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사법농단 키맨 양승태 전 대법원장

“못 믿겠다” 신뢰 잃은 사법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 국정 농단에 이은 사법 농단 사태가 일어났다며 분노 목소리마저 들린다. 그 중심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있다. 그를 둘러싼 의혹은 하나둘 수면 위로 올라와 사법부 불신 여론에 기름을 들이붓는 중이다. <일요시사>가 사법부 수장서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한 양 전 대법원장을 집중조명해봤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서 퇴임식을 갖고 42년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퇴임사를 통해 “저는 오랜 법관 생활서 국민의 신뢰야말로 사법부의 유일한 존립 기반임을 확신하고 있었고,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가 신뢰를 획득하는 것은 모든 법원 구성원들의 기본적 의무라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퇴임 8개월
불신 초래

이어 “오랜 역사적 교훈을 통해 이룩한 사법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거나 정치적인 세력 등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뤄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이라며 “법관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제도로서, 법관에게는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재판의 독립을 지켜야 할 헌법적인 의무와 책임이 있을 따름”이라고 언급했다.

그로부터 8개월 뒤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지난달 29일, 전국철도노동조합 KTX 열차승무지부와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관계자 20여명이 대법원 대법정과 로비를 기습 점거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한 이들은 대법원장 비서실장과의 면담을 약속받고서야 물러났다. 


대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대법정에 허가받지 않은 외부인이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주요 재판을 놓고 박근혜정부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에 분노를 표했다. 지난달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이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은 특정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청와대 입맛에 맞는 판결을 유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KTX 해고승무원 관련 판결은 이 같은 의혹을 받는 재판 중 하나다.

2015년 2월 대법원은 KTX 승무원을 철도공사 직원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1·2심서 철도공사 직원으로 인정했던 판결이 180도 뒤집힌 것이다. 이 판결로 KTX 승무원들은 정리해고됐고, 1심 승소 이후 받았던 4년간의 월급에 이자까지 더해 1억원씩 토해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이 과정서 승무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5년 말부터 투쟁을 시작한 KTX 해고승무원들은 12년 후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과 마주하고 있다.

청와대와 재판 걸고 흥정?
특별조사단 보고서 ‘발칵’

지난달 30일 김환수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면담을 가진 KTX 해고승무원들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자료 공개를 요구했다”며 “또 다른 사법 농단 피해자들과 함께 김명수 대법원장을 직접 면담할 수 있게 해줄 것과 대법원이 문제가 된 판결에 대해 직권재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직권재심은 형사재판서 검찰이 피고인을 대신해 재심을 청구하는 제도다. KTX 해고승무원 재판은 민사소송이라 직권재심이라는 개념이 없다. 이들은 법원의 협조를 통해 재심을 청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 비서실장은 이런 요구에 “한 자도 빠짐없이 대법원장에게 전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특조단에 따르면 사법부와 청와대의 재판거래 의혹은 상고법원 도입을 두고 진행된 ‘흥정’이라는 분석이다. 상고법원은 대법원이 맡고 있는 상고심(3심) 사건 중 단순한 사건만 별도로 맡는 법원을 말한다. 

상고법원이 설치되면 민·형사 등 일반사건은 상고법원이,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판례를 변경해야 하는 사건은 대법원서 맡아 심리, 판결하게 된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임기 내내 상고법원 도입에 몰입했다. 취임 때부터 상고제도 개선을 강조했고, 201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2014년 9월에는 대법원서 상고제도 개선 공청회를 갖고 구체적인 운영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적 공감대가 크지 않았고 국회 역시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법조계 내부서도 일부 반대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암초에 부딪혔다.

사법 농단 사태
관련자들 격분

특조단이 김 대법원장에게 보고하고 언론에 일부 공개한 192쪽 분량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11월19일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직접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임 차장은 상고법원 관철을 위한 청와대 압박 카드로서 “BH 국정운영기조를 고려하지 않는 독립적, 독자적 사법권 행사 의지표명”을 적시했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청와대 기조를 고려, 사법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협상추진 전략 문건에는 사법부가 대통령과 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조한 사례가 담겨있다. 이석기·원세훈·김기종 사건과 철도노조 파업, 전교조 시국선언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청와대와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이 불러온 파장은 점차 커지는 모양새다. KTX 해고승무원 재판 외에도 보고서에 언급된 다른 재판 관계자들은 양 전 대법원장을 고발하는 등 공론화에 나서고 있다. 

일각에선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사법부는 검찰의 강제 수사 대상이 될 위기에 처했다.
 


양 전 대법원장 체제서 재임용에 탈락한 경험이 있는 서기호 변호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그는 “최고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의 법조계 내부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한 집안 식구로 분류되는 법관의 상당수도 ‘문제가 있다’는 강경모드로 돌아섰다는 점에서 퇴로가 막혔다는 분석이다. 법원 안팎은 재판거래 의혹 당사자들의 집회가 끊이지 않고 있다. 보고서에 거론된 사법부의 협조 사례가 사회 전반에 걸쳐 있어 그 파장은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과 함께 잠잠했던 블랙리스트 의혹도 고개를 들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임기 내 달성할 최고 핵심과제로 꼽았던 상고법원 입법 추진 과정서, 이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판사들을 감시하는 등 집안 단속을 했다는 의혹이다. 

특조단 조사에 따르면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산하 소모임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의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한 문건이 2015년 7월부터 집중 작성됐다.

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인사모 회원들이 학회 활동과는 무관한 사법행정 주제를 논의하고 대법원 인선에 개입하려 한다고 봤다. 그래서 자발적 해산을 유도하거나 법원 운영위원회 결의로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인사모 핵심회원에게 각종 선발성 인사나 해외연수서 불이익을 주는 방안까지 검토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인사모 회원들에게 불이익이 가해졌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상고법원에 반대한 판사 개인의 동향을 감시한 흔적도 나왔다. 2015년 8월 차성안 당시 전주지법 군산지원 판사는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상고법원 도입을 비판하는 글을 연이어 올렸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차 판사에 대한 본격적인 동향파악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 문건도 특조단 조사 결과 확인됐다.

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가 살핀 차 판사의 동향 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성격과 재판 준비 태도는 물론 가정사 등이 파악됐을 뿐만 아니라 그가 다른 판사들과 주고받은 이메일까지 기재돼있었다. 이 과정서 차 판사와 친한 선후배 판사들도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사찰 피해 당사자인 차 판사는 지난달 30일 CBS 라디오 프로그램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사법부와 청와대의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단순한 법관윤리강령 위반 문제뿐만 아니라 직권남용죄나 직무상 비밀누설 같은 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판사로서 유무죄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수사의 필요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UN 진정을 잘 활용해 UN이 법원과 검찰을 제대로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특별보고관을 초청하는 방법도 생각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법부 수사?
사상 초유 사태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공식사과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입장문을 통해 “사법 행정의 최종적인 책임을 맡고 있는 저의 부덕과 불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이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법관 여러분께 크나큰 충격과 걱정을 끼쳐드리고 자존감에 상처를 남기게 돼 참으로 가슴이 아프고 미안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은 같은 해 6월 블랙리스트 관련 재조사를 끝내 거부했다.

지난해 4월 진상조사위원회 첫 조사에 이어 올해 1월 추가조사위가 2차 조사를 진행했지만 모두 “판사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놨다. 그러나 3차 조사단인 특조단서 1·2차 조사와 확연히 다른 결과를 내놓으면서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받는 상황에 처했다. 

1·2차 조사와는 달리 사법부 독립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쏟아지면서 국민 여론, 정치권 등에서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한 비난이 폭주하고 있다.

특조단의 조사보고서를 받아든 김 대법원장은 지난달 31일 대국민 담화문을 내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국민에게 공식 사과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담화문서 “지난주 특조단이 발표한 참혹한 조사 결과로 충격과 실망감을 느끼셨을 국민 여러분께 사법부를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 질책을 사법부 혁신의 새로운 계기로 삼겠다”며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를 신속히 진행하고, 의혹 해소를 위해 필요한 부분의 공개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문제의 진원지로 꼽히는 법원행정처는 대대적인 개혁이 예상된다. 김 대법원장은 최고 재판기관인 대법원을 운영하는 조직과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의 조직을 인적‧물리적으로 완전히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관련자들의 형사조치에 대해서는 “각계 의견을 종합해 최종 결정하겠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오는 5일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7일 전국법원장간담회,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여론은 여전히 양 전 대법원장에 부정적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일 경기도 자택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부적절한 일이 사실이라면 막지 못해 송구하다”면서도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관여한 바가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조사 과정서 양 전 대법원장이 두 번에 걸쳐 특조단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첫 번째는 답변 거부, 두 번째는 해외 출국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이 전해지자 양 전 대법원장을 강제 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전만해도 양 전 대법원장은 판사와 사법 관료로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48년 부산서 태어난 그는 경남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70년 1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법관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대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을 거쳐 제주지방법원서 부장판사로 일했다. 1989년 사법연수원 교수로 일했고 2002년 부산지방법원, 2003년 법원행정처 차장과 특허법원 법원장을 거쳐 2005년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재판거래·특정판사 사찰 의혹
숙원사업 상고법원 도입하려고?

양 전 대법원장이 이명박정부 시절 대법원장으로 임명될 당시 언론은 그를 보수성향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장 후보로 내정됐을 때 사법부의 보수화를 불러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와 비교해 법원이 ‘우클릭’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청문회 당시에도 양 전 대법원장의 정치 성향을 묻는 질문이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취임 후 소통을 강조했다. ‘법원은 국민 속으로, 국민은 법원 속으로’를 모토로 취임 첫 해 장애인 사법 지원을 위한 가이드라인, 외국인과 이주민을 위한 사법정보 누리집을 냈다. 

임기 3년차 때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처음으로 전 국민에 생중계했다. 이는 최근 전 1, 2심 재판의 생중계 확대 결정으로 이어졌다. 국민참여재판도 양 전 대법원장 임기 중 크게 늘었다.

하지만 양 전 대법관은 임기 내내 대법관 인선과 사법행정서 ‘다양성 부족’ ‘제왕적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2012년 대법관 4명의 후임을 인선하는 과정서 잡음이 컸다. 당시 대법원의 보수화와 획일화에 대한 우려가 잇따랐다. 

인사문제에 대한 법원 내부의 불만은 지난해 2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일선 판사들의 학술행사를 축소하기 위해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외부로 표출됐다.

화려한 이력
초라한 말로

대법원장의 국가 의전 서열은 대통령과 국회의장에 이어 세 번째다. 사법부의 정점에 있던 양 전 대법원장은 불과 몇 개월 새 전 국민의 비난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사안이 중대하고 충격적인 만큼 양 전 대법원장을 둘러싼 사법 농단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31일 현안브리핑을 통해 “국민의 인권과 권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대법원의 책임자가 법원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설치를 두고, 판돈을 걸고 청와대와 도박판을 벌였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양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의 국정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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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