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업소 여성 염산테러로 본' 대한민국 ‘산 테러사건’ 총정리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4.30 15: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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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계속 타들어 가고 있는데…”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충격적인 염산테러가 국내에서 또 발생했다. 지난 2009년 온 국민을 떠들썩하게 했던 성남 테러사건 이후 3년만이다. 그간 ‘산 테러’는 여성들의 인권이 취약한 아시아 오지와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등지에서 여성을 복종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종종 발생해 왔지만 근래에는 국적을 불문한다. 일순간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평생을 화상의 흔적 속에서 살아야 하는 피해자들. 그리하여 인격살인, 가족에 대한 살인이라고도 불리는 끔찍한 묻지마 테러. 그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산 테러사건을 총망라했다. 

한 여성이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간다. 잠시 뒤 모자를 눌러쓴 남성이 빈병을 들고 나온다. 공개된 CCTV 영상 속에 박모(30·남)씨가 여성에게 염산 희석액을 뿌리고 자리를 뜨는 장면이다.

박씨는 피해여성이 유흥업소 동료인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험담을 한다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박씨의 여자친구 석모(24)씨는 망을 봤고, 2명 모두 경찰에 구속됐다.

여자는 망보고
남자는 염산테러

서울 서초경찰서는 자신을 험담하고 욕설을 한다는 이유로 A(31)씨에게 염산을 뿌려 온몸에 화상을 입힌(상해) 혐의로 박씨와, 박씨의 여자친구 석씨를 구속했다고 4월 24일 밝혔다.

A씨와 석씨는 이른바 ‘텐프로’ 에서 함께 근무하는 동료 사이였다. 그러나 최근 A씨가 석씨에게 “성형수술한 주제에”라거나 “얼굴도 예쁘지 않은 XX아”라는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화가 난 석씨가 남자친구와 염산테러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4월 17일 새벽 3시 25분쯤 서초구 반포동 A씨의 집 계단에서 A씨를 기다렸다. 2시간여가 흐른 뒤 A씨가 집에 돌아오자 주먹과 발로 마구 때리고 염산이 희석된 액체를 뿌렸다.

이때 여자친구인 석씨는 담벼락 뒤에서 망을 봤다. 이로 인해 A씨는 눈 결막 화상 및 얼굴과 몸에 전치 4주의 화상을 입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피부가 녹아내릴 정도로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며 “당시 사용했던 염산 용액 등 관련 증거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흥업소 여성과 그 애인, 무시하던 동료 찾아가 염산테러
황산테러 피해자 정아씨·99년 대구 황산테러사건 다시 주목

지난 2010년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해 1월 12일, 부산 사상경찰서는 “헤어질 것”을 요구하며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여자친구의 신발 속에 황산 용액을 화장지에 묻혀 넣어 화상을 입힌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조모(52)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 1월6일 오전 8시30분쯤 부산 사상구 모라동 모 회사 3층 탈의실에서 이 회사에서 일하던 임모(48·여)씨의 작업용 부츠 속에 황산 용액을 화장지에 묻혀 넣어 3도 화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임씨와 1년 전부터 사귀어오던 조씨는 최근 임씨가 “헤어지자”며 전화를 받지 않고 계속 만나주지 않자 이에 앙심을 품고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임씨는 이 사건으로 전치 8주의 진단을 받았다.

죽음보다
더 한 고통

그리고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2009년 ‘황산테러 사건’이 있다. 평범한 여성 직장인이었던 박모(당시 26세)씨가 황산테러를 당한 것은 6월8일 아침. 출근을 하려고 나선 박씨는 괴한 2명이 뿌린 황산을 뒤집어쓰는 바람에 얼굴과 가슴, 팔 등 전신의 2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이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밀린 임금과 투자금 등 4000만 원을 받아내기 위해 소송을 냈는데, 전 직장 사장이 직원들을 시켜 보복테러를 가한 것이다. 다행히 생명은 건졌지만 박씨의 얼굴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박씨는 사건 직후 뼛속까지 타들어가는 고통보다 흉하게 변해버린 외모에 절망해 “죽고 싶다”는 생각도 수 없이 했다. 당시 얼마나 더 병원치료를 받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재취업은 물론 결혼도 기약하기 어려울 만큼 망가진 박씨의 삶은 많은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렸다.

황산테러엔 아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1999년 5월20일 대구에서 한 어린이가 황산테러를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피해자 고 김태완(당시 6)군은 밥을 먹은 뒤 공부방에 가기위해 집을 나섰다가 이유 없이 괴한이 뿌린 황산테러의 피해자가 됐다. 집을 나선지 10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김군은 생존확률 5%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놀라울 정도의 강한 정신력을 보였지만 심각한 상처로 인해 사고 발생 4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 사건은 사건 발생 12년이 지나도록 범인이 잡히지 않고 미궁에 빠진 상태다. 어머니 박정숙(당시 35)씨가 다시는 김군과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태완이의 병상일지를 공개했다.

“태완아 잘 가, 먼 훗날 다시 만나면 더 많이 사랑해줄게”라는 제목을 단 49일 간의 병상일지는 지금도 네티즌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있다.

이같이 염산이나 황산 등 화학물질을 이용한 범죄는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평생 지고 가야 할 고통을 안기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살인보다 더 나쁜 죄질의 범죄라고 말한다.

또 이와 같은 사건은 국내 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여성들의 인권이 취약한 국가에서의 산 테러는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르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 ‘구조적인 범죄’일 정도다.

<뉴욕타임즈>는 황산테러 특집판에서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파키스탄 등의 지역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해 웬만한 건 사고로 여기지도 않을 뿐 더러 가해자인 남성들이 기소되는 경우 역시 드물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남성들이 이 같은 일을 저지르는 이유는 대부분 자신의 구애를 받아주지 않는다거나 헤어진데 대한 앙갚음이었다.

지난해 12월,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사는 한 남성은 자신의 청혼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17살, 12살, 8살 된 세 자매에게 염산테러를 했다. 세 자매는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갔고, 특히 청혼을 거절했던 맏딸은 얼굴에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이슬람권,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로 취급…산 테러는 예사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상처…“관련법 대폭 강화해야”

이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피해자는 ‘아메네 바라미’라는 여성. 그는 지난 2004년 11월 자신을 짝사랑했던 한 남성의 청혼을 거절했다가, 그가 뿌린 염산이 얼굴에 쏟아지면서 큰 화상과 함께 두 눈의 시력까지 잃었다.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2008년 3월 영국에서 모델로 일하던 케이티 파이퍼는 헤어진 남자친구가 사주한 괴한이 뿌린 공업용 황산에 얼굴을 맞았다.

이 사고로 파이퍼는 얼굴과 목, 귀 등의 피부가 심하게 녹아내렸으며,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일었다. 헤어진데 대한 앙심을 품은 전 남자친구가 파이퍼를 납치해 성폭행한 뒤 그녀의 얼굴과 인생을 망가뜨린 것.

하지만 이후 파이퍼는 30여 차례의 성형수술을 통해 힘겨운 시련을 극복하고 모델로서 활동을 재개했다. 파이퍼는 방송에서 “살아있다는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말해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 주기도 했다.

원한관계에 의한
계획된 복수극?

이렇듯 국내외를 막론한 충격적인 산 테러사건. 물론 다른 범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전문가들은 황산·염산 등의 테러는 피해 당사자의 외모에 큰 상처를 입히고, 평생 동안 그 상처로 인한 아픔을 안고 살아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어떤 범죄보다 더 흉악하고 악질적인 범죄 행위라고 말했다.

화상으로 인한 상처는 육체적인 고통뿐만이 아니라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지도 모르는 흔적을 남기게 되기 때문이다.

범죄피해센터 관계자는 “최근에 발생한 사건과 같이 연인을 향한 일방적인 애정으로 균형이 무너지면서 증오의 감정으로 바뀌는 상황에서의 이러한 행동은 피해자가 평생을 가져가야 할지도 모르는 고통을 생각하면 너무 극단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며 “피해자가 입을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생각해서라도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관련법을 보다 더 강화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 역시 “앞으로 이런 화학물질에 의한 테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는 사법부의 강력한 처벌 의지를 기대한다”며 “또한 이런 사건에서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보지 않도록 형사배상명령제도를 보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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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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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