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사 ‘레드펜 작전’ 내막

'2인3각'처럼…경찰이 왜?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얼마 전 군 사이버사령부(이하 사이버사)가 정부 비판 성향의 아이디를 대량 수집해 온라인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집중 관리한 사실이 밝혀졌다. 일명 ‘레드펜’ 작전. 이런 가운데 경찰이 레드펜 작전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발견돼 논란이 되고 있다. 정치개입과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던 경찰이 보안사이버수사대를 만들어 군 사이버사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 온 정황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이재정 의원실이 제시한 국방부·경찰청의 각종 문건에 따르면 사이버사와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는 ‘2인3각’처럼 함께 작전 협조를 진행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버사와 경찰청의 부적절한 업무 협조 정황은 2009년 12월24일 경찰청이 보안국 보안사이버분석계를 보안사이버수사대로 확대 개편하면서 시작된다.

정부 비판 누리꾼
일반인 블랙리스트

군 사이버사는 창설 직후부터 총선과 대선 때마다 온라인 선거 개입을 주도해온 심리전단 내에 ‘검색팀’과 ‘리스트 관리 담당’을 두고 ID와 닉네임, 사이트 주소 등을 모아 특별관리대장을 만들었다. 

‘레드펜’ 작전은 공식적으로는 북한 선전물이나 이에 동조하는 세력을 수집해 보고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정부를 적극 비판하는 누리꾼 리스트를 작성해 대응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레드펜’ 작전의 시작은 사이버사 창설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이버사 사정을 잘 아는 전직 군 관계자는 “(군은) 2008년 봄에 시작된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이후 온라인 여론이 정권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했다. 그에 따라 온라인 여론을 주도하는 유력한 아이디를 골라 이를 추적 관찰하고, 해당 게시물에 대응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관리 대상 아이디의 글이 올라오면 더 독하게, 집요하게 (댓글)작전을 폈다. 군 내부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던 작전이 공식 조직을 통해 대대적으로 이뤄진 것은 사이버사가 창설된 2010년 이후다”라고 덧붙였다.

2010년 1월 사이버사가 창설되며 ‘레드펜’ 작전은 사이버사 심리전단 내 20명 내외의 검색팀에서 하루 24시간 내내 실행됐다. 

검색팀서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과 작성자 ID를 갈무리해 보고하면, 따로 정해진 2명의 담당이 작성자 성향 파악과 리스트 작성·관리 업무를 맡았다. 이 팀의 존재는 이미 2013년 사이버사 수사 당시 ‘정보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바 있다.

다만 당시 정보대는 현안 이슈를 심리전단장에게 보고하고 단장의 작전 지시를 운영대에 전달하는 일종의 지원조직으로 파악됐을 뿐, 이 팀에서 수행한 ‘레드펜’ 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레드펜 작전의 대상은 네이버, 다음 등 주요 포털 사이트와 트위터, 블로그, 정부에 비판적인 누리꾼들이 모여들던 ‘오늘의 유머’ ‘엠엘비파크’ 불펜, ‘82쿡’ 등 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망라했다. 

사이버사는 자신들의 작전 대상을 “북한 및 적대세력이 직접 운용 또는 간접 활용하는 일체”라고 정의했다.

담당 만들어 일반인 ‘특별관리대장’ 작성
경찰청 보안국 간부가 꾸준히 방문해 공조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의 출장 관련 문건 등을 살펴보면, 경찰과 군의 교류는 경찰청 보안국 산하 보안사이버수사대장이 직접 사이버사를 방문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전직 군 관계자는 “(이 작전지침에 따라)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 인원이 수시로 국방부 내 사이버사령부를 방문했다. (경찰청의)방문이 공식 확인되지 않을 만큼 보안이 철저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보안국과 협조
창설 이전부터…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전직 군 관계자는 “(이 작전지침에 따라) 경찰청 보안사이버 수사대 인원이 수시로 사이버 사령부를 방문해 협의하고 업무를 공조했다”고 밝혔다. 경찰청 보안국이 군과 업무협조를 한 시점은 2010년 이전부터였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는 “경찰청 보안국의 한 팀장급 간부(경감)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꾸준하게 군을 방문해 업무 공조를 하고 돌아갔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문건서도 이런 협조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정황은 곳곳에도 발견됐다. 

최근 군사 2급 기밀서 해제된 국방부 ‘2012년 사이버심리전 작전지침’을 보면, 제2장 4조(작전운영) 4항에 “작전협조는 국방부, 합참, 기무사, 청와대, 국정원, 경찰청 등과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보안유지 하에 정보를 공유한다”고 규정돼있다. 

이에 앞서 국방부는 같은해 1월20일 청와대에 올린 ‘청와대(BH) 현안업무보고’서 “청와대, 국정원, 경찰청, 기무사 등 유관기관과의 실시간 정보공유, 공동 대응체계 유지”를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군이 ‘레드펜’ 작전으로 관리한 온라인 블랙리스트의 규모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관리 대상 누리꾼의 리스트를 담은 ‘레드펜’ 대장은 ID 특별관리대장이라 불리며,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검색팀조차 존재를 명확히 알지 못할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됐기 때문이다.

다만 리스트 규모를 가늠해볼 수는 있다. 2017년 10월 국방부가 내놓은 ‘사이버사 댓글 재조사 태스크포스(TF)’ 중간조사 보고를 보면, 국방부는 “이명박정부 당시 사이버사가 문재인 대통령, 이효리 가수, 박원순 서울시장 등 유명인사 33명의 SNS 동향을 파악한 뒤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당시 33명의 동향을 담은 청와대 보고서가 군 내부 전산망에 남아 있다고 제보했던 한 전직 군 관계자는 “33명은 ‘레드펜’의 일부다. 이는 최소한의 숫자로 실제 유명인사가 아닌 유력 아이디를 더하면 수천개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관계자가 언급한 ‘수천개’라는 추정치는 당시 사이버사가 작전 대상으로 삼았던 종북 핵심 세력의 규모에 근거한다. 


이 관계자는 “처음 (레드펜은) 10명을 대상으로 시작했고, 이후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지휘계선 말고 정확한 수치를 알기 어렵지만, 사이버사 내부적으로는 종북 핵심 세력(3만여명)과 종북 조직(80여개 단체)을 (레드펜) 작전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당시 사정을 잘아는 전직 군 관계자는 “온라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레드펜’ 작전의 대상이 민간인이고, 경찰이 민간에 대한 수사권을 가졌기 때문에 업무협조가 중요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즉, 사이버사가 정부에 비판적인 활동을 하는 누리꾼들의 아이디(닉네임, 누리집 주소 등 포함)를 모아 관리한 ‘특별관리대장’(레드펜 작전)을 경찰에 전달하면 경찰이 넘겨받아 이 명단에 포함된 민간인에 대한 직접 사찰을 하는 방식으로 군의 작전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민간인 사찰?
자료 USB 저장

사이버사는 ‘레드펜’ 작전의 성과를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사이버사는 그날 불거진 주요 이슈에 대한 찬반 동향과 변화 수치를 담은 대응 작전 결과를 국방부 지휘부와 청와대 등에 제출할 때 ‘레드펜’ 작전 결과를 별도로 보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사이버사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레드펜’서 성과를 내면 곧바로 포상을 받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사이버사의 한 요원이 2010년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서 받은 표창 공적서에서 “유관기관(경찰청)과 주요 첩보활동을 93회 278건 실시해 사이버 첩보능력 및 부대인식 제고에 기여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레드펜’은 작전 초기 사이버사 핵심 간부들 사이에 갈등을 낳기도 했다. 이런 리스트 관리가 불법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전 사이버사 핵심 관계자는 “(‘레드펜’ 작전은)불법이었고 (군이)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다만 경각심이 없었다. 아이디를 포함한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는 과정이나 이를 분석한 뒤 반정부 세력으로 분류해 관리하는 과정 모두 불법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사이버사의 레드펜 작전 활동 관련 경찰 개입 의혹 등에 대해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계획이라고 지난 12일 밝혔다. 

경찰청 보안국이 진상조사팀(TF)을 자체 구성·조사한 결과, 지난 2011년 당시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 직원들이 당시 상사로부터 정부정책에 대한 지지 댓글을 게시하도록 지시를 받아 일부 실행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총경급 이하 관련직원 32명을 상대로 조사 과정서 포착된 것으로 경찰관 한 명과의 대화 과정서 정부 지지 댓글 개제 사실을 전해들었지만 이후 조사에서는 해당 경찰관이 “공식적인 업무 일환”이라며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2010년 당시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장이던 A 경정은 사이버사로부터 2년 가까이 ‘레드펜’ 자료를 넘겨받아 휴대용저장장치(USB)에 보관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기관끼리 아닌 개인 간 협조차원”주장
개인정보 1646개 정리된 214개 파일 전달

A 경정은 2010년 12월15일 경찰청 주관 유관기관 워크숍서 사이버사 직원으로부터 레드펜 자료가 담긴 서류봉투를 전달받은 후, 그때부터 2012년 10월5일까지 아내 명의로 개설한 이메일을 통해 인터넷 댓글 게시자의 ID·닉네임·URL 등 1646개가 정리된 214개 파일(한글파일 209개·엑셀파일 5개)을 전달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A 경정이 받은 파일은 언론기사 관련 157건, 화면캡처 사진 관련 47건으로, 성격별로 국보법 관련 140건, 정부정책 관련 43건, 군 관련 21건 등이라고 경찰청 보안국은 설명했다. 

진상조사팀이 블랙펜 자료를 분석한 결과, 경찰의 내사 1건 및 통신 조회 26건과 정보가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에도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장이던 A경정은 댓글자료를 소속 직원들에게 제공, 댓글 게시자에 대한 내사를 진행했다.

이에 경찰청은 치안감 이상급을 단장으로 하는 ‘경찰청 특별수사단’을 구성,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하게 수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와 관련해 이철성 경찰청장은 “관련한 의혹과 전혀 관계 없고 수사 경험이 많은 치안감 이상을 단장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단이 구성되면 수사는 본격적으로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이뤄질 전망이다. 

우선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 요원들이 사이버사로부터 넘겨받은 아이디나 닉네임 등의 정보를 대공 관련 수사나 내사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민간인 사찰 등에 위법하게 활용했는지 여부다.

또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 요원들이 국정원 사이버심리전단 요원처럼 조직적으로 상부의 지시를 받아 정치적으로 편향된 성격의 댓글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게재했는지 여부를 가려내는 게 핵심이다. 

경찰청 보안국 관계자는 “2010~2013년 동안에는 본인들이 A 경정에게 자료를 받아 내·수사를 진행할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며 “A 경정은 기관대 기관의 관계가 아니라 개인 간 업무 협조차원서 (자료를)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가치가 없어 사용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전했다.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군과의 업무 협조는 일부 인정하면서도 군과 함께 민간인 사찰 등을 하는 일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군과 세미나를 하며 대공업무 노하우를 축적하고 친북 사이트 140개 차단과 관련된 자료를 받거나, 사이버사가 아닌 기무사로부터 손에 꼽을 정도의 (친북 관련) 누리꾼 아이디를 건네받은 적 있을 뿐”이라며 “군으로부터 그런 자료를 주고 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개인간 협조 차원”
경 모르쇠로 일관

이철희 의원은 “청와대까지 제출된 국방부 문서에 나온 근거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찰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재정 의원도 “국정원과 사이버사의 역할이 위축된 상황서 경찰의 보안사이버수사 조직이 확대 개편돼왔다. 이런 점을 생각해볼 때 이번 사안은 더욱 엄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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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