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망가진’ 대기업 막전막후

‘꿈 깨!’ 사라지는 차이나 드림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기업에게 중국시장은 꿈의 무대다. 14억 인구서 나오는 충분한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 나가떨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한국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일요시사>는 중국 진출의 닻을 올렸지만 쓴맛을 보고 회항한 기업들을 확인했다.
 

한국은 지난 1992년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이념적으로 달랐던 양국이었지만 경제적인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한국의 기업들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과 압도적인 인구서 나오는 시장에 열광했다.

한중수교 후
속속 현지 진출

중소기업과 대기업들은 국내에 있던 공장을 속속 중국으로 이전했다. 양국간 경제 긴밀도가 높아지면서 한국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다른 국가를 제치고 1위(2017년 기준)를 기록했다. 하지만 정작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결과는 ‘빛 좋은 개살구’란 평가가 나온다. 

심혈을 기울여 진출했지만 중국 시장의 정치적 불안이 경영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친 탓이다. 

경영 여건도 빠르게 변했다. 중국 투자의 매력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인 값싼 노동력은 옛말이 됐다. 2010∼2016년 연평균 임금 상승률은 9.28%에 달할 만큼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6년 기준 중국의 임금은 한국의 76% 수준까지 따라왔다. 


더 이상 공장 이전의 매력을 느끼기에 어려운 구조였다. 여기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여파와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중국 진출 기업의 불확실성이 고조됐다. 잇단 리스크에 기업이 휘청거리는 사례가 잦아지자 차이나드림을 꿈꾸던 기업들이 철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지난 15일, 더페이스샵이 중국의 모든 매장을 철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더페이스샵은 2010년 LG생활건강에 인수된 해 중국 상해법인을 설립해 시장 개척을 노렸다. 

실적이 문제였다. 지난해 더페이스샵(상해)화장품소수유한공사의 194억2000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따른 반한감정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반한감정은 LG생활건강 외에도 유통 관련 한국기업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롯데쇼핑 역시 사드발 역풍을 맞은 뒤 중국 내 사업을 접기로 했다. 롯데쇼핑은 2007년부터 중국에 진출해 마트 사업을 벌였으나 신통한 성적표를 거두지 못했다. 

특히 사드 보복으로 영업점의 영업이 중단되고 매출이 80% 가까이 감소하자 시장철수라는 카드를 꺼냈다.

사드 보복이 롯데쇼핑에 집중된 것은 사드 관련 이슈가 롯데그룹과 연관돼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 부지였던 성주골프장에 사드 배치가 결정되면서 중국 내 반 롯데정서가 매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롯데마트가 손실을 본 매출 규모는 1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중국 정부 당국은 중국에 진출한 롯데 계열사를 상대로 위생 점검, 세무조사 등 전방위 압박을 가하면서 경영활동을 사실상 지속하기 어려웠다.

롯데쇼핑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국 내 롯데마트 철수에 속도를 내기로 해다.  중국에 설립된 법인은 총 6개로 112개의 점포가 있다. 앞서 롯데쇼핑은 롯데마트 화동법인의 74개 점포 가운데 53개 점포를 중국 유통기업 리췬그룹에 매각했다. 
 

또 베이징 점포 21곳도 중국 유통기업인 우마트에 넘겼다. 중국 내 철수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롯데마트의 중국 내 매장 철수 계획이 알려지자 현지 중국 롯데마트 노동자 1000여명은 베이징시 롯데마트 총본부에 집결해 3일동안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롯데쇼핑은 중국에 진출한 마트 사업에 이어 백화점 사업 역시 발을 빼기로 했다. 롯데쇼핑은 2008년 베이징에 백화점 매장을 론칭하면서 중국 진출을 꾀했다. 이후 5개 점포로 확대했으나 롯데마트와 마찬가지로 사드 보복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하면서 매각 수순을 밟고 있다.

값싼 노동력 옛말
각종 리스크 부각

사드 보복은 롯데의 유통부문뿐만 아니라 수년간 공들여온 ‘청두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청두프로젝트는 중국 청두시에 1400가구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 후 호텔, 백화점, 쇼핑몰, 시네마 등의 문화 편의시설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투입되는 자금 규모만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프로젝트는 롯데그룹의 염원이 담긴 사업이기도 했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 내 롯데그룹 계열사 사업이 휘청거리는 시기에도 롯데그룹 측은 청두 사업철수 전망에 대해서 사실무근이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백화점 사업까지 철수하기로 한 지금 청두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 시각이 늘고 있다. 

중국 내 쓴맛을 본 롯데그룹이 청두 프로젝트를 밀어붙일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에는 중국 유통업계에 진출한지 20년이 된 신세계그룹의 이마트가 중국 철수를 마무리했다. 이마트는 1997년 중국에 진출하면서 중국 시장을 개척했다. 중국 진출이후 30곳까지 매장을 늘렸지만 수익성 악화로 돌아서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결국 짐을 쌌다. 
 

2012년부터 출점 매장 매각에 돌입했다. 2016년에는 당시 중국 상하이의 1호점을 폐점했다. 철수 수순은 지난해말 마무리됐다. 이마트는 상하이 매장 5개를 태국 CP그룹에 일괄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중국정부의 매각 허가가 나지 않아 철수가 미뤄졌다. 지난해 말에야 허가를 받으면서 철수가 사실상 종료됐다.


이랜드그룹 역시 중국 시장의 한계를 실감했다. 이랜드는 자사가 운영하는 커피빈의 중국지점을 철수할 방침을 밝혔다. 

이랜드는 2016년 중국 상하이에 커피빈 1호점을 오픈한 바 있다. 이랜드는 중국 내 1000개 이상의 매장을 늘려나간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2년 만에 ‘중국몽(夢)’서 깨야 했다. 이랜드는 중국에 진출한 다른 외식사업까지 철수하기로 했다. 

철수 법인은 ‘자연별곡’과 ‘애슐리’였다. 지난 2015년 이랜드의 외식브랜드 자연별곡은 중국 상하이 와이탄 지역에 ‘자연별곡(쯔란비에구)’를 개점했다. 한식뷔페의 중국진출 사례는 처음이었다. 자연별곡 1호점은 총 660㎡ 규모에 202석의 좌석을 갖추고 손님을 맞았다. 

시작은 좋았다. 한류열풍과 맞물리면서 1개 점포서 100일동안 매출 1062위안(한화 20억원)을 기록하며서 순조롭게 사업이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여세를 몰아 2호점까지 오픈했지만 고객들의 재방문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수익이 악화돼 지난해 사업을 철수했다.

애슐리 역시 아픈 손가락이다. 패밀리 레스토랑 브랜드 애슐리는 자연별곡보다 앞선 2012년에 중국 상하이에 1, 2호점을 오픈하면서 중국 외식업계에 발을 들였다. 1호점인 상하이 푸동의 애슐리는 외식 브랜드로는 최대규모인 1530㎡로 총 400석을 확보했다. 

상하이 최대 백화점 빠바이반에 입점한 2호점은 1200㎡에 총 320석을 확보하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5개 매장까지 확대했으나 수익성은 떨어지면서 결국 중국 시장서 짐을 쌌다.


국내 의류브랜드 에잇세컨즈 역시 야심차게 중국시장에 발을 들였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지난 10일, 에잇세컨즈 브랜드를 운영하는 삼성물산 측은 중국 사드 여파와 함께 투자대비 성과가 나지 않아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한다고 밝혔다. 
 

SPA 브랜드인 에잇세컨즈는 지난 2016년 9월 상하이 쇼핑거리 화이하이루에 3630㎡ 규모의 매장을 오픈했던 바 있다. 다만 중국시장서의 완전한 철수는 아니다. 에잇세컨드는 온라인 유통 채널을 통해 중국 공략에 변화를 줄 방침이다.

국내 주요 기업들도 중국의 몽니에 불확실성이 적지 않게 부각되고 있다. 

SK가스는 2016년 중국 진출 사업을 청산했다. SK가스는 2000년 후반부터 중국내 다양한 사업들을 론칭했다. 하지만 해외 기간산업 회사에대 한 중국의 인식은 배타적이었다. 이 때문에 사업 확장에 고심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중국 내 관련 법인들은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2011년 중국 지린성 창춘시 LPG충전소를 매각하고, 2013년 축천연가스(CNG) 생산·판매업을 주력으로 하던 ‘다칭SK란치유한공사’를 청산했다.

각종 불확실성 
고조에 ‘덜덜’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중국 선전에 위치한 통신설비 공장 철수를 결정했다. 높아진 인건비에 따라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 원인이었다. 이에 따라 선전서 생산하던 물량은 인도와 베트남에 위치한 공장서 맡게 됐다. 

중국 1인 근로자에게 투입되는 인건비는 월 5000위안(80만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근로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하는 보험 등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하면 1만2000위안까지 인건비가 상승한다. 

반면 베트남 노동자의 인건비는 10분의 1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인도의 경우 중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란 점에서 현지 공장에 대한 증설이 계획됐다. 기존 운영 중이던 인도 노이다 공장에 8000억원을 투입해 증설하기로 한 것이다.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현재 노이다 공장의 생산능력은 6000만대다. 증설 완료 후에는 1억2000만대로 생산력이 늘어날 예정이다.
 

한화리조트도 중국 시장 개척에 쓴 고배를 마셨다. 2016년 야심차게 아쿠아리움 사업을 벌였지만 2년 만에 철수했다. 당시 한화리조트는 중국 부동산 1위 기업 완다그룹과 아쿠아리움 사업을 추진해 월드 클래스 아쿠아리움 난창완다해양낙원(이하 해양낙원)을 론칭했다.

해양낙원은 종합테마파크인 완다시티 내 핵심시설로 국제 규격 축구장 5개 넓이 규모였다. 한화리조트는 당초 10년간 시설, 공연, 생물관리, 마케팅 등을 비롯한 운영을 맡은 계획이었다. 

하지만 완다그룹이 재무건전화 작업에 따라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서 해양낙원이 매각되면서 한화리조트가 자연스럽게 관리 위탁 사업서 손을 떼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화리조트로서는 중국 진출의 기회서 한 발 물러서게 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중국과의 정치적 이슈에 민감한 일본 기업들도 탈중국 추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지난 6월 일본 스즈키사가 중국 자동차 생산합작 사업을 철수했다. 인도 시장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 회사 측 입장이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한 뒤의 행보라 눈길이 쏠렸다.

스즈키사는 당시 중국서 자동차 생산을 포기하고 수입 판매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즈키사와 충칭 창안 자동차와의 합자회사인 충칭 장안 스즈키 자동차는 양사의 자본이 1:1 비율로 투입돼 1993년 설립됐다.

일본 미쓰비시전자는 미중 무역분쟁이 시작되던 무렵부터 중국 다롄에 있는 제품 생산기지를 일본 나고야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일본 도시바사도 관세부과에 부담을 느끼고 생산라인을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은 기업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시장이다. SK그룹은 수년째 그룹 차원서 중국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른바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을 통해 중국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구글 역시 8년 전 중국 검색 시장에 진출에 실패한 이후 다시 한 번 진출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구글 내부의 분위기는 물론 미국 정부까지 중국 진출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재추진은 유예됐지만 언제든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대·중견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진땀

증권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의 정치 리스크가 커 한국기업들이 중국진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한다”면서도 “경쟁사가 중국 시장에 선점할 경우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경쟁자로 부각할 가능성이 있어 있어 중국 진출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사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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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