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도매법인 ‘빅4 대해부’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6.25 10:12:01
  • 호수 1172호
  • 댓글 0개

기업들 야채장사로 떼돈 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서울 가락농수산물시장서 농산물을 위탁 판매하는 5개 도매시장법인이 위탁수수료 등을 담합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철퇴를 맞았다. 그런데 철퇴를 맞은 도매시장법인 4곳이 농수산 사업과 관계가 없는 대기업 계열사다. 수년 전부터 가락시장에 들어와 공공성을 흐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6년간 서울 가락농수산물시장서 독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위탁수수료와 판매장려금을 담합해 하역비를 농민들에게 떠넘긴 도매법인 4곳에 116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한국청과·중앙청과·동화청과·서울청과·대아청과 등 가락농수산물시장 내 5개 농산물 도매법인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16억원을 부과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가락시장 
쥐락펴락 

다만, 공정위는 대아청과가 2004년 2월 1일자로 거래금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약 80%) 무, 배추, 양배추 품목에 대해 위탁수수료를 달리 정해 해당 합의를 파기한 것으로 판단했다. 대아청과의 공동행위 종기일이 2004년 1월31일이며 종기일 기준 처분시효인 5년이 지나 해당법인에는 별도의 조치가 부과되지 않았다.

이들 도매법인은 하역비를 도매법인이 부담하도록 2002년 법이 개정되자, 출하자로부터 받는 위탁수수료에 하역비를 얹는 방식으로 법 개정 취지를 비켜갔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도매법인 대표들은 회의실에 모여 ‘거래 금액의 4%+정액 표준하역비’를 위탁수수료로 부과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3년마다 표준하역비를 5~7%씩 인상하면서 인상분을 위탁수수료에 반영했다. 가락시장 거래 규모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농민들의 부담은 해마다 늘어난 반면 도매법인들의 이익은 계속 증가하는 불합리한 시장 구조가 고착화됐다.
 


서울가락 도매시장은 전국 48개 도매시장 중 국내 최대 규모의 도매시장이다. 현재 서울가락 도매시장 청과부류에는 농협가락공판장, 대아청과, 동화청과, 서울청과, 중앙청과, 한국청과 등 6개 도매시장법인이 있다. 

이들 도매법인 거래 금액은 2003년 2조1173억원서 2016년 3조7648억원으로 증가했다. 2016년 기간 동안 서울가락 도매시장서 도매법인들과 거래한 출하자 수는 26만여명이다. 

중앙청과·서울청과·한국청과·동화청과 
위탁수수료 담합해 116억원 과징금 부과 

도매법인은 농민 등 출하자를 대신해 농산물을 위탁 판매하는 유통업계의 큰손이다. 

가락농수산물시장의 한 중도매인은 “도매법인은 공영시장이기 때문에 정부 허가가 있어야 한다. 독과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는 대단한 이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공공성을 띠어야 할 도매법인들이 대부분 농수산 사업과 아무 관련 없는 대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가락농수산물시장의 도매법인들은 20념 넘게 신규 사업자 없이 영업 중이다. 이번에 과징금을 받은 4개 도매법인은 중 3개는 대기업 계열사다. 이들은 매년 20% 안팎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수십억원에 달하는 이익을 챙긴다.

[중앙청과] 


중앙청과는 32억24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태평양그룹 창업주 고 서성환 회장의 장남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이 소유하고 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친형이기도 하다. 

중앙청과는 1989년 3월9일에 설립됐으며 서 회장이 지분 60%, 태평양개발이 40%를 보유 중이다. 사실상 서 회장이 100%를 가진 셈이다. 2008년 경남기업으로부터 중앙청과를 250억원에 인수했다. 
 

자본금 82억원으로 지난해 매출액 356억원, 영업이익 77억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 62억원으로 이중 22억원가량이 배당금으로 쓰였다. 당기순이익의 3분의 1이 서 회장 곳간으로 들어간 셈이다. 

서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와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을 나왔으며 1982년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 태평양은 1970~1980년대 화장품 뿐 아니라 금융, 전자, 금속 등 기업을 인수해 사업 다각화에 나서 1990년대 초에는 계열사가 25개에 달했다. 

1992년 폐암수술을 받고 병상에 누운 서 창업주는 장남인 서영배 회장에게 건설과 증권, 보험, 금속 등 굵직한 사업을 물려줬다. 

서 회장은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BVI)에 재산을 은닉했다는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2016년 4월 <뉴스타파>는 파나마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의 유출 문서 분석 결과 서 회장의 아들과 딸 명의의 페이퍼컴퍼니 2곳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들 남매는 차명을 통해 자금을 관리하거나 증여·상속 목적으로 유령회사를 운영한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청과]

서울청과는 21억41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서울청과는 제철, 제강 및 합금철 제조업체인 고려제강이 100% 소유하고 있다. 

서울청과는 1977년 5월31일부터 고려제강의 지분 참여로 시작됐다. 1985년 3월 정부는 서울청과를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 법인으로 지정했다. 당시 고려제강은 대주주로 자본금 15억원을 출자했다. 

2005년 서울청과 주식 33만주를 취득, 94억원을 출자해 100%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서울청과는 자본금 94억원으로 지난해 매출액 345억원 영업이익 60억원을 달성했다. 당기순이익 48억원이며, 이중 14억원을 고려제강에 배당했다. 
 

고려제강 최대주주는 홍영철 회장이다. 일찍히 창업주이자 아버지인 홍종열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아 탄탄한 지배력을 구축했다. 홍 회장 개인 지분율은 18.48% 수준이다. 하지만 특수관계자 지분을 더하면 지배력이 68.44%까지 올라간다. 


막강한 지배력의 근간은 가족회사들이다. 2·3대 주주인 키스와이어홀딩스(17,33%)와 석천(16.1%)은 모두 홍 회장 일가 가족회사다. 여기에 또 다른 가족회사인 홍덕 (1.23%) 보유 주식까지 더하면 가족회사 보유분만 34.6%가 넘는다.

[동화청과]

동화청과는 23억57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한일시멘트 계열사인 서울랜드가 73.95%를 소유하고 있다. 한일시멘트는 서울랜드 주식 86%를 보유한 대주주다. 한일시멘트는  레미콘, 레미탈 제조, 수출, 부원료 수입 및 폐기물 처리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동화청과는 1977년 6월 25일에 농산물 수탁판매업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1985년 6월 서울특별시로부터 지정도매법인으로 지정받았다. 2011년 동부그룹의 계열사인 동부팜한농은 동화청과를 인수했다. 

농민 울린 가락시장 도매상 4곳
과일·채소 팔아 돈 버는 대기업

동부팜한농의 인수를 계기로 모기업의 이름을 딴 동부팜청과로 사명을 변경한 바 있다. 당시 동부팜한농은 동화청과 전체 지분 가운데 65%를 보유했다. 나머지 35%는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장남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과 장녀 주원씨 등이 지분의 25%와 10%를 각각 갖고 있었다.  


하지만 동부그룹은 2016년 경영난으로 동화청과를 서울랜드에 매각했다. 서울랜드는 인수자금 597억원으로 동화청과 지분 73.86%를 취득했다. 동화청과는 서울랜드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본금 50억원으로 지난해 매출액 37억원, 영억이익 53억원을 달성했다. 당기순이익 41억원을 기록했지만, 배당은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랜드는 지난해 당기순이익 -4억원으로 적자였다. 이런 점을 본다면 동화청과가 서울랜드의 자금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청과]

한국청과는 38억91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기업인수 및 구조조정과 경영컨설팅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는 더코리아홀딩스가 95%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더코리아홀딩스의 오너는 박상헌 한국청과 대표이사다. 
 

1979년 1월 설립돼 농산물 수탁판매업을 영위하고 있다. 자본금 114억원으로 지난해 매출액 320억원, 영업이익 54억900만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 42억원으로, 지난해 더코리아홀딩스에 48억원을 배당했다. 이는 지난해 당기순이익을 초과하는 고배당이다. 고스란히 박 대표가 가져가는 셈이다. 

이처럼 철강, 건설, 금융 등 농수산물과는 무관한 기업들 청과물시장서 도매사업을 벌이며 수년간 수백억원 수익을 거두고 있다. 공정위 역시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매법인들의 시장 개설과 운영을 포함한 도매시장 제도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내놓기도 했다.

독과점 지위 
수익만 챙겨

이를 위해 ▲도매시장내 도매법인의 자유로운 진입과 퇴출을 위해 도매법인 신규 지정 및 재심사 등과 관련된 제도의 개선 ▲위탁수수료 관련 담합방지 및 출하자 보호를 위해 위탁수수료 산정방식 등에 대해 구체적(품목별) 산정기준 마련 ▲도매법인들의 경영 투명성 확보를 위해 도매법인들의 경영정보에 대한 시장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보완 등의 제도개선 등을 권고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