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공화국’의 민낯 고발

참았던 여성들 들고 일어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미투’ 운동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불과 한 달 새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각계각층의 인사 수가 30여명에 육박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유명인 이름이 뜨면 미투 운동과 관련된 경우가 대부분일 정도. 미투 운동은 그동안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권력형 성폭력의 본질을 들춰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미투’ 운동은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SNS에 올려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이다. ‘나도 그렇다’는 뜻의 Me Too에 해시태그(#Me Too)를 달아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사건 당시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처음 제안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당신이 성폭력 피해를 봤거나 성희롱을 당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여기 트위터에 ‘미투’라고 써달라”고 호소했다.

할리우드 시작
전 세계에 파장

반향은 어마어마했다. 알리사 밀라노가 제안한지 24시간 만에 50만명이 넘는 이용자가 리트윗으로 지지를 표명했고, 8만여명이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고백했다.

한국의 미투 운동은 지난 1월26일 서지현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검사의 폭로로 촉발됐다. 서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2010년 10월 한 장례식장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사과를 요구한 자신에 대해 2014∼2015년 부당한 사무 감사를 진행하고, 통영지청으로 발령하는 과정서 부당하게 입김을 넣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서 검사는 이프로스 폭로 3일 만에 언론에 직접 출연해 피해 사실을 설명했다.

각계각층 30여명 지목
가해자 침묵 혹은 사과

현직 검사가 실명을 걸고 한 고백은 각계각층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이어졌다. 법조계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연극계, 문단, 연예계, 만화계, 영화계, 가요계를 넘어 종교계로까지 번졌다. 연극 연출가, 시인, 영화감독, 천주교 신부 등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30여명 가까운 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고발된 이들의 공통점은 피해자와의 관계서 우위에 있었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이 두려워 상황이 발생한 당시 가해자를 고발하지 못했다.

▲문화·예술계= 문화·예술계는 미투 운동이 가장 광범위하게 번진 분야다. 특히 연극계는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가해자가 나왔다. 거장으로 불린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오태석 극단 목화 대표, 조증윤 극단 번작이 대표, 김석만 연출가, 윤호진 연출가 등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모두 연출가이거나 극단 대표다.

지난달 14일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자신의 SNS에 이윤택 전 감독으로부터 당한 성추행 사실에 대해 적었다. 

그는 “여관방 인터폰이 울렸다. 밤이었다. 내가 받았고 전화 건 이는 연출이었다. 왜 부르는지 단박에 알았다. 안마를 하러 오라는 것”이라며 “그는 연습 중이던 휴식 중이던 꼭 여자단원에게 안마를 시켰다. 그게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배우 김지현도 지난달 19일 자신의 SNS에 이 전 감독에게 성폭행 당한 후 임신과 낙태를 했다고 밝혀 충격을 더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이 전 감독은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을 갖고 “저에게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정말 부끄럽고 참담하다”면서도 성폭행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배우 오동식에 의해 이 전 감독의 기자회견이 리허설까지 진행된 연출된 사과였다는 내부 고발이 나오면서 진정성은 빛을 바랬다.

이 전 감독에 대한 폭로는 연극계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었다. 지난달 15일에는 오태석 대표에 대한 고발이 나왔다. 

배우 A씨는 자신의 SNS에 ‘ㅇㅌㅅ’이라고 초성을 올린 뒤 성추행 피해 사실을 게재했다. 

그는 “대학로의 그 갈비 상 위에서는 핑크빛 삼겹살이 불판 위에 춤을 추고, 상 아래에서는 나와 당신의 허벅지, 사타구니를 움켜잡고 꼬집고 주무르던 축축한 선생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소리를 지를 수도 뿌리칠 수도 없었다”고 밝혔다.

오 대표에 대한 폭로는 또 다른 전직 배우에게서도 터져 나왔다. 연이은 폭로에도 오 대표는 침묵을 지켰다. 그는 지난달 20일 입장을 밝히기로 했지만 이날 오전 입장 정리가 되지 않았다며 돌연 발표를 연기한 후 1일 현재까지 묵묵부답 상태다.

권력형 성폭력
수직관계 위험

조증윤 대표는 가해자로 지목된 인사 가운데 처음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당시 16∼18세였던 여자 단원 2명을 성폭행하거나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예대 익명 SNS에 처음 조 대표 관련 내용의 글이 올라왔고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조 대표는 지난 1일 창원지방법원서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서 성관계는 인정했지만 당시 서로 호감을 갖고 있던 만큼 성폭행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해 단원들은 “나이가 20살 이상 많은 조 대표에게 호감 느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던 고은 시인의 몰락도 미투 운동서 비롯됐다. 고 시인에 대한 충격적인 폭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김석만 연출가에 대한 성추행 피해 주장도 불거졌다. 21년 전 연극 행사 뒤풀이서 김 연출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이다. 
 


피해 여성은 “당신은 택시에 나를 태우고 북악스카이웨이로 향했다”며 “성추행 당하고 여관까지 갔다가 방이 다 찼다는 이유로 돌아섰다”며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적었다. 김 연출가는 이날 오후 “어떠한 책임도 질 것이며 남은 일생 잘못을 빌며 용서를 구하고 반성하며 살아가겠다”며 입장문을 발표했다.

거장의 성추문
연극계 쑥대밭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등 굵직한 작품을 연출한 윤호진 에이콤 대표 역시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됐다. 윤 대표는 창작 뮤지컬 제작 과정서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는 복수의 피해자들의 주장에 지난달 24일 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는 사과문을 통해 “피해자들이 바라는 방식으로 사과하고 반성하겠다”며 “나 때문에 상처 입은 피해자들이 있다면 따로 연락을 달라”고 말했다.

인간문화재 하용부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연희단거리패 전직 단원이 하씨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것. 

이후 추가 폭로가 이어지면서 하씨를 공개적으로 지목한 여성단원은 3명으로 늘었다. 하씨는 처음에는 “추호의 변명의 여지도 없고 정말 잘못했다”며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지난달 27일 오후 “성폭행한 적은 없는 것 같다”며 돌연 입장을 바꿨다.


지난달 26일 웹툰 작가 이태경은 주례를 부탁하러 간 자리서 유명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씨는 박 화백이 자신의 허벅지 등 신체를 만지고 ‘맛있다고 생각했다’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박 화백은 지난해 대학 강의서도 “여자는 보통 비유하길 꽃이나 과일이랑 비슷한 면이 있다. 상큼하고 먹음직스럽고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씨를 얻을 수 있다”는 발언으로 학생들의 항의를 산 적이 있다. 

문제가 불거지자 박 화백은 자신의 SNS에 공개 사과문을 올려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연예계= 미투 운동은 연예계로 번졌다. 조민기, 조재현, 오달수 등 유명 배우들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다. 

조민기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청주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연예인 ㅈㅁㄱ씨가 몇 년간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교수직을 박탈당했다”며 “혐의가 인정돼 교수직을 박탈당했는데 기사가 나오지 않는 것이 의문”이라는 글이 시발점이었다. 

조민기는 수차례에 걸쳐 성추행 의혹에 대해 부인했지만 연이은 피해자들의 고백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조재현은 처음 댓글을 통해 이니셜로 거론됐다. 그러다 지난달 23일 배우 최율이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미투 운동에 동참하면서 사태가 커졌다. 조재현은 피해자에게 배역을 주겠다는 조건으로 성관계를 시도한 적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는 사과문을 통해 일부 혐의를 인정한 상태다.

아직 조용한 정·관·재계
다음 타깃은 과연 어디일까

‘천만 요정’으로 불렸던 배우 오달수는 처음 이름이 거론된 이후 상당 기간 입장 발표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다 자신의 실명을 걸고 공개 저격한 피해자가 나오자 그제야 일부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오씨는 사과문을 통해 “25년 전 잠시나마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덫에 걸린 짐승처럼 팔도 잘렸고 정신도 많이 피폐해졌다”며 마치 자신을 피해자인 것처럼 표현해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배우 최일화는 스스로 가해 사실을 공개한 경우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과거 있었던 성추문을 고백했다. 그러면서 “사과와 함께 연극배우협회 이사장직과 현재 촬영 중인 드라마와 영화, 광고 등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진 고백 다음날 최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등장했다. 최씨는 성폭행 의혹에 대해서는 침묵 중이다. 이어 이명행, 한명구, 최용민 등 배우들의 성추문이 연달아 불거졌다. 이들은 사과문을 내고 맡고 있던 배역, 교수직 등을 내려놓았다.

▲종교계= 천주교 신부가 성폭력 가해자로 밝혀지면서 종교계가 술렁였다. 수원교구 소속 한모 신부는 2011년 아프리카 남수단 선교 봉사활동 당시 봉사단의 일원이던 여성 신도를 추행하고 강간을 시도했다.

피해자는 7년여 동안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하다가 최근 미투 운동에 힘을 얻어 언론에 사건을 폭로했다. 한 신부는 자신이 7년여에 걸쳐 피해자를 찾아가 용서를 구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소속 간부 김덕진씨가 4년 전 여성 활동가를 성추행 했다는 주장이 나와 경찰이 사실 확인에 나섰다. 앞서 피해자는 자신의 SNS에 김씨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고, 김씨가 당시 사건이 합의하에 이뤄진 양 말하고 다녔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미투 운동이 당분간 활발하게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투 운동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75%(2월5일 리얼미터 조사)에 달하고, 어렵게 용기를 낸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보내는 위드유(#With you) 운동이 일어나는 등 사회적 시선이 점차 변화하면서 고발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 문화·예술계와 연예계에 편중된 폭로가 각계각층으로 퍼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먼저 손꼽히는 분야는 정계다. 정계는 미투 운동이 아직 활발하게 전개되지 않았을 뿐 그간 성 관련 사건이 꾸준히 발생한 분야였다. 실제 지난달 7일 최윤희 전 경북도의원은 자신이 도의원으로 일했던 2006∼2010년 동료의원들에게 공공연히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가장 폐쇄적인 집단으로 분류되는 군대 역시 미투 운동이 필요한 분야라는 분석이 있다. 상명하복이 군대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인 만큼 수직 관계서 일어나기 쉬운 성폭력이 만연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특히 군대서 미투 운동이 벌어지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피해자들도 등장할 수 있다.

이미 조금씩 피해자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는 언론계는 물꼬가 트이면 엄청난 폭로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지난 2009년 배우 장자연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언론계 등 유력인사 31명에게 성상납과 술 접대를 강요받았다는 내용을 고발했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다. 

유력 언론사 관계자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장자연 리스트 사건은 미흡하게 처리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 말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리스트를 재조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군·체육계
벌벌 떠나?

체육계는 지난 1일 이경희 리듬체조 국가대표팀 코치의 최초 고백으로 물꼬가 트였다. 가해자는 이씨가 업무상 만났던 대한체조협회 전 고위 간부로, 이씨는 3년 동안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씨가 3년여간 이어진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사표를 내러 갔던 날 그에게 성폭행 당할 뻔 했다는 충격적인 주장도 나왔다. 해당 간부는 당시 이씨의 탄원서로 감사가 시작되자 자진해서 사퇴했지만 2년 후 더 높은 자리의 간부 후보가 돼서 돌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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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