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부른’ 짜증범죄 백태

불쾌지수 상승에 ‘욱’ 분노도 폭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국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햇볕이 피부를 태울 기세로 내리쬔다.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재난문자가 요란이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시민들은 ‘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오르는 기온만큼 불쾌지수도 높아진다. 짜증이 치솟는다.
 

장마가 오는가 싶더니 금세 물러갔다. 역대 두 번째로 짧은 장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장마는 지난 11일로 끝났다. 장마 기간은 제주도 21일, 남부지방 14일, 중부지방 16일로 평년(32일)보다 줄었다. 장마가 6∼7일만 진행된 1973년 이후 45년 만에 가장 짧은 기록이다. 평균 강수량(283.0㎜)도 평년(356.1㎜)보다 적었다.

장마 가고
더위 왔다

짧은 장마가 물러가자 긴 폭염이 찾아왔다. 전국은 34∼35도를 웃도는 기온에 몸살을 앓고 있다. 더위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프리카’ 대구는 기온이 36∼37도를 상회하는 등 연일 최고기온을 경신하고 있다. 19일 오전 9시 현재 전국 대부분 지역엔 폭염 특보가 발효 중이다.

폭염특보는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로 나뉜다. 폭염주의보는 6∼9월 사이 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때, 폭염경보는 35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때 발효된다. 올해 첫 폭염경보는 지난달 24일 대구와 경북 영천·경주·경산서 발효됐다. 

서울은 지난 16일에 첫 폭염경보가 발효됐다.


기상청은 이번 더위에 대해 “최근 유라시아 대륙이 평년에 비해 매우 강하게 가열되면서 대기 상층의 고온 건조한 티베트 고기압이 발달해 한반도 부근으로 확장됐다”며 “한반도 부근의 공기 흐름이 느려진 가운데 기압배치가 유지되면서 낮에는 무더위, 밤에는 열대야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티베트 고기압의 영향에 따라 우리나라는 대기 중하층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덥고 습한 공기가 유입됐고, 대기 상층으로 고온의 공기도 지속적으로 유입 중이라는 설명이다. 또 맑은 날씨로 인한 강한 일사 효과까지 더해졌다.

이어 기상청은 최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고기압이 동서방향으로 강화되면서 극지방에 머물고 있는 찬 공기가 남하하지 못해 북반구 중위도에 전반적으로 고온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른바 열돔 현상이다. 열돔 현상은 지상 5∼7㎞ 높이의 대기권 중상층에 발달한 고기압이 정체하거나 아주 서서히 움직이면서 뜨거운 공기를 지면에 가둬 더위가 심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역대 두 번째로 짧은 장마
폭염 시작 전국 ‘가마솥'

열돔 현상은 미국과 아시아 등 중위도서 주로 발생하는데, 이 현상이 생기면 예년보다 5∼10도 이상 기온이 높은 날이 며칠 동안 계속된다. 열돔 현상으로 인한 이번 더위는 다음 달 중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더위가 한 달 이상 지속된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온열환자에 대한 각별한 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사이 지난 5월20일부터 이달 15일까지 벌써 4명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온열환자는 551명에 달한다.


특히 지난 12일과 15일에 사망한 두 명은 각각 86세, 84세 노인들이었다. 각각 경남 김해시와 창원시에 살고 있던 이들 두 할머니는 밭과 집 주변에서 활동하다 숨졌다.

온열질환은 열로 인해 발생하는 급성질환이다. 뜨거운 환경에 장시간 노출 시 두통, 어지러움, 근육경련, 피로감, 의식저하 증상이 나타나고 방치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지난 5년간(2013∼2017) 발생한 온열질환자 6500명 가운데 40%가 정오에서 오후 5시 사이 논밭과 작업장 등 실외에서 발생했다.

문제는 이번 더위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이번 더위가 대폭염으로 회자되는 1994년 여름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온열환자가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다. 

역대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된 1994년에는 폭염 지속 일수가 전국 평균 31.1일에 달했다. 말 그대로 한 달 내내 전국이 가마솥더위에 시달렸다.

온열환자↑
4명 사망

당시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는 전국 평균 17.7일을 기록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보름 넘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지속된 것이다. 특히 경남 창원 지역은 열대야가 한 달 가까이 이어졌다. 그해 7월 서울 최고기온은 38.4도까지 치솟았고, 경남 밀양은 39.4도를 기록했다.

일주일 넘게 이어지는 더위는 짜증을 동반하고 있다. 19일 오전 기준 전국의 불쾌지수는 80이상을 기록했다. ‘매우 높음’ 단계다. 불쾌지수는 날씨에 따라서 사람이 불쾌감을 느끼는 정도를 기온과 습도를 이용해 나타내는 수치다. 

불쾌지수가 70∼75인 경우에는 10명 중 1명꼴로, 75∼80인 경우에는 5명꼴로, 80이상인 경우에는 9명 정도가 불쾌감을 느낀다고 본다.

경기도 하남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 A씨는 최근 지하철을 탈 때마다 짜증이 솟구친다고 털어놨다. 사람이 너무 많아 에어컨 냉기도 느낄 수 없는 상황서 밀치고 밀리는 동안 얼굴이 벌겋게 익을 정도로 화가 올라온다고도 했다. 

A씨는 “아침 출근길에 보면 다들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다. 살끼리 맞닿기라도 하면 신경질적으로 털어내는 모습을 많이 본다. 사실 나도 그렇다”고 말했다.
 

형사정책연구원의 ‘날씨와 시간 그리고 가정폭력’ 연구를 보면 폭행의 경우 기온의 변화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예시로 들고 있다. 

미국 뉴저지 주 뉴어키시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여러 상황적 요인들 중 기온이 폭행 발생률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1979)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서도 일별 폭행 발생건수는 불쾌지수가 높아질수록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1983)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날씨 및 요일특성과 범죄발생의 관계의 분석’ 연구에는 살인, 폭력, 강간 등 폭력범죄는 최저기온이 높을수록 발생건수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논문을 통해 “과도한 열이 감정을 자극하고 격한 심리적 상태를 유발해 개인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게 만들어 범죄로 연결된다”며 “미국의 뜨거운 남부지역서 더 높은 살인율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소한 시비
사건으로 번져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연구팀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보고서에도 “미국은 기온이 섭씨 3도 올라갈 때마다 폭력범죄 발생 가능성이 2∼4% 높아진다”고 밝혔다. 더위와 범죄 발생의 상관관계는 검찰청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3년 기준 23만 4754건의 폭력범죄 중 27%인 6만4230건이 여름철인 6∼8월 사이에 일어났다.

또 대검찰청 ‘2015 범죄분석 자료’를 보면 2014년 살인·강도·강간 등 흉악범죄는 6월 3301건, 7월 3730건, 8월 3463건으로 집계됐다. 특히 7월은 연중 최고치였다. 이 기간 흉악범죄 발생 건수는 평균 3558건으로 겨울철(12∼2월) 평균 2029건보다 1500여건 더 많았다. 이 같은 행태는 해마다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이처럼 여름철이면 더위로 인해 불쾌지수가 상승하고 자기조절 능력이 상실되면서 사소한 자극에도 분노가 발생해 이른바 ‘짜증범죄, 분노범죄’가 증가한다. 1994년에 이어 ‘역대급’ 더위로 손꼽히는 2016년에도 잦은 짜증범죄가 발생했다.


집 앞에 텃밭을 일궈놓고 상추를 심는 것을 보고 언성을 높이다 급기야 둔기로 마구 때리고 피해자의 노모를 두들겨 패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도 2016년 7월 당시 폭염이 한창이던 여름철에 일어났다.

여름철 폭력사건 늘어
112민원 신고도 급증

2016년 8월에는 시민과 경찰관을 갑자기 때린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 남성은 광주의 한 횡단보도에서 난데없이 20대 여성에게 침을 뱉고 뺨을 때렸다. 이를 보고 제지하는 교통경찰에게도 폭행을 휘둘렀다. 해당 남성은 “더워서 짜증이 났다”고 범행 이유를 진술했다.

더운 날씨 술집 외부에서 술을 먹다 쳐다봤다는 이유로 시작되는 다툼도 있다. ‘뭘 봐’ 한 마디에 시비가 붙어 서로 주먹이 오가는 폭행 사건이 여름철이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지난해 8월 서울 마포구 홍대 부근 한 클럽서 손님 14명이 다친 사건 역시 시작은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 였다. 폭행을 저지른 20대 남성은 만취 상태서 술집에 함께 있던 다른 사람들과 시비가 붙었다. 그는 깨진 소주병을 마구 휘둘러 주변 사람을 다치게 했다.

평소 건방진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피해자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20대 남성이 기분 나쁘게 째려본다며 피해자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도 있다. 

이 남성은 “앞 동에 사는 피해자가 나보다 나이가 한 살 어린 걸로 알고 있는데, 평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째려보는 등 건방지게 굴어 앙심을 품고 있었다”며 “이날도 담배를 피우면서 나를 째려봐 홧김에 그랬다”고 범행 이유를 밝혔다.
 

여름철이 되면 파출소 112신고도 급증한다. 사람들이 더위에 신경이 곤두서 있어 작은 일에도 민원을 넣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른 계절 같으면 원만하게 지나갈 일도 짜증 때문에 싸움이 붙으면 경찰로서는 난감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7월 112 신고건수는 181만6000여건에 달했다. 봄철인 5월 167만2000여건, 6월 169만여건보다 10만 건이상 늘어났다. 하루 평균 신고 건수 역시 5월 5만3000여건서 7월에는 5만8000여건으로 증가했다.

가벼운 운동
오히려 도움

전문가들은 짜증범죄, 분노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폭염에 치솟은 불쾌지수를 다스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햇볕이 너무 뜨거울 때는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수시로 물을 마시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마냥 실외활동을 피하고 활동량과 운동량을 줄이는 것은 기분을 더욱 저하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폭염 시간대를 피해 통풍이 잘되는 옷을 입고 규칙적으로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