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지인능욕’이 대학가서 유행하고 있다. 돈을 받고 일반인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해주는 서비스다. 가까운 사람의 사진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어 피해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보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얼굴이 음란물에 합성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대학 여학생의 얼굴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한 남학생이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이른바 ‘지인 능욕’이 대학가에도 확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일 서울 성동경찰서에 따르면 한양대 재학생 A씨는 같은 학교 여학생 5명의 얼굴에 음란 사진을 합성한 사실이 드러나 수사를 받고 있다.
나체 사진과 합성
A씨는 여학생들이 자신의 SNS에 올린 얼굴 사진을 인터넷에 떠도는 알몸사진과 합성한 이미지를 휴대폰에 보관하고 있다가 적발됐다. A씨 범행은 그가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면서 드러났다.
우연히 A씨 스마트폰을 습득한 학생이 음란물이 합성된 사진을 발견했고, 이 사실을 피해자들에게 알린 것이다.
피해자들이 이달 초 고소장을 접수하자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합성을 해주는) SNS 계정에 의뢰해 사진을 만들었고 유포할 생각은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정확한 조사를 위해 스마트폰에 남아있는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디지털 포렌식을 의뢰한 상태다.
또 자신의 중학교 여자 동창생 등의 사진을 나체 사진과 합성해 소셜 미디어에 올린 혐의로 구속됐던 ‘지인능욕’ 가해자가 집행유예로 풀려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10일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5단독 김주옥 판사는 지인능욕 가해자 B씨를 명예훼손 및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음란물 유포, 사기, 모욕 등의 혐의로 최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선고했다.
B씨는 지난해 5월26일 자택서 자신의 익명 소셜 미디어에 자신의 중학교 동창생 등 9명의 사진과 다른 여성의 나체를 합성한 사진을 71회 게시하고 개인의 신상도 함께 유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B씨의 범행이 상당 기간 반복해서 일어났다. 합성 피해자와 사기 피해자들과 합의하지 못했다. 피해자들의 인적사항을 적시한 합성 사진을 저속한 내용의 글과 함께 반복적으로 게재해 피해자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이 매우 컸다. 모욕적이고 패륜적“이라며 판단의 이유를 밝혔다.
일반인 여성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한 사진을 SNS에서는 ‘지인 능욕’ 사진이라고 한다. 이런 사진은 주로 특정 트위터 계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트위터에서는 ‘지인능욕’ 사진을 만드는 계정을 신고하거나 지인 능욕 범죄를 알리는 ‘디지털 성범죄 아웃’이라는 계정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활동에도 ‘능욕 계정’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실제 트위터서 지인 능욕을 검색하면 합성 사진을 만들어주는 계정이 여전히 검색된다. 최근 각종 음란물의 온상으로 떠오른 텀블러도 마찬가지다.
‘지인 능욕’ 계정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해당 범죄를 처벌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당 계정과 범죄 행위를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청원 글에는 현재까지 3만7000여 명이 서명했다.
지난 30일 청와대 국민소통광장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올라온 ‘해외 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무분별한 일반인 모욕 사진의 유포를 처벌해주세요’란 제목의 청원 글은 일반인 여성의 사진이 ‘음란물’로 둔갑해 무단 배포되면서 피해자에게 큰 고통을 주는 상황을 지적하며 법 개정을 촉구했다.
여학생 얼굴사진 음란물에 합성 SNS 유포
관련 계정 텀블러, 트위터에 여전히 검색
실제로 지인 능욕 계정의 일반인 ‘모욕’ 수준은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 걸레라는 표현조차 수위가 매우 낮은 모욕 축에 속한다.
이런 계정들은 성인 여성은 물론이고 교복을 입은 미성년자들의 SNS 사진까지 무단으로 도용해 게재하고 있어 청소년마저 범죄에 노출돼있다.
청원 글은 이런 상황을 “일반인 여성을 비롯하여 미성년자의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사진이 ‘지인 능욕’이라는 콘텐츠로 무분별하게 소비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해외 사이트라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이러한 범법행위를 눈감아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온라인상의 범법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청원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범죄 대상을 가리지 않는 범죄행위 탓에 청원에 참여한 청원인 다수는 자신이 SNS에 올린 평범한 사진들 역시 지인 능욕 계정에서 음란물로 합성돼 소비되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를 냈다.
자신을 고등학생이라고 밝힌 C양은 “떨리는 손으로 내 이름을 검색해봤다. 동명이인의 수많은 피해자 게시글 속에 내 사진만 없다는 데 안도감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 절망스럽다”고 적었다.
또 다른 청원인은 “남의 사진을 악의적으로 사용하고, 또 그걸 다른 사람에게 팔기도 하면서 돈을 번다니 어이가 없다. 경찰에 붙잡혀도 그렇게 번 돈은 고스란히 챙긴다는 게 화가 난다”고 비판했다.
이런 지인 능욕 범죄는 합성사진 판매한 경우를 음란정보유통죄로, 사진을 제보한 경우는 사이버명예훼손혐의로 각각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판매하지 않고 소지만 하는 경우에 대해선 처벌 근거가 없다.
돈을 받고 사진을 팔아 금전적 이득을 취했더라도 범죄 수익 환수 규정이 없어 처벌에 그치는 등 관련 입법이 미비한 상황이다.
또, 텀블러 등 해외 법률 규제를 받은 기업들이 한국 정부의 시정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점도 경찰 수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그나마 트위터는 신고 기능을 통해 문제 계정을 즉시 삭제하고 있는 반면, 텀블러는 미국 기업이라는 핑계로 계정 삭제 처리에 오랜 시일이 걸려 문제로 지적된다.
2017년 방통위의 ‘성매매·음란’ 시정요구 3만200건 중 2만2468건이 텀블러였지만 텀블러 측은 ‘우리는 미국 법률의 규제를 받는 미국 회사다.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며 성인 콘텐츠는 당사 정책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시정을 거부한 바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련 기관은 텀블러의 음란물 관련 현지법 위반 여부를 모니터링한 뒤 적발된 사례를 현지 당국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종 사이버 성폭력이 대학가서 활개 치는 현실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단체채팅방 성희롱도 처음 발견된 곳은 대학가였다. 지인 능욕은 채팅방서 끼리끼리 벌이던 성희롱이 불특정다수 사이서 이뤄지는 셈이어서 피해자에게 주는 충격이 훨씬 크다.
발 빠른 대처 필요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인터넷 성폭력의 새로운 변종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곳이 학교”라며 “올바른 성 감수성을 배워나가야 할 공간서 오히려 그릇된 성 인식이 아무런 제어 없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는 새로운 형태의 사이버 성폭력이 생겨나고 있다”며 “법과 교육 등 사회 전반적으로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