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면죄부’ 회장님의 컴백 플랜

사고치고 당당히 퇴진…수습하고 조용히 복귀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회장님들이 사고(?)를 치고 흔히 내놓는 카드는 경영 퇴진이다. 기자들을 불러놓고 모든 자리를 내려놓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 모습은 ‘기시감’이 들 정도다. 이들은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났을까.

2016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가 있었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가 마카오 도박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것이다. 당시 재판에 거물급 법조인이 연루되면서 게이트로 확대됐다. 정 전 대표는 뇌물공여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 횡령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대법원까지 끌고갔지만 했지만 징역 3년6개월 형이 확정됐다.

퇴진 카드
진정성 의문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지난해 12월22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정 전 대표의 상고심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정 전 대표의 100억원대 횡령 혐의 등을 유죄로 봤다. 다만, 김수천(58·사법연수원 17기) 인천지법 부장판사에게 준 뇌물공여 혐의는 직무 관련 대가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정 전 대표는 2014년부터 2015년까지 김 부장판사에게 재판 청탁 명목 등으로 1억5600여만원의 뇌물을 준 혐의(뇌물공여)로 기소됐다.


검찰은 정 전 대표가 네이처리퍼블릭의 ‘수딩젤’ 가짜 화장품 제조·유통 사범을 엄중히 처벌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5000만원 상당의 SUV차량 레인지로버와 현금 등을 건넨 것으로 파악했다. 

정 전 대표는 2015년 1∼2월 회계 장부를 조작해 네이처리퍼블릭 법인자금 17억9200만원과 관계사인 SK월드 법인자금 90억원 등 약 108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았다.

정 전 대표의 형이 확정되는 순간 ‘정운호의 화장품 신화’가 깨졌다. 정 전 대표는 남대문 좌판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면서 화장품 사업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2003년 자연주의 화장품을 표방한 ‘더페이스샵’ 브랜드를 론칭했다. 시장에서 더페이스샵은 돌풍을 일으켰다. 더페이스샵이 시장에 진입한지 2년만에 연매출 1500억원을 기록했다. 2009년 정 전 대표는 더페이스샵을 LG생활건강에 넘겼다. 

구체적인 매각 대금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 전 대표는 당시 거래로 2000억원 이상의 차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정 전 대표는 한동안 쉬다가 2010년 네이처리퍼블릭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화장품업계에 복귀해 성공가도를 달렸다.

앞에선 대국민 사과
뒤로는 지배력 강화

현재 논란 이후 대표직을 내려놨던 정 전 대표는 구속수감 상태라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가족들을 통해 옥중경영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 전 대표의 부인 정숙진 씨는 현재 네이처리퍼블릭 이사회의장직을 맡고 있다. 


세계프라임개발과 에프에스비앤피의 사내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정 전 대표 자신도 계열사 임원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정 전 대표가 임원직에 이름을 올려놓은 곳은 네이처리퍼블릭 계열사 세계프라임개발, 에스케이월드, 네이처리퍼블릭온라인판매, 쿠지코스메틱, BEIJING NATURE INTERNATIONAL TRADE 등 5곳이다. 

출소 후 언제든지 회사로의 복귀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김준기 DB그룹(옛 동부그룹) 전 회장도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이후 회장직을 내려놨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말 미국으로 떠난 이후 현재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출국 약 2달 뒤인 지난해 9월11일 그의 비서로 근무한 30대 초반 여성 A씨가 같은 해 2월부터 7월까지 김 전 회장으로부터 상습적인 추행을 당했다는 취지로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이 고조됐다.

당시 A씨는 고소장과 신체 접촉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경찰에 제출했다. 김 전 회장 측은 A씨가 제기한 성추행 의혹과 관련, 신체 접촉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강제추행은 아니라며 A씨가 동영상을 빌미로 거액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사건이 대중에 알려진 이후인 지난해 9월21일 회장직서 물러났다. 경찰은 김 전 회장을 상대로 추행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소환을 요구했지만 김 전 회장 측에서 3차례에 걸친 소환에 불응하자 체포 영장을 발부하기도 했다.

경찰은 지난 5월 김 전 회장을 기소 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수서경찰서는 5월 중순 김 전 회장 사건을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이는 김 전 회장에 대한 수사가 일시적으로 중단 됐음을 뜻한다. 경찰은 김 전 회장이 미국서 장기간 체류 생활을 이어가고 있어 조사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감옥서 
옥중경영

현재 그의 소재조차 파악이 되지 않는 만큼 복귀는 요원한 상황이다. 다만 그룹 내 지분율을 살펴보면 영향력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김 전 회장이 복귀를 염두에 두고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의 복귀가 갖는 국민 정서상의 문제를 차치하고 서라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현재 김 전 회장의 혐의 수사와 관련해 기소중지 상태다. 기소중지는 피의자 소재 불명 등으로 인해 수사를 종결하기 어려울 경우 사유가 없어질 때까지 수사를 중지하는 넓은 의미의 불기소 처분을 말한다. 


다만 사유가 해소될 경우 수사는 재개되기 때문에 김 전 회장의 신변이 확보되면 다시 수사를 받아야 한다.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진 상황서 경찰 조사를 감수하고 모습을 드러낼지 여부에 회의적인 시각이 따르는 이유다. 

그럼에도 재계에선 김 전 회장의 지분율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복귀를 위한 밑그림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하고 있어 향후 상황에 눈길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갑질논란으로 회장직을 내려놨던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도 복귀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는 인사 가운데 한 명이다.

정 전 회장은 가맹점을 상대로 갑질을 하고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 전 회장은 2005년 1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가맹점 치즈 유통단계에 동생이 운영하는 회사를 끼워넣어 57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 기소됐다. 
 

이른바 ‘치즈통행세’에 항의하며 탈퇴한 가맹점주들이 협동조합 형태 회사를 설립해 매장을 열자 인근에 보복성으로 직영점을 내 영업을 방해한 혐의도 받았다.

또 가맹점주들로부터 받은 광고비 중 5억700만원을 ‘우수 가맹점 포상 비용’ 등 광고비와 무관한 용도로 사용하고, 친·인척 및 측근의 허위 급여로 29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있다. 


하지만 정 전 회장이 징역형을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복귀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김선일)는 지난 1월23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정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200시간을 명령했다.

함께 기소된 정 전 회장의 동생에게는 무죄를, MP그룹 법인에는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동생 정씨로 하여금 부당이익을 취하게 해 치즈 가격을 부풀렸다고 보기 어렵고, 공급 가격이 정상 형성됐다”며 “(탈퇴 가맹점주에 대한) 위법한 보복행위 증거도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정 전 회장은 지난해 9월 치즈 통행세 갑질논란이 불거지면서 회장직을 내려놨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회장 복귀가 가능한 상황이다. 정 전 회장의 MP그룹 지분율은 16.78%로 주요 주주 가운데 지분이 가장 많다.

특수관계자의 지분을 합치면 48.92%로 오른다. 소액주주의 비중이 31.1%란 점을 감안하면 회사의 지배력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윤재승 대웅제약 전 대표이사 역시 역설 논란이 불거지자 회장 퇴진 행보를 했다. 윤 회장은 지난 8월27일 윤 회장과 직원간 대화 녹음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한 언론을 통해 공개돼 논란의 중심에 섰다.

가족에 주고
다시 찾아가

녹취록에는 윤 전 회장은 직원에게 “나 정말 정신병자랑 일하는 것 같아서” “이XX야. 변명만 하려고해. 너XX처럼 아무나 뽑아서 그래” 등의 욕설 섞인 말을 하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공분을 샀다.

윤 전 회장은 논란이 불거진 당일 관련 사실을 인정하고 경영서 물러났다. 
 

윤 전 회장은 이날 대웅제약 보도자료를 통해 “저로 인해 상처받은 분들과 회사발전을 위해 고생하는 임직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28일 모든 직위를 사임하고 회사를 떠난다”고 전했다. 

이어 “자숙의 시간을 갖고 제 자신을 바꿔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재계에선 윤 전 회장의 부재가 길지 않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회장직에 오르기까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기 때문이다.

윤 전 회장은 대웅제약 창업주인 윤영환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검사로 재직한 법조인 출신이기도 하다. 1997∼2009년까지 대웅제약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이후 형인 윤재훈씨에게 대표 자리를 내줬다가 2012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다시 복귀했다. 2014년 9월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진했다. 대웅제약의 수장자리를 두고 형제가 치열한 경쟁을 펼친 셈이다.

이런 연혁 탓에 윤 전 회장이 조기 복귀를 점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룹 내 윤 전 회장의 지분율이 높아 물리적으로인 복귀는 어렵지 않다. 윤 전 회장은 대웅제약의 지주사인 대웅의 지분 11.61%를 확보해 최대주주 신분이다. 다만 국민 정서 상 복귀 시기가 적절한 지 여부에는 물음표가 찍히는 상황이다.

갑질로 고개 숙이고
성추행으로 망신살

구설에 오르면서 천호식품 회장직을 내려놨던 김지안 전 천호식품 대표와 김영식 전 회장 역시 복귀에 대한 가능성이 엿보인다. 천호식품은 창업주 김영식 전 회장이 2016년 인터넷에 촛불집회 비난 글을 게재하면서 입길에 올랐다. 

이후 가짜 홍삼 파문까지 불거지면서 실적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김 회장 부자가 경영 복귀에 말이 나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실적악화 때문이다. 현재 천호식품의 지분율을 살펴보면 사모펀드인 카무르파트너스가 지분율 49.5%로 최대주주 신분이다.

여기에 김 전 회장과 김 전 대표가 각각 20.7%, 8.5%로 결코 지분이 적지 않다. 카무르파트너스 입장에선 실적 악화로 자금 회수가 어렵다는 판단이 설 경우 김 전 회장 부자가 지분을 인수해 경영 전면에 나서는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다.

반면 회사 복귀 후 뒷말이 나오는 수장들도 있다. 횡령 등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박정빈 신원 부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하면서 뒷말이 나왔다. 구속 수감됐던 박 부회장이 9월 25일로 예정된 형기를 마치지 않고 가석방된 이후 이뤄진 복귀라 논란이 거셌다. 
 

박 부회장은 박성철 회장의 차남으로 유력 승계 후보자다. 하지만 2015년 11월27일 75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대법원까지 항소심을 진행한 결과 형이 다소 완화된 2년6월을 선고받은 바 있다.

재판 등으로 오너리스크가 부각되던 시기 신원의 경영상황은 악화됐다. 2015년은 영업이익 142억원, 당기순이익 93억원을 기록했다. 이듬해에는 영업이익 139억800만원을 기록하며 전년대비 감소했다. 

특히 당기순이익은 -49억5000만원으로 적자전환 했다. 지난해 실적 역시 부진했다. 영업이익 12억5000만원, 당기순손실 83억9000만원을 기록하면서 하락세를 이어갔다.

잠잠해지니
슬그머니∼

신원 측은 회사 의사결정이 어렵기 때문에 이뤄진 복귀였다는 입장이었다. 신원 관계자는 “박 부회장이 무급으로 경영에 참여한다”며 “오랫동안 부회장이 부재한 탓에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남북경협 등 하루빨리 해결할 현안이 있어 부회장이 생각보다 일찍 복귀했다”고 답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을 이끄는 오너 일가들이 물의를 일으킨 경우 ‘경영 퇴진 카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에 대한 지배력이 확고한 상황에서의 경영 퇴진은 진정한 퇴진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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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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