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사건으로 본] 대한민국 토막살인 총정리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4.17 11: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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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질을 시작했어, 비명이 새어 나가지 않게…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일종의 선진국형 범죄라는 ‘묻지마 살인’이 우리나라에서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발생한 ‘수원 20대 여성 살해 사건’이 말해주듯 외력에 의한 죽음, 즉 살인은 다양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살인행각은 사후처리문제를 낳게 된다. 사체가 범인을 검거하는 강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 이에 많은 증거를 담고 있는 사체에 대한 처분이 많은 범죄자들의 숙제로 남았고, 이는 결국 토막 살인으로 이어져 왔다. 세상에서 가장 극악한 범죄에 해당한다는 토막살인. 날로 흉포해지는 대한민국의 토막 살인을 총망라했다.

오원춘(42). 경기도 수원시 20대 여성의 사체를 280여 조각으로 나눈 희대의 살인범이다. 수십 년간 범죄 현장을 지켜봐온 현장관계자들과 범죄 심리 전문가들도 이렇게 참혹한 광경은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범행 수법은 처참했다.

때문에 그가 무엇 때문에 이처럼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과거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던 엽기적인 토막 살인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토막 살인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토막 살인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부인이 남편을 두 토막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32년 3월 23일 용강군 지문면 문성리에서 부인 정성녀(35)씨가 동침 중이던 자신의 남편의 목을 찍어 죽이고 사체를 두 토막 낸 사건.

당시 정씨는 사체 옆에 앉아서 태연히 바느질을 하다가 자수하였으며, 징역 7년을 구형받았다. 형랑 구형시 정씨의 언행을 근거로 삼아 정신이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후 다시 토막 살인이 이슈화된 시점은 1990년대 이후다. 1990년 4월 15일 인천에서 동거녀를 토막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정영규(32)씨는 동거 중이던 박문숙(36)씨와 심하게 다툰 뒤 잠자는 박씨를 목 졸라 살해하고 달아났다. 그로부터 3일 뒤 집으로 돌아온 정씨는 쇠톱 등으로 시신을 토막 내 비닐포대에 넣은 뒤 부엌 연탄 옆에 숨겨놓고 달아났다. 

1997년 9월 4일 대전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정자(33·여)씨는 자신의 집에서 동거 중이던 우성철(38)씨와 심하게 다툰 뒤 우씨가 잠들자 목 졸라 살해했다. 김씨는 우씨의 시체를 토막 낸 뒤 아이스박스에 넣어 5일 동안 보관하는 엽기적인 행각을 하다 자수했다. 

자신의 회사 여경리를 토막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1998년 11월 10일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유령회사를 운영하던 박래용(43)씨는 여자 경리의 재정보증금을 노리고 목 졸라 살해했다. 박씨는 쇠톱 등으로 시신을 네 토막 낸 뒤 머리와 양손은 인근 야산에 묻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을 잡고 흔든
엽기 토막살인사건

2000년대 부터 토막 살인은 그 대상과 살해이후 사체절단 등에서 더 잔혹하게 진화했다. 2000년 5월 21일 경기도 과천에서는 ‘친부모 토막살해’라는 패륜범죄가 발생해 전국이 큰 충격에 빠졌던 적이 있다.

세칭 일류대에 다니던 이은석(24)씨는 가정에 무관심한 아버지, 신경질적이고 이유 없이 학대하는 어머니, 부모의 애정을 독차지하는 형에 대한 불만을 품고 범행을 계획했다.

21일 새벽 이씨는 만취한 상태에서 둔기로 어머니를 살해하고 이어 아버지를 살해했다. 이씨는 살해 후 아버지를 10토막, 어머니를 11 토막을 내고 내장이 너무 많아 부피를 줄이려고 가스레인지에 넣어 태우려고 했으나 잘 타지 않자 꺼내어 비닐봉투에 따로 담은 뒤 집 근처 중앙공원 쓰레기통 등 10여 곳에 내다버렸다.


2003년 인천에선 헤어진 애인의 남자친구를 닮았다는 이유로 20대 남자를 살해한 뒤 자신들이 성폭행한 여성이 보는 앞에서 시체를 토막 낸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구치소 동기인 민모(27)씨와 강모(25)씨는 2003년 1월 11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고등동 구 버스터미널 앞에서 자가용 영업 운전기사 오모(26)씨를 만나 강릉으로 가던 중 오씨의 승용차를 뺏고 오씨를 트렁크에 감금했다.

1932년 국내 첫 토막 살인부터 ‘수원 토막살인’까지
‘두 토막’에서 ‘280여 조각’으로 잔혹하게 진화

오씨를 데리고 인천 집으로 돌아온 이들은 다음날 오전 오씨가 탈출을 시도한데다 강씨 전 애인의 남자친구와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주먹과 둔기로 마구 때려 살해했다.

이어 이들은 13일 오후 인천의 한 화상채팅방에서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정모(32·여)씨를 월미도에서 만나 납치한 뒤 5차례에 걸쳐 성폭행하고 250만원을 빼앗았다.

특히 이들은 정씨가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15일 오전 4시께 집에 보관 중이던 오씨 시체를 꺼내와 정씨가 보는 앞에서 20여 개로 토막 내고 사진을 찍은 뒤 "너도 토막살인 공범이니 신고 할 테면 해봐라"며 엽기 행각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7월 29일 경남 마산에서는 모녀가 남편이자 아버지를 토막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부인 고모(55)씨와 정형외과 간호사이던 딸 손모(26)씨는 29일 오후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죽인다"며 흉기로 위협하는 손모(53)씨의 흉기를 빼앗아 살해했다.

이후 완전 범죄를 노려 집안 욕실에서 사체를 10등분으로 토막 낸 뒤 팔 등 일부 사체토막은 집근처 공원에, 머리 부분 등은 범행 다음날 렌터카를 이용해 야산에 각각 유기했다. 특히 이들은 사체가 발견되더라도 신원을 알 수 없도록 사체의 손가락에서 지문을 도려내는 치밀함을 보였다.

2005년 6월 17일에는 아내를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 내 집 안에 묻어 숨겨두고 3년간 함께 지내다가, 내연녀까지 살해한 인면수심의 60대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목수 일을 하던 권모(66)씨는 2002년 10월 28일 집 뒤편 목공소에서 아내 손모(58)씨와 도박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손씨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안방 바닥을 파고 시신을 묻었다.

이어 2003년 1월에는 집 보수공사를 하면서 아내의 시신을 토막 내 안방과 거실 현관 쪽에 각각 묻었고, 당시 아내를 살해한 뒤 가출신고를 하고 3년 동안 시신이 묻혀있는 집에서 혼자 생활해 온 것으로 드러나 주위를 경악케 했다.


범행을 은폐해오던 권씨는 빌린 돈 1억여 원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연관계이자 친구인 부인인 서모(63)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2006년에는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토막살인 한 사건이 두 건이나 발생했다. 2006년 10월 2일 경기도 고양시에선 바람난 아내와 이혼을 협의하다 홧김에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 내 바다와 강 등에 유기한 김모(47)씨가 붙잡혔고, 2006년 10월 11일에는 강화도의 한 포구 근처에선 훼손된 시신의 일부가 발견됐는데 이 역시 4번이나 바람피운 아내를 눈감아 주었지만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토막 살해한 사건이다.

이후에도 토막 살인은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공공시설인 지하철역에 연인이던 여성의 토막시신을 유기했던 안산 토막살인 사건, 일산 육군 중사가 자신의 여자 친구를 토막 살해한 사건, 현직 목사가 성관계를 거부한다는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뒤 토막 낸 사건, 미혼모가 자신의 아이를 질식사 시킨 뒤 토막 내 화장실 변기에 버린 사건 등 이다.

토막 살인을 자행한
기막힌 이유는?

그렇다면 왜 이렇게 끔찍한 토막 살인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걸까. 이에 앞서 살인자들의 살해 대상과 동기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살인범에 대한 감정사례를 분석한 정신의학자의 연구논문을 보면 살해대상자는 부모, 형제, 친척, 이웃 등으로 자신과 보다 가까운 대상이 선택되며 아주 낯선 대상이 선택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낯선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주 낯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망상과 유관한 대상이기 때문에 아주 무관한 대상만은 아니 라는 것. 예를 들면 가정 내 살인인 경우가 57%, 지인간이 32%, 무지인(면식이 없는)이 11%라고 한다.

2000년대 이후 발생했던 과천 친부모 토막 살인사건, 또는 마산 모녀 토막살인 사건 등이 적합한 예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안전을 방해하면 그 방해물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무의식이 잠재되어 있는데 그러한 충동, 격정, 억압된 감정이 어느 땐가는 표출된다.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람들은 질투와 반감 미움 그리고 분노와 함께 공포에 이르게 된다. 가정이 사랑의 보금자리가 아닌 ‘지긋지긋한 곳’이라던 친부모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 이씨의 범행 동기가 그랬고, 수십 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마산 토막살인 사건의 두 모녀 역시 같았다.

그러나 최근엔 살해 대상자가 불특정 다수가 되거나 특별한 동기 없는 살인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것은 가해자ㆍ피해자가 발견되지 않거나 혹은 범죄 상황이 복잡한 요소들로 둘러싸여 그 원인을 결정지을 수 없는 완전히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살인이며, 이유 없는 살인이라고도 한다.

지난 1일 발생한 수원토막살인 사건의 범인 오원춘이 적합한 예이다. 이 같은 살인범들이 나타내는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범행에 대하여 냉담하고 무감각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예로 오원춘이 피해자를 살해한 후 태연한 얼굴로 시신을 나눠 담을 까만 봉투를 구하러 다녔다는 것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는 ‘여성이 재수가 없었던 탓’으로 돌리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남편·애인·동거녀·여경리 등 주변서 불특정 다수로
왜 토막살인인가, “단순 운반 목적…쾌락 느끼기도”

결과적으로 이렇게 벌어진 살인이 잔혹한 토막 살인으로 이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살인사건이 발생한 뒤 시체를 처리해야하는 가장 큰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토막 살인이 이뤄지면 토막 난 사체를 찾아내는 것도 힘들 뿐 아니라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도 어렵게 된다. 그렇다보니 일부 살인자들은 사체절단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토막 살인이 미제 사건이 많은 것도 그 이유일 수 있다.

그러나 토막살인 이라는 그 범죄 행위 자체에 관심이 집중되어 무조건 피의자를 엽기적인 살인마라든지, 인간의 탈을 쓴 악마로 매도하는 것에는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다.

토막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범인이 포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시체를 주위 사람들 몰래 처리하기 위해 토막을 낸다는 것이 수사관들의 공통된 진술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싸이코패스이자 연쇄살인범 유영철처럼 시신을 자르면서 흥분을 느끼는 쾌락살인을 느끼는 자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론 토막살인 이라는 범죄행위 그 자체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토막 살인이 왜 발생하였는가, 토막 살인한 범죄자의 행동 하나하나에 '왜'라는 물음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며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범인, 아니 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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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