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청의 ‘어린이집 죽이기’ 내막

민원 안 들어줬다고 탈락?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기자= 시험에 떨어지면 원인을 찾기 마련이다. 응시자의 대다수가 합격하는 시험이라면 더욱 그렇다. 불합격한 사람은 답안지를 통해 정답을 확인하려 한다. 이때 답안지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의심은 꼬리를 물어 결국 주최 측의 신뢰도에 상처를 입힐 것이다. 불합격의 이유가 시험 외부에 있다는 의혹까지 나오면 걷잡을 수 없다. 현재 강남구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서울 강남구에는 54개의 구립 어린이집이 있다. 구립 H어린이집도 그 중 하나다. H어린이집은 KC대학교(이하 KC대)가 2015년 5월27일 강남구청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문제는 신규 위탁 후 3년마다 진행되는 재위탁 심사에서 H어린이집이 부적격 처분을 받았다는 점이다.

강남구서 20여년간 구립 어린이집을 운영해온 한 원장은 “재위탁 심사에서 떨어진 어린이집은 처음 봤다”고 놀라워했다. 이 소식은 지난 4일, H어린이집 학부모들에게 전해졌다. 학부모들은 위탁 운영 만료 날짜인 5월26일 이후 급변할 보육환경에 우려를 표했다. 9일부터 학부모들의 민원 전화가 강남구청에 쏟아졌다.

재위탁 탈락
놀라운 일

위탁체인 KC대와 H어린이집 A원장은 심사 결과에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KC대가 재위탁을 받지 못하도록 심사 과정서 강남구청의 의도적인 방해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먼저 문제 삼은 것은 재위탁 심사 서류 제출 기간이다. 국공립 어린이집 위탁체 선정관리 권장 표준안에 따르면 재위탁 심사결정은 계약 만료일 3개월 이전에 이뤄지도록 돼있다. 오는 5월26일에 계약이 만료되는 H어린이집의 경우 2월26일 전에 심사가 진행돼야 했다.


재위탁 심사에는 어린이집 위탁 신청서, 자산 현황에 관한 서류, 등기부등본, 공고일 전일 현재 잔액 증명, 시설운영 기간 동안 실적, 어린이집 운영 계획서 및 예산서 등이 필요하다. H어린이집 A원장이 재위탁 신청 안내 공문을 받은 것은 지난 2월8일 오후 10시경. 

강남구청으로부터 구두로만 서류 준비 요청을 들었던 A원장이 여러 차례 요구한 끝에 받은 공문이다. 

강남구청은 공문서 2월8일 목요일부터 12일 월요일 오후 6시 사이(토·일 공휴일 제외)에 심사 서류를 방문 접수하라고 안내했다. 

KC대 관계자는 “강남구청이 보낸 공문은 8일 밤 10시에 A원장의 개인 메일을 통해 전달됐고, 학교는 다음날인 9일 오전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며 “10∼11일이 주말이어서 학교가 심사 서류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채 이틀이 안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20여가지의 서류 중에서도 특히 ‘시설위탁운영 이사회 결의서’는 학교법인 이사회의 결의를 얻어야만 작성 가능한 서류였다”고 덧붙였다.
 

강남구 내 다른 어린이집과 비교해도 H어린이집에 주어진 서류 준비 기간은 이례적으로 짧았다. 구립 S어린이집과 J어린이집 등은 지난해 재위탁 심사 과정서 접수 마감일로부터 7일 전 신청 안내 공문을 받았다. 2016년에는 접수 마감일로부터 20여일 전에 안내를 받은 어린이집도 있었다.

이틀 만에
서류 준비?


심사 서류 준비 이후 H어린이집 A원장과 KC대는 2월21일 재위탁 심사를 받았다. 심사는 약 10분간 어린이집 원장이 브리핑을 진행하고 이후 10분간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 사이 보육정책위원회 위원들은 심사항목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

심사항목은 ▲운영체의 시설 운영 및 사업 실적(30점) ▲운영체의 대표 및 원장의 전문성(20점) ▲어린이집 운영계획(35점) ▲운영체의 공신력(10점) ▲운영체의 재정능력(5점) 등이며, 100점 만점에 80점 미만이면 부적격 처리된다.

심사 이후 H어린이집 A원장은 결과를 알기 위해 수차례 강남구청에 연락했지만 결재가 나지 않았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A원장이 부적격 처분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월26일. 그러나 강남구청은 심사 다음날인 22일 홈페이지에 이미 H어린이집 재위탁 부적격 처분에 대한 공고를 게시한 상태였다.

H어린이집 A원장은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며 부적격 이유를 알려달라고 강남구청에 요구했다. 보건복지부서 발행한 ‘2018년도 보육사업안내’에 따르면 위탁업무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해 심사 결과는 공개하도록 돼있다. 

보건복지부 보육기반과 관계자 역시 “심사기준과 심사결과를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H어린이집 재위탁 제외 ‘이례적’
강남구청 심사 결과 공개 ‘안돼’

하지만 강남구청은 심사 결과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면서 H어린이집의 재위탁 부적격 처분은 원장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위탁체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강남구청 보육지원과 K과장은 “위탁체 관련 점수가 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전체 심사항목 중 위탁체와 관련된 부분은 ▲운영체의 공신력 ▲운영체의 재정능력 등이다. 그 중 운영체의 재정능력은 법인이나 비영리 민간단체일 경우 5억 이상의 자산을 갖췄으면 5점 만점, 단체나 개인의 경우 2억 이상이면 5점을 받을 수 있다. 

KC대는 재정능력에 있어 5점을 받을 만큼의 자산을 갖고 있다. 운영체 관련 점수 15점 중 5점은 이미 확보한 상태서 심사에 들어간 셈이다.

H어린이집 A원장은 “강남구청 보육지원과 관계자가 ‘원장님은 아무 문제 없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A원장은 2015년 H어린이집 원장으로 부임한 이후 2번에 걸쳐 강남구청장 상을 수상할 정도로 어린이집 운영에 있어 검증을 받은 상태다.

KC대 관계자 역시 위탁체에 대한 지적에 펄쩍 뛰었다. 그는 “불과 3개월 전 다른 구에서 위탁받아 운영 중인 어린이집이 재위탁 심사에서 적격 판정을 받았다”며 “H어린이집과 해당 어린이집은 동일한 조건으로 운영되는데 왜 H어린이집만 부적격 처분이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보육지원과 K과장의 부적절한 심사 관여 의혹 등이 제기됐다. 

KC대 관계자는 “K과장이 재위탁 심사 과정서 우리 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며 “이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K과장은 “심사 결과는 보육정책위원회서 결정한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K과장은 3월 말 정년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서 퇴사했다. 일각에선 H어린이집 문제로 강남구청과 어린이집 간의 분쟁이 지속되자 ‘꼬리 자르기’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K과장은 “개인 사생활로 인한 퇴사다.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라며 의혹에 대해 일축했다.

KC대는 지난 3월 강남구청을 상대로 ‘어린이집 재위탁 부적격 처분 집행정지’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강남구청은 “현재 소송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H어린이집 관련 사항에 대해 언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점수 공개 못해
과장은 퇴사 왜?


KC대 관련 어린이집의 수난은 H어린이집만이 아니다. KC대 학교법인이 위탁받아 운영 중인 P어린이집은 H어린이집보다 앞서 많은 일을 겪었다. 일부 관계자들은 H어린이집의 재위탁 심사 부적격 처분이 P어린이집과 분쟁을 겪은 강남구청의 보복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P어린이집은 1993년 KC대 학교법인이 위탁받아 현재까지 운영 중인 구립 어린이집이다. 2000년 B원장이 부임해 현재까지 원을 이끌고 있다. 그러던 중 2015년 P어린이집의 대체신축이 결정됐다. 20여년가량 된 어린이집 건물이 많이 낡아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2016년 2월 입주를 목표로 신축 공사가 시작됐다.

문제는 어린이집 내부 공사 과정서 불거졌다. 인테리어부터 교재·교구, 안전장치, 주방용품, 시설 설비 등 내부 공사는 B원장의 몫이었다. B원장은 입주 일정을 한 달가량 남기고서야 내부 공사에 돌입했다. 

그해 겨울 혹독한 추위로 외부 공사가 늦어진 탓이었다. B원장은 “입주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업체 선정 기간을 1주일 이상 할 수 없었다”며 “나라장터 공고란에 등록한 후 업체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수의계약을 통해 선정된 업체는 3곳. 문제는 세 업체와 계약을 마친 이후 등장한 또 다른 업체다. 해당 업체 P대표는 강남구청 관계자와 함께 공사 현장에 나타났다. 당시 B원장은 P대표를 강남구청 ○○과 P과장의 여동생으로 소개받았다고 한다.

B원장은 “P대표는 자신이 당연히 실내 인테리어의 일부를 공사하는 것으로 알고 찾아왔다”며 “언제 공사를 시작하면 되냐고 추궁하곤 했다”고 말했다. P대표를 떠맡은 것은 세 업체였다. 

P대표는 이들 업체에게서 1000만원 상당의 공사를 받아 수행했다. 친환경 황토타일을 이용한 내부 인테리어 공사였다. P대표의 오빠인 P과장은 “잘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공사 끝자락에 또 다시 말썽이 일어났다. 마무리 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것이다. 2월1일로 예정됐던 입주 날짜는 세 차례 밀린 끝에 2월13일로 결정됐다. B원장은 업체들에 마무리 공사를 재촉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졌다. 
 

업체 측은 ‘잔금 먼저’ P어린이집 측은 ‘공사 먼저’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면서 세 업체와 따로 이야기를 나눴던 P대표가 공사 잔금을 받지 못했다며 강남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B원장은 “내부 공사 과정서 P대표와 함께 찾아왔던 강남구청 관계자가 여러 번 전화를 걸어 P대표에게 얼른 돈을 주라고 강요했다”며 “결국 한 업체에 돈을 줘서 처리하게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B원장은 공사를 마무리 하지 못한 두 업체에는 잔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공사가 미흡한 부분은 KC대 학교법인의 지원을 받아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P어린이집 2016년 공사 이후
원장·위탁체 민원·고발 시달려

문제는 공사 이후다. 강남구청에서 P어린이집 초기설치비 집행실태에 따른 감사를 진행한 후 KC대 학교법인에 ‘원장 교체’를 요구한 것. 

KC대 학교법인 관계자는 “(P어린이집을) 지도 점검한 결과 B원장이 내부 공사 과정서 강남구청 담당공무원과 협의해 일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20여년간 어린이집을 잘 이끈 원장을 바꿀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또 KC대 학교법인은 강남구청의 감사결과 처분사항 이행요구에 대한 답변서에서 강남구청의 사전 승인에 따라 공사가 진행됐고 그 과정서 위반 사항에 대한 지도조언은 한 차례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공사가 진행될 당시에는 별다른 말없이 넘어간 부분을 왜 입주 1년이 지나서야 문제 삼느냐는 지적이다.

이후에도 P어린이집과 강남구청 간의 마찰은 계속됐다. 지난해 9월 강남구청은 서울시 지도점검 결과 P어린이집이 영유아보육법 44조와 46조,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67조를 위반했다고 통지하고 행정처분을 위한 청문회에 KC대 학교법인 이사장과 B원장의 참석을 요구했다.

주요 위반사항 중 가장 크게 불거진 부분은 ‘보조금 허위 신청’ 건이다. 강남구청은 B원장이 보육도우미 K씨의 두 달 치 월급과 2시간 근무 착오금 30여만원을 부당 수령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강남구청은 P어린이집과 B원장, KC대 학교법인 이사장을 직접 검찰에 고소했다.

내막은 이렇다. 지난해 3월, 2013년 5월부터 P어린이집서 근무한 K씨가 식자재를 훔치다 B원장에게 들켜 경위서와 사직서를 제출했다. K씨는 퇴사 과정서 실업급여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B원장은 노무사와 논의 결과 ‘절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고 거절했다. 

그런데 이후 강남구청에 민원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2014년 7∼8월 K씨가 P어린이집을 잠시 쉬는 동안 B원장의 딸이 대체근무하면서 받은 두 달 분의 월급, 2016년 6월 K씨에게 하루 4시간 근무를 제안한 이후 담당직원의 착오로 근무시간을 6시간으로 계산해 추가로 지급한 30여만원에 대한 내용이었다. 

B원장은 “강남구청은 모든 조치가 마무리되고 4개월이 지나서야 나를 고발했다”며 “그 이전에 보고는 물론 보육지원과에 이미 돈을 반환조치 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강남구청은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9월 P어린이집에 과태료 150만원, 원장 자격정지 1개월15일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KC대 학교법인에는 신규원장을 공개 채용해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KC대 학교법인이 거절하자 11월에는 보육정책위원회를 개최해 위탁 취소 심의를 진행하고, 위탁 취소를 통보했다.

B원장과 KC대 학교법인은 강하게 반발했다. 

KC대 학교법인 관계자는 “B원장이 P어린이집 대체신축 과정에서 강남구청 관계자들의 민원을 들어주지 않아 보복 조치하는 것”이라며 “보육지원과 K과장이 ‘P어린이집을 가만 두지 않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고 주장했다. 

이어 “H어린이집 재위탁 심사 부적격 처분은 P어린이집 사건과 분명히 연관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K과장은 “P어린이집과 H어린이집 간 연관 관계는 절대 없다”고 해명했다.

P어린이집 사건
H어린이집 불똥?

강남구청과 P어린이집·KC대 학교법인 간의 분쟁은 어린이집 측으로 무게추가 기운 상태다. 검찰은 P어린이집과 B원장, KC대 학교법인 이사장에 대한 고발건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또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는 KC대 학교법인과 B원장이 강남구청장을 상대로 신청한 어린이집 원장 자격정지 처분 등 집행정지 사건에서 법인과 B원장의 신청을 받아들여 집행정지 가처분 결정을 내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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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