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덮친’ 문화예술계 막전막후

양반만 있는 줄 알았더니…“조용한 날이 없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화·예술계에 바람 잘 날이 없다. 2016년 SNS를 중심으로 ‘문단 내 성추행’ 폭로가 이어지면서 문학계가 쑥대밭이 됐다. 박근혜정부서 특정 문화·예술인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홍역을 앓았고, 그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올해도 연초부터 영화계, 문단 할 것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사건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12일 제18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행사가 열렸다. 2000년 처음 시상을 시작한 이 상은 영화계 전반에서 활동 중인 여성 영화인들이 선정하고 수여하는 상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을 받아왔다. 매년 최고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연기상 등 각종 부문에서 주목할 만한 활약을 펼친 여성 영화인에게 준다.

빛바랜 수상
감독상 박탈

이날 감독상의 주인공은 이현주 감독이었다. 이 감독은 여성간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영화 <연애담>으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11월 제38회 청룡영화상과 10월 제26회 부일영화상에서 역시 <연애담>으로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 감독이 연출한 <연애담>은 성소수자의 사랑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이 감독이 연루된 성추문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감독상의 의미가 퇴색됐다. 추문의 내용이 동성 성폭행으로 드러나면서 그 파장은 더욱 커졌다. 또 사건이 이미 대법원 선고까지 종결된 시점에 알려졌기 때문에 놀라움은 배가됐다.

이 사건은 ‘미투(Me too)’ 운동을 통해 알려졌다. 미투 운동은 SNS에 ‘나도 그렇다’는 뜻인 Me Too에 해시태그(#Me too)를 달아 자신이 겪었던 성범죄를 고백하면서 그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문 사건 이후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처음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피해자인 여성 영화감독 A씨는 지난 1일 SNS를 통해 이 감독과의 일을 세상에 알렸다. 2015년 4월 이 감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A감독은 “2015년 봄 동료이자 동기인 여자감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가 재판을 수십 번 연기한 탓에 재판은 2년을 끌었고 지난해 12월 드디어 대법원 선고가 내려졌다”고 적었다. 

A감독에 따르면 이 감독은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A감독에게 유사 성행위를 했다.

사건 발생 한 달 뒤 A감독은 이 감독을 준유사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2년간의 재판 끝에 대법원은 이 감독에게 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 성범죄예방교육 40시간 이수 명령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유사강간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해 구강, 항문 등 성기를 제외한 신체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성기를 제외한 신체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말한다. 형법에는 유사강간죄를 저지르면 2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한다고 돼있다.

또다시 불거진 성범죄로 ‘얼룩’
동성 성폭행·성추행 의혹·폭행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이 감독은 6일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동성애자라는 성 정체성에 대해 피해자 등 몇몇 지인들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다. 

동성애자임을 밝혔을 때 부모님께서 받으실 충격, 영화 시장서 저를 바라볼 곱지 않은 시선,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처한 상황 등을 생각하면 당당히 커밍아웃할 용기가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A감독은 내가 동성애자임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일 정도로 나와 친분이 깊었고 많은 감정들을 공유하고 있었다”며 “당시 술자리서 피해자가 만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행들의 부탁을 받아 피해자와 함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성폭행 논란에 대해서는 “술에 취해 잠든 줄 알았던 피해자가 어느 새 울기 시작하더니 오열했다. 피해자가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고 내가 달래는 과정서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가지게 됐다”며 “당시 나로서는 피해자가 저와의 성관계를 원한다고 여길만한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 감독의 해명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A감독은 같은 날 ‘가해자 이현주의 심경고백 글을 읽고 쓰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SNS에 글을 올려 이 감독의 공식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A감독은 “다시 떠올리기 끔찍하지만 그날의 일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가해자가 먼저 그날의 일을 말해버렸으니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해자는 심경고백 글에서 사건 이후 ‘밥 먹고 차 먹고 대화하고 잘 헤어졌는데 한 달 뒤에 갑자기 신고를 했다’고 하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사과를 받기 위해 두 차례 더 먼저 전화를 했지만 사과는커녕 내 잘못이라고 탓하는 얘기만 들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A감독은 1심 판결문을 일부 발췌해 공개하고 “끝으로 당신의 그 길고 치졸한 변명 속에 나에 대한 사죄는 어디에 있는가?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한 영화팬들에 대한 사죄의 말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몹쓸 짓을 당했던 그 여관이 당신의 영화에 나왔던 그곳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을 때 느낀 섬뜩함을 당신의 입장문을 읽으며 다시금 느꼈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사건에 대한 이 감독과 A감독의 입장, 법원의 판결 등이 알려지자 영화계는 발칵 뒤집혔다. 여성영화인모임은 이 감독의 감독상을 박탈했고, 한국영화감독조합은 그를 제명했다. 또 영화진흥위원회는 사건 관련 진상조사팀을 꾸렸다.

내부위원과 외부위원으로 팀을 구성해 1∼2주 안에 사건의 진상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소속 교수 역시 조사하겠다는 계획이다.

영진위 관계자는 “이번 조사가 이현주 감독 개인의 이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향후 비슷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이와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투 운동
대대적 확산


영화계서 현재 진행 중인 성추문 사건은 또 있다. 배우 조덕제씨와 여배우 B씨 간의 진실공방이다. B씨는 지난 2015년 4월 저예산 영화를 촬영하던 중 상호 합의되지 않은 상황서 상대 남배우가 속옷을 찢고 바지에 손을 넣어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당했다며 조씨를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고소했다.

조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명령이 내려졌다. 조씨는 2심 판결이 나온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2년 6개월간 기나긴 송사를 벌여왔고 이제 대법원에 가게 됐다”며 “이렇게 힘들고 고달픈 송사 과정에서 억울함과 답답함에 무너지려 하는 마음을 다잡고 허위와 거짓 주장에 갈기갈기 찢긴 가슴을 추스르며 걸어가면 곧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고 버텨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조씨는 1심과 2심에서 판결이 갈린 것은 재판부의 시각과 관점의 차이라고 주장했다. 1심에서는 조씨의 행위를 업무상의 정당행위로 판단하고 촬영 중의 연기로 판단한 반면, 2심은 감독의 지시에 따랐던 연기를 연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의 일반적인 성폭력 상황으로 받아들였다는 설명이다.

이어 “영화인에게 물어봐 달라. 20년 이상 연기한 조·단역 배우가 그 많은 스태프가 있는 현장에서 연기하면서 일시적으로 흥분할 수도 없을뿐더러 흥분 상태서 연기자임을 망각하고 성추행하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다는 점을 잘 알 것이다. 정신병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법정 공방
입장 평행선


여배우 측도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혔다. 여배우의 대리인인 이학주 변호사는 “조덕제는 자신의 주장과 달리 13번 신 처음 장면부터 감독의 연기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며 조씨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또 항소심도 조씨의 행위가 감독의 연기지시에 충실히 따르거나 정당한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라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판시했다고 덧붙였다.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가 있는 상태다.

조씨와 B씨의 입장 차이는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이 과정서 B씨는 조씨에 대해 명예훼손, 모욕,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달 중순경 서울남부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또 B씨를 향해 악의적인 글을 지속적으로 올린 누리꾼 73명도 같은 혐의로 고소했다.

김기덕 감독이 연루된 폭행 사건도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지난 2013년 영화 <뫼비우스> 촬영장에서 여배우 C씨에게 상대 남배우의 주요 부위를 만질 것을 주문하고 수시로 뺨을 때리는 등 폭행을 가한 혐의로 고소당했다. 

김 감독은 검찰 조사 과정서 “뺨을 때린 사실은 인정하지만 연기 지도를 위해서였을 뿐 고의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6부는 촬영현장에서 김 감독이 고소인의 뺨을 세게 내리치며 폭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혐의를 인정해 폭행죄로 500만원 약식기소했다. 나머지 고소사실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했다. 

김 감독에 대한 고소 결과가 나오자 일각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유명 원로시인 의혹 폭로
문단은 찬반 갈려 격론중

C씨는 지난달 19일 ‘위키트리’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에 항고 이유서를 접수했다고 전했다. 또 정신과 치료와 트라우마 치료센터 심리 상담을 함께 받고 있다는 근황을 밝혔다. 

C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감독과 있었던 사건 경위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기덕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계에 입문한 이후 폭력, 성폭력을 수도 없이 당했다. 내가 풀어야 할 숙제라는 걸 깨달았다. 물러서지 않을 거다. 물러서면 이자가 붙는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2016년 연이어 터진 문인들의 성추행 의혹으로 몸살을 앓은 문단은 최근 거물급 문인에 대한 폭로글로 또 다시 혼란 상태에 빠졌다. 발단은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이다. 최 시인의 시는 지난해 12월 계간지 <황해문화>에 실렸다. 

최근 미투 운동이 바람을 일으키면서 2개월이 지나 수면 위로 올라온 것.

시 ‘괴물’에는 ‘En선생’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해당 인물이 문단의 거물로 불리는 원로시인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최 시인은 ‘괴물’서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중략)…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내가 소리쳤다/“이 교활한 늙은이야!”/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후략)…

최 시인은 지난 7일 SBS와의 인터뷰서 자신이 겪었던 또 다른 성추행에 대해 언급했다. 시에서 다룬 것보다 더한 성폭력을 휘둘러온 문단 권력자들이 있다며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를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문단의 권력을 쥔 남자들이 어떤 자리에 부를 때 안 가면 소위 ‘찍혀요’, 그런데 대개 술자리에서 저는 늘 불쾌한 일을 당했어요. 이미 등단하고 시집을 낸 저 같은 사람보다는 더 약한 여자 문인들, 아직 등단하지 않고 원고만 투고한 상태의 그들이 가장 취약하죠”라고 설명했다.

최 시인의 폭로에 문인들은 찬반 의견을 내세우며 논란에 가담하고 있다. 이승철 시인은 최 시인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지난 7일 최 시인이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진행한 인터뷰를 두고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문단에 만연한 성추행이라니, 최영미는 참으로 도발적인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잣대로 마치 성처녀처럼 쏟아냈다”며 “메이저 출판사와 무소불위의 평론가들의 묵계를 강조하면서 그녀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남발했다”고 자신의 SNS에 적었다. 또 ‘싸가지 없다’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 최 시인의 최근 행보를 맹비난했다.

시인의 폭로
거장의 몰락?

반면 류근 시인은 지난 6일 자신의 SNS에 “몰랐다고? 고○ 시인의 성추행 문제가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난 모양”이라며 “놀랍고 지겹다. 1960∼1970년대부터 공공연했던 고○ 시인의 손버릇, 몸버릇을 이제야 마치 처음 듣는 일이라는 듯 소스라치는 척하는 문인과 언론의 반응이 놀랍고, 하필이면 이 와중에 연예인 대마초 사건 터뜨리듯 물타기에 이용당하는 듯한 정황 또한 지겹고도 지겹다”고 문단과 언론의 행태를 지적했다.

이어 “소위 문단 근처에라도 기웃거린 내 또래 이상의 문인 가운데 고○ 시인의 기행과 비행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되나”라며 “심지어는 눈 앞에서 그의 만행을 지켜보고도 마치 그것을 한 대가의 천재성이 끼치는 성령의 손길인 듯 묵인하고 지지한 사람들조차 얼마나 되나. 심지어는 그의 손길을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하다고 키득거린 이들 또 얼마나 되나”라고 꼬집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