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담뱃값이 오르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제담배의 수요가 높아진 가운데 발암물질이 함유된 불법 수제담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해성분이 기준치의 최대 100배에 이르는 수제 담배를 ‘명품’이라고 광고하며 불법으로 제조·판매한 일당이 무더기로 붙잡히기도 했다.
지난 14일 창원지검 통영지청은 불법으로 수제담배를 제조해 전국적으로 판매한 조직 4곳을 적발, 본사 대표 2명을 담배사업법위반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소매점주 등 17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명품이라더니…
이들은 지난해 1월부터 지난 1월까지 담배제조업 허가 및 소매인 지정을 받지 않고 소매점 점주들과 공모해 담배를 제조하고 경고문구를 표시하지 않고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행법상 담배제조업 허가 없이 담뱃잎과 필터를 종이로 말아 담배를 제조하는 것은 위법이다.
이들은 ‘담뱃잎 판매점’으로 가장하고 “담뱃잎을 구입한 손님이 점포에 비치한 기계로 담배를 제조하면 합법”이라며 꼼수 영업해 전국적으로 영업망을 확대했다.
검찰은 이들은 손님들에게 담뱃잎, 필터를 제공한 후 점포 내에 설치한 담뱃잎 절삭기, 궐련(종이로 말아놓은 담배)제조기 등 담배제조 기계를 이용해 손님들이 수제담배를 직접 만들게 하거나 자신의 가게 또는 다른 곳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수제담배를 판매해왔다고 설명했다.
상당수 판매점들이 한 갑을 만드는 데 4∼5분을 대기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수제 담배를 꺼리는 소비자를 겨냥해 손님이 오기 전에 미리 만들어 놓은 담배를 팔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온라인상에는 수제담배를 만들어 택배로 보내주는 사이트마저 있다. 모두 담배 불법 제조 및 판매이자, 탈세 행위이다.
이 같은 ‘수제담배’는 1갑당 2500원으로 일반담배의 절반가격에 불과해 서민 주거지역을 중심으로 급속 확산됐다. 담뱃잎이 농산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수입 시 세관서도 일반담배 관세율(40%)의 절반에 불과한 20%만 부과된다.
250g 미만을 수입할 경우 ‘자가사용’으로 분류돼 아예 ‘무관세’로 들여올 수 있다.
불법 제조·판매 성행…탈세도
니코틴·타르 일반담배 100배↑
또 시중서 판매하는 담배 한 갑엔 담배소비세 1007원, 지방교육세 443원 등을 포함해 3318원이 세금으로 붙지만 수제 담배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가격이 시중 담배 가격의 70%로 저렴한 이유다.
서울 소재의 한 담뱃잎 판매 업체 점주는 “수제담배 완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나 이용방법을 제대로 모르거나 직접 만들 시간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웃돈을 들여서라도 완제품을 찾는 손님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일부 업체는 단속에 걸렸을 때 판매실적을 숨기려고 현금만 받는다.
관할 지자체나 경찰이 조사하러 나가도 가게 주인이 자기가 말아 판매한 게 아니라고 잡아떼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
한국담배판매인중앙회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수제담배 가게는 380여개로 집계됐다. 일부 수제담배 프랜차이즈 본사는 500~600곳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한국담배판매인중앙회 관계자는 “2015년 담배소비세 인상을 계기로 국내에 생겨나기 시작한 수제담배 가게는 행정 공백 상태가 심각했던 지난해 말부터 급증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수제담배 시장규모가 전체 담배 시장의 약 2%인 연간 약 9000만갑으로, 그로 인한 국세 누수액이 연간 합계 추산 약 30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크다. 기본 가공을 거쳐도 원초 형태로 수입되는 담뱃잎은 식물로 분류돼 규제할 법령도 마땅치 않다. 관련 법령이 없어 수제담배로 인해 건강상 피해를 보더라도 보상받을 방법이 요원하다.
검찰은 수제담배는 일반담배보다 타르, 니코틴 등 유해성분 함량이 높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 검사 결과를 근거로 수제담배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검사 결과 수제담배업체 담뱃잎의 니코틴 함량은 0.59mg∼1.66mg로, 타르 함량은 5.33mg∼15.13mg으로, KT&G서 판매하는 일반담배의 니코틴 함량 0.01mg∼0.6mg, 타르 함량 0.1mg∼6.5mg 보다 유해성분이 최대 100배 가까이 높았다.
한갑 만드는 데 4∼5분
손님 오기전 미리 말아
부산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검사 결과에 수제담배업체의 담뱃잎에 농약 5종이 발견됐는데 그중 농약 4종은 국내 담배에 사용등록이 되지 않은 농약으로 독극성 여부를 확인 중이다.
단순히 니코틴이나 화학물질이 적다고 안전하다고 단정짓는 것은 위험하며, 가열담배나 수제담배처럼 변형된 담배는 금연 의지를 떨어뜨려 결국 니코틴중독에 다시 빠지게 하고,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해 흡연으로 가는 관문이 될 수 있다는 게 금연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청소년의 수제담배 이용을 제재할 방법이 딱히 없는 것도 개선이 필요하다. 청소년의 흡연은 당연히 불법이지만 담뱃잎의 경우 구입을 제제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게다가 상당수의 수제담배 업체들이 인터넷이나 전화로도 주문을 받는데 나이나 신분 등 신원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즉 미성년자도 전화나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수제담배 완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 영국 등에선 이미 수제담배를 담배의 일종으로 취급해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2009년 도입한 가족흡연방지 및 담배규제법(FSPTCA)서 수제담배를 담배에 포함해 식품의약국(FDA)에 제조, 유통, 마케팅에 관한 포괄적 권한을 부여했다.
영국 정부도 지난해 5월부터 금연법을 시행하면서 기존 두 갑(20g)까지 허용했던 수제담배 판매를 아예 금지했다. 담배 최저 구입가를 8.82파운드(약 1만3000원)로 높이기 위해서다. 일본에서도 담뱃잎까지 담배로 정의해 수제담배가 일반 담배와 동일하게 취급된다.
법적 보완 절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와 지자체는 수제담배 판매점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관련법 개정을 고려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수제담배 판매점이 이 같은 허점을 이용하지 않도록 매장 내에 수제담배 제조 때 쓰이는 자동화 기기 비치를 금지시키는 등 담배사업법을 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