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잘 만난’ 재벌 2·3세 승진잔치 백태

‘쭉쭉쭉’ 이대로 회장까지 가즈아!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그룹 및 기업 오너 일가의 엘레베이터 승진은 계속된다. 이들에게 연말인사나 새해인사는 승진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인사를 통해 장악력을 높이는 데 성공한 이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향후 이들의 행보에 눈길이 쏠린다.
 

새해 대규모 인사를 통해 많은 오너가의 2·3세가 승진의 기쁨(?)을 맛봤다. 경영권 강화의 방편으로 승진인사를 이용하는 것은 재계의 관행이다. 한미약품은 새해 첫날 오너 2세 임주현, 임종훈 전무를 각각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들은 창업주 임성기 회장의 자녀다.

새해벽두
벼락승진

74년생인 임주현 신임 부사장은 임 회장의 장녀(2남1녀, 둘째)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미스칼리지 음악과를 나와 제약회사 임원로서의 시너지 효과에 물음표가 찍히지만 오너 일가가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하는 데는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는 2007년 회사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글로벌전략, 인적자원개발 등을 담당하고 있다. 유일한 여성 임원이기도 한 임주현 부사장은 지난해 한미벤처스 사내이사에 등기하며 그룹내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

3남매 가운데 막내인 임종훈 신임 부사장(77년생)은 지난해 3월 주력 계열사인 한미약품의 사내이사에 선임된지 1년도 되지 않아 승진 대상자에 포함됐다. 


그는 미국 벤틀리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친누나인 임주현 부사장과 같은 2007년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한미약품의 전무로 근무하며 관계사인 한미IT가 100% 출자한 의료기기 물류회사 ‘온타임솔루션’의 대표직을 지냈다.

남매의 승진으로 2세 승계작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는 평이다. 장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장은 2000년 한미약품 전략팀 과장으로 입사한 후 6.1년만에 사장직에 올라 한미약품그룹의 경영에 직간적접인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다만 이들의 승진의 적절성에는 의문이 따른다. 초고속 승진을 단행할 만큼 경영능력이 준비돼 있는지 여부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뚜렷한 경영 성과가 없는 부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올해 자신의 경영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경영 행보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입사한지 얼마됐다고…초고속 승진
일반 평사원과 얼마나 차이 날까?

한국타이어그룹도 새해 벽두부터 경영권 승계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우선 조양래 회장이 그룹의 지주사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대표이사직서 물러나면서 두 아들에게 길을 내줬다. 조 회장이 물러난 자리에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이 단독으로 대표이사직에 올랐다. 
 

앞서 조 부회장은 지난 1일자로 부회장 직에 올라 명실상부 그룹내 차기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70년생인 조 부회장은 1997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했다. 


회사 내 경영혁신팀, 해외영업본부장, 마케팅본부장, 한국지역본부장 등을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로 자리를 옮겨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조현식 부회장은 지주사의 대표직을 맡으면서 그룹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계획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동생 조현범 사장은 한국타이어의 대표이사직에 올라 핵심계열사의 ‘방향키’를 쥐게 됐다. 지난 2일 한국타이어는 이사회를 개최하고 조 사장을 대표이사직에 선임했다. 현재 그는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에서 최고운영자(COO)직도 동시에 역임하고 있다. 

조 사장은 미국 보스턴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했으며, 마케팅 부장, 전략기획본부장 등을 거치며 경영을 배웠다. 2012년 경영기획본부장으로 승진했으며, 그의 부인 이수연씨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셋째 딸이라 한국타이어를 이 전 대통령의 사돈 기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조 사장은 주력 사업회사인 한국타이어를 이끌면서 형인 조 부회장을 측면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조현식 부회장과 조현범 사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하지만 갈길이 멀다. 그룹을 장악하기에 지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양래 회장은 지난해 말 한국타이어 지분 598만7994주를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에 매각했다. 

그러나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조 회장이 23.59%로 최대주주 신분이다. 조 부회장과 조 사장은 각각 19.32%, 19.31% 수준으로 경영권을 완전히 물려받았다는 평가에는 무리가 있다.

정신없는 아빠
속도내는 아들

따라서 향후 조 부회장과 조 사장의 경영 성과가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한국타이어의 실적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한국타이어는 올 3분기 매출액 1조824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1%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2141억원으로 29.2% 감소했다.

4분기 실적 및 올해 총 누적 실적 역시 감소가 예상되고 있다. 
 

이상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타이어의 4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7.1% 성장한 1조7000억원, 영업이익은 18.6% 감소한 1948억원으로 추정한다”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두 형제의 등판에 경영성과가 더욱 절실할 것으로 풀이된다.


푸르밀은 오너 경영체제로 방향을 선회했다. 

롯데분유서 2007년 독립한 푸르밀은 그동안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푸르밀이 창업주 신준호 회장의 차남 신동환 부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하면서 전문경영인 시대서 오너 경영 시대로 전환했다.

신 대표는 1998년 롯데제과 기획실에 입사했다. 2016년에는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 2년만에 대표이사직에 앉게 됐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동생이자 푸르밀의 최대주주인 신준호 회장은 그동안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를 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의 장남 신동환 부사장이 신임대표 이사직에 오르면서 오너 일가 경영 체제가 됐다. 

푸르밀의 지분은 신준호 회장 60%, 신동환 대표이사 10%, 신경아 이사 12.6%, 신재열 4.8%, 신찬열 2.6% 등 오너 일가가 90% 가까이 소유하고 있다.

신 대표는 실적 회복에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동안 푸르밀은 실적이 둔화되고 있다. 2012년 매출액 3132억원·영업이익 115억원 각각 기록하다 2014년 매출 2662억원·영업이익 97억원, 2016년 매출 2736억원·영업이익 50억원 등으로 실적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50세를 넘지 않는 신 대표가 회사의 실적에 반전을 줄지 의문의 시각이 있다. 뚜렷하게 경영성과를 낸 적이 없는 오너 일가가 회사를 이끄는 데 대한 우려가 혼재돼있어 올 한해 푸르밀의 실적에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DB그룹(옛 동부그룹)은 오너이자 회장이 성추문 논란으로 자리를 비우면서 그의 아들이 빠른 속도로 회사를 장악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3일 재계에 따르면 DB그룹은 전날 김남호 DB손해보험 상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김 부사장은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DB그룹 창업자인 김 전 회장은 1남1녀를 뒀지만,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김 부사장뿐이다. 김 전 회장의 장녀는 현재 미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부사장은 지난 2009년 동부제철로 입사해 2013년 동부팜한농으로 이동했다가 2015년 DB금융연구소 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지난해 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한 뒤 올해 부사장이 됐다.

재계에서는 김 전 회장이 지난해 여비서 성추행 혐의로 경찰의 수배 상태에 놓이자 경영 공백을 메우기 위해 김 부사장이 회사 경영승계에 속도를 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단 김 부사장이 금융계열사의 지부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DB손해보험에 승진하면서 그룹내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지분 승계도 마무리된 모습이다. 김 부사장은 지난해 12월22일 기준 지주회사인 DB 지분 18.21%와 지난해 9월30일 기준 DB손보 지분 9.0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따라서 향후 DB그룹의 주요현안에 김 부사장의 의중이 상당 부분 반영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말 신년인사를 단행한 삼진제약 역시 오너 일가의 승계 후계자가 승진의 기쁨을 맛봤다. 

해열진통제 '게보린'으로 유명한 삼진제약에 따르면 지난 2일자로 총 71명 임직원이 승진 대상자에 포함됐다. 이 가운데 삼진제약 공동 창업주 최승주, 조의환 회장의 2세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임원에 안착
수장 맡기도

최 회장의 딸인 최지현 이사와 조 회장의 장남 조규석 이사가 각각 상무로 진급했다. 이들은 2015년말 함께 임원으로 승진한 바 있다. 이번 승진은 2년만인 셈. 현재 최 상무와 조 상무는 미등기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최 상무는 1974년생으로 홍익대 대학원 건축학 석사과정을 거쳐 삼진제약에 입사해 마케팅과 홍보 등의 부서에서 8년5개월째 근무하고 있다.
 

1971년 생인 조규석 상무는 최 상무보다 근속연수가 1년6개월 정도 짧다. 텍사스대 대학원 회계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회사에 입사해 경리 및 회계 관련 업무를 맡아왔다.

현재 이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은 회사 경영권을 장악할 수준이 아니다. 최 상무가 1524주를 가지고 있을 뿐 조 상무는 주식이 한주도 없다. 

재계에서는 최승주, 조의환 회장의 ‘친구경영’이 2세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높다. 삼진제약은 올 3분기 누적 매출 1873억원, 영업이익 376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 20% 수준으로 비교적 알짜 회사라는 평가가 나오는 회사라 이목이 더욱 집중된다.

두산도 지난해 연말인사를 통해 오너일가의 4세들이 모두 임원이 됐다. 산인프라코어에 따르면 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전략팀 부장은 최근 인사서 상무로 승진했다. 지난 2014년 승진한 지 약 3년 만이다. 

박 신임 상무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신사업을 발굴하는 한편 디지털 혁신 업무를 맡게 된다. 기존의 전략팀 업무도 병행한다.

박 상무는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차남으로 두산그룹 4세대의 막내다. 1985년생인 박 상무는 미국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근무했다. 2013년 말부터 두산인프라코어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금수저가 최고의 스펙
부사장·사장은 기본

그의 승진으로 두산그룹 오너 일가 가운데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4세는 모두 임원진에 오르게 됐다. 

형제경영이었던 두산그룹은 4세로 넘어가면서 사촌경영 시대로 접어든 점도 눈길을 끈다. 4세로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 박진원 네오플럭스 부회장,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 등이 있다.

GS그룹은 연말인사서 오너가 4세 허철홍 GS 부장을 상무로 승진 발령했다. 허 상무는 허준구 전 LS전선 명예회장의 2남인 허정수 GS네오텍 회장의 장남이다. 허정수 회장은 허창수 GS그룹 동생이다. 허 상무는 허만정 창업주의 증손자로 4세 경영인이다. 

허 상무의 승진으로 GS그룹서 경영에 참여하는 임원은 5명이 됐다. GS그룹 역시 두산그룹과 마찬가지로 최근들어 4세 경영인이 경영 전면에 등장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허세홍 GS칼텍스 부사장은 GS글로벌 대표로 지난해 선임됐다. 69년생인 허세홍 부사장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아들로서, 4세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허준홍 GS칼텍스 전무, 허윤홍 GS건설 전무, 허서홍 GS에너지 상무 등도 현재 계열사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향후 이들의 경영권 관련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4세 가운데 지주사인 GS지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맏형 허세홍 대표(1.43%)가 아닌 허준홍 전무(1.79%)다. 허철홍 상무는 1.37%로 세 번째로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고 허서홍 상무와 허윤홍 전무가 각각 1.24%, 0.53%로 뒤를 잇고 있다.

일진그룹도 지난해 12월 연말인사를 통해 새해를 대비했다. 25명이 승진 대상에 포함됐는데 이는 창사 이래 최대규모였다. 특히 오너 2세인 허정석 일진홀딩스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해 눈길이 쏠렸다. 

1969년생인 허 부회장은 허진규 회장의 장남으로 일진홀딩스 대표이사 사장, 일진전기 대표이사 등을 맡고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일진그룹 계열사인 일진다이몬드에 대리로 입사해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일진다이아몬드서 임원(이사)을 달았고 상무, 일진전기 전무, 일진중공업 부사장, 일진전기 대표이사 사장, 일진홀딩스 사장을 역임했다.

경영 능력은?
성과는 나몰라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신년인사 및 연말인사 등 대규모 인사를 통해 오너 가의 후계자가 진급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의 승진이 경영성과와 무관한 초고속 승진이라 향후 자신의 경영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행보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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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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