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금융권 4대천왕’ 묻힌 이야기 속으로

MB 따라 가는 희비쌍곡선 “아~옛날이여!”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온갖 비리 의혹으로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동시에 자금줄 역할을 했을 것으로 의심받는 금융권 MB라인도 결코 순탄치 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른바 금융권 4대천왕으로 불리는 이들은 사정당국의 칼날 위에 서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MB정부서 득세했던 금융권 4대천왕에 묻힐 뻔 했던 이야기 속으로 <일요시사>가 들어가봤다.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리 혐의에 대한 압박 수위를 점점 높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특수2부, 첨단범죄수사1부)은 지난 6일, 이 전 대통령에게 14일 오전 9시30분에 검찰에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소환 통보에
위기감 고조

이 전 대통령 측은 검찰 요구에 응하겠지만 일방적인 통보인 만큼 협의를 거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검찰은 예정대로 소환에 응할 것을 재차 통보하면서 강력한 소환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따라 그의 자금줄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이른바 ‘금융권 4대천왕’에게도 눈길이 쏠렸다. 그들은 바로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강만수 전 산업은행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이다.

가장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는 인사는 역시 이팔성 전 회장. 


검찰은 최근 이 전 회장에 대한 수사력을 총 집중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은 MB정부 시절 활약했던 대표적인 금융인이다.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그는 경남 하동 출신으로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한일은행(현 우리은행)으로 입행했다. 63학번인 그는 이 전 대통령의 대학교 2년 후배다. 

그는 1999년 한빛증권 대표이사 사장, 2002년 우리증권 대표이사 사장 등 주로 은행 계열사가 아닌 증권 계열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 전 회장과 이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2002~2006년)인 2005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를 맡으면서 시작됐다.

이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이 취임했던 해에 우리금융지주의 회장으로 발탁되면서 금융맨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은행권 말단 경력의 소유자인 그의 금융지주 회장 취임은 당시 많은 뒷말을 남겼다. 이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 따른 ‘낙하산’ 꼬리표가 재임기간 내내 따라다녔음은 물론이다. 

이 전 회장은 2011년 우리금융 설립 이후 처음으로 회장 연임에 성공하며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그는 박근혜정부가 들어서자 2014년 3월까지인 임기를 끝까지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검찰은 과거 이 전 대통령과 이 전 회장의 관계를 복기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이 연임을 청탁하며 돈을 건넨 정황을 확인하고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현재 그는 이 전 대통령 측에 22여억원의 불법자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가운데 3억원을 이 전 회장의 회장직 연임 청탁용 자금으로 해석하고 있다. 관련 내용은 검찰이 이 전 회장 자택서 압수한 메모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MB ‘4인 금융실세’ MS·YD·SY·PS
‘금권’ 쥐락펴락 ‘자금줄’ 역할 의혹  

문제는 검찰의 칼날이 이 전 회장의 목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검찰 조사결과 이 전 회장이 대선 직후 이 전 대통령을 만나 기업 민원 등을 얘기했고,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상의하라고 한 정황이 드러났다. 

보도내용은 다음과 같다. 검찰이 확보한 이 전 회장의 비망록에는 17대 대선 직후인 2008년 1~2월 이 전 대통과 만난 자리서 이 전 회장이 성동조선해양의 사업청탁 등을 말하자, 이 전 대통령이 ‘이 부의장(이상득 전 의원)을 만나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검찰의 수사력은 이 전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도 이 전 회장에게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MB의 또 다른 측근으로 불리는 강만수 전 산업은행 회장 역시 쉽지만은 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강 전 회장은 이명박정부의 이른바 ‘MB노믹스’ 설계자로 통했다. 그만큼 MB정부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강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 소망교회서 만나 인연을 키웠다. 이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시절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을 맡았으며, 대선에선 일류국가비전위원회 부위원장 겸 정책조정실장을 역임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MB정부의 국정 과제인 747구상과 4대강사업, 규제 완화 등이 그의 손끝서 완성됐다. 그는 대통령자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과 대통령경제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하며 이 전 대통령 지근거리서 경제자문을 도맡았다. 
 

이후 2011년 산은금융그룹 회장 겸 산업은행장으로 취임하며 MB정부 정책에 지원사격을 했다.

그러나 MB정부가 끝나면서 영광의 순간도 함께 마감됐다. 그는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이자 임기를 1년 남긴 시점인 2013년 3월, 돌연 회장직서 물러났다.

검찰의 칼날은 4대천왕 가운데 가장 먼저 그를 엄습했다. 실제로 강 전 회장은 검찰로부터 지인에게 부당한 특혜를 준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수감 중이다.


그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 및 대통령경제특보 재임 기간인 2009년 11월 지식경제부 공무원들에게 지시해 B사에 66억7000만원의 정부 지원금을 지급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사는 이후 경영난을 겪었고 정부 지원금 전액을 손실처리했다. 

산업은행 회장 시절의 문제도 불거졌다. 

2011년 6월~2012년 2월 사이 남상태 전 대우조선사장을 압박해 대우조선해양 자금 44억원을 B사에 투자하게 한 혐의도 받았다. 이 부분에 대한 자금 역시 대우조선해양의 손실로 처리됐다. 

강 전 회장은 재판과정서 2012년 11월 W사에 490억원 상당의 특혜대출을 지시한 혐의도 받았다. 

관련 재판 선고는 지난해 11월에 있었다. 현재 2심까지 재판이 진행됐는데 1심보다 형량이 높게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김문석)는 지난해 11월17일 열린 강 전 회장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등의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서 징역 5년2개월에 벌금 5000만원, 추징금 8800여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가 선고한 징역 4년에 벌금 5000만원, 추징금 9000여만원보다 무거운 형량이다. 다만 1심 재판부는 대우조선해양과 관련된 혐의는 무혐의로 판단했다. 

강 전 회장은 항소했고 현재 대법원의 판단만 남아있다. 그러나 대법원서 판단이 뒤집히는 일이 많지 않은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게 업계 분위기다. 

검찰 수사망에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도 포함되는 분위기다. 사실 김 전 회장도 금융권서 김 전 회장은 ‘MB맨이었다가 문재인정부의 금융맨으로 변신에 성공한 인사’로 평가됐다. 

최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에 관치금융 논란이 일었을 때도 거론된 인물이 김 전 회장이다. 지난달 김 회장은 회장직에 내정되면서 3연임에 성공했는데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이른바 ‘셀프 연임’으로 비화되면서 그 배경에 김 전 회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장하성(청와대 정책실장)-김승유-최종구(금융위원장)로 이어지는 고려대 금융권 인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었다. 

이 같은 상황서 김 전 회장이 이 전 대통령의 수사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돌연 일본으로 출국하면서 그 배경에 눈길이 쏠렸다. 

비자금 수사
자금줄 의혹

그동안 검찰의 이 전 대통령 수사 길목마다 김 전 회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얘기가 돌았다. 김 전 회장과 이 전 대통령 역시 고려대 동문이다. 그 역시 MB정부서 실세로 통하는 이유이다.

금융권에선 그가 이번에 검찰의 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비리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KEB하나은행이 다스의 불법자금을 2008년 대선자금으로 세탁한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이 과정서 김 전 회장이 조력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로 의심받고 있는 ‘BBK’에도 하나은행의 흔적이 나오면서 김 전 회장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나은행은 지난 2000년 BBK에 5억원을 투자한 사실이 확인됐는데 당시 은행장이 김 전 회장이었다. 
 

김 전 회장은 2011년에 이상득 전 의원의 청탁을 받아 당시 부실화돼가고 있던 미래저축은행의 유상증자에 하나캐피탈이 참여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은 당시 이와 관련해 김 전 회장에게 ‘주의적 경고’를 내렸다. 

김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집사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과도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여러모로 이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밀접하다는 얘기다.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일간 김 전 회장을 소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한국에 없다. 업계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일본의 고령화사회 대응전략을 시찰하기 위해 지난달 출국했다. 당초 그는 3월에 출국할 계획이었으나 일정을 앞당겨 한국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화려한 초년
불운한 말년

이를 두고 일각에선 검찰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일본에 체류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그에 대한 소환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내부제보실천운동은 지난 4일 성명을 통해 “‘청와대에 밤에도 자주 들어가 MB를 독대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는 증언이 나왔다”며 “‘과연 MB의 금융계 최순실’이라고 불리는 김승유 전 회장은 이팔성 우리은행장이 연임 대가로 22억원에 달하는 뇌물을 건넸음이 밝혀지는 등 수사망이 좁혀 오자 도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다스 비자금 세탁의 혐의를 받고 있었음에도 검찰이 그를 출국금지하지 않았던 탓에 많은 이들이 염려했던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다스 비자금을 국외법인을 통해 불법 세탁해준 혐의만 해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의 조세포탈과 횡령 및 배임에 해당해 5년 이상의 중형이 가능한 중범죄”라며 구속 수사와 강제소환을 촉구했다.
 

어윤대 전 회장 역시 4대천왕에 이름을 올리며 MB정부의 실세로 통했다. 그 역시 이팔성 전 회장과 함께 이 전 대통령의 고려대 2년 후배다. 

검찰 수사망 좁혀오자 국외 도피
이미 먼지 털려 구속수감 되기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 국제금융센터 초대 소장, 고려대 총장 등을 거쳐 2010년 MB정부 시절 KB금융지주 회장으로 선임됐다.

그러나 한국은행 금통위원으로 지낸 경력을 제외하면 금융 관련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 역시 박근혜정부 출범 후 1년을 못 버티고 회장직서 물러나야 했다.

현재 어 전 회장은 4대천왕 가운데 가장 무난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MB정부서 득세한 그 역시 안심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2009년 어 전 회장의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이 정당한가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 전 회장은 2008년 MB정부가 출범한 뒤 이듬해인 2009년에 당시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이 임기 1년여 만에 자리서 물러나면서 회장직에 올라, 청와대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KB금융지주 회장 선임과 관련해 청와대 정책실장이 개입해 ‘대통령의 뜻이니 다른 후보들은 사퇴하라’고 압박해 어윤대 회장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 회장은 직접 회장후보추천위원장을 찾아가 ‘청와대서 내가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했다더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은 “이팔성 전 회장이 뇌물을 준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대통령과 금융지주 회장을 놓고 벌인 거래”라며 “이런 거래가 이 건만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시절의 금융지주 회장 등을 대상으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불십년
새옹지마

금융권 한 관계자는 “MB정부서 실세로 군림한 금융권 4대천왕의 위력은 금융감독 당국의 수장도 쉽게 보지 못할 만큼 대단했다”며 “이 전 대통령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던 만큼 4대천왕의 운명도 이미 기울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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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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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