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공화국’의 민낯 고발

참았던 여성들 들고 일어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미투’ 운동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불과 한 달 새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각계각층의 인사 수가 30여명에 육박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유명인 이름이 뜨면 미투 운동과 관련된 경우가 대부분일 정도. 미투 운동은 그동안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권력형 성폭력의 본질을 들춰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미투’ 운동은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SNS에 올려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이다. ‘나도 그렇다’는 뜻의 Me Too에 해시태그(#Me Too)를 달아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사건 당시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처음 제안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당신이 성폭력 피해를 봤거나 성희롱을 당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여기 트위터에 ‘미투’라고 써달라”고 호소했다.

할리우드 시작
전 세계에 파장

반향은 어마어마했다. 알리사 밀라노가 제안한지 24시간 만에 50만명이 넘는 이용자가 리트윗으로 지지를 표명했고, 8만여명이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고백했다.

한국의 미투 운동은 지난 1월26일 서지현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검사의 폭로로 촉발됐다. 서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2010년 10월 한 장례식장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사과를 요구한 자신에 대해 2014∼2015년 부당한 사무 감사를 진행하고, 통영지청으로 발령하는 과정서 부당하게 입김을 넣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서 검사는 이프로스 폭로 3일 만에 언론에 직접 출연해 피해 사실을 설명했다.

각계각층 30여명 지목
가해자 침묵 혹은 사과

현직 검사가 실명을 걸고 한 고백은 각계각층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이어졌다. 법조계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연극계, 문단, 연예계, 만화계, 영화계, 가요계를 넘어 종교계로까지 번졌다. 연극 연출가, 시인, 영화감독, 천주교 신부 등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30여명 가까운 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고발된 이들의 공통점은 피해자와의 관계서 우위에 있었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이 두려워 상황이 발생한 당시 가해자를 고발하지 못했다.

▲문화·예술계= 문화·예술계는 미투 운동이 가장 광범위하게 번진 분야다. 특히 연극계는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가해자가 나왔다. 거장으로 불린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오태석 극단 목화 대표, 조증윤 극단 번작이 대표, 김석만 연출가, 윤호진 연출가 등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모두 연출가이거나 극단 대표다.

지난달 14일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자신의 SNS에 이윤택 전 감독으로부터 당한 성추행 사실에 대해 적었다. 

그는 “여관방 인터폰이 울렸다. 밤이었다. 내가 받았고 전화 건 이는 연출이었다. 왜 부르는지 단박에 알았다. 안마를 하러 오라는 것”이라며 “그는 연습 중이던 휴식 중이던 꼭 여자단원에게 안마를 시켰다. 그게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배우 김지현도 지난달 19일 자신의 SNS에 이 전 감독에게 성폭행 당한 후 임신과 낙태를 했다고 밝혀 충격을 더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이 전 감독은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을 갖고 “저에게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정말 부끄럽고 참담하다”면서도 성폭행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배우 오동식에 의해 이 전 감독의 기자회견이 리허설까지 진행된 연출된 사과였다는 내부 고발이 나오면서 진정성은 빛을 바랬다.

이 전 감독에 대한 폭로는 연극계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었다. 지난달 15일에는 오태석 대표에 대한 고발이 나왔다. 

배우 A씨는 자신의 SNS에 ‘ㅇㅌㅅ’이라고 초성을 올린 뒤 성추행 피해 사실을 게재했다. 

그는 “대학로의 그 갈비 상 위에서는 핑크빛 삼겹살이 불판 위에 춤을 추고, 상 아래에서는 나와 당신의 허벅지, 사타구니를 움켜잡고 꼬집고 주무르던 축축한 선생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소리를 지를 수도 뿌리칠 수도 없었다”고 밝혔다.

오 대표에 대한 폭로는 또 다른 전직 배우에게서도 터져 나왔다. 연이은 폭로에도 오 대표는 침묵을 지켰다. 그는 지난달 20일 입장을 밝히기로 했지만 이날 오전 입장 정리가 되지 않았다며 돌연 발표를 연기한 후 1일 현재까지 묵묵부답 상태다.

권력형 성폭력
수직관계 위험

조증윤 대표는 가해자로 지목된 인사 가운데 처음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당시 16∼18세였던 여자 단원 2명을 성폭행하거나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예대 익명 SNS에 처음 조 대표 관련 내용의 글이 올라왔고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조 대표는 지난 1일 창원지방법원서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서 성관계는 인정했지만 당시 서로 호감을 갖고 있던 만큼 성폭행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해 단원들은 “나이가 20살 이상 많은 조 대표에게 호감 느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던 고은 시인의 몰락도 미투 운동서 비롯됐다. 고 시인에 대한 충격적인 폭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김석만 연출가에 대한 성추행 피해 주장도 불거졌다. 21년 전 연극 행사 뒤풀이서 김 연출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이다. 
 


피해 여성은 “당신은 택시에 나를 태우고 북악스카이웨이로 향했다”며 “성추행 당하고 여관까지 갔다가 방이 다 찼다는 이유로 돌아섰다”며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적었다. 김 연출가는 이날 오후 “어떠한 책임도 질 것이며 남은 일생 잘못을 빌며 용서를 구하고 반성하며 살아가겠다”며 입장문을 발표했다.

거장의 성추문
연극계 쑥대밭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등 굵직한 작품을 연출한 윤호진 에이콤 대표 역시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됐다. 윤 대표는 창작 뮤지컬 제작 과정서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는 복수의 피해자들의 주장에 지난달 24일 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는 사과문을 통해 “피해자들이 바라는 방식으로 사과하고 반성하겠다”며 “나 때문에 상처 입은 피해자들이 있다면 따로 연락을 달라”고 말했다.

인간문화재 하용부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연희단거리패 전직 단원이 하씨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것. 

이후 추가 폭로가 이어지면서 하씨를 공개적으로 지목한 여성단원은 3명으로 늘었다. 하씨는 처음에는 “추호의 변명의 여지도 없고 정말 잘못했다”며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지난달 27일 오후 “성폭행한 적은 없는 것 같다”며 돌연 입장을 바꿨다.


지난달 26일 웹툰 작가 이태경은 주례를 부탁하러 간 자리서 유명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씨는 박 화백이 자신의 허벅지 등 신체를 만지고 ‘맛있다고 생각했다’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박 화백은 지난해 대학 강의서도 “여자는 보통 비유하길 꽃이나 과일이랑 비슷한 면이 있다. 상큼하고 먹음직스럽고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씨를 얻을 수 있다”는 발언으로 학생들의 항의를 산 적이 있다. 

문제가 불거지자 박 화백은 자신의 SNS에 공개 사과문을 올려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연예계= 미투 운동은 연예계로 번졌다. 조민기, 조재현, 오달수 등 유명 배우들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다. 

조민기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청주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연예인 ㅈㅁㄱ씨가 몇 년간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교수직을 박탈당했다”며 “혐의가 인정돼 교수직을 박탈당했는데 기사가 나오지 않는 것이 의문”이라는 글이 시발점이었다. 

조민기는 수차례에 걸쳐 성추행 의혹에 대해 부인했지만 연이은 피해자들의 고백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조재현은 처음 댓글을 통해 이니셜로 거론됐다. 그러다 지난달 23일 배우 최율이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미투 운동에 동참하면서 사태가 커졌다. 조재현은 피해자에게 배역을 주겠다는 조건으로 성관계를 시도한 적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는 사과문을 통해 일부 혐의를 인정한 상태다.

아직 조용한 정·관·재계
다음 타깃은 과연 어디일까

‘천만 요정’으로 불렸던 배우 오달수는 처음 이름이 거론된 이후 상당 기간 입장 발표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다 자신의 실명을 걸고 공개 저격한 피해자가 나오자 그제야 일부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오씨는 사과문을 통해 “25년 전 잠시나마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덫에 걸린 짐승처럼 팔도 잘렸고 정신도 많이 피폐해졌다”며 마치 자신을 피해자인 것처럼 표현해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배우 최일화는 스스로 가해 사실을 공개한 경우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과거 있었던 성추문을 고백했다. 그러면서 “사과와 함께 연극배우협회 이사장직과 현재 촬영 중인 드라마와 영화, 광고 등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진 고백 다음날 최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등장했다. 최씨는 성폭행 의혹에 대해서는 침묵 중이다. 이어 이명행, 한명구, 최용민 등 배우들의 성추문이 연달아 불거졌다. 이들은 사과문을 내고 맡고 있던 배역, 교수직 등을 내려놓았다.

▲종교계= 천주교 신부가 성폭력 가해자로 밝혀지면서 종교계가 술렁였다. 수원교구 소속 한모 신부는 2011년 아프리카 남수단 선교 봉사활동 당시 봉사단의 일원이던 여성 신도를 추행하고 강간을 시도했다.

피해자는 7년여 동안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하다가 최근 미투 운동에 힘을 얻어 언론에 사건을 폭로했다. 한 신부는 자신이 7년여에 걸쳐 피해자를 찾아가 용서를 구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소속 간부 김덕진씨가 4년 전 여성 활동가를 성추행 했다는 주장이 나와 경찰이 사실 확인에 나섰다. 앞서 피해자는 자신의 SNS에 김씨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고, 김씨가 당시 사건이 합의하에 이뤄진 양 말하고 다녔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미투 운동이 당분간 활발하게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투 운동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75%(2월5일 리얼미터 조사)에 달하고, 어렵게 용기를 낸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보내는 위드유(#With you) 운동이 일어나는 등 사회적 시선이 점차 변화하면서 고발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 문화·예술계와 연예계에 편중된 폭로가 각계각층으로 퍼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먼저 손꼽히는 분야는 정계다. 정계는 미투 운동이 아직 활발하게 전개되지 않았을 뿐 그간 성 관련 사건이 꾸준히 발생한 분야였다. 실제 지난달 7일 최윤희 전 경북도의원은 자신이 도의원으로 일했던 2006∼2010년 동료의원들에게 공공연히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가장 폐쇄적인 집단으로 분류되는 군대 역시 미투 운동이 필요한 분야라는 분석이 있다. 상명하복이 군대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인 만큼 수직 관계서 일어나기 쉬운 성폭력이 만연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특히 군대서 미투 운동이 벌어지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피해자들도 등장할 수 있다.

이미 조금씩 피해자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는 언론계는 물꼬가 트이면 엄청난 폭로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지난 2009년 배우 장자연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언론계 등 유력인사 31명에게 성상납과 술 접대를 강요받았다는 내용을 고발했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다. 

유력 언론사 관계자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장자연 리스트 사건은 미흡하게 처리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 말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리스트를 재조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군·체육계
벌벌 떠나?

체육계는 지난 1일 이경희 리듬체조 국가대표팀 코치의 최초 고백으로 물꼬가 트였다. 가해자는 이씨가 업무상 만났던 대한체조협회 전 고위 간부로, 이씨는 3년 동안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씨가 3년여간 이어진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사표를 내러 갔던 날 그에게 성폭행 당할 뻔 했다는 충격적인 주장도 나왔다. 해당 간부는 당시 이씨의 탄원서로 감사가 시작되자 자진해서 사퇴했지만 2년 후 더 높은 자리의 간부 후보가 돼서 돌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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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