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검찰 조직문화는 ‘조폭’에 비견될 정도로 살벌했다. 철저한 상명하복이다. ‘까라면 까’라는 게 이들 문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검찰은 이런 권위주의 문화를 탈피하려고 애쓰는 분위기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권위주의 조직문화 개선 방안’을 보면 검찰의 경직된 관행을 엿볼 수 있다.
“OOO 기자, 검찰이 왜 조폭 수사를 경찰에 다 맡기지 않고 직접 하는 줄 알아?” “글쎄요. 뭐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게 말이야, 하늘 아래 두 조직은 있을 수 없는 법이거든.”
약속 있으면
위부터 늦게
이 대화는 한 일간지 기자와 검찰 간부 사이에 오간 내용이다. 검찰의 속성과 문화 등을 분석한 책 <검사님의 속사정>에 나온 대목으로, 검찰 조직문화의 문제점을 시사한다. 해당 검찰 간부가 지적하는 문제점을 더 들여다보자.
“솔직히 검찰이 그(조폭) 조직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잖아. 검사들이야 그 안에만 있다보니 그것을 당연시하며 살고 있는 것이고….”
이런 조직문화는 ‘검사동일체 원칙’서 비롯됐다.
검찰청법 제7조(검찰사무에 관한 지휘·감독)에 따르면 ①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해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 ② 검사는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제1항의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에 대해 이견이 있을 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제7조의2(검사 직무의 위임·이전 및 승계) ① 검찰총장, 각급 검찰청의 검사장 및 지청장은 소속 검사로 하여금 그 권한에 속하는 직무의 일부를 처리하게 할 수 있다. ② 검찰총장, 각급 검찰청의 검사장 및 지청장은 소속 검사의 직무를 자신이 처리하거나 다른 검사로 하여금 처리하게 할 수 있다.
이 조항을 두고 형사소송법 해설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전국의 모든 검사가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 형 상하의 계층적 조직체를 형성하고 일체불가분의 유기적 통일체로서 활동하는 것.”
요약하자면 전국 검찰은 한 몸이며,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상명하복 관계를 가지고 검찰 사무를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검찰은 직급과 엄격한 기수문화로 움직인다. 법조계에선 이런 조항들이 검찰을 조폭(조직폭력배)에 필적할만한 ‘검찰조직’을 만든 법적인 뿌리라고 입 모았다.
검찰총장→검사장→차장검사→부장검사→평검사로 이어지는 수직적 피라미드 지휘 구조에서 나온다고 분석했다.
철저한 상명하복 수직적 서열화
조금씩 직원 중심으로 변화 조짐
현재는 법에 규정됐던 검사동일체 원칙이 사라져 형식적으로는 검찰총장과 검사로 모두 분류되지만 사실상 검찰 조직은 철저한 위계에 따라 움직인다.
지난해 5월1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남부지검 김모 검사가 평소 상급자인 김모 부장검사로부터 폭언 폭행을 당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검찰의 조폭 문화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검찰 내 ‘조폭 문화’를 해체하기 위해 탈권위주의 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대검 사무국은 지난해 11월29일 일선 검찰청에 조직문화 개선 방안 시행 공문을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이 전달된 이후 검찰 내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권위주의 조직문화 개선 방안[행사·의전·회의부터 탈(脫)권위주의]’ 관련 자료에 따르면 검찰은 수평적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없애기 위해 행사·의전·회의 관행부터 바꾸기로 한 것이다.
기존에는 시무식이나 이·취임식 등 각종 행사 때 기관장을 배려해 연단 등에 별도의 좌석을 만들었다. 기관장이 입장할 때 기립박수는 기본이고, 직원들이 서 있는 상태서 열리는 행사도 많았다. 앞으로는 기관장도 직원들과 나란히 같은 의자에 앉게 되며 기관장 입장 시 박수도 생략한다.
과거에는 기관장 취임식 때 해당 기관 사무국장이나 총무과장이 자택이나 관사 등으로 직접 영접을 나갔다. 이임식의 경우에는 전 직원이 현관에 도열해 환송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또 기관장 승용차 옆에 도열해 인사를 했다.
앞으로는 이런 관행도 사라진다.
윗분 차에
90도 인사
휴일에 기관장이 참석하는 등산이나 봉사활동에 직원들이 동원되는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이제는 직원들의 의사를 존중해줄 것으로 보인다. 행사 성격을 막론하고 개인 의사 등을 존중해 참석을 원하는 사람들만 가면 된다.
또 간부위주의 의무·형식적 행사도 없어진다. 부·과별 내부 의견에 따라 장소를 선택하고, 실질적으로 조직 활성화에 기여할 행사를 늘려갈 것으로 보인다.
형식적인 간담회도 사라진다. 기관장 간담회가 있을 때면 대부분 직원들은 개인별 인사말 등의 준비로 심리적 부담이 있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직원들은 의무적으로 ‘한 마디씩’(애로사항 등 무엇이든 의무적으로)해야 했다. 앞으로는 이런 관행적인 간담회는 사라진다.
기관장 편의를 위해 직원들의 학력·가족관계 등 사생활까지 적어서 보고하는 ‘프로필 문화’도 없어진다.
또 저녁식사 자리서 폭탄주를 만든 뒤 발언하거나 장기 자랑을 강요하는 일도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음주·남성 중심의 행사도 바뀐다. 무알콜 회식을 지향하며, 문화 회식 등 참여·소통형 회식 문화가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또 21시 이후 회식 자리를 지양하라는 권고도 내려왔다.
기관장 중심 의전·행사·회의
권위주의 개선방안 들여다보니…
빈번한 월례회의로 업무 공백 등이 발생했다. 이런 관행이 분기별 1회 등 각 청의 실정에 맞게 조정된다. 또 형식적 월례 조회 등을 개최하는 대신 현안과 필요할 때마다 간부 회의를 개최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기관장 훈화 말씀 위주로 흐르기 쉬운 월례 조회 횟수를 줄이고 명칭도 ‘조회’ 대신 ‘회의’로 부르기로 했다.
회의 시 기관장에게 시선이 쏠리는 ‘ㄷ자형’ 책상 배치는 ‘타원형’이나 ‘다이아몬드형’ 등으로 조정된다. 헤드테이블, 서열 구분 좌석 배치도 지양할 것을 대검서 권고했다. 직원 퇴임식 날 기관장이 정중앙에 앉아서 사진 찍는 광경도 더 이상 볼 수 없다.
검찰 내 외부위원에 대한 배려도 생겼다. 외부위원 위촉장 수여식 때 행사장과 오·만찬장을 구분하며 과도하고 비효율적인 의전행사를 치렀다. 이런 관행은 다과장 등에서 자연스럽게 위촉장을 수여하는 것으로 바뀐다.
물론, 예외는 있다. 행사의 성격에 따라 행사장과 오·만찬장을 구분해 진행할 수 있다.
기관장 의전을 위한 리허설과 외부위원의 긴 대기시간도 없어진다. 리허설은 최소화하고 기관장이 일찍 도착한 위원과 담소를 나누며 다른 참석자를 기다린 후 행사가 진행되는 방향으로 변화될 것이다.
권위적인 용어 사용도 개선된다. ‘상견례’는 ‘인사’로, ‘청내 순시’는 ‘사무실 방문’으로, ‘지도 방문’은 ‘격려 방문’으로, ‘영접’은 ‘마중’으로 각각 바꿔 부르기로 했다.
신고식 때
관등 성명
이런 권고안이 각 지검에 내려간 이후 검찰 내부 분위기는 눈에 띄게 바뀌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대검서 이와 관련된 지시사항이 내려온 이후 많이 나아졌다”며 “연말 회식 1차에서 술 강요도 없었고, 폭탄주도 없이 끝났다. 이제는 간부가 들어와도 자연스럽게 앉아 있는다”고 말했다.