이기고도 졌다. 아니 결과는 졌지만 과정은 사실상 이겼다." 이번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 전당대회 결과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김한길 최고위원은 지난 9일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이해찬 대표에게 0.5%차 석패를 당했다. 전국 대의원 순회경선 12개 시·도와 권리당원 현장투표에서도 모두 1위를 차지했던 그였기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 그야말로 이기고도 진 안타까운 결과였다. 친노 강세인 온라인 표심을 넘지 못한 것이 패배의 원인이었다. 이번 경선을 계기로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선룰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은 이번 패배에도 불구하고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 지난 18대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4년간의 공백기를 가졌던 그다. 또 특정 계파와 세력의 뒷받침 없이 혈혈단신 경선에 뛰어들었던 그로서는 졌지만 화려한 컴백이었다.

민주당의 새지도부를 선출하는 임시전당대회가 예상 밖 흥행에 대성공했다. 총선패배 후 침체돼 있던 민주당엔 단비와도 같은 호재였다. 이번 전당대회 흥행의 중심에는 모두가 예상했던 이해찬 대세론을 누르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박빙의 승부를 만들어낸 김한길 최고위원이 있었다.

김 최고위원은 이번 경선에서 이해찬 대표에게 역전을 허용하며 당권을 놓쳤으나 '김한길 대안론'까지 만들어 내는 등 당내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양한 분야 '두각'
??승승장구 행보

선거기간 내내 이 대표는 '이-박 담합론' 전화인터뷰 보이콧, 종북색깔론 등 다양한 악재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모바일 표심이 승패를 갈랐다.

김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이후 처음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전국 대의원 순회경선에서 12개 시·도가 저를 1등으로 뽑아주셨고, 권리당원 현장투표와 모바일투표에서도 모두 저를 1등으로 뽑아주셨다. 대의원과 당원에게 가장 많은 표를 받고도 대표가 되지 못해 죄송하다"며 우회적으로 이번 경선이 당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음을 비판했다.


김 최고위원은 투표 결과에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솔직히 대표직 수락 연설문까지 다 써놨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김 최고위원은 전당대회가 끝난 다음날 치러진 민주당 새 지도부 상견례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김 최고위원의 불참을 놓고 전당대회 결과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것이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은 "대선 승리를 위한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며 항간의 우려를 깨끗이 씻어냈다. 다만 6·9 전당대회를 계기로 향후 대선후보 경선에서의 모바일 선거인단 구성 등 전반적인 룰에 대한 수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편 김 최고위원은 1953년 일본 도쿄에서 통일사회당 당수를 지낸 아버지 당산 김철, 어머니 윤초옥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김 최고위원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국으로 건너와 덕수초등학교와 대광중학교, 이대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서울 중앙여고에서 잠시 교편을 잡기도 했지만 1981년에 소설 <바람과 박제>가 문학사상에서 소설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하게 된다.

0.5%차 석패…'한끗' 밀렸지만 저력 확인
'계파정치 타파' 대선 경쟁력 확보에 총력

또 미국으로 건너가 미주 한국일보, 미주 중앙일보 등에서 언론인으로 일하기도 했다. 귀국 이후에는 방송위원회 기획국 국장, 방송위원회 사무총장서리, 기조실장 등을 지내다가 소설가로 활동한다. 김 최고위원은 소설가 활동 외에도 방송인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김한길과 사람들〉의 진행을 비롯한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김 최고위원은 교사, 소설가, 기자, 방송인, 정치인 등 모든 이들이 선망할 만한 직업들을 두루 거쳤으며, 모든 분야에서 승승장구했다.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현재의 부인인 9살 연하의 탤런트 최명길을 만나 결혼한 일화는 유명하다. 김 최고위원은 당시 초대손님으로 나온 최명길에게 생방송 중 '사귀는 사람 있냐?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느냐?'며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쳤다. 최명길은 후에 "생방송 중에 그런 질문을 받으니 꼭 선을 본 느낌이었다"고 그때의 느낌을 털어놓기도 했다.

1995년 최명길과 결혼한 김 최고위원은 1996년에 15대 국회에 전국구 의원으로 등원하며 정치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된다. 1992년 대선 때 국민당 정주영 대통령 후보의 공보특보를 맡기도 했지만, 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국민회의 선대위 대변인으로 영입돼 15대 국회에 전국구로 등원한 것이 본격적인 정치행보의 시작이었다. 그는 대중에 정서적으로 다가가는 감각과 아이디어로 김 전 대통령의 신뢰를 얻었다. 김 전 대통령은 누가 어떤 문제에 대해 말하면 "김한길 의원하고 이야기했어?"라고 했을 정도로 그를 신임했다고 한다.


그런 신임을 바탕으로 그는 대통령선거 때마다 총괄기획을 맡아 성공했다. 노무현 정권 때는 예상을 뒤엎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까지 선출돼 대야협상을 이끌기도 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문화관광부 장관과 16, 17대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지난 2008년 1월 6일 대통령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겠다며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두문불출하다 이번 19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정치적 동반자 '최명길'
??평생의 가장 큰 자산

선거 과정도 무척 드라마틱했다. 민주통합당은 19대 총선을 겨냥하고 일찌감치 광진구갑 지역위원장을 맡아 표밭을 다져 온 비례대표 전혜숙 의원을 공천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전 의원이 당내 여론조사 과정에서 금품을 돌렸다는 의혹을 받게 돼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자 김 최고위원이 선거일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뒤늦게 전략공천을 받아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렇듯 정치에 입문한 후 승승장구 해온 김 최고위원지만 처음 정치에 입문하려 했을 때는 주위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고 한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너희 아버지(고 김철 사회당 당수) 때문에 가문이 평생 고생했는데, 왜 야당 하느냐. 절대 안된다"고 반대했다.

김 최고위원은 당시 상황에 대해 "1주일동안 여행을 하며 가족들을 설득 시켰다. 그때 야당인 국민회의에 입당한 게 보람이 참 컸다. 그 당시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렇게 입문해서 1년 야당하고 10년 동안 여당을 했다"고 밝혔다.

김 최고위원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그의 아내인 탤런트 최명길이다. 김 최고위원은 한 인터뷰에서 "계파도 없고, 세력도 없습니다. 있다면 (아내인) 최명길 하나입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인 최명길은 고등학교를 다니던 1981년에 MBC 13기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해 영화 <장미빛 인생>으로 프랑스 낭트영화제 여우주연상 및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바 있으며, 2002년 KBS 대하드라마 <명성황후>에서 명성황후 역을 맡으며 단아하고 강직한 이미지를 얻게 된다.

일각에서는 김 최고위원이 이번 경선 과정에서 '이해찬 대세론'을 무너뜨린 데에는 최명길의 득표력이 주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의원들과 그 가족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최명길은 상대편 후보에게는 차라리 악몽과도 같았다. 이 대표의 측근은 "지역 대의원 대회장에 가보면 최명길씨가 항상 출입구에서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는데 대의원들이 정말 좋아한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침몰하던 민주당 구한 ‘윈윈’ 경선…패자 없었다
‘이기고도 진 선거’ 경선룰 전반적인 개정 불가피

실제로 최명길은 경선이 치러지는 현장에서 대의원들과 일일이 어깨동무를 하고 팔짱을 끼며 사진을 찍는 등 밀착형 스킨십을 시도했으며, 대의원들에게 직접 홍보전화를 돌리기도 하는 등 표심을 얻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은 최명길을 부각하는 것은 자신의 정치력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라며 경계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한 기자간담회에서 "최명길을 너무 높게 평가하는 것은 나를 '졸'로 보는 것"이라며 "19대 총선 승리에 대해 '김한길 저력이 대단하다'는 평가보단 전부 '최명길 덕분에 됐다'고 했다. 이는 명백한 평가절하"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부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만큼은 절대 잊지 않는다. 그는 "우리 집사람은 나 때문에 손해만 봤다. 정치를 시작할 때 '내가 생활비를 도와주진 못해도 뺏어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도 못지켰다. 정치생활을 하느라 차도 없었고, 선거사무실 청소를 내가 직접 할 정도로 어려웠을 때 집사람은 드라마 출연료를 선뜻 내어 주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던 민주당 전당대회는 모두 끝났다. 비록 당권을 잡는 데는 실패했지만 당내 입지를 확실하게 다진 김 최고위원은 우선 '패권적 계파정치'의 타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 최고위원은 "계파주의와 지역주의 논리로 특정세력을 결집시키려는 분파주의적 사고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면서 "당내외의 모든 세력과 집단을 아우를 수 있는 통합적 리더십으로 민주당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만이 대선 승리의 살 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친노니 친호남이니 하는 명찰을 모두 떼어버리고 우리당 모두가 오직 '대선승리'라는 하나의 명찰을 달고 한마음으로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행보는?
?계파정치 타파 총력

민주당 새 지도부는 19대 국회 개원 협상과 대여 투쟁은 물론 12월 대선을 앞두고 당내 대선 후보 경선을 관리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 거친 감정적 대결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 대표와 김 최고위원이 그간의 갈등을 어떻게 봉합하고 환상의 팀워크를 보여줄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김한길 최고위원 프로필>

▲ 이대부속고등학교 졸
▲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
▲ 1985년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지사 지사장
▲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비례)
▲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공보팀장, 인수위 대변인
▲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정책기획수석
▲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비례)
▲ 2000년 문화관광부 장관
▲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구로을)
▲ 2006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 2007년 중도통합민주당 대표
▲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광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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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