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국회 청문회 총정리

‘강심장’ 앞에 국회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한진중공업 사태가 현재 노사갈등 차원을 넘어 지역사회, 시민단체까지 가세한 최대 시국 현안이 됐다. 정치권까지 합세해 사태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그간 해결의 열쇠를 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해외로 도망치며 행방이 묘연했다. 단단히 벼르던 의원들은 우여곡절 끝에 조 회장을 청문회장에 세웠고, 총부리는 단연 그를 정조준했다.

한진중 청문회 모습 드러낸 조남호 회장
정치권·시민 가세로 국가적 이슈로 번져

한진중공업 사태는 지난해 12월15일 사측이 노조에게 400명의 정리해고자 명단을 통보한 것이 발단이 됐다. 사측은 업무량 고갈, 수주 경쟁력 저하, 매출액의 현저한 감소, 경영 실적 악화 등의 이유를 제시했다. 특히 지난 2010년에 기록한 적자와 2~3년 남짓 이어진 수주 공백 상태 등을 주요 원인으로 들었다.

졸지에 ‘해고자’ 신세가 된 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20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연초(1월6일)부터 영도조선소 내 85호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던 지난 6월27일 노사는 합의점을 찾았다. 노동자들은 6개월간의 총파업을 접고 업무에 복귀했다. 이에 따른 해고대상자 170명 가운데 76명은 희망퇴직을 했고, 94명이 남았다. 이후 추가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현재 난항을 겪고 있다.

정리해고자 통보 본격 총파업 돌입

노사분쟁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건 바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다. 민주당, 민노당, 참여당 등 진보색채가 강한 야5당 대표들은 사태 해결을 위해 조 회장을 국회 청문회에 출석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국회 환노위는 지난 6월17일 회의에서 그에게 닷새 뒤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조 회장 측은 해외출장 때문에 국회 출석이 어렵다고만 통보했다. 이후 조 회장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한진중공업 측 관계자는 외국 선주사 및 선박 기자재 업체 관계자들을 만나 수주활동을 하고 있지만 동선까지는 파악할 수 없다는 입장만 앵무새처럼 되풀이 해왔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도피성 장기외유’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도피성 해외출장에 나선 기업인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미스런 사건이 터지거나 검찰수사가 시작됐을 때, 국회가 부를 때면 어김없이 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유도 한결같이 ‘해외수주’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조 회장이 7월13~26일까지 국내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당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탑승한 ‘희망버스’가 부산영도에 내려갔고, 사회각계 각층에서 조 회장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성화를 몰래 숨어서 지켜봤단 뜻이다. 안 그래도 자취를 감춰 조 회장에게 단단히 성난 국회의원들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지난 18일 국회 환노위에서 한진중공업 청문회가 10시간 넘게 진행됐다. 청문회장에 나타난 조 회장에게 회장직의 ‘아우라’는 온데간데 없었다. 청문회 연기지침이 담긴 대본을 들고 커닝을 해대는 신인배우의 굴욕만 있을 뿐이었다.

청문회가 시작되자 국회의원들의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김성순 환노위원장과 청문위원 12명의 전방위적 압박은 그야말로 ‘조남호 난타전’을 방불케 했다. 여야는 조 회장을 포함한 사측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한진중 사태를 더욱 키웠다며 조 회장과 경영진에 맹공을 퍼부었다.

청문회의 주요 쟁점은 정리해고의 정당성 문제를 비롯해 3년간 선박 수주를 못한 가운데 대주주에 대한 174억원의 주식배당과 임원급여 8000만원 인상의 문제점, 필리핀 수빅조선소 물량 몰아주기 등에 집중됐다. 여기에 조 회장의 해외도피 의혹과 거짓 출국 해명에도 날선 비난이 쏟아졌다.

김 위원장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사태 과정에서 보여준 조 회장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며 “이 문제는 한진중공업 한 개의 기업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데 여야 의원들의 이견이 없다”고 밝혔다.


여야 의원 모두 한목소리로 맹공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0년간 4200억원 정도의 이익을 남겼는데 지난해 517억원의 적자를 봤다고 1300여명을 정리해고 할 수 있냐”며 “다른 회사들보다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데도 경영상의 이유로 대규모 정리해고를 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조선부분은 막대한 영업이익을 내지만 한진중공업의 수익성은 건설부문의 실패, 부실 계열사 부당내부거래, 수빅조선소에 대한 무리한 투자비용으로 인해 악화된 것이다”며 경영진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추궁했다.

조 회장 측의 거짓 해외체류에 장 의원은 “부산에 있으면서 (사태 해결 노력은 안 하고) 무슨 일을 했냐”고 조 회장을 비판했다.

무엇보다 한진중 사태 해결에 ‘고군분투’하던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정치생명’까지 불사하며 비장한 각오로 청문회에 임했다.

정 최고위원은 청문회에 앞서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한진중공업은 국가와 국민이 있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다. 조 회장을 절대 용서해서는 안된다”며 “조 회장이 무릎을 꿇을 때까지 간다”고 결의를 드러냈다.

정 최고위원은 50여일이 넘어서야 힘겹게 청문회에 출석한 조 회장에 “그렇게 국회에 나오기 싫으셨냐”며 “민주주의 권리, 재벌 특혜는 누리면서 민의의 전당은 무시해도 되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그는 조 회장에게 고(故) 김주익·곽재규·박창수씨의 사진을 보여주며 한진 노조위원원들의 사망경위를 설명했다. 정 최고위원은 고인이 된 이들의 장례식 당시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준비해 조 회장에 보여주며 인간으로서 한마디 해보라며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 회장은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사과를 드린다. 그 당시 상황을 본인이 제대로 인지를 못했다”며 “오늘 의원님의 질타를 받아들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정치생명 불사 비장한 정동영

이어 정 최고위원은 필리핀 의회가 조 회장 체포를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하며 사태가 국제적으로 비화되고 있는 점을 비판했다. 그는 “필리핀에 진출한 한진중공업을 좋은 회사인줄 알고 취직했던 필리핀 노동자들이 지금 2만명이지만 모두 비정규직인 점과 35명의 사망자를 냈다”며 “이래서 대한민국 기업이 존경받을 수 있겠냐”고 꼬집었다.

정 최고위원은 “해고는 살인이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며 조 회장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며 이는 정리해고 철회에서 시작한다”며 “(해고철회를) 다시 한번 재검토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여야 의원들은 한진중 사태 해결 방안으로 조 회장이 지난 10일 “회사를 빨리 정상화시켜 3년 내 퇴직자들을 다시 모셔오겠다”고 밝힌 점을 들어 부산 경실련이 제안한 ‘선 복직 후 3년간 무급휴직안’을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수용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정진섭 한나라당 의원은 “그럼, 청문회에 뭐 하러 나왔느냐. 협상이 되게끔 하는게 바람직하지 나는 변화가 없다는 얘기만 한다면 뭐 하러 나왔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의원들의 맹포격에도 조 회장은 먼저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입장만 반복했고, 정리해고는 불가피했다는 주장도 굽히지 않은 채 청문회를 마무리 지었다.

이에 따라 정치권은 2차 청문회 추진 및 국정조사추진 의지까지 불태웠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청문회 뒷날인 지난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조남호 회장이 보인 것은 경영상 어려움이 아니라 대기업과 재벌의 탐욕경영과 욕심이다”며 “조 회장은 정리해고 철회 불가 입장을 고수했고 시민단체가 제의했던 복직 후 무급휴직도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결코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면서 “필요하면 2차 청문회, 국정조사를 할 것이고 이번 기회에 정리해고에 대한 법적 요건을 확실히 하는 안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정(동영) 최고위원 역시 비판에 동참했다. 그는 “결국 어제 청문회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 돼 버리고 말았다”며 “민주당이 주가 되고 야5당이 결합해 2차 청문회와 정기국회 국정조사를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최고위원이 이날 주장한 국정조사 근거는 ▲한진중공업이 필리핀에 투자한 과정의 탈세 의혹 ▲조남호 회장이 자기 회사 지분을 확장한 과정의 의혹 ▲처남 회사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었다.

굽히지 않는 ‘키맨’  이 갈고 있는 국회

시국 최대 이슈로 번진 한진중 사태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미온적인 해결태도를 보이는 조 회장에 뿔난 국회는 단단히 벼르고 있고, 노조도 이를 갈고 있다.


여기에 시민들까지 합세하며 한진중 사태로 반기업 정서가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태 해결에 열쇠를 쥔 ‘키맨’ 조 회장이 자신을 겨누는 총부리들에 추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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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