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공수사권 경찰이 잡으면 생길 일

하는 일 없이 뒤룩뒤룩 살만 찌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국가정보원이 그동안 논란이 돼왔던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기로 사실상 결정했다. 하지만 대공수사권 이관의 길은 순탄치 않다. 일각에선 방첩기능 약화와 경찰조직의 비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경찰은 이러한 우려들을 불식시키겠다고 장담하며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했다. 
 

국정원이 지난 9일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데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청도 “국민을 위한 안보수사 전문기관으로 거듭나겠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야당의 거센 반발
방첩기능 약화 지적

입법 과정서 세부 사항이 변할 가능성도 있지만 대공수사권 경찰 이전이라는 큰 흐름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정원 출신의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찰청과 국정원 간의 협의가 있었고 대통령 공약사항인만큼 당정청의 논의가 있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 전문인력을 경찰로 돌리는 조직 개편과 기능 조정 차원”이라고 말했다. 

변수는 안보수사 공백을 우려하는 야당의 반발이다. 자유한국당은 지난달 30일 국정원 개혁위가 대공수사권 이전 방침을 밝히자 “국가 안보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반발했다.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에 대해 다수 안보 전문가들도 “남북 대치 상황서 대공수사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성급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대외 첩보·공작과 국내 보안·방첩 기구의 분리가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서 북한의 대남공작이 활발한 점을 고려할 때 국가 핵심 정보·보안기구의 양대 기능을 분할하는 방안이 자칫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정보수집과 수사가 엄격하게 구분이 안 되는 새로운 안보영역이 생겨나고 있는 게 세계적 추세”라며 “미국도 이런 흐름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자 2001년 9·11테러 이후 16개 정보기관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국가정보국장(DNI)직을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고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대공수사 업무를 담당했던 수사관들도 경찰로 기능이 이관되는 경우 대공수사의 효율성이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당 “남북대치 상황 무시 성급한 결정”
수사권 조정·자치경찰제 난제 해결이 먼저 

이기동 전 국정원 대공수사관은 “대공수사와 정보수집은 그 경계가 모호할 수밖에 없고 정보수집과 수사가 이뤄지는 범위도 국내·국외 구분이 없는데 이걸 분리한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수십년간 정보기관에 축적된 대공수사 노하우와 그 기능을 하루 아침에 폐지한다는 것은 정보기관 역량을 약화하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전직 수사관은 “우리 조직 성격상 다른 기관으로 대공수사권이 넘어가면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는 절대 공유가 되지 못할 것”이라며 “국정원보다 권력에 더 취약한 경찰이 과연 독립적인 대공수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북한의 온·오프 상 대남공작이 갈수록 진화하는 와중에 구체적 대안 없이 분단국가서 정보기관의 핵심기능인 대공수사권을 건드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대선 댓글 공작, 정치 개입과 같은 국정원의 정치적 일탈은 방지해야 하지만 국정원의 힘을 빼는 게 아니라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국정원서 북한기획담당관(1급)을 지낸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며 “대한민국의 존재를 위협하는 국가전복 활동 정보수집 및 수사활동은 정보기관의 최우선 과제이자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국정원보다 
잘 하려나?

경찰은 이미 대공수사 업무를 하고 있다. 200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자 739명 중 531명(71%)은 경찰이, 187명(25%)은 국정원이 수사했다. 나머지 31명(4%)은 군 검찰이나 기무사 등이 처리했다. 

하지만 경찰이 맡아 처리한 사건은 상당수가 이적표현물 게시 등 단순 사건이라 간첩 수사 등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도 안보수사 공백 우려를 최소화할 방안을 고심 중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 9일 “대공 수사가 질적인 문제에 대해 우려가 없도록 하겠다. 국정원에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에 따라 전문수사인력을 충원하는 등 안보 수사 역량을 대폭 확충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조직은 기존 경찰청 보안국을 확대 개편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 청장은 “국정원 쪽의 숙련된 인력의 지원을 받는 등의 방안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방첩기능 악화보다 더 우려되는 부분은 경찰 조직 비대화다. 경찰은 대공수사권이 이관되면 관련 첩보 수집도 맡을 가능성이 크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경우 국내 정보 수집은 경찰이 사실상 독점하게 된다. 
 

대공수사 기능이 경찰에 흡수될 경우 이승만정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처럼 경찰 조직과 권한이 비대해질 수도 있다. 대공수사권 이관의 전제로 자치경찰제 도입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2019년까지 국가안보 및 공안범죄 등을 다루는 국가경찰과 민생치안을 담당하는 자치경찰을 분리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권력기관의 기본 원칙은 견제와 균형이다. 대공수사권 이관은 결국 경찰 분권화와 연계돼있다. 


또 자치경찰제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도 얽혀있다. 실타래 같은 권력기관간의 문제를 시급히 정리해야 한다. 

경찰개혁위원회 위원인 양홍석 변호사는 “경찰만 국내정보를 독점하게 되는 상황서 대공수사와 다른 모든 분야 수사권을 경찰이 가진다면 또 다른 괴물이 될 수 있다. 미세하게 견제와 균형이 작동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이도 적지 않다.

참여연대 김남근 변호사는 “국정원 수사인력 상당수가 경찰로 넘어가면 안보수사 공백은 최소화될 것”이라며 “전문성보다는 인권침해 우려가 더 큰데 경찰로 바로 다 이관하기 보다는 별도의 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갈 경우 조직개편이 필연적이지만 이 역시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문 대통령 공약에 따르면 대공수사권 이관의 전제 조건은 자치경찰제 시행이다. 

“우려 불식 노력” 
대대적 개편 예고


정부 정책과 경찰개혁위원회 권고에 따라 2019년까지 국가안보 및 공안 범죄·전국단위 범죄·국제범죄 등을 다루는 국가경찰과 민생치안을 담당하는 자치경찰을 분리하기로 했지만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 반발이 거세다. 경찰은 우선 기존 보안국을 확대 개편할 계획이다. 

자치경찰제는 또 검·경 수사권 조정과도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수사권이 조정되지 않은 채 자치경찰이 시행될 경우 자치경찰을 통솔하는 지자체장이 검찰 지휘를 받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공약대로 대공수사권을 국가경찰 산하 안보수사국이 이어받기 위해서는 자치경찰제·수사권 조정이라는 큰 산부터 넘어야 한다. 

경찰청은 지난 9일 “안보수사 분야의 인권침해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키고 국민을 위한 안보수사 전문기관으로 새롭게 거듭날 것”이라며 안보수사체계의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했다. 

경찰청은 이날 오후 서면으로 낸 ‘대공 수사권 이관 관련 경찰청 입장’ 자료를 통해 “경찰청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관과 관련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경찰청은 안보수사에 대한 정치적 중립 확보 일환으로 “시민 대표들로 구성된 경찰위원회가 경찰행정 작용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지위와 권한을 강화하고, 독립적·중립적 외부통제기구인 옴부즈만 제도를 도입해 경찰권 남용과 인권침해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관서장의 구체적 수사지휘권 폐지 등 일반경찰의 부당한 수사 관여를 차단하는 장치도 마련해 경찰수사의 공정성을 더욱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안보수사 과정서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방안과 관련해선 “변호인 참여권과 진술녹음제 등 실효적인 인권보장제도를 도입해 수사 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의 모든 조직·제도·정책이 인권의 가치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인권영향평가제도 도입, 경찰관대상 인권교육 프로그램 마련도 제시됐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관에 따라 안보수사 담당 인력에 대한 전문성도 높여 나갈 계획이다. 

경찰청은 “철저한 직무분석을 토대로 변화된 업무환경에 적합한 안보수사 조직 체계를 정비하는 한편, 보안경과제를 강화하고 전문수사인력을 충원하는 등 안보 수사역량을 대폭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보수집 유일기관
조직 비대화 우려도

이와 함께 “안보 관련 유관기관 간 상시 정보교류가 가능한 ‘통합 정보관리 시스템’ 등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 안보수호에 조금의 빈틈도 없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경찰청은 대공수사권 이양 작업을 차질없이 준비하기 위해 본청 보안국을 중심으로 조직개편 방향과 예산·인력 운영 방안 등을 세부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국정원서 하던 업무의 공백이 없도록 기존 보안국을 어떻게 확대 개편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국내는 물론 해외 연계 부분은 우리가 취약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국정원의 대공수사 기법이나 그동안 갖춰진 인프라, 노하우를 바로 구축할 수 없다”며 “필요하다면 국정원의 첩보 수집을 포함한 대공수사 인력을 지원받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의 대공수사권 확대에 따른 조직 비대화나 경찰권 남용 등과 같은 부작용을 우려하는 지적에 대해서는 “국민이 우려하는 경찰권의 남용이나 수사 문제들에 대해서는 민주적인 통제를 내외부적으로 하겠다”며 “결과적으로 얼마나 투명하게 운영하느냐, 국민들이 얼마나 제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은 이 청장을 비롯한 지휘부의 영화 <1987> 관람에 대해 “고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등 경찰의 부끄러운 과거를 되돌아보며 다시는 경찰의 인권침해가 없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며 “다시 한 번 희생자와 유족들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에게 깊이 사죄드린다”고 지난 과오를 인정하기도 했다. 

국정원 성과 미미
전환 결과에 주목

한 전문가는 “국정원의 중요한 기능은 정보 수집·분석인데, 그런 면에 집중한다면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은)시도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며 “그간 국정원서 간첩 색출한다고 하면서도 성과를 냈는지 의문이니, 경찰에 맡긴다고 특별히 대공수사가 약해질 것이라고 볼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정원은 원장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스타일의 조직이고, 경찰은 수가 많고 전국적으로 퍼져 있어 감시의 눈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권한 남용 우려도 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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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